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4화. 모이다
일행은 팽악이 인솔하는 가운데 빠르게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커다란 전당밖에 떨어졌다.
전당 위에 커다란 편액이 하나 걸려있었고, 편액 위에는 “자소궁(紫霄宮)”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여긴 이진종의 성전이 있는 곳이었다.
대전 밖에서 보라색 도포를 입은 남자 두 명이 양쪽에 서서 팽악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손바닥을 세워서 팽악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팽악은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대전으로 걸어 들어갔다. 석목을 비롯한 일행들도 뒤따라서 들어갔다.
대전 안에는 매우 큰 공간이 있었는데 천 명이 들어가도 전혀 비좁지 않을 공간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 있었는데 전부 다른 몇몇 도관의 제자들이었다.
대전 앞쪽엔 계단이 몇 개 놓여있는 작은 석대가 있었고, 석대 위엔 사람들이 몇 명 서 있었다. 그 사람들은 건천관, 곤지관, 손풍관, 세 도관의 관주들이었다.
“너희는 이곳에 서 있어라.”
팽악은 석목을 비롯한 제자들에게 지시를 내린 후, 석대 위로 올라가서 다른 몇몇 관주들과 인사를 나누며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석목은 몇몇 관주들을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석목은 더 이상 성계 존재를 가볍게 보지 못했다. 지금 상황으로 봤을 때, 팽악이 석목과 연나의 신분을 폭로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에 이진종의 성주인 신도남이라는 신경 존재와 만나야 했기 때문에 여기서 신분이 들통난다면 절대 벗어날 수 없을 터였다.
석목은 일부러 대열 가장 뒤쪽으로 가서 서 있었다. 연나도 아무 말 없이 석목에게 걸어왔다.
* * *
시간이 흘러서 또 반시진이나 지났다. 다른 네 도관의 제자들도 잇따라 도착했다.
대전 앞쪽 석대에서 그림자가 희미해지더니 하얗고 풍치가 있는, 도포를 두른 남자가 허공에 나타났다. 그 남자가 바로 이진종의 성주인 신도남이었다.
“성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여덟 도관 관주들은 동시에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올렸다. 아래에 서 있던 제자들도 전부 다급하게 인사를 올렸다.
“좋아, 다 왔구나.”
신도남은 따뜻한 눈빛으로 아래에 있는 이진종의 제자들 백 명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곤륜성허로 들어갈 게다. 이번 시련에 참가하기 전에 전할 말이 있다.”
“성주님께서 내리시는 훈계와 지시를 경청하겠습니다.”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석목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신도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 곤륜성허 비경에서 겪을 시련은 매우 드문 기회다. 곤륜성허는 선계의 유적이라 다양하고 기이한 보물들이 가득 있단다. 너희들이 곤륜성허에 들어가게 되면 보물을 자세히 찾아야 한다. 적절한 보물 한두 개만 찾아도 고생스럽게 백 년 동안 수련을 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을 게다.”
“네.”
신도남이 하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매우 기뻐하며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이번에 곤륜성허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너희뿐만이 아니다. 다른 두 성지의 제자들도 있지. 만약 폐허에서 두 성지에서 온 이들을 만나게 되면, 최대한 불필요한 마찰을 빚지 않는 게 좋다.”
신도남는 계속해서 말했다.
제자들은 또다시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곤륜성허에서 찾아낸 보물 중에 절반은 종문에 바치거라. 나머지 절반은 너희가 사용하면 된다.”
신도남이 말했다.
“네.”
모두가 예상한 것이었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절반이나 가질 수 있어서 꽤 좋은 선택이었다.
“됐다. 시간도 다 되었으니, 이제 출발하자.”
신도남은 일어서서 편전으로 걸어갔다.
여덟 도관의 관주들은 전부 뒤를 따랐다. 아래 있던 제자들은 관주들 뒤를 따라갔다.
석목은 신도남이 현궁탑과 관련된 일을 언급하지 않는 모습을 보자 살짝 긴장을 풀고서 앞으로 걸어갔다.
* * *
편전 속, 커다란 공간법진이 웅웅 소리를 내며 하얀빛을 뿜어냈다.
법진 옆에는 진법사 수십 명이 앉아있거나 또는 서 있었다. 진법사들은 손으로 끊임없이 법결을 시전하며 진법이 작동되도록 하고 있었다.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이 허공에 서 있었는데 성계 강자의 방대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노인 옆에 진기 몇 개가 천천히 돌고 있었으며 진기들은 빛을 줄줄이 뿜어내면서 아래에 있는 진법과 닿았다.
