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5화. 마존이 방문하다
“음, 속승(粟升) 도우는 왜 안 보입니까?”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은 후, 신도남은 청란성지 쪽을 한번 바라보며 물었다.
“흥, 속승 그 자는 한결 같이 현묘한 척, 신비스러운 척을 하고 다니지. 청란성지 사람들은 가장 일찍 이곳에 도착했는데 그 자식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목천절은 콧방귀를 한번 뀌며 말했다.
신도남도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내 다시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가볍게 웃으며 멀리 있는 곤륜성허를 바라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이곳이 곤륜성허군요. 역시 선가의 성지입니다.”
목천절은 차가운 표정을 내비치며 침묵을 지켰다.
“목 도우, 일찍부터 이곳에 도착했으니, 곤륜성허 밖에 드리운 금제를 연구해봤겠지요. 무슨 수확이라도 보았습니까?”
신도남이 허허 웃으며 물었다.
“여기 설치된 금제 역시 선계에서 설치한 진법이라 매우 기묘합니다. 허나 오랜 세월을 거쳐서 다행히 그 위력이 예전 같지 않더군요. 제가 며칠 동안 자세하게 들여다봤는데 우리가 예상했던 것처럼 다섯 달 뒤, 그때 금제의 힘이 가장 약해질 것 같습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 세 사람이 힘을 합쳐 틈새 하나를 뚫어버리기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시기를 맞춰서 제자들을 안쪽으로 보내면 됩니다.”
목천절은 잠깐 침묵을 한 후에 말했다.
“그럼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반년 동안 기다리죠.”
신도남은 곤륜성허 밖에 설치된 금제를 바라보며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신도남과 목천절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삼대성지의 제자들은 전부 신경 강자의 몸에서 시선을 돌려서 다른 두 성지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석목은 여전히 보라색 머리에 보라색 눈썹이었으며 뒷짐을 지고 있었다. 뇌적의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내며 전혀 거리끼지 않는 듯 청란성지의 제자들을 바라봤다.
청란성지의 제자들은 대부분은 천 년 동안 수련을 한 제자들이었고 수련 경지도 전부 천위 중기나 일계 중기 위였다. 그중엔 석목도 아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석목은 처음 조극을 바라봤을 때 의아했다.
얼마 전만 해도 수련 경지가 천위 초기였는데 그사이 벌써 천위 후기에 도달했다니. 그동안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석목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극의 등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더니 눈빛이 굳어버렸다. 석목은 시선이 키가 작은 어린 여자아이에게 멈추었다. 석목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쳤다.
그 여자는 다름 아닌 자릉이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라지 않은 모습 그대로였다. 자릉은 검은 눈동자를 돌리며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극을 비롯한 청란성지 사람들도 이진종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석목은 이미 환골탈태한 모습이라서 조극은 석목을 알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몇몇 사람들은 석목의 수련 경지가 천위 초기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아니꼬운 표정을 드러냈다.
이때, 석목은 시선이 두 갈래가 그에게 꽤 오랜 시간 멈춰있는 것을 느꼈다. 마치 주시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늘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려서 바라보았다.
석목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바로 축운검파의 두 금발 청년이었다.
석목이 금발 청년들을 바라보자, 금발 청년들은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서 두 눈을 감아버렸다.
석목은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석목에겐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혹시 뇌적의 적이라도 되는 걸까? 하지만 뇌적의 기억을 되짚어보아도 축운검파와 큰 접점이 없는 것 같았다. 또한 두 사람에 대한 기억도 없었다.
석목은 의아했지만, 곧바로 그 생각을 접어두고 시선을 돌려서 곤륜성허를 바라보았다.
금색 광막 속에 수많은 궁전들이 즐비해 있었다. 정자와 누각, 천막과 지붕받침도 줄지어있었다.
