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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559화 (559/916)

559화. 수확

그리고 며칠 동안, 석목은 연나를 따라서 여러 산을 뒤졌다. 때론 단번에 크고 작은 약밭들을 열 몇 개씩 찾아냈다.

이전처럼 연나는 산에 설치된 금제를 쉽게 피할 수 있었다. 약밭 입구에 있는 수호 인형들도 연나에게는 정말 말 그대로 조각상일 뿐이었다.

물론 약밭마다 만년근이나 식토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몇몇 약밭에는 희귀한 영초가 꽤 있었다.

연나는 영초들이 필요 없는지 전부 석목에게 주었다. 그리하여 며칠 동안, 석목은 만년근 일고여덟 개와 식토 열 몇 덩어리, 그리고 적잖은 천년 영초들을 수집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구전현공의 네 번째 단계를 대성 경계까지 수련하기에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다섯 번째 단계를 수련하는 것도 자신이 넘쳤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산 몇 개에 다른 사람들이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밭을 찾아서 입구에 선 수호 인형들을 부숴버렸다.

이 산으로 통하는 길이 한 곳 뿐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곤륜성허에 들어온 지 아직 열흘도 채 되지 않았다. 산에 온 사람들 중에는 흑마족이 없어서 석목과 연나와 마주친 다른 대열에 속한 사람들은 경계는 했지만 아무런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

석목은 이미 산에 온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연나에게 원래 왔던 길을 따라서 다시 회랑으로 돌아가자며 제안을 했다.

* * *

이틀 뒤에 두 사람은 회랑을 떠나서 백 묘 정도인 연못을 에돌아 고리 모양 회랑에 도착했다.

여기서 앞쪽을 바라보면 온통 촘촘하게 이어진 궁전들과 누각들이 있었다.

궁전 앞에는 커다란 백옥 패루가 하나 서 있었다. 패루 위에는 ‘천용(天墉)’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곳의 궁전들과 누각들은 얼마 전에 봤던 건물들보다 훨씬 더 심하게 파손되었고, 곳곳에서 붕괴된 궁벽과 천장을 볼 수 있었다.

회랑과 궁전의 누각 사이에는 한 장 정도 너비인 고리 모양 호성하(護城河)가 하나 있었는데, 강물이 매우 깊어서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호성하 위에는 하얀 용처럼 생긴 돌다리 아홉 개가 가로로 놓여서 안쪽 궁전과 고리 모양 회랑을 연결해 놓았다.

연나는 한 손으로 고리 모양 회랑의 난간을 가볍게 매만지며 폐허를 바라보았고, 두 눈에 기억을 되짚는 것만 같은 모습이 어렸다.

“무엇인가 또 떠오른 거야?”

석목이 연나를 한 번 바라보며 물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연나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눈빛에는 슬프고 침울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가자.”

연나의 모습을 본 석목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연나가 이끄는 가운데 두 사람은 오른쪽에서 세 번째로 놓인 돌다리로 걸어갔다.

두 사람이 이제 막 돌다리를 지났을 때, 등 뒤에 있던 고리 모양 회랑에서 갑자기 누군가 번쩍이며 나타나더니 두 사람이 향한 곳을 한번 바라보며 빠른 걸음으로 따라왔다.

이 궁전의 누각에는 이미 누군가 왔었다. 새로운 전투를 벌인 흔적이 있었으며 인형의 조각도 있었다.

석목과 연나는 불필요하게 번거로운 일을 겪는 걸 피하고자 속도를 늦추었다.

연나는 여전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석목이 영목신통으로도 탐색할 수 없는 금제들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몇 궁전에서 예전에 치른 전투 때 남겨진 법보 조각들을 찾을 수 있었다.

법보 조각들은 이미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밖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연기용 재료였다.

* * *

이틀 뒤에 두 사람은 푸른 대나무들이 가득한 원시림을 가로질러 조용한 정원에 도착했다.

정원은 다른 궁전들과 떨어져 있었는데 대전 네 개가 둘러싸서 만든 곳이었다.

가장 밖에 서 있는 건물은 커다란 문전이었다. 처마가 이미 절반이나 무너져버려 위에 걸린 커다란 편액이 기울어져 있었고, 곧 떨어질 것 같았다.