석목은 눈에 빛이 반짝였다. 이 공간진법은 매우 컸으며 또 매우 복잡했다. 아마 꽤 먼 거리까지 전송이 될 모양이었다.
신도남과 여덟 도관의 관주들는 먼저 진법 속으로 들어갔고, 시련에 참여했던 제자들 백 명도 따라서 들어갔다.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은 허공에서 눈을 뜨더니 신도남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입으로 주문을 외우자 몸 옆을 돌던 진기 몇 개에서 곧바로 빛이 크게 번졌다.
빛이 번진 주변에 있던 진법사들도 곧바로 진법을 펼쳤다. 전송진법에서 빛이 크게 번지며 윙윙 소리를 내더니 눈부신 빛이 사람들의 눈앞을 가로막았다.
석목은 눈앞이 컴컴해지는 것을 느꼈고, 마치 칠흑 같은 공간에 빠진 것 같았다. 이어 주변에서 찢어질 것만 같은 힘이 몰려왔다. 석목은 몸이 단단했지만 이 힘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 * *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얼마 후 석목의 눈앞이 환해지더니 다시 빛이 나타났다.
석목은 온몸에 통증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고, 깊은 숨을 몇 번 들이마시자 천천히 호전되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광장 위에 놓여 있었다.
발밑에는 커다란 전송법진이 있었고, 주변에 짙푸른 진법 기둥 열 몇 개가 서 있었다.
머리 위에 드리운 하늘은 누르스름했고, 마치 누런 구름으로 뒤덮인 것 같았다.
석목은 주변을 둘러보며 멈칫했다. 익숙한 느낌이 몰려왔고, 공기에는 매우 옅은 마기가 섞여 있었다.
“여긴 부석 성해 근처다!”
석목의 머릿속에 빛이 스쳐 지나갔고, 여기가 어딘지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전에 서문설에게서 곤륜성허가 세상에 드러났다는 정보를 들었을 때, 부석 성해에서 일어난 전쟁이 너무 격렬하여 혼돈된 기운이 뒤틀려 곤륜성허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때, 신도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만약 일전에 변경에서 흑마족과 싸운 제자가 있다면 아마 이 부석 성해가 익숙할 게다. 곤륜성허는 바로 이 근처에 있다.”
제자들은 그제야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이 시끌벅적해졌다.
신도남은 입으로 주문을 외우며 한 손을 휘둘렀다. 하얀 빛 한 줄기가 허리춤에서 튀어나와 점점 커지더니 광장 위에 떨어졌다. 몸통이 하얀 선금(仙禽)이 나왔다.
이 짐승은 마치 선학처럼 생겼는데, 몸통이 선학보다 거대했다. 크기가 칠팔십 장 정도는 되어 보였고, 몸통에 난 깃털은 백옥처럼 하얀 것이 빛을 반짝이면서 신성한 느낌을 주었다.
하얀 선금은 놀라운 기운을 풍겼는데 기운이 신도남와 엇비슷해 보였다.
선금이 눈을 뜨더니 느릿느릿 사람들을 한번 바라보며 이내 고개를 돌렸다.
신도남이 먼저 날아올라 선금의 널찍한 등 위에 올라탔다. 이어서 다른 관주들과 제자들도 일일이 선금 위로 날아올랐다.
석목도 사람들과 함께 선금의 등 위로 올라갔다. 석목은 발을 선금의 등에 내려놓는 순간, 안색이 살짝 변했다. 몸속 혈맥이 갑자기 흔들렸다.
“백원 혈맥이 기이하게 움직이는군. 혹시 이 하얀 선금은 천수인가!”
석목은 속으로 생각을 하며 추측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선금의 등 위에 올라타자, 신도남이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하얀 선금은 두 날개를 활짝 펼쳐서 커다란 몸집으로 하늘로 향했다. 그리고 하얀빛으로 변하더니 주변 모든 것들이 전부 희미해졌다.
석목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 하얀 선금은 영우비차보다 속도가 훨씬 빨랐다.
하얀 선금은 빠르게 노란색 행성에서 날아 끝없이 별이 뜬 하늘 속에서 사라졌다.
* * *
부석 성해 깊은 곳, 커다란 금색 구름이 허공에서 둥둥 떠다녔다. 금색 빛이 튀어나와 주변 수백 리를 붉게 물들였다.
