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화. 성허의 인원
현궁탑 밖에 자리한 한 광장에서 보라색 빛이 크게 번졌다. 빛이 사라지기도 전에 사람들의 모습이 일일이 나타났다. 전부 현궁탑 속에 있던 제자들이었다.
석대 위에 있던 장로들과 관주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더니 이내 긴장을 풀었다.
성주는 여덟 도관 관주들을 한 번씩 노려보더니 입을 열었다.
“시련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버리다니! 이번 현궁탑 시련은 여기까지다. 지금 이룬 성과로 곤륜성허의 비경에 들어갈 제자들을 선발해라. 내가 탑에 들어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마!”
성주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에 감춰진 분노를 모두가 다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네, 성주님께서 내리신 명을 받들겠습니다.”
여덟 도관의 관주들은 안색이 변했다. 관주들은 전부 고개를 숙이고는 예의바르게 대답했다.
이진종의 성주인 신도남(申屠南)은 보기에는 풍치가 있었지만 쓰는 수법이 지독하기로 유명하다는 걸 관주들이 모를 리 없었다. 성주가 이렇게 화를 내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신도남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몸에 빛을 번쩍이며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적문천을 비롯한 관주들은 한숨 돌리더니 곧바로 광장을 향해 날아갔다.
* * *
석목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희미해지며 현궁탑 앞에 자리한 백석 광장 위에 나타났다.
석목은 터질 것 같은 머리를 흔들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연나가 있었다.
석목은 곧바로 영목신통을 시전하여 연나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신식으로 연나의 몸을 자세히 관찰했다.
두 사람은 힘을 합쳐서 이진종의 뛰어난 천위 제자들을 백 명 가까이 죽여 버렸다. 너무 큰 사단이라 절대로 신분이 발각되어서는 아니 되었다.
“괜찮아. 비술을 써서 몸에 흐르는 사령 기운을 전부 봉인했어. 경지가 성계 정상이라고 해도 절대 발견하지 못할 거야.”
연나의 목소리가 석목의 가슴에서 울려 퍼졌다.
연나가 하는 말을 들은 석목은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신식도 거두어들였다.
“뇌적 사형, 임도 사저, 당신들도 괜찮군요. 다행입니다.”
이때, 어떤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문설이 걸어와서 두 눈을 반짝이며 석목과 연나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광장에 나타난 사람들은 전부 마지막까지 버틴 사람들이었다. 현궁령을 쓰거나 탑 속 금제에서 전송된 사람들은 전부 이 자리에 없었다.
연나는 서문설을 한번 바라보더니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환수들에게 둘러싸이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흩어졌습니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혼잡한 틈을 타 도망쳤지요. 서문 사매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석목이 말했다.
“저도 혼잡한 와중에 도망을 쳤습니다. 운이 좋게도 숨을 수 있는 곳에서 숨어있었지요. 다행히 환수들에게 들키지 않았습니다.”
서문설이 말을 하며 손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그런데 왜 전부 현궁탑에서 나왔나요? 시련은 분명 며칠 더 남았는데?”
서문설은 주변을 바라보며 의아한 듯이 물었다.
“저도 지금 궁금하던 참입니다.”
석목은 망연자실한 듯이 말했다.
광장 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전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문설은 석목을 한번 바라보더니 눈을 반짝이며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다.
이때, 몇몇 사람들이 석대 위에서 날아와 광장에 내려왔다. 그들은 여덟 도관의 관주들이었다.
의논을 나누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던 제자들은 전부 조용해졌다.
여덟 도관의 관주들은 각자의 도관에 속한 제자들을 소집하였다. 팽악도 이화관 제자들을 한쪽으로 소집하였다. 석목을 비롯한 제자들이 그곳으로 향했다.
석목은 주변을 바라보며 멈칫했다.
일전에 십사 층에 있던 이화관의 제자들 서른 몇 명은 지금 열대여섯 사람만 남아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불행히도 탈락하였으며 온화마저도 이 자리에 없었다.
팽악은 이화관의 제자들을 훑어보더니 온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안색이 굳었다.
비록 생각지도 못하게 이곳에 온화가 없었지만, 다른 도관들이 처한 상황과 비교했을 때, 이화관은 훨씬 나은 편이었다.
팽악은 밖에서 잘 지켜보았다. 간산관, 태택관, 곤지관, 손풍관 이 네 도관의 제자들 중에 십사 층에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은 열 몇 명이었다.