‘취환궁(翠環宮).’

석목은 편액 위에 새겨진 글자를 바라보며 묵념을 했다.

텅텅 비어있는 대문을 통해, 석목은 ‘취환궁’의 정원이 이미 폐허가 된 모습을 보았다. 원래 있던 석가산과 물가에 장식해둔 풍경은 이미 쓰러져있었으며 정교하게 조각한 탁자와 의자도 전부 산산조각이 났다.

양쪽 편전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서 무너졌으며 외벽만 서 있었고, 입구에는 이삼 장 정도 크기인 팔괘 그림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문과 마주한 주전은 그나마 온전해 보였는데 원래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곤륜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 모양 이 꼴이 되다니.”

석목은 가볍게 한숨을 내뱉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는 길 옆에 있던 누각들과 회랑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이 모든 광경이 매우 처참했다.

하지만 폐허의 생김새와 돌과 기와, 정자의 모습으로 번성했던 예전 경치를 유추해볼 수 있었다.

“연나, 네가 꼭 이곳에 와야 한다고 했었잖아. 그때는 왜 그랬어?”

석목은 연나가 정원 입구에서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물었다.

“그냥 꼭 와야 할 것 같았어.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어.”

연나는 눈빛을 몇 번 번쩍이더니 느리게 말했다.

“팽악이 우리 몸에 걸어둔 금제 말이야. 혹시 무엇인가 알아냈어?”

석목이 물었다.

“지금까지는 이 금제를 완전히 풀 수 없어. 하지만 이곳에서 팽악은 금제를 시전할 수 없을 거야.”

연나가 말했다.

“우리가 팽악에게 물건을 찾아준다고 해도 우리를 놓아줄 거라 생각하지 않아…… 아, 팽악이 말한 보월궁이 어디 있는지 알아?”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이름은 들어본 것 같아…… 아마 더 깊은 구역에 있을 거야. 됐어. 가자.”

연나가 말을 하며 정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두 사람이 무너진 석가산 옆으로 다가갔을 때, 연나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곳에 누군가 왔었어. 금제도 이제 막 파괴되었을 거야.”

석목이 깜짝 놀라며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다.

이때, 이변이 발생했다.

주변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몇몇 청란성지의 제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찌익!

이때 가벼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전의 대문이 열리며 또 세 사람이 걸어 나왔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사람은 푸른색 피풍의를 두른 채로 풍치가 있는 표정을 짓고 있던 조극이었다.

조극의 등 뒤로 몸이 마른 사람 한 명과 조금 뚱뚱한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는데 전부 천위 후기인 무인들이었다.

석목의 왼쪽을 가로막고 있던 청란성지의 제자가 빠르게 조극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서 석목과 연나를 가리키며 몸을 굽히면서 말했다.

“조 사형, 이 두 사람입니다.”

“뭐하는 짓이야?”

석목은 손에서 보라색 빛을 반짝이더니 파뢰검을 손에 들고서 차갑게 소리를 질렀다.

연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자사자를 몸 앞으로 꺼내 들었다.

“허허, 이진종의 도우님들,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조극이라고 합니다. 청란성지 속승 진인님의 직속 제자죠. 인사드립니다!”

조극은 미소를 짓더니 석목과 연나를 향해 주먹을 감싸며 말했다.

“조 도우님, 청란성지의 직속 제자라는 신분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리고서 우리가 가는 길을 가로막다니, 혹시 우리 이진종을 무시하는 겁니까?”

석목은 보라색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우선, 제 얘기부터 들어보시죠. 두 분께서 지나가는 길은 수호 인형도 피한다고 하여서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이렇게 상처 하나 없이 여기에 서 계시는 걸 보니 안 믿을 수가 없게 되었군요.”

조극이 천천히 말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조 도우님, 우리 갈 길을 가로막은 게 담소나 나누자는 이유는 아니겠지요? 무슨 일인지 말씀하시죠.”

석목이 말했다.

“별일은 아닙니다만 저희가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두 분께서 길을 한 번 안내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조극이 계속해서 말했다.

“조 도우님, 우리도 곤륜성허엔 처음 왔습니다. 길을 알 리 있겠습니까?”

