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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558화 (558/916)

558화. 익숙한 곳 (2)

광장에 머물던 나머지 제자들 백여 명은 대부분 서로 경계를 하며 광장 곳곳으로 흩어졌다. 누군가는 자기가 속한 대열을 찾고 있었으며 또 누군가는 이미 대열을 이루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서문설, 조극과 자릉은 이미 종적을 감추었다.

“목 소주, 우리는 저곳으로 가봅시다.”

석목과 가까이에 있던 축운검파의 청년 제자 한 명이 옆에 있던 눈썹이 검 모양인 청년에게 말했다.

검 모양 눈썹의 청년은 부서진 붉은 궁전을 한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축운검파 제자들 대여섯 명이 전부 붉은 궁전을 향해 걸어갔다.

축운검파의 제자들이 궁전으로 향하기 전, 이미 여러 대열이 붉은 궁전으로 걸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벌어진 상황으로만 봤을 때, 그 붉은 궁전이 가장 기세가 넘쳤으며 또 가장 컸다.

물론 붉은 궁전은 곤륜성허의 한쪽 구석일 뿐이었다.

석목은 하얀 피풍의를 두른 청년 일행의 뒷모습을 한번 바라보며 다급하게 앞으로 가지 않고서 주변 환경을 훑어보았다.

청석 광장 주변에는 아무렇게나 무너져있는 백옥 석상들이 여러 개 있었고, 석상들은 매우 섬세하게 만들어졌는데 아마 용이나 봉황 같은 상고시대에 살던 천수들일 터였다.

또한 광장 주변에 청석이 깔린 대로와 난석으로 깔린 작은 길들이 연결되어있었는데 곤륜성허의 곳곳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조금 답답한 점은 이 폐허에는 형태가 없는 신식을 막는 힘이 있어서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신식을 궁전 안으로 보낼 수조차 없었다.

“우리는 이쪽으로 가자.”

연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연나는 석목이 대답하기도 전에 방향을 틀어서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도 부서진 건물이 여러 채가 있었다.

석목은 잠깐 멈칫하더니 연나의 뒤를 따라갔다.

이때 청석 광장에 머물던 나머지 사람들도 각자 길을 선택하여 삼삼오오 또는 열 몇 명이서 모인 후에 뿔뿔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 * *

석목과 연나는 청석 광장을 떠나서 크지 않은 풀밭을 가로지르며 하얀 돌로 쌓아 올린 궁전 앞에 다가갔다.

높이가 오륙 장 정도 되어 보이는 궁전의 문은 바닥에 무너져있었는데 마치 어떤 무기로 두 덩어리로 갈라버린 것 같았다. 문 근처에서 어두운 입구가 드러났는데 문틀에는 반쪽만 남은 편액이 걸려있었는데 그 위에 ‘경(琼)’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쾅!

두 사람이 들어가기도 전에 멀지 않은 뒤쪽에서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이 고개를 돌려서 바라보니. 그 소리는 조금 전에 본 붉은색 궁전에서 들린 것 같았는데 들린 소리에는 놀란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누군가 어떤 금제를 건드린 것 같았다.

이어서 또 다른 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청석 광장 쪽 한 돌길에서 흑마족 세 명이 한 장 정도 크기인 무언가와 싸우고 있었다.

그 모습은 궁전 처마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망천흉수(望天凶兽)와 생김새가 매우 흡사했고, 몸에선 황동 특유의 광택이 반짝였다. 전혀 살아있는 생물 같지 않았다. 하지만 매우 민첩하게 움직여서 천위 중기 수련 경지인 흑마족 세 명이 어려운 싸움에 직면해 있었다.

석목은 멈칫했다. 그것은 매우 현묘하게 설계된 인형이었고, 아마 곤륜성허에 남겨진 수호 인형일 터였다.

이때 연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봐. 빨리 들어가자.”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연나와 함께 앞에 있는 궁전으로 들어갔다.

* * *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어두컴컴한 대청이었는데, 대청은 여기저기가 온통 흠집이 나 있었으며 가운데 놓인 병풍 앞에 주좌가 있었다. 진열이 흐트러진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여긴 공무를 논의하는 곳이었을 터였다. 대전 양측에는 각각 문이 하나씩 있었다.

연나는 석목을 데리고서 병풍을 에돌아 뒷문으로 걸어 나갔다.