감수관, 진뢰관, 건천관이 처한 상황은 가장 나빴다. 세 도관의 대표 제자들을 빼면 나머지 사람들이 거의 전멸을 당했다.
또한, 세 도관의 뛰어난 제자들은 십사 층에 갑자기 나타난 사령들에게 살해당했다. 그래서 세 도관의 실력은 일락천장(一落千丈)이 되었다.
“다들 의아할 필요 없다. 현궁탑에서 조금 전에 이변이 생겨서 이번 현궁탑 시련을 미리 끝내기로 했다.”
팽악이 말했다.
“관주님, 그럼 이번 현궁탑 시련을 치른 결과는 어떻게 되나요?”
양덕이 물었다.
“당연히 너희들이 이룬 성적에 따라 평가할 게다. 다들 현궁령을 반환해라. 그 위에 너희들이 이룬 성과가 적혀있다.”
팽악이 말했다.
제자들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급하게 현궁 영패를 꺼내서 팽악에게 건넸다.
“다들 여기서 기다려라. 결과는 곧 나올 테니.”
팽악은 한 마디를 던지고는 돌아서서 광장 근처 석대를 향해 날아갔다.
다른 여덟 도관의 관주들도 빠르게 날아갔다. 여덟 명은 한 자리에 모여서 낮은 목소리로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뽑힐지는 모르겠네요?”
서문설이 말했다.
“우리는 십사 층에서 마지막까지 버텼기 때문에 아마 문제가 없을 겁니다.”
석목이 자신 있게 말했다.
감수관, 진뢰관, 건천관이 처한 상황을 석목은 잘 알고 있었다. 이화관 제자들 중에 십사 층에서 마지막까지 버틴 사람은 단 열 몇 명이었다. 곤지관, 손풍관을 비롯한 네 도관도 상황이 이화관과 다를 바 없을 테니 석목과 연나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석대 위에서 여덟 도관의 관주들은 빠르게 성과를 헤아렸다.
얼마 전에 십사 층까진 올라간 사람들은 최소 삼백 명이었다. 그리고 난리 중에 마지막까지 남은 제자들은 전부 육십 몇 명이었다. 십사 층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부 뽑혔고, 나머지 서른 몇 명은 십삼 층에 있던 제자들 중에 선발하기로 정했다.
“그렇다면 결과를 선포하겠습니다.”
태택관의 관주 운몽택이 제자들을 한번 바라보며 말했다.
여덟 명은 안색이 각자 달랐다. 웃음기가 어린 사람도 있었으나 안색이 어두운 사람도 있었다.
“운 관주님, 부탁드리겠습니다.”
팽악이 말했다.
여덟 도관의 제자들 중에 뽑힌 사람은 이화관의 제자들이 가장 많았다. 총 스물한 명이었다.
곤지관, 손풍관, 간산관, 태택관 네 도관에서도 각각 열 몇 명이 뽑혔다. 감수관, 진뢰관, 건천관은 상황이 가장 안 좋았는데 각각 몇 명씩만 선발되었다.
적문천을 비롯한 세 관주는 안색이 팽악과 판이했다. 세 관주는 표정을 어둡다 못해 일그러져있었다.
운몽택은 세 관주들을 한번 바라보더니 속으로 웃었다.
감수관, 진뢰관, 건천관은 실력이 매우 강력했다. 그중 진뢰관이 가장 뛰어났으며 진뢰관은 이진종에서 판을 치고 다녔다. 허나 이번에 곤두박질을 치는 바람에 다른 몇몇 관주들은 속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운몽택은 세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 보라색 광막을 하늘 위에 드리웠다. 그 위에 제자들 백 명이 있었다.
“이곳에 있는 제자들 백 명은 이번 시련에서 승리한 사람들로, 곤륜성허 비경에 들어가게 되었다.”
운몽택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광장 위에 있던 여러 제자들은 허공에 뜬 광막을 바라보았고, 제자들은 웅성웅성 떠들기 시작했다.
백 명 안에 뽑힌 사람들은 기쁜 안색을 드러냈고, 탈락한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석목은 눈을 미세하게 떨며 입으로 미소를 지었다. 석목과 연나도 백 명 안에 들어가서 선발이 되었다.
현궁탑에서 치른 시련의 결과가 발표되자 주변이 떠들썩했다. 관주들과 장로들도 놀랐을 뿐만 아니라 구경을 하러 왔던 각 도관의 제자들도 전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막 탑에서 전송된 여덟 도관의 제자들은 전부 각자 속한 도관의 관주 뒤에 서 있었다.
