소설리스트

현계지문-549화 (549/916)

549화. 기회를 노려 이득을 취하다

“조금 전에 이화관의 두 멍청이가 어쩌다가 이곳까지 도망을 왔는데, 이렇게 많은 사령 환수들을 끌고 왔다니.”

만호종은 산골짜기 속에서 끊임없이 몰려오는 사령 환수들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힘을 주어 말했다.

“만 사형, 나를 못 믿는 건가 아니면 우리 감수관의 진관대진을 못 믿는 건가? 내가 직접 설치한 진법이야. 이런 지능이 없는 환수들이 찾을 수 있겠나?”

수봉월은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만 형,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수 사매가 설치한 진법이 아주 믿음직해.”

막린회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때, 십 장 정도 크기인 백골 괴수 한 마리의 텅 빈 눈에서 보라색 혼화가 몇 번 튕겼다. 이어서 백골 괴수가 갑자기 커다란 머리를 한쪽으로 비틀더니 기세등등하게 산골짜기 쪽을 공격했다.

쿵, 쿵, 쿵!

백골 괴수는 네 발을 짚으며 달려왔다. 산골짜기에서 북을 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괴수의 뾰족하게 구부러진 이빨 두 개는 한 장 정도 길이였는데, 마치 긴 창처럼 뻗으며 막린회 일행이 숨어있는 진법을 향해 공격했다.

“이건 무슨 일이야?”

이진종의 제자들은 진법 속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목격하자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만호종은 눈썹을 찌푸리며 발걸음을 크게 떼서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누군가 뒤에서 한 손으로 만호종를 눌러서 막았다.

“만 형, 급하게 생각하지 마. 저 녀석은 생각 없이 공격을 하는 거야. 지금 진법에서 나가면 우리 위치만 들킬 거야. 더 많은 환수가 몰려올 거라고.”

막린우가 한 손으로 가볍게 만호종의 어깨를 누르며 말했다.

“그럼 저렇게 공격하게 놔두겠다고?”

만호종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돌려서 수봉월을 바라보았다.

“내 은닉 대진은 방어를 하는데는 취약하지만, 지계 정상 수준인 환수 한 마리 정도는 막아낼 수 있어.”

수봉월이 말했다.

만호종은 두 사람이 덤덤하게 굴자, 다시 발길을 거두어들였다.

수봉월이 말을 마치기 바쁘게 백골 괴수는 이미 근처까지 다가왔다.

펑!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산골짜기가 격하게 흔들리며 양쪽 산언저리에서 수많은 돌 부스러기와 모래가 흩날렸다.

이때, 산골짜기 안에서 투명에 가까운 파란 물빛이 일었다.

파란 물빛은 물결처럼 일렁이며 백골 괴수의 이빨이 진법을 뚫고 오는 순간, 화려한 빛을 뿜어냈다.

산골짜기 바깥에 있던 사령 환수 무리는 아래에 숨어있던 석목과 연나를 보았다. 그러자 환수 무리는 땅을 향해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십 장 정도 깊이인 웅덩이 하나를 만들어놓았다.

백골 괴수가 큰 소동을 벌이는 바람에 환수들은 전부 근처를 바라보았다.

백골 괴수의 이빨이 파란 물빛 광막에 닿으며 이가 갈리는 소리를 냈다.

뿌드득!

이어 가슴을 후벼 파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골 괴수는 이빨 한 개가 끝부분부터 부러져버렸고, 또 다른 이빨도 갈라지기 시작했다.

진법 속에서 그 광경을 보던 이진종 제자들 백여 명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 * *

같은 시각, 땅속 깊은 곳.

“다행히 이 환수들은 지능이 높지 않아. 그렇지 않았더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위험해졌을 거야. 그런데 백골 괴수 한 마리로 대진을 둘러싼 방어벽을 뚫긴 어렵지 않을까?”

석목은 잠깐 숨을 돌리며 옆에 있는 연나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비록 두 사람은 땅속에 있었지만, 심신이 연결되어있어서 연나가 소환한 사령들을 통해 산골짜기에서 벌어진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뭐가 그렇게 급해?”

연나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재밌는 순간을 기대할게.”

석목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연나는 두 눈으로 석목을 한번 째려봤다.

“우린 계속 이곳에 숨어있을 수 없어. 녀석들이 알아차릴 거야.”