두 사람 앞에 구불구불 위로 올라가는 회랑이 하나 나타났고, 회랑에는 안개가 자욱하여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석목이 두 눈에 금빛을 흘려보내며 이곳에 드리운 금제가 있는지 훑어보려고 할 때, 연나는 두말하지 않고 회랑으로 향했다. 그리고 빠르게 앞으로 걸어갔다.

“연나, 조심해!”

석목은 깜짝 놀랐다.

“지껄이지 말고 따라와.”

연나는 이렇게 말하며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석목은 잠깐 망설이더니 연나의 뒤를 쫓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으며 신식을 보냈다. 하지만 석목은 이 궁전에서 신식을 세 장 정도 밖에 보낼 수 없었다.

여긴 안개가 자욱했지만, 신식을 막는 힘이 있었다.

금제를 알아차린 석목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서 두 사람은 한참동안 걸었다. 그러자 눈앞에 세 갈래 길이 나타났다.

그 세 갈래 길중 누각으로 가는 길도 있을 테지만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길도 있었다.

곤륜성허는 폐허가 된 지 오래되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함정 금제를 건드릴 수도 있었다. 심지어 수호 인형과 부딪칠 수도 있으리라고 석목은 추측했다.

하지만 갈림길에 선 연나는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서 길을 하나 선택하여 계속 앞으로 걸어갔고, 연나는 고민조차 하지 않았으며 망설이지도 않았다.

마치 연나에게 이곳은 여러 번 와봤던, 매우 익숙한 곳 같았다.

석목은 연나의 뒤에서 회랑을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긴장했던 마음은 점점 놀라운 마음으로 변했다.

올라온 길을 생각해보면 두 사람은 아마 고지에 올라왔을 터였다.

주변에서 간간히 폭발 소리와 고함이 들렸고, 아마 누군가 근처에서 금제를 건드렸을 터였다. 심지어 더 먼 곳에서는 싸우는 소리도 들렸다.

석목이 예상한 바는 정확했다. 곤륜성허는 선계의 유적으로 비록 천년이 넘도록 방치되었지만 남겨진 금제와 수호 인형들이 여전히 많았다.

하지만 연나가 이끄는 가운데 석목은 마치 회랑에서 산책을 하듯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으며 금제와도 부딪치지 않았다.

석목은 빠르게 앞으로 걸어가는 연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연나가 이곳에 어떤 연고가 있는지 점점 궁금해졌다.

하지만 연나도 스스로 왜 곤륜성허가 익숙한지 모르는 것 같아서 물어봐도 답을 얻어내지 못할 터였다.

연나를 따라가면 금제나 인형을 만날 일이 없으니 석목은 마음을 놓으며 연나를 따라갔고, 이참에 주변 환경이나 좀 익혀두려고 했다.

석목은 놀라움을 억누르며 연나를 바짝 뒤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 앞에 또 갈림길이 세 개 나타났다.

한 개는 계속해서 앞으로 올라가는 길이었고, 또 다른 길은 평평한 곳 같았다.

연나는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려 석목을 한번 바라보며 잠깐 망설이더니 평평한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얼마 걷지 않았는데 앞쪽에서 끝이 보였다.

* * *

회랑에서 걸어 나오니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높이가 십 장 정도에 너비가 이십 장 정도인 패루였다. 패루는 전부 유리나 백옥으로 지어졌고, 일부가 사라졌으며 나머지 부분도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웅장한 기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패루에 달린 순금 편액에는 ‘낭풍(閬風)’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연나는 발길을 멈추지 않고 패루를 지나 앞으로 걸어갔다. 앞쪽에 운무가 맴돌았는데 줄지어 선 산봉우리들 같았다.

순간, 짙은 천지의 영기가 뿜어 나와 석목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석목은 두 눈에서 금빛이 끊임없이 흘렀고, 앞쪽에 네모난 백옥으로 쌓아 올린 약밭이 여기저기 있었다. 약밭은 크기가 전부 달랐는데 큰 곳은 몇 묘나 되었으나 작은 곳은 길이가 십 장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때,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곳에 흐르는 공간의 파동이 매우 강렬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공에 공간 균열이 여기저기서 번쩍였고, 산으로 올라가려면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석목이 옆에 있는 연나를 바라보니, 연나는 여전히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석목은 궁금해 하면서 연나를 뒤따르며 산길을 따라 대략 한 시진 정도 걸어서 약밭 앞에 도착했다.

