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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557화 (557/916)

557화. 익숙한 곳 (1)

신경 존재들 넷은 마주하고 서서 옷자락을 휘날렸다. 넷은 삼사십 장 떨어진 곳에서 네모나고 반듯한 진형을 이루었다.

삼대성지의 제자들 삼백여 명과 성계 존재들은 이미 숙연하게 서서 눈도 깜빡이지 않고서 광장 중앙에 선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때가 곧 다가온다. 우리가 진법을 시전해서 곤륜성허에 드리운 금제를 열면 천년 가까이 가라앉아있던 곤륜성허가 곧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

신도남은 고개를 들어서 허공에 드리운 금색 광막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도남은 목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사백 명 가까이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또렷하게 들렸다. 사람들은 눈에 흥분과 도전을 원하는 빛이 어려 있었다.

“이번 시련 기간은 총 구십 일이다. 때가 되면 금제가 닫힐 예정이니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영원히 그 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 기억하고 또 기억해라.”

신도남은 계속해서 말했다.

“전할 말은 다 끝냈으니 이제 시작해도 되겠지?”

석무애는 귀찮은 듯이 말했다.

“잠깐만.”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속승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왜? 속승 진인께서 할 말이 더 있는가?”

석무애가 물었다.

“허허, 별말 아니네. 곤륜성허는 선계가 출렁이면서 파괴된 곳이지. 공간이 번잡하고 금제도 복잡하니 들어가는 여러 제자들은 꼭 조심해야 하네.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를 도와줘야 하지 않겠는가?”

속승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속승 진인, 충고는 감사하나 우리 흑마족은 원래 단합을 잘하는 종족이다. 그러나 다른 종족들은 또 모르지.”

석무애가 속승이 하는 말을 듣더니 허허 웃으며 말했다.

“됐다. 우리는 여기까지만 하지. 모든 제자들은 준비를 해라. 금제가 풀리면 곧바로 들어간다.”

신도남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신도남이 돌아서서 나머지 신경 강자들 세 명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속승은 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않은 채 하얀 운무를 밟으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운무 속에서 상서로운 그림이 줄줄이 나타났고, 부드러운 빛이 수도 없이 뿜어 나와 속승진인을 받치고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모습은 마치 득도를 한 선인 같았다.

탱!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천절을 비롯한 사람들이 뒤에 멘 푸른색 장검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푸른색 빛검 수천 갈래로 변하여 눈부신 검란이 되었다. 검란은 목천절을 받치고서 펄떡이며 날아올라 속승 맞은 편에 섰다.

이어 석무애가 두 손가락으로 땅을 짚자 검붉은 안개가 나타나더니 석무애를 받치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신도남은 손에 든 깃털 부채를 가볍게 흔들었고, 부채 위에 옅은 금색 뇌전이 줄줄이 나타났다.

퍽 소리와 함께 신도남은 몸에서 금색 뇌전이 용솟음쳤다. 신도남은 기세가 갑자기 바뀌더니 번개처럼 튀어나가 목천절 맞은편에서 멈춰 섰다.

네 사람이 이제 막 멈춘 후에 각자 손을 들어서 위아래로 흔들며 현묘한 법결을 줄줄이 만들어냈다. 네 사람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고, 어떤 주문을 외우고 있는 것 같았다.

광장에 있던 모든 장로들과 제자들은 네 사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네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같은 동작을 했다. 인을 맺는 속도마저 같으며 계속 똑같이 움직였다.

네 사람은 또 다른 법결을 시전하였고, 허공에서 ‘윙’하는 소리와 함께 형태가 없는 파동이 일어났다.

석목은 눈빛이 반짝였다. 네 사람 몸 앞에 한 장 정도 두께인 둥그런 광막이 나타났다.

네 갈래 광막이 나타나자 허공은 눈부신 빛들로 가득 찼고, 풍성한 영력의 파동이 허공에서 주변으로 퍼졌으며 부석 성해의 절반이 파동 때문에 흔들리고 있었다.

광막 위에 석목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복잡한 부문들과 도안들이 나타났다. 이어 부문들과 도안들은 오색을 번쩍이며 끊임없이 돌고 있었고, 광막에서 눈부신 빛고리가 나타나더니 성역 전체를 휘황찬란하게 비췄다.

