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62화 (562/916)

562화. 칠색 영문

같은 시각, 곤륜성허에 자리한 비취색 대전의 문 앞에 세 장 정도 크기인 하얀색 백옥이 서 있다.

옥벽 위로 살아있는 것만 같은 용 아홉 마리가 머리와 꼬리가 이어져 엉켜있었으며, 구슬 하나를 사이에 둔 채로 옥 벽 위에서 부드러운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때, 옥 벽 위 동그란 부문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눈부신 빛으로 변했고, 석목의 모습이 나타났다.

석목은 바닥에 내려와 청명검을 휘둘러서 앞을 가로막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연나는 이미 석목 옆에 없었다. 석목은 자신이 어디로 전송되었는지 알 수 없었고, 그의 앞에 놓여있는 것은 커다란 비취 문전이었다.

비취 문전의 커다란 청옥 돌문 두 짝은 아직 온전했지만, 위에 걸린 백옥 편액은 문 앞 계단 위에 떨어져 있었다.

산산이 조각난 편액 위에 ‘청리궁(青离宫)’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문전 왼쪽을 백석으로 쌓아올린 벽 하나가 가로막고 있었고, 오른쪽은 세 장 정도 너비인 청석길이었는데 백석 벽 사이를 가로질러 문전 앞까지 길게 뻗어있었다.

석목은 문전 앞에 서서 청석길의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길의 끝에 검은 대나무가 흔들거렸으며 그 너머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전에 있었던 취환궁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석목은 정신을 가다듬고서 청명검을 거두어들이더니, 두 눈을 감고 신혼을 통해 연나와 연락을 해보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신혼은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지만 무엇 때문인지 어떠한 방해를 받아서 소통을 할 수 없었다.

이때, 석목은 등 뒤에서 영력의 파동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석목이 고개를 돌려보니 구룡옥벽 위에 적힌 부문들이 여전히 천천히 움직이며 빛을 간간히 뿜어냈고, 안에서 누군가 전송되어 오는 것 같았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고서 비취 문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큰 걸음으로 오른쪽 통로까지 걸어갔다.

약 삼십 장 정도 걸었을 때, 청석길은 드넓은 검은색 죽림 속으로 뻗어있었다.

석목이 죽림 깊은 곳을 바라보니, 그 속에는 검은 대나무만 무성하게 자라나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석목이 발을 들어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가슴에서 타오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몰려왔다.

그가 옷깃을 풀고 고개를 숙여 가슴을 바라보니 가슴팍에서 칠색 연꽃이 끊임없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연나가 석목의 가슴에 남긴 칠색 영문을 바라보자 석목은 무엇인가 생각난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두 눈에서 단단한 금빛을 뿜어냈다.

영목신통을 이제 막 발동했을 때, 석목은 앞에 놓인 죽림에 십 장 정도 되는 금제 진법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진법은 석목이 가려고 하던 길을 막고 있었고, 만약 한 발자국만 앞으로 더 내디뎠더라면 진법 속으로 빨려 들어갈 뻔했다.

금제 진법은 범위가 넓었을 뿐만 아니라, 진법 위에 적힌 부문도 매우 복잡했다. 강력한 위력을 보기만 해도 알 것 같았다.

석목의 이마에 식은땀이 한 줄 흘러내렸고, 이어 그는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연나가 남긴 칠색 영문이 아니었더라면, 죽지는 않았더라도 아마 큰 부상을 당했을 터였다.

석목은 다시 구룡옥벽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조극을 비롯한 사람들이 아직 전송되어 나오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에 빠른 걸음으로 청리궁 앞까지 다가갔다.

석목이 재빠르게 계단을 올라 두 손으로 청옥 돌문을 천천히 열자, 문 너머로 정원의 면모가 드러났다.

* * *

청리궁 안은 매워 드넓었으며 지형도 기복이 심했다.

정원 앞쪽엔 큰 화원이 하나 있었다. 화원에선 샘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굽이굽이 돌며 타원형 연못으로 흘러 들어갔고, 연못 위에는 푸른색 반원형 나무다리가 있었다.

반원형 다리 뒤에는 푸르른 풀밭이 펼쳐졌고, 풀밭 뒤는 다시 오르막이었는데 다양한 푸른 나무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부서진 정자가 나무들 사이사이에 놓여 있었다.

석목은 큰 문이 있는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고, 금제 법진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문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이제 막 안으로 들어갔을 때, 반원형 나무다리에서 한 줄기 빛이 반짝이며 비취색 갑옷을 입은 무인 열 몇 명이 그 속에서 튀어나왔다.

갑옷을 입은 무인들의 눈에서 빛이 크게 번지며 고개를 돌리더니 손에 든 병기를 들어서 석목을 덮치기 시작했다.

비취색 갑옷을 입은 무인들의 기운을 느낀 후,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인들은 전부 천위 중기였다.

이때, 문전 밖에서 갑자기 몇몇 기운이 몰려왔고, 매우 익숙한 기운이었는데 바로 조극이었다!