석목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가려고 하는 곳은 보월궁이라는 곳인데, 만약 두 분께서 길을 안내해주신다면 꼭 크게 보답하겠습니다.”

조극이 계속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길은 스스로 찾으셔야지요.”

석목은 ‘보월궁’이라는 말을 듣자 멈칫했지만, 곧바로 거절했다.

“두 분, 좋은 말로 할 때 받아들이지 않으시다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조극은 눈에 흉악한 기색을 드러내며 담담하게 말했다.

조극이 말을 떨어뜨리기 바쁘게 눈앞에서 보라색 빛이 반짝이더니 보라색 번개가 장검을 감쌌다. 마치 번개뱀 같은 모습이었다.

조극은 전혀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조극은 손바닥에서 빛을 반짝이더니 은색 장극이 튀어나와서 왼쪽을 막았다.

탱!

보라색 장검이 튕겨 날아갔다.

석목이 훑어보니, 조극이 손에 든 은색 장극에서 빛이 번쩍였고, 달려있던 깃발이 흔들리며 원기 파동이 일렁였다. 등급이 낮지 않은 영보인 게 틀림없었다.

석목은 동작을 멈추지 않으며 검결을 시전하여 검날을 휘둘렀고, 조극의 목을 향해 날렸다.

검날이 닿기 전, 파뢰검에서 보라색 번개가 크게 번지더니 검날이 한 장 정도로 넓어지며 조극의 목에 더욱 가까워졌다.

조극은 여전히 전혀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손에 든 장극을 휘둘러서 은빛을 크게 자아냈다.

파뢰검의 보라색 검날은 이제 막 반척 정도 뻗어 나갔다가 은색 빛과 부딪쳤다.

펑!

무거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파뢰검이 뒤로 튕겨 날아갔고, 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허공에서 검이 튕겨 나가며 묵직한 힘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석목이 다시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주변에 몇 갈래 빛이 날아왔다.

석목은 옆으로 피했고, 석목이 서 있던 자리에 불꽃이 터지며 땅에 검은 웅덩이가 하나 생겼다.

머리 위로 하얀색 칼바람이 수십 갈래 불어오고 있었다.

이어 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라색 빛이 용솟음치며 날카로운 빛이 튀어나와 칼바람을 전부 뚫어버렸다.

연나는 자사자를 휘두르며 석목과 등을 맞대고 서 있었다.

“두 분, 이진종에 곤륜성허의 지도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만약 수호 인형을 막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제가 살려는 드리지요.”

조극은 은색 장극을 휘두르며 말했다.

“조용히 하고 덤벼.”

석목이 말했다.

“조 사형, 우선 조금 쉬시죠. 천위 초기 두 놈은 저 봉성(封誠)과 진해(晉 海) 사제에게 맡기세요!”

조극의 뒤에 서 있던 사람이 말을 하며 넓적한 낫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 사람 옆에 있던 조금 뚱뚱한 사람은 두 손에 검은색 단창(短槍)을 들고서 석목과 연나의 몸을 훑어보았다.

“그래.”

조극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손을 흔들었다. 몇몇 청란성지의 제자들이 뒤로 물러나며 석목과 연나 두 사람을 둘러쌌다.

조극이 말을 마치자, 진해가 앞으로 날아가더니 양손에 든 단창에서 검은빛이 크게 번지더니 단창 속에서 마름모꼴 빛이 두 갈래 쏘아져 나왔다.

그리고 바로 용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고, 허공에서 검은빛이 크게 번지며 이삼십 장 정도 되는 검은색 교룡이 비틀거리며 튀어나와 입을 크게 벌린 채 석목에게 향했다.

석목은 전혀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손에 검결을 짚더니 손목을 뒤집었다. 이어 파뢰검에서 번개가 크게 번지며 놀라운 속도로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허공 속 구름이 용솟음을 쳤고, 구름 속에서 보라색 빛이 줄줄이 밝아졌다.

퍽!

순간, 번개가 구름 속에서 튀어나와 파뢰검에 떨어졌다.

석목이 소리를 지르자 허공에 있던 파뢰검에서 번개가 크게 번졌다. 검 위에 열 장 정도 되는 보라색 검 그림자가 나타나며 번개를 감싼 채 검은 교룡 두 마리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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