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화. 자업자득
한 동안 산골짜기 여기저기에서 처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위 제자들 백여 명은 전부 수련 경지가 낮지 않았다. 대부분은 천위 중기를 넘어섰고 심지어 일계 중기인 술사들도 몇 명 있었다. 하지만 사령의 숫자 너무 많아서 제자들은 꽁꽁 묶여버렸다.
한 사람이 동시에 수십 마리와 싸워야 했고, 심지어 사령들 수백 마리가 공격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
더욱 절망적인 점은 사령들이 끊임없이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사령들 속에는 환수 말고도 무야가 취선대를 써서 소환한 진정한 사령들도 있었다. 사령들은 수련 경지가 대부분 지계 수준이었다. 때문에 소멸하여도 환주 같은 것을 남길 리 없었다.
하지만 혼란한 가운데 아무도 그런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사령들이 무더기로 터져버렸고, 세 도관의 제자들 숫자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적잖은 사람들이 무너진 뒤에 검은 안개로 감싸인 채 기이하게 사라져버렸다.
그 광경은 마치 상처를 입어 현궁령을 통해 전송이 되는 모습과 똑같았다.
반 시진 만에 숨어있던 제자들 백여 명 중에 절반이나 죽어버렸다.
세 도관의 대표 제자인 막린회와 수봉월, 만호종은 실력이 뛰어나서 전투를 하며 불리한 국면에 처하게 될 때마다 곧바로 유리한 자리로 올라가서 잘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천위 중, 후기 제자들은 운이 그리 좋지 못했다. 그리고 천위 초기 제자들은 이미 매복한 사령들 때문에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 * *
산골짜기의 다른 한쪽, 석목은 이미 땅속에서 벗어나서 똑같이 사령들에게 포위되어있었다.
석목이 손에 들고 있는 파뢰검에서 보라색 빛이 감돌았고, 그는 뇌망을 만들어 스스로 몸을 지키고 있었다. 여전히 수많은 사령들이 주변에서 석목을 공격했지만, 조금도 피해를 주지 못했다.
석목과 멀지 않은 곳에서 연나도 똑같이 사령 무리에게 포위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어려운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일 뿐, 매우 완만하게 몸속에 깃든 진기를 소모했다. 심지어 두 사람은 매우 느리게 왔던 길을 따라 물러나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었는데, 두 사람을 둘러싼 사령은 숫자가 많긴 했어도 전부 수련 경지가 지계 초기였다.
“연나, 네 사령 군대는 정말 놀랍군. 취선대에 이런 능력이 있었다니! 이렇게 되면 네 군대엔 또 적잖은 천위 수준 사령들이 생기겠지?”
석목은 주변을 둘러보며 전음으로 말했다.
“이것들로는 부족해!”
연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허허,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흐르면 아마도 천정, 만선과 싸울 수도 있겠는걸.”
석목이 천천히 말했다.
“꿈 깨. 네가 맹세를 한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연나가 말했다.
“이 일은 나중에 얘기하자. 우선 곤륜성허에 들어가는 일이 시급해.”
석목은 연나가 화가 난 투로 말하는 걸 느꼈는지 곧바로 꼬리를 내리며 말을 돌렸다.
* * *
건천관과 진뢰관, 감수관 제자들이 어려운 싸움을 치르는 동안, 십사 층 다른 곳에서 다른 도관 제자들이 수많은 사령들에게 포위되어 싸움을 치르고 있었다.
그동안 제자들이 쓰러지며 전송되었다. 상황이 매우 아슬아슬했다.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던 건천관, 진뢰관, 감수관의 관주와 장로들은 안색이 어둡다 못해 검게 그을려있었다.
“적 관주, 당신들 세 도관의 제자들은 도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정말 볼수록 이해를 할 수 없군요.”
간산관의 음 장로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적문천이 대답하기도 전에 태택관의 오 장로가 내키지 않은 듯이 말했다.