“질(疾)!”

이때, 신경 강자 넷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몸에서 빛이 크게 번지며 기운이 점점 강해지더니 놀라운 경지에 이르렀다.

석목은 허공에 빛이 되어 드리운 네 사람을 바라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력한 압력이 밀려드는 걸 느꼈다. 석목은 눈빛이 반짝였으며 얼굴엔 온통 동경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전해만 듣던 성역 최강인, 수련 경지가 신경에 도달한 강자들 앞에서 석목은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이기만 했다.

이어서 석목도 눈빛이 점점 단단해졌고, 몸 옆으로 드리운 두 손은 이미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 * *

잠시 후에 허공에 드리운 네 갈래 둥그런 광막에서 금색, 푸른색, 붉은색, 하얀색 네 가지 빛이 폭발했다. 찬란한 빛덩어리 네 개가 터지는 듯했고, 빛덩어리는 끊임없이 돌고 있었다.

빚덩어리는 눈부시게 빛났으며 맨눈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쿵!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태양 네 개 위에 금빛 번개가 찢어졌다. 검의 기운은 이리저리 튕겼으며 핏빛도 용솟음쳤고, 하얀 태양도 활활 타올랐다. 이어서 네 갈래 굵은 빛기둥이 순식간에 터지더니 옅은 금색 결계 광막 위에 부딪쳤다.

우르릉!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폭발하는 소리가 하늘과 땅 사이에 울려 퍼졌다.

부석 성해의 절반이 네 갈래 빛으로 완전히 가려졌고,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광장 위에선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던 천위 제자들이 한참 동안 몸을 비칠거리며 땅에 주저앉을 뻔했다.

모든 사람들이 엄청난 위력과 기세 때문에 놀라서 소스라쳤으며 몸을 본능적으로 부들부들 떨었다.

석목은 꼿꼿이 서서 허공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가슴속에서 파도가 용솟음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어서 석목의 두 눈에서 금빛이 흘렀다.

눈부신 빛고리를 뚫으며 결계 광막 위에 두껍게 깔려 있던 금색 구름이 빛기둥에 부딪치던 순간,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겼다.

결계 광막엔 어두운 육각형 무늬가 뚜렷해졌다. 가운데에선 기괴한 뱀 모양 꽃무늬가 일곱 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뱀 모양 꽃무늬가 격하게 꿀렁였고, 광막 위에 드리운 빛도 크게 부풀어 올라서 금색 빛고리는 활활 타오르듯 들끓기 시작했다.

금색 화염이 용솟음치며 주변에 드리운 네 갈래 빛기둥을 전부 감싼 채로 태워버렸다. 열기가 밀려와서 광장에 서 있던 사람들도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허공에 선 신경 강자 네 명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해서 법결을 시전하였다.

금색, 푸른색, 붉은색, 하얀색 빛이 밀물처럼 끊임없이 빛기둥을 타고서 결계 속으로 몰려들며 금색 빛에 충격을 주었다.

* * *

한참 뒤에 네 갈래 빛기둥은 결계 위에 십 장 정도 드리우며 네모난 구역을 하나 만들어냈다.

하얀 빛이 끊임없이 네모난 구역으로 쏟아졌고, 검의 기운이 결계를 잘라내며 자욱한 핏빛과 번개까지 튀었다. 어두운 육각형 무늬에서 여전히 금빛이 눈부시게 비쳤지만 결국은 견뎌내지 못했다.

네모난 구역에 있던 금색 빛은 한참 동안 타오르더니 드디어 눈에 띄게 옅어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네모난 구역에 드리운 금색 빛이 드디어 완전히 사라지며 이내 투명해졌다.

네 신경 강자들은 손으로 쓰던 법결을 바꾸었다. 그러자 네 갈래 빛기둥에서 뿜어 나오던 빛이 양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쾅!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광막이 다시 격하게 흔들렸고, 네 갈래 빛기둥은 줄줄이 이어져 십 장 정도 크기인 진법을 만들며 결계 가운데 난 틈을 받치더니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하나 만들어냈다.