두 갈래 강물이 수많은 궁전들 사이를 구비 구비 돌았다. 마치 커다란 용이 두 마리 곤륜성허를 감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음양의 도에 맞아떨어졌고, 더 먼 곳은 잘 보이지 않았다.
석목은 가까이에 드러난 곤륜성허의 일부를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건물들은 음양오행과 은은하게 맞물려 방향을 잡아 분포되어 있었다. 태택관의수지기(周天易數之機)와 구궁팔괘지세(九宮八卦之勢)가 전부 그 속에 있었다.
석목은 속으로 감탄하며 곁눈으로 옆에 있는 연나를 바라보았다. 연나는 멍하니 곤륜성허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망연한 표정을 드러냈다.
“연나, 왜 그래?”
석목이 신혼으로 연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야……”
연나는 몸을 파르르 떨더니 생각에서 깨어났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연나의 상태를 보니,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지 않았다. 석목이 더 물어보려고 할 때, 신도남이 걸어왔다.
“곤륜성허 밖에 드리운 금제는 매우 견고해서 급하게 굴수록 오히려 뚫기 어렵다. 아직 반년은 더 기다려야 하니 여기에 임시 거처를 하나 짓고서 잘 수리하며 반년 뒤에 곤륜성허에 들어갈 게다.”
신도남이 지시를 내렸다.
반년이라는 시간은 제자들에게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제자들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서 곧바로 답했다.
* * *
제자들은 한쪽으로 걸어가 산맥 아래에 각자 임시 거처를 만들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 청란성지와 축운검파의 제자들도 각각 한쪽에서 다급하게 이 이진종의 제자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석목은 근처 암벽 옆에 간이 동부를 하나 만들어서 안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려고 했다.
이때, 우렁찬 소리가 먼 곳에서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순식간에 수십 배나 더욱 커져 천둥 같은 소리를 냈다.
소리가 너무 커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삼대성지에서 온 사람들은 전부 하던 일을 멈추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시선 끝에서 검은빛이 나타났고, 빛은 빠르게 커지더니 순식간에 가까운 곳까지 다가왔다. 나타난 것은 검은색 비주(*飛舟: 하늘을 나는 배)였는데 주변으로 검은 기운을 풍겼다.
“마기, 흑마족?”
석목은 안색이 변했다.
허공에서 그림자가 번쩍이며 신도남과 목천절이 허공에 나타났다. 빠르게 다가오는 검은색 비주를 본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더니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검은색 비주는 백 장 정도 크기였다. 머리는 짐승 같았으며 꼬리는 교룡 같았는데 겉에는 보라색이 감돌았다. 비주가 있는 곳 바닥엔 검은 안개가 소용돌이쳤다.
이어서 극도로 방대한 기운이 신도남과 목천절의 몸에서 뿜어 나왔다. 허공마저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는 듯이 일렁였다.
“흑마족이다! 모든 제자는 집합하라!”
삼대성지의 성계 존재들이 큰소리를 질렀다.
제자들은 전부 깜짝 놀라며, 임시 거주지에서 날아올랐고, 순식간에 세 개의 큰 진형을 이루며 각자 따르는 성계 존재 뒤에 서 있었다.
삼대성지 사람들의 방대한 기세를 느낀 듯이 검은색 비주는 천천히 멈추었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흑마족 사람 왜 이곳에 나타났을까? 혹시 삼대 성지가 곤륜성허를 연다는 사실을 알고서 방해를 하러 온 것일까?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신경 존재 둘과, 성계 장로 열 몇 명, 그리고 뛰어난 천위 제자들이 삼백 명이나 있었다. 삼대성지의 중진들이 전부 이곳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흑마족은 신경 존재들을 내보내지 않고서야 절대 쉽게 도망가지 못할 터였다.
“하하, 두 분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는 오늘 전투를 벌이러 온 것이 아닙니다.”
검은빛 한 줄기가 비주에서 튀어나오더니 신도남과 목천절 앞 몇 장 정도 거리에 훤칠한 사람이 나타났다.