금색 구름 속에 궁전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바깥엔 두꺼운 금색 광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곳은 곤륜폐허가 있는 곳이었다.
금색 궁전 근처 행성 조각 위에 수련자들 두 대열이 뚜렷하게 나뉘어 이곳에 서 있었다.
한쪽은 전부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축운검파 사람들이었다.
가장 앞쪽에 서 있던 사람은 하얀 옷을 입은 중년이었는데 이목구비가 기괴하게 생겼으며 몸은 말랐는데 키가 훤칠했다. 중년은 꼿꼿이 핀 등 위로 푸른 장검을 비껴 메고 있었다.
중년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는데 아무런 기운도 풍기지 않아서 마치 평범한 중년 같았다.
하얀 옷을 입은 중년은 분명 가장 앞쪽에 서 있었지만, 그 모습이 희미하여 마치 거울에 비친 달처럼 바라볼 수만 있을 뿐, 가까이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 중년은 축운검파의 성주인 목천절(穆千絕)이었다.
목천절 뒤에 몇몇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똑같이 다양한 장검을 등에 메고 있었다. 그들은 축운검파의 장로들이었으며 장로들 뒤로 축운검파 제자들 백 명이 나란히 서 있었다.
하얀 피풍의를 입고 눈썹이 검 모양인 한 청년이 가장 앞쪽에 서 있었는데, 생김새가 목천절과 닮아 보였다. 청년은 수련 경지가 천위 정상에 도달했으며 온몸에서 사나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는데 마치 하늘을 찌르는 검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눈썹이 검 모양인 청년 근처에 금발인 청년이 두 명 더 있었다. 금발 청년들도 수련 경지가 천위 정상에 도달했다. 두 사람은 똑같이 생겼는데 쌍둥이 같았다.
두 사람의 얼굴과 팔을 포함해 드러난 피부 위로 금색 꽃무늬가 줄줄이 새겨져 있었고, 보기에 매우 기이했다. 두 청년은 매우 야만스러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는데 사람이 아닌 어떤 다른 종족 같았다.
또 다른 수련자 대열은 키가 전부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전부 푸른 피풍의를 두르고 있었다. 그들은 청란성지의 사람들이었다.
청란성지의 사람들의 앞쪽에는 몇몇 성계 장로가 서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성주는 보이지 않았다.
몇몇 장로들 등 뒤에는 청란성지 제자들이 백 명 서 있었다. 몇몇 기운이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 제자들 사이에 나란히 서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조극이었다.
조극은 여전히 풍치있고 차분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몸에서는 깊고 방대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는데 그 실력은 이미 천위 후기에 도달해 있었다.
조극 뒤에 서 있는 몇몇 청란성지의 제자들이 조극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두 대열에 속한 사람들은 묵묵히 서 있었고, 그중 일부만 눈을 감고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은 허공에 뜬 금색 궁전을 바라보며 다양한 표정을 드러냈다.
궁전 밖에 드리운 금색 구름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움직였으며 간간이 위아래로 용솟음을 치거나 흉흉하게 들끓으며 다양한 광경을 드러냈다.
이때, 하얀 빛 한 줄기가 먼 곳에서 이쪽으로 날아왔다.
하얀 빛은 속도가 매우 빨랐는데 몇 번 반짝이며 가까이 다가왔다. 커다란 선금 한 마리가 나타났고, 선금의 등 뒤에는 사람들이 백여 명이나 서 있었는데 바로 이진종의 사람들이었다.
청란성지와 축운검파 사람들이 전부 선금을 바라보았다.
하얀 선금은 허공에서 한 바퀴 돌더니 청란성지, 축운검파와 멀지 않은 곳에 내려앉았다.
“허허, 목 도우, 오랜만입니다.”
신도남이 내려오더니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이진종 사람들도 전부 선금 위에서 내려오며 신도남의 뒤에 서 있었다. 하얀 선금은 몸에 하얀빛을 반짝이더니 다시 빛으로 변하며 신도남의 허리춤에 있는 작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입니다. 신 도우.”
목천절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미양 성역의 삼대 신경 존재 중에 두 사람이 삼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서 옛 친구처럼 평범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만약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실로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등 뒤에 서 있던 성계 강자들은 전부 성역에서 이름이 자자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부 꼿꼿이 서 있었다. 두 신경 강자들 앞에서는 마치 늦가을 매미들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