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52화 (552/916)

552화. 간파되다

다행히 적문천이 쏘아보는 눈빛은 스치기만 했다. 석목은 긴장을 풀고서 가까이에 서 있는 연나를 한번 바라보았다.

연나는 황공하고 두려운 모습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석목은 속으로 웃음이 났다.

“적 관주님,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 제자들이 환령대진을 설치해서 환수들이 폭동을 일으키도록 만들었단 말씀입니까?”

팽악이 담담하게 말했다.

“팽 관주님, 화낼 것까지는 없습니다. 성주님께서 현궁탑에 들어가셨으니 이제 곧 모든 전말이 밝혀지겠지요.”

음침한 목소리가 팽악 옆에서 들렸다.

석목은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 어둡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얼굴이 하얀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감수관의 관주 수무단(水無端)이었다.

“맞습니다. 성주님께서 잘 아시겠지요. 제멋대로 대진을 설치하여 환수 무리를 몰려오게 한 놈이 누군지, 대체 그놈이 누가 키운 잘난 제자인지.”

운몽택이 천천히 말했다.

“우리 제자들이 진법을 설치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당신네 다섯 도관의 제자들은 단 한 명도 탑 속에서 목숨을 잃지 않았습니다. 왜 하필 시체마저 남기지 못한 사람들이 전부 우리 세 도관의 제자들이겠습니까?”

피부가 누런 중년 남자가 수염을 드리운 채 수무단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석목은 이 남자를 잘 몰랐다. 하지만 신분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는데 아마 건천관의 관주인 육양리(陸陽離)일 터였다.

현궁탑에서 불리해진 세 도관과 나머지 다섯 도관이 점차 대립했다.

전송진법 앞 분위기는 곧 칼을 꺼내들 기세였다.

이때, 한 줄기 금빛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그곳에서 물결이 일렁이더니 팔괘 도복을 입은 채 하얀 수염을 드리운 마른 노인이 걸어왔다.

석목은 그 노인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노인은 매우 강력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는데 성계 강자였다. 수련 경지도 이곳에 있는 여덟 도관의 관주들과 장로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우리 이진 성지의 당당한 내원 팔관 관주들이 이렇게 분수도 지키지 않고 있다니. 뒤에 있는 제자들에게 창피하지도 않은가?”

하얀 노인은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은 장로님, 인사드립니다!”

여러 관주들과 장로들은 그 노인을 보더니 전부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됐다! 성주가 친히 탑에 들어가셨으니 현명한 판단을 내리실 게다. 곤륜성허로 들어갈 날이 눈앞이니까 이곳에 머물지 말고 각자 관으로 돌아가 기다려라.”

은 장로는 손을 흔들며 분부했다.

“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다 같이 대답했다.

적문천은 고개를 돌려 만호종을 비롯한 제자들을 한번 노려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따라와.”

제자들은 한 마디 대답을 하며 다급하게 뒤를 따라갔다.

수무단과 육양리도 안색이 굳어 제자들을 데리고서 광장을 떠났다.

나머지 다섯 도관의 관주들과 장로들도 서로 인사를 한 마디씩 나누며 제자들을 데리고 광장을 떠났다.

* * *

석목과 연나를 비롯한 이화관 일행도 곧바로 이화관에 도착했다. 그리고 대전에 모였다.

“하하, 이번 현궁탑 시련에서 너희는 아주 완벽하게 잘했다. 우리 이화관이 수석을 차지하여 기분이 매우 좋구나!”

팽악은 높은 자리에 앉아서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사존님께서 가르쳐주신 덕분입니다!”

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온화, 양덕, 방동서, 너희들은 현궁탑에서 매우 뛰어난 지휘 능력을 발휘했다. 꼭 그 보상을 주마.”

팽악이 말했다.

“사존님, 감사합니다.”

양덕을 비롯한 사람들은 크게 좋아하며 다급하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사존님, 제자는 탑 속에서 탈락했습니다. 포상을 받을 면목이 없습니다.”

온화가 쓴웃음을 지으며 송구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네가 이번에 탈락하게 된 건 의외였다. 허나 내가 밖에서 다 지켜봤다. 다른 제자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계속 지켜주었기 때문에 환수들의 공격을 받아 큰 부상을 당한 것이다. 잘못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공을 높이 사야 하겠지. 당연히 받아야 할 포상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팽악이 말했다.