진법이 이제 막 만들어졌을 때, 주변에 드리운 금색 빛이 계속해서 몰려와 진법을 무너트리려 했다. 하지만 네 신경 강자들은 법결을 멈추지 않으며 계속 안으로 불어넣었다. 진법에는 정교한 부문이 줄줄이 나타났고 드디어, 통로가 안정되었다.

이어서 신경 강자 네 명은 동시에 법결을 거두어들이며 다시 허공에서 광장 가운데로 내려왔다.

“입장!”

신도남이 법결을 거두어들이며 큰소리로 외쳤다.

광장 위에는 둔광이 여기저기서 번쩍였고, 삼대성지의 제자들과 흑마족들은 뿔뿔이 둔광으로 변하여서 앞 다투어 위에 생긴 입구로 몰려들었다.

“우리도 가자.”

석목이 고개를 돌리더니 옆에 있는 연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연나는 두 눈으로 공간 입구를 뚫어져라 바라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래?”

석목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전음으로 말했다.

“몰라, 이상한 기분이 들어.”

연나가 멈칫하더니 전음으로 대답했다.

“어떤 느낌?”

석목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연나는 석목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익숙한 느낌.”

“이곳은 확실히 너와 어떤 연원(淵源)이 있는 게 분명해. 어찌 되었든 우선 들어가 보자.”

석목이 말했다.

주변에 있던 제자들 사백 명은 이미 반 이상이나 사라졌다.

연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갑자기 연나가 미간을 찌푸렸고, 얼굴에서 고통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너 왜……”

석목이 이제 막 말을 꺼내려고 할 때, 단전의 영해 속에서 찢어지는 것만 같은 통증이 몰려왔고, 온몸에 흐르는 기운이 순식간에 멈춰버렸다.

석목은 안색이 변했다. 신식으로 안쪽을 관찰해보니, 단전 속에 자리한 청동빛 구체가 더 빠르게 돌고 있었고, 구체에선 청동색 빛줄기가 흘러나왔다. 빛 속에는 차가운 힘이 섞여서 석목의 금단을 묶어버렸다.

이어서 석목의 귓가에 팽악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말한 일을 잊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처참한 결과를 볼 것이다!”

팽악이 말을 끝내자, 단전에 받던 고통도 풀렸다. 연나도 고통스러운 기색이 얼굴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석목은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렸다. 마치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은 것 같았다.

석목은 먼 곳에서 노승처럼 한 치도 움직이지 않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팽악을 한번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두 사람은 서로 한 번씩 마주 보았고, 동시에 몸에 빛이 번지며 네모난 입구를 향해 날아갔다.

허공에 뜬 금색 구름은 보기에는 가까워 보였지만 십 리 정도는 떨어져 있었다.

석목과 연나는 멈추지 않고 결계에 생긴 네모난 입구 속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석목의 눈앞에 빛이 찬란하게 번졌고, 중력이 방향을 바꾸더니 석목은 아래 쪽 빗겨나간 방향으로 끌어당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석목은 깜짝 놀라 다급하게 법결을 시전하여 몸을 가누었고, 옆에 있던 연나도 몸을 비칠거렸다.

* * *

이어서 석목과 연나는 드넓은 청석 광장에 낮게 떠있었다.

석목은 고개를 돌려서 들어온 입구를 한번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순간, 모두 똑같이 중력의 방향이 바뀌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천위 제자들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석목과 연나는 낮은 허공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곧바로 청석 광장으로 내려갔다.

왜냐하면 주변을 둘러보니 곤륜성허가 아주 안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길이가 다른 공간 균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심지어 새로운 균열들도 계속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되면 날아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다.

앞을 바라보니, 백 장 정도 크기인 청석 광장의 겉은 온통 틈으로 가득했고, 부서진 돌들이 여기저기서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심지어 십 장이나 되는 깊은 골짜기들도 몇 군데 있었다.

조금 전에 들어온 제자들 중에 적잖은 사람들이 이미 사라져버렸다. 아마 마음이 다급해서 빠르게 흩어져 각자 수색을 하는 모양이었다.

구십 일이라는 시간은 얼핏 보면 길어 보였지만 드넓은 곤륜성허 속에서는 매 순간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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