현궁탑에 이변이 발생해서 각 도관의 관주들은 오래 머물지 않고서 간단하게 인원수만 확인했다. 그리고 각자 제자들을 데리고 전송진 방향으로 걸어갔다.
* * *
석목은 이화관 제자들과 함께 앞으로 걸었다. 석목은 주변 제자들처럼 얼굴에 환한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석목은 쉬지 않고 귀를 기울여서 사람들이 나누는 말을 엿듣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했네. 실력이 가장 강한 건천관, 진뢰관과 감수관 세 곳의 제자들을 전부 합쳐도 이화관의 제자들 보다 뽑힌 숫자가 적다니!”
대열 가장 앞쪽에서 성이 지씨인 이화관의 장로가 팽악 옆에서 말했다.
“허허, 이번에 세 도관은 천위 제자들을 거의 백 명 가까이 잃어서 힘을 크게 잃었을 겁니다. 아마 앞으로 종문에서 올랐던 지위도 적잖이 타격을 받겠지요.”
또 다른 장로가 말을 이어받았다.
전송진과 멀지 않은 곳에서 각 도관의 대열들은 전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멈춰 섰다.
태택관의 관주 운몽택은 팽악 옆으로 다가가서 손을 굽히며 말했다.
“팽 관주님,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팽악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서 옆에 있는 온화를 한번 바라보며 말했다.
“팽 관주님, 너무 겸손하십니다. 비록 온화 사질이 뜻밖에 탑에서 떠났지만,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뛰어난 지휘 능력은 너무 인상이 깊었습니다.”
머지않은 곳에서 한 중년이 걸어오며 말했다.
“웅 관주님 과찬이십니다. 곤륜성허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 두 도관의 제자들은 호흡을 잘 맞춰야 합니다.”
팽악은 웅 관주를 한번 바라보더니 한쪽만 남은 눈에 웃음기가 스쳤다.
석목은 웅 관주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몸집이 강철 같았다. 또 팽악이 한 말을 생각해보니 이 사람은 곤지관의 관주인 웅진(熊震)일 터였다. 온화가 무심결에 말을 한 적 있었는데 웅진은 팽악과 사이가 좋다고 들었다.
다른 두 도관의 관주들도 걸어오며 서로 축하하는 말을 주고받았다.
석목과 다른 도관의 제자들은 조용히 서 있었다.
이번에 환수들이 일으킨 폭동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다섯 도관에겐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하게 제자들이 많이 선발되어서 다들 매우 들떠있었다.
곤륜성허로 들어가는 제자들이 많을수록 각 도관들에게도 좋은 점이 훨씬 많아졌다. 앞으로 꽤 오랜 기간 동안 각 도관의 실력 순위에 직접 영향을 줄 뿐만이 아니라 말로만 듣던 전설 속의 호천각이 정말로 열린다면 이번에 곤륜성허로 가는 일이 매우 적합한 계기가 될 터였다.
이때, 머지않은 곳에서 또다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석목은 소리가 나는 쪽을 훑어보았다. 건천관을 비롯한 세 도관의 관주들과 몇몇 장로들이 광장에서 걸어왔는데 매우 불친절한 안색이었다.
관주들과 장로들 뒤로 막린회와 만호종, 수봉월을 비롯한 제자들 열 몇 명이 고개를 푹 숙이고 따라왔는데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
“흥, 나쁜 생각만 안 품었어도 이런 결과를 맞진 않았을 텐데. 자업자득이지.”
이화관의 지 장로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지 장로가 하는 말을 들은 적문천은 몸이 굳으며 멈춰 섰다. 그리고 지 장로를 한번 훑어보며 차갑게 말했다.
“곤륜성허에서는 다른 두 성지의 제자들과 맞서야 할 텐데 당신들이 키운 제자들에게 이번처럼 좋은 운이 따르기를 바랍니다.”
“허허, 적 관주님, 걱정이 과하십니다.”
운몽택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어떤 놈이 이 지경을 만들었는지 제발 저에게 들키지만 마시지요. 그렇지 않을 거라면, 흥!”
적문천은 안색이 차갑게 변하더니 눈빛으로 재빠르게 다섯 도관의 관주들과 제자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매우 화가 난 듯이 살기등등한 목소리로 말했다.
많은 제자들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으며 적문천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적문천의 눈빛이 석목의 몸을 스쳐 지나갈 때, 석목은 마치 적문천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