“네.”

온화는 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다들 고생 많았다. 백 명 안에 들어간 자들에겐 전부 포상을 내리겠다.”

팽악은 곧바로 석목을 비롯하여 선발이 된 제자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사존님, 감사합니다.”

석목을 비롯한 제자들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며 얼굴에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이번 시련은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하다. 진짜 중요한 일은 이제 곧 열리게 되는 곤륜성허다. 남은 시일동안 잘 준비해라. 만약 곤륜성허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서 이진종을 위해 공을 세운다면 종문에서도 너희들이 아쉬워하지 않을 정도로 대우를 해줄 뿐만 아니라, 나도 너희들이 자랑스러울 게다.”

팽악이 말했다.

“네.”

제자들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큰소리로 대답했다.

“됐다. 탑에서 며칠 동안 싸우느라 힘들었을 텐데 들어가서 쉬어라. 아, 뇌적, 임도, 너희 둘은 남아라.”

팽악이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네.”

팽악이 남긴 말을 들은 석목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석목은 연나를 바라보지도 못한 채 온힘을 다해 평정을 되찾았다.

대전에 서 있던 사람들은 한 마디 대답을 하고서 뿔뿔이 흩어졌다.

서문설은 대전을 나가며 고개를 돌려서 석목과 연나를 한번 바라보았다. 서문설은 얼굴에 기이한 빛이 스치더니 곧바로 대전 밖으로 걸어 나갔다.

“혹시 신분이 들통 난 걸까?”

연나의 마음속에 석목의 목소리가 매우 미세하게 들렸다.

“몰라. 임기응변으로 맞서야지.”

연나가 전음으로 말했다.

석목의 깊은 눈 속에 빛이 스쳤다. 석목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 * *

눈 깜박할 사이, 대전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나갔다. 대전에는 세 사람만 덩그러니 남았다.

“사존님, 저희에게 남으라고 하셨는데 혹시 분부하실 일이 있으십니까?”

석목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별일 아니다. 너희 둘이 천위 초기 경지로 이번 시련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였기에 다시 보게 되었다.”

팽악은 한 눈으로 두 사람을 훑어보더니 다정한 얼굴로 말했다.

“사존님께선 안목이 뛰어나십니다. 저희 두 명은 일전에 바다에서 나갔을 때 우연한 기회를 만나 실력을 늘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석목은 멈칫하며 말했다.

“그래, 그것 참 재미있군. 어떤 우연한 기회를 만나서 환골탈태했을까?”

팽악은 목소리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그리고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한 손을 흔들었다.

대전 주변에서 하얀빛이 반짝였고, 빛이 온 대전에 드리웠다.

하얀빛이 드리워지자, 한 줄기 은빛이 빠른 속도로 날아와서 하얀빛에 부딪쳤다.

펑!

큰소리가 울려 퍼졌고, 은빛이 흩어지면서 석목과 연나 두 사람의 진짜 모습이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큰일이다!”

석목이 주변을 둘러싼 하얀 광막을 바라보며 눈에 놀라운 기색을 드러냈다.

“정말 놀랍군. 대라허둔지술(大羅虛遁之術)까지 부릴 줄 알다니. 다행히 내가 대전 주변에 진법을 설치하여 안팎에 흐르는 공간의 힘을 단절했으니 망정이지, 너희 두 놈이 도망가게 놔둘 뻔했어.”

팽악은 눈에 기이한 빛이 스쳤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팽악이 하는 말을 들은 석목은 깜짝 놀랐다.

연나는 조금도 표정이 흔들리지 않았고, 그녀는 실눈을 뜨고서 칼처럼 날카롭고 차가운 빛을 뿜어냈다.

“하지만 너희들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내 조카인 팽형과 애제자인 진강을 죽인 녀석들이니 도망가게 둘 수는 없다.”

팽악이 소리를 질렀다.

팽악이 하는 말을 들은 석목과 연나는 순식간에 안색이 변했다.

이어서 석목의 손에 검은빛이 반짝이며 여의빈철곤이 나타났다. 몸에서도 붉은빛과 파란빛이 동시에 나타나더니 겉이 금색 비늘로 뒤덮였다. 여의빈철곤은 희미한 혼돈된 빛을 번쩍였다.

석목은 순식간에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전부 동원하였다.

이미 들킨 이상 죽을힘을 다해서 싸워야 살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질수 있다!