“이해 못 할 게 뭐가 있습니까?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다하는 게지요!”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다는 상황이 바로 이런 게 아니겠습니까? 흥, 자업자득이지요!”
운몽택이 비웃으며 말했다.
적문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마에는 푸른 핏줄이 울퉁불퉁 튀어나왔다.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
이때, 백옥 석대 아래에서 누군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적문천은 안 그래도 화를 풀 곳을 찾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자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저(褚) 장로님, 탑 아래에서 전송이 된 제자들을 기다리지는 않으시고 이곳에는 왜 올라오셨습니까?”
저 장로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옷자락으로 이마에 난 땀을 가볍게 닦아내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관주 여러분, 큰일 났습니다! 반시진 전부터 탑 밖으로 전송된 인원들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전송되어서 나와야 할 제자들 사십명 가량이 탑 밖으로 전송되지 않고서 기이하게 사라졌습니다.”
“뭐?”
백옥 석대에서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쓸데없는 소리. 그게 말이나 됩니까?”
적문천은 보라색 거울을 한번 훑어보며 믿기지 않은 듯이 말했다.
“제가 감히 헛소리를 하겠습니까. 관주님께서 잘 알아보시죠.”
저 장로가 대답했다.
“실종된 사람들은 어느 도관의 제자들입니까?”
적문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다급하게 물었다.
저 장로는 적문천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전부 다 건천관, 감수관, 그리고 진뢰관의 제자들입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 장로가 말을 떨어뜨리자마자, 적문천을 비롯한 나머지 두 도관의 관주와 장로들도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적문천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고,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 * *
십 사층에서 벌어진 난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때, 이제 막 십삼 층에서 십사 층으로 올라온 제자들은 수많은 사령 환수들에게 공격을 받아서 곧바로 전송이 되었다.
원래 십사 층에 있던 몇몇 무리들은 처음부터 일어난 혼란을 겪으며 유리한 자리를 찾아서 진을 쳤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공격을 막아낸 후에 차차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이번 일은 생사를 넘나드는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남았다.
환수는 사람을 죽일 수 없었기 때문에 현궁탑 속에서 치르는 시련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다만 세 도관의 제자들은 핏빛 호수에 놓인 제단과 가장 가까이에 있어서 가장 많은 환수들과 진정한 사령들에게 공격을 받아서 상황이 처참했다.
이 시각, 각 도관마다 남은 사람은 각각 열 명 안팎이었다. 제자들은 수많은 사령 군대들에게 꽁꽁 둘러싸여 있었다.
“안 돼. 나 안 될 것 같아. 곤륜성허고 뭐고 안 갈 거야!”
한 감수관의 제자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소리를 지르며 현궁령을 꺼내 진기를 불어넣었다.
이어서 보라색 빛이 반짝이며 자리에서 사라지며 현궁탑에서 벗어났다.
감수관의 제자를 시작으로 세 도관의 다른 제자들도 이를 악물고 현궁령을 꺼내서 자리를 떠났다.
순식간에 보라색 빛이 여기저기서 번쩍였다.
이제 세 도관의 제자들은 다 합쳐도 불과 일고여덟 명밖에 되지 않았다. 제자들은 서로 등을 맞대며 원을 하나 만들고서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이렇게 시련에서 물러나기엔 너무 억울했다. 수봉월, 막린회, 만호종 세 사람도 그 속에 있었다.
인원이 순식간에 줄어들자 나머지 사람들이 받는 압박은 더욱 커졌다. 주변에서 사령들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남은 사람들은 온 힘을 다했다. 법보에서 빛이 크게 번졌고, 제자들은 간신히 주변에서 가하는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상황은 매우 위태로웠다. 언제든 공격을 받아서 진형이 무너질 수 있었다.
수봉월을 비롯한 세 사람도 전부 상처를 입었다. 세 사람은 마주 보더니 물러날 기색을 드러냈다.
탑에 있는 환수들은 사람을 죽일 수 없었지만, 상처를 입는 건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각 도관의 대표 제자들은 물러나겠다는 말을 쉽게 내뱉지 못했다. 그렇게 되면 각 도관의 사제, 사매들에게 체면을 구길 뿐만 아니라 다른 도관 제자들 앞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할 터였다.