약밭은 이미 황폐하게 변했으며 영초와 영화들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냥 황량함 그 자체였다.

“너는 따라오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

연나가 갑자기 말을 하더니 약밭 방향으로 걸어갔다.

“조심해. 이 두 마리는 아마 수호 인형일 거야.”

연나가 하는 말을 듣던 석목은 다급하게 주의를 주었다.

조금 전에 훑어보았는데 백옥으로 둘러싸인 약밭 입구 양쪽에 살아있는 것만 같은 짐승 조각상이 두 개 앉아있었다.

모양으로 봤을 때, 왼쪽은 기괴한 거북 같았으며 오른쪽은 몸을 휘감는 거대한 구렁이 같았는데 입을 크게 벌리고서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연나는 석목이 말하는 주의를 듣지 못한 듯이 곧바로 앞으로 걸어갔다.

연나가 약밭 입구에서 발을 내미는 순간, 양쪽에 선 짐승 조각상들은 눈에서 기이한 붉은빛을 번쩍였다. 이어서 고개를 돌려 연나를 바라보더니 동시에 천위 경지의 기운을 풍겼다.

하지만 연나는 마치 인형들을 보지 못한 듯이 계속 앞으로 걸어 들어갔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몸을 앞으로 젖히며 공격을 날리려는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이때, 어안이 벙벙해지는 광경이 펼쳐졌다.

두 짐승 조각상은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연나를 공격하지 않은 채 바닥에 엎드렸다.

연나는 발길을 멈추지 않으며 약밭 한쪽으로 다가가서 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흙바닥이 갈라지더니 푸른색과 누런색 덩어리가 손에 떨어졌다.

연나는 덩어리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돌려서 입구로 다시 걸어오며 석목에게 물건들을 던져주었다.

“이것은……”

석목이 받아보니 조금 전에 땅속에서 나온 물건들이었다.

푸른색은 인삼 같은 물건이었는데 뿌리가 없는 줄기 식물이었으며 씁쓸한 냄새가 풍겼다. 누런색 물건은 무거운 흙덩어리였다.

석목은 한참동안 뒤적이더니 갑자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비록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물건들 안에서 아주 짙은 나무 속성 영기와 흙 속성 영기가 풍겼다.

“이것은 만년근(萬年根)과 식토(息土)야.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

연나가 말했다.

“고마워!”

연나가 하는 말을 들은 석목은 사양하지 않고서 조심스럽게 두 물건을 저장반지에 넣었다.

식토는 그렇다 쳐도 만년근은 시간을 들여서 잘 정제한 후에 흡수하면 구전현공의 네 번째 단계인 목화의 힘을 크게 키울 터였다.

“너는 빨리 실력을 끌어올려야만 하는 그런 예감이 드는데, 아마 시간이 많지 않을 거야.”

연나가 갑자기 그런 말을 했다.

“시간이 많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 천정과 관련된 일이야?”

석목은 깜짝 놀라며 무엇인가 생각난 듯이 물었다.

“자세한 건 나도 잘 몰라.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들던 예감이야. 네가 만약 정말 천정의 만선을 죽인다면 만선 또한 너를 그냥 놔둘까?”

연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입을 크게 벌리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석목은 천정과 만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천정은 선계라 불리는 곳에 있을 것이며 석목에게 공법을 물려준 백원왕과 어떤 원한이 있는 관계라고만 알고 있었다.

“선계…… 곤륜을 선계의 폐허라고 부르는 걸 보니 혹시 천정과 관련이 있는 걸까?”

석목이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이 말했다.

“몰라.”

연나가 대답했다.

석목은 쓴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돌려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약밭 입구를 한번 바라보았다. 짐승 조각상은 이미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마치 움직인 적조차 없는 것처럼 그 자리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인형들은 왜 너에게 그런 모습을 보인 거야?”

석목이 물었다.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런데 날 공격하지 않을 거란 느낌이 들었어.”

연나가 말을 하며 돌아서더니 또 다른 산길을 향해 걸어갔다.

“네가 사령계면으로 들어가기 전에 여기 왔었던 건 아닐까?”

석목이 물었다.

“그랬을 수도.”

연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서 천천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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