팽악은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났다. 석목이 예전에 만났던 두 성계 존재들도 절대 범할 수 없는 실력이었다.

석목이 공격을 하는 동안, 연나도 이미 하얀빛을 감싸고 있었다. 연나는 손에서 빛을 반짝이며 부문으로 둘러싸인 은색 전창을 불러냈다. 전창에 드리운 기운은 점점 짙어졌고, 단번에 천위 정상까지 올라갔다.

두 사람은 몸에서 동시에 강력한 기운을 뿜어 냈다. 주변 허공은 한참 동안 흔들리더니 눈에 보일 정도로 파동이 일렁였다.

“허허, 내가 둘을 너무 가볍게 봤군! 아쉽게도 성계와 천위는 실력이 천지차이라 너희가 함부로 대들 수 있는 사람은 아닌 듯하구나!”

석목은 안색이 변했다. 그리고 몸에 붉은빛과 파란빛을 번쩍이며 물과 불의 날개를 펼쳐서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어디를 보는 거냐?”

가벼운 웃음소리가 석목의 귓가에서 울렸다. 석목의 등 뒤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팽악이 나타났다. 팽악은 손가락을 튕기며 손가락 굵기만 한 하얀빛을 뿜어냈다.

하얀 빛은 매우 부드러웠으며 조금도 패기가 없어 보였지만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서 거리를 무시한 채 눈 깜짝할 사이에 석목의 등 뒤에 나타났다.

석목은 깜짝 놀라서 등 뒤 날개에 빛을 크게 번지며 번개처럼 돌아섰다.

석목은 속도가 매우 빨랐지만 하얀 빛에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석목에겐 돌아서서 여의빈철곤을 들어 올릴 시간만 주어졌다. 굵고 하얀빛이 날아오며 단번에 여의빈철곤 위에 떨어졌다.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은 몸이 격하게 흔들렸고, 두 손을 덮은 금색 비늘이 찢어지며 여의빈철곤이 튕겨 날아갔다. 몸통도 순식간에 뒤로 밀려나서 대전의 문에 쿵 부딪쳤다. 그리고 또 다시 금제 한 층 때문에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말도 안 돼!”

석목은 온통 믿기지 않는 기색을 얼굴에 드러냈다. 평범해 보이는 번개가 이 정도 위력을 지녔다니!

팽악은 얼굴에 비웃는 기색이 어렸다. 그리고 한 손을 들어서 무엇인가를 더 하려고 했다.

이때, 팽악의 등 뒤가 희미해지더니 연나가 나타났다. 연나가 들고 있는 은색 전창에서 빛이 번지더니 놀라운 궤적을 그리며 흉흉하게 팽악의 머리를 찌르려고 했다.

펑!

이때 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팽악은 이미 돌아서서 왼쪽 손에 번개를 감고서 뇌전 주먹을 만들어서 은색 창끝을 단번에 막아냈다.

연나도 눈에 놀라운 기색이 스쳤다. 그리고 곧바로 발을 짚어 뒤로 물러났다.

팽악이 차갑게 웃더니 다른 한쪽 팔을 흔들었다. 이어 팔에 조금 전에 시전했던 하얀 빛이 수십 갈래 나타나서 하얀 번개 그물을 만들더니 연나를 향해서 던졌다.

하얀 전망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속도가 빨랐고, 하얀 전망은 순식간에 연나를 따라잡아서 가두었다.

연나의 눈에서 사나운 빛이 스쳤다. 연나가 다시 소리를 지르자 손에 든 전창에서 하얀빛이 크게 번지며 종횡무진으로 움직였다. 은색 창꽃이 송이송이 피어나더니 주변에 촘촘하게 드리우며 하얀 전망과 강하게 부딪쳤다.

이어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창꽃은 순식간에 터져버렸으나 하얀 전망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서 엄청난 기세를 몰고 오며 단번에 연나를 감쌌다.

팽악은 낮게 소리를 지르더니 연나를 향해 손바닥을 후려갈겼고, 손에서 굵은 전망이 몇 갈래 튀어나왔다!

굵은 전망은 번쩍이며 곧바로 번개를 감싼 커다란 손바닥으로 변하더니 연나를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연나는 전망에 감싸여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고, 커다란 손바닥이 날아오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손바닥에 맞는다면 단순히 상처를 입는 정도가 아닐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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