석목이 또 말했다.

“알아.”

석목은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산골짜기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 * *

골짜기에 모래알이 흩날리며 모래바람이 불었고, 하늘 전체가 누렇게 변했다.

이때, 하늘에서 뼈만 남은 새들 수십 마리가 빙글빙글 돌다가 산골짜기로 다가왔다. 새들이 내려온 자리는 제자들이 숨어있는 진법과 한 장 정도 떨어진 자리였다, 거의 붙어버릴 것만 같았다.

골짜기 속에 있던 이진종의 제자들은 깜짝 놀랐다. 더는 가만히 앉아서 쉴 수 없게 되었다. 제자들은 전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고, 막린회를 비롯한 천위 후기 제자들도 전부 고개를 들어서 위를 바라보았다.

이때, 백골 괴수의 이빨에서 옅은 빛이 반짝이더니 온몸에 투명한 빛을 뿜는 작은 해골이 하나 나타났다. 비령이었다.

비령의 손에서 차가운 빛이 반짝였고, 금색 부문이 가득 새겨진 뼈송곳을 들고서 괴수의 이빨과 파란 광막이 맞닿은 자리를 향해 찔렀다.

쩍!

소리가 가볍게 울려 퍼졌다.

비령은 단번에 광막을 찔러버린 후에 다시 몸을 감춰 사라져버렸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허공에 갑자기 나타난 뼈만 남은 새들에게 시선을 뺏긴 골짜기 속 제자들은 백골 괴수 주변에서 벌어진 상황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큰일이다. 큰일이야!”

추개가 주변을 훑어보더니 놀라서 소스라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막린회를 비롯한 제자들은 조금 전에 난 가벼운 소리가 백골 괴수의 또 다른 이빨이 부러지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이어서 또다시 쩍 소리가 울렸다.

백골 괴수의 또 다른 이빨이 드디어 부러졌다. 파란 물빛 광막에 생긴 균열도 갑자기 벌어지더니 순식간에 부서져 버렸다.

진법에 있던 제자들 백여 명은 순식간에 모습이 드러났다. 그중에 많은 제자들은 빠르게 알아차리지 못해서 멍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수봉월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진종 제자들 백여 명이 갑자기 나타나자 산골짜기에서 배회하던 만여 마리 사령 환수들은 눈에 다시 혼화가 격하게 일었다. 사령 환수들은 뿔뿔이 고개를 돌려 산골짜기를 바라봤다.

무야가 가장 앞쪽에서 소리 없이 울부짖으며 손에 든 검은 칼을 휘둘렀다. 무야는 수많은 사령 해골들을 이끌며 산골짜기를 향해 공격을 했다.

나머지 사령 환수들은 무야가 이끄는 사령들을 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따라와 산골짜기로 몰려들었다.

“네 계획엔 차질이 전혀 없다며?”

만호종은 분이 풀리지 않은 듯이 막린회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빨리 여길 벗어나야 해. 이렇게 많은 사령 환수들에게 포위된다면 너와 내가 힘을 합쳐도 부족하다고.”

막린회가 차갑게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

수봉월은 당황한 기색이 눈에 스쳤다. 그리고 입을 열어 물었다.

“모든 사람은 진을 치고 막아라. 산골짜기만 벗어나면 흩어져서 외곽 구역으로 도망친다.”

막린회가 곧바로 말했다.

세 도관의 제자들 백여 명은 각 도관에서도 뛰어난 실력자들이었다. 제자들은 잠깐 혼란에 빠졌으나 이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명령대로 뿔뿔이 흩어져 뇌진을 만들었다.

산골짜기 속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보라색 번개가 번쩍였으며 크고 작은 뇌전 진법들이 만들어졌다.

번개는 위력이 매우 놀라웠고, 번개엔 사령 환수들을 억누르는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 번개가 스친 곳에 있던 사령 환수들은 산산이 터져버렸다. 천위 수준 사령마저 연이은 공격을 받자 피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산골짜기를 뒤덮은 사령들은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만 마리가 넘는 사령들 앞에서 사람 백여 명은 너무 보잘것없었다.

“당황하지 말고! 나를 따라 공격하자!”

만호종은 거칠게 소리를 지르며 보라색 깃발을 휘둘렀다.