쿵!
이때, 사납게 울부짖는 소리가 사령 군대의 깊은 곳에서 들렸다. 사령 군대가 가하는 공격은 더욱 맹렬해졌다. 칠흑 같은 검은빛이 크게 번지더니 세 사람을 삼켜버렸다.
* * *
이 시각, 현궁탑 밖에 있던 석대 위는 이미 난장판이 되었다.
여덟 도관의 관주들과 장로들은 안쪽 상황을 뚜렷이 내다보고 있었다. 감수관, 진뢰관, 건천관 세 도관의 제자들이 사령들에게 죽는 광경을 지켜보자 안색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화관을 비롯한 다섯 도관의 관주들도 많이 놀란 표정을 짓긴 했지만, 적문천을 비롯한 세 도관의 관주들은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이 사령들은 환수가 아니라 진짜 사령인 것 같습니다.”
팽악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어째서 이렇게 많은 사령들이 나타난 거야!”
건천관의 관주는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
“이 부분은 적 관주님께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번 난리를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관주님의 제자인 막린회가 아닙니까?”
팽악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흥, 환령 대진은 기껏해야 십사 층에 있는 사령 환수들만 모이게 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현궁탑에 문제가 생긴 것이겠지요! 상황이 시급하니 곧바로 현궁탑에서 치르는 시련을 멈춰서 나머지 제자들을 전부 빼냅시다!”
적문천이 이를 악물고서 말했다.
십사 층에 있던 진뢰관의 제자들은 거의 다 죽어버렸다. 진뢰관의 제자들은 전부 뛰어난 제자들이었고 진뢰관의 미래였다.
“안됩니다! 시련은 애당초 십오 일 동안 치르기로 정했습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서 안에 있는 제자들이 스스로 현궁령에 진기를 불어넣지 않는 이상 우리에겐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성주를 모시는 것입니다!”
태택관의 관주 운몽택이 말했다.
“제가 성주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적문천이 말을 꺼내며 몸에 빛을 번쩍이더니 날아가려고 준비했다.
“가지 않아도 된다.”
이때, 하늘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대 위에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유삼(儒衫)을 걸친 중년 남자가 허공에 나타났다.
중년 남자는 각진 얼굴에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자는 손에 깃털 부채를 한 개 들고 있었는데 마치 학식이 뛰어난 사람 같았다. 하지만 지금, 남자는 살짝 화가 나 있는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성주님!”
석대 위에 있던 장로들은 안색이 변했다. 장로들은 전부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풍치가 있는 중년은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보라색 거울을 바라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며 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몸 앞에 빛이 반짝이더니 보라색 옥탑이 하나 나타났다.
풍치가 있는 중년이 입으로 중얼거리며 두 손으로 법결을 줄줄이 펼치자 작은 탑에서 눈부신 보라색 빛이 뿜어 나왔다.
* * *
현궁 탑 속, 석목을 비롯한 모든 사람의 현궁령에서 보라색 빛이 밝아졌다.
“연나!”
석목은 연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연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에 은색 빛을 반짝이더니 손을 흔들어 법결을 시전하였다.
이어서 연나와 석목은 몸이 보라색 빛으로 감싸이며 현궁탑에서 사라져버렸다.
산골짜기에 있는 사령 군대 속, 무야의 손에서 네모난 검은색 물건이 천천히 돌고 있었다. 물건은 검은빛을 뿜고 있었는데 바로 취선대였다.
무야는 몸을 떨더니 먼 곳을 한번 바라보았다. 눈에 띄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벌려 취선대 위에 검은빛을 뿜어냈다.
취선대에서 검은빛이 크게 번졌고, 검은빛은 순식간에 산골짜기에 모두 드리웠으며 소환된 모든 사령들을 뒤덮었다.
이어서 검은빛이 사라지며 모든 사령 생물들도 함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