키가 한 장 정도 되는 건장한 중년 흑마족이었다. 흑마족은 검은색 갑옷을 두른 채로 얼굴에 수염을 드리웠으며 눈썹은 짙은데 눈은 넓은 모습이 매우 위엄 있어 보였다.
갑옷 밖으로 드러난 피부에는 온통 마문이 새겨져 있어서 아주 방대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걸 보면 엄연한 신경 존재였다.
쓱, 쓱!
검은 비주 속에서 두 사람이 튀어나왔고, 전부 성계 경지 흑마족이었다. 둘은 각각 검은 갑옷을 두른 남자 옆에 서 있었다.
“누군가 했더니 석무애(釋無涯)군. 지금 한창 전투를 치르는 중인데 이곳에는 왜 왔나?”
신도남이 차갑게 말했다.
“신 도우, 아시면서 왜 그러는 건가? 곤륜성허가 이곳에 있으니 내가 왔겠지. 두 분과 같은 이유로 왔네.”
석무애는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신도남과 목천절은 이미 예상했지만, 석무애가 하는 말을 직접 듣자 얼굴이 굳었다.
“흑마족도 곤륜성허에 들어가겠다고? 흥! 꿈도 야무지군. 곤륜성허는 우리 미양 성역에 나타났어. 흑마족이 곤륜성허에 들어가도록 내버려 둘 것이라고 생각하나?”
목천절이 차갑게 말했다.
“두 분 다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게. 지금 우리가 한창 다투는 중인 건 맞지만 모든 일엔 논의를 해볼 여지가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우리 쪽 사람들까지 데리고 왔는데 빈손으로 오지는 않았지. 두 분은 내 조건부터 들어보겠는가?”
석무애가 느릿느릿 말했다.
석무애가 어떤 꿍꿍이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신도남과 목천절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한참 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석무애, 그런 성의가 있다면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이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맑은 그림자가 반짝이더니 누군가 나타났다.
그 자는 푸른 피풍의를 두르고서 하얀 수염을 드리우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에서는 푸른빛이 흘러서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만 들으면 노인인 것이 분명했다.
푸른 피풍의를 입은 노인은 석무애와 비슷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는데 엄연히 또다른 신경 존재였다.
이진종 사람들 앞쪽에 선 성계 존재 여럿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공경을 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석목은 눈을 번쩍였다. 무엇 때문인지 그 노인이 석목에게 익숙한 느낌을 주었고, 마치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속승 도우.”
신도남과 목천절은 푸른 피풍의를 두른 사람이 나타나자 크게 좋아했다.
“아, 청란성지의 성주인 속승 진인께서 오셨군. 어쩐지 한 명이 부족하다 했네.”
석무애는 속승을 한번 훑어보며 말했다.
“석무애, 할 말이 있다며? 빨리 말해보게! 하지만 그 말이 우리에게 먹혀야 좋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목천절은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잘 감추었지만 목천절이 메고 있는 푸른색 장검은 이미 윙윙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목천절이 말을 내뱉자 석무애의 뒤에 서 있던 흑마족 성계 강자들이 술렁거리며 얼굴에 화난 기색을 드러냈다.
석무애는 헛기침을 한번 하였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흑마족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허허, 내가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는가? 세 분과 싸우러 온 게 아니라니까.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정도 사람들을 데리고 오지는 않았겠지.”
석무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목 도우, 다급해하지 마시오. 석무애, 우선 조건부터 말해보게.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함께 곤륜 성허로 들어갈 텐데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각자 실력을 겨뤄 승부를 보자고!”
속승이 담담하게 말했다.
“흥, 그럼 들어나 보지.”
목천절은 속승이 하는 말을 듣더니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고, 등 뒤의 푸른색 장검도 소리를 멈추었다.
신도남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한 표정으로 손에든 깃털 부채만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
석무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다시 풀었고, 해야 할 말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속승은 재촉하지 않으며 조용히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