금색, 은색과 보라색 빛이 깃발 속에서 흉흉하게 튀어나오며 앞에서 다가오는 사령 환수들 주변으로 향했다.

만호종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수봉월이 한 손을 흔들어 보라색 옥병을 하나 만들어냈다. 수봉월은 옥병의 입구를 아래로 향한 채, 머리 위로 날렸다.

몇 갈래 법결이 수봉월의 손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다시 병 속으로 스며들었다.

보라색 옥병이 순식간에 열 배나 불어나서 큰 항아리처럼 변하였다.

윙!

낮은 소리가 울려 퍼졌고, 병 주둥이에서 빛이 크게 번졌다. 이어 굵은 보라색 빛기둥이 소리를 내며 빠르게 튀어나왔다.

우르릉!

산골짜기에 큰 소리가 울려 퍼졌고, 몰려오던 강시와 해골들 이백 여 마리가 보라색 빛 때문에 가루가 되어 부서져 버렸다.

그러자 산골짜기 입구까지 갈 수 있는 길이 나타났다.

“가자!”

수봉월은 병을 거두어들였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수봉월은 갑자기 큰소리를 내며 신호를 보냈다.

수봉월 뒤에 있던 제자들 백여 명이 막린회와 만호종이 이끄는 가운데 산골짜기 방향으로 몰려갔다.

이때, 썩은 시체와 해골들이 땅속에서 기어 나와 빠르게 양쪽에서 밀려왔다. 그리고 수봉월이 간신히 만들어낸 길을 다시 막아버렸다.

해골들은 수련 경지가 높지 않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아서 잠깐 사이에 다시 사람들을 사방팔방으로 흩어 놓았다.

* * *

산골짜기의 입구 가까이에서 피부가 푸른 강시 몇몇이 손에 뼈칼을 든 채로 진뢰관의 제자 한 명을 둘러싸고 있었다.

진뢰관의 제자는 얼굴에 기괴한 빛이 스쳤다. 그리고 파란빛이 감도는 장검 겉에 새겨진 부문에서 빛이 크게 번졌다. 제자는 길을 터서 도망을 치려 했으나, 갑자기 가슴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투명한 빛이 반짝이는 검은 칼날이 이미 제자의 가슴을 뚫고 나왔다.

진뢰관의 제자가 다른 방어수단을 꺼내기도 전에 무야가 제자 뒤에 나타났다.

제자가 손을 뒤집자 손바닥에는 이미 네모난 검은색 상자가 하나 나타났고, 상자에선 검은 안개가 피어올라 제자의 몸을 감싸더니 희미해지며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산골짜기 오른쪽 산비탈에서 추개가 화염 갑옷을 두른 채로 붉은색 긴 창을 들고서 위아래로 휘둘렀다. 추개는 쫓아오는 시체들을 일일이 밀어내고 있었다.

쿵!

죽은 교룡이 울부짖으며 산비탈에서 떨어졌다. 그러면서 올라오는 강시 수십 구와 부딪쳤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려서 추개를 향해 비린내가 나는 검은 액체를 뿜어냈다.

추개는 창끝을 흔들더니 화염 몇 덩어리를 검은 액체에 날렸다.

훅!

검은 액체가 활활 타오르며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때, 사방팔방에서 강시와 해골 사령들 백여 구가 전부 추개를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추개는 긴 창을 내밀어 가로로 들고서 한 손으로 법결 여러 개를 시전한 후에 창에다가 가져다 댔다.

붉은 화염이 활활 타올라서 커다란 불벽으로 변하며 산비탈을 타고 흘러내렸고, 강시 수십 구가 불벽에 밀려서 불이 붙었다.

이때, 추개의 눈앞에서 빛이 번졌고, 불벽에서 밝은 빛이 나타나더니 형상이 희미하게 보였다.

추개는 순간 창끝을 앞으로 훅 찔렀다.

하지만 창끝은 허공을 갈랐다.

이어서 투명한 뼈칼 한 자루가 퍽 소리와 함께 추개가 목에 두르고 있던 갑옷을 뚫고서 목덜미를 찔렀다. 비령이 추개 앞에 나타난 것이다.

추개는 입에서 피를 뿜어내며 뒤로 넘어졌다.

추개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검은색 안개가 뻗어 나와 추개의 시체를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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