지금 나머지 네 사람을 데리고서 이곳으로 쫓아오고 있는 것 같았다.

앞에서는 인형이 공격을 하고, 뒤로는 조극에게 쫓기고 있어서 석목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석목이 고민을 하는 사이, 비취색 병기 몇 개가 석목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그는 더 망설이지 않고 몸에서 흑백 빛을 뿜어내며 두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때, 석목은 가슴에서 다시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고, 일곱 가지 빛이 도포를 뚫고 나와 환하게 비추었다.

퍽!

이어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몰려오던 장창들과 단검들은 전부 머리 꼭대기에서 멈추었고, 갑옷을 입은 무사들도 동작이 전부 멈추었다.

잠시 후에 탱! 소리와 함께, 무인 인형들은 석목의 머리 위에 있던 병기들을 다시 거두어들였다.

석목은 넋을 놓다가 이내 무엇인가 깨달은 듯이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고, 몸에 감돌던 흑백 빛을 거두며 석목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어렸다.

이때, 공기 속에서 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화염구 몇 덩어리가 문밖에서 날아와 석목에게로 향했다.

석목은 발끝을 짚어서 하늘로 날아올라 반원형 다리 위에 올라섰다.

이어서 문 쪽에서 사람 몇 명이 달려왔다.

조극은 단번에 석목을 발견하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어디로 도망갈 건가?”

“아, 내가 도망가야 해?”

석목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비취색 갑옷을 입은 무인 인형 열 마리의 몸에 빛이 크게 번지더니 무인 인형들은 거두어들였던 병기를 다시 꺼내 들어 조극을 비롯한 사람들을 향해 휘둘렀다.

“흥, 고작 인형 나부랭이들이 내 길을 막아?”

조극은 콧방귀를 뀌더니 장극을 들어서 가장 앞에서 달려오는 갑옷을 입은 무인 인형을 향해 찔렀다.

탱!

비취 갑옷을 입은 무인 인형은 손에 넓적한 검을 한 자루 쥐고 있었는데, 무인 인형이 검을 가로로 들더니 조극이 찌른 장극을 막아냈다. 이어서 검을 뒤집으며 찬란한 푸른빛을 뿜어냈다.

조극은 눈이 부셔서 의식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비취 갑옷을 입은 인형이 손에 든 검에서 갑자기 세 척 정도 길이의 푸른색 검의 기운을 뿜어내며 조극을 내리쳤다.

조극은 눈가가 떨렸다. 그는 뒤로 물러나지 않고서 오히려 앞으로 다가갔고, 장극에서 하얀빛이 반짝이더니 맹렬하게 앞을 향해 찔렀다.

쿵!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극 끝이 푸른 검의 기운을 찌르는 순간, 하얀 빛이 한 줄기가 터지며 빛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용솟음쳤다. 이어서 비취색 갑옷을 입은 인형은 검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조극의 뒤에서 붉은 옷을 입은 요염한 여자의 몸에 빛이 번지더니 그녀의 등 뒤에 커다란 태양 허영이 하나 나타났다. 엄연한 일계 술사 중에 하나였다.

그녀가 손으로 법결을 시전했고, 허공에서 십 장 정도 크기인 붉은 구름 덩어리가 하나 나타났다.

우르릉!

큰소리가 울려 퍼졌고, 붉은 구름이 격하게 소용돌이치더니 맷돌 같은 화염 운석이 구름 사이에서 튀어나와 비취색 갑옷을 입은 무인 인형을 향해 내리쳤다.

그 기세는 석목의 유성화우(流星火雨)보다 더 강력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손에 장검을 든 중년 남자가 검결을 시전했고, 수많은 검의 기운 허영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갑옷을 입은 무인 인형을 향해 공격을 하자 인형은 곧바로 부서졌다.

눈 깜박할 사이에 인형 몇 개가 연이어 터져버렸다.

“천천히 싸우세요.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먼 곳에서 석목이 말하자 인형들 열 몇 개가 석목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석목은 말을 마치고서 날아올라 인형들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인형들이 다시 손에 든 병기를 들어 올리려고 했을 때, 석목의 가슴에 일곱 가지 빛이 반짝였다. 그러자 인형들의 손이 멈춰버렸다. 그러자 모든 인형들은 조극을 비롯한 사람들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망할!”

조극은 쓰러뜨린 인형의 몸에서 장극을 뽑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때, 석목은 허공에서 번쩍이며 연못 위로 내려앉았다.

석목은 발끝으로 가볍게 물 위를 짚으며 다시 날아올랐다. 그리고 강물 맞은편에 자리한 산골짜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솨아!

연못에서 하얀빛이 줄줄이 나타났고, 연못에 담긴 물이 들끓더니, 사자 흉수 인형 열 몇 마리가 나타나 조극을 비롯한 사람들을 둘러쌌다.

흉수들은 몸집이 웅장한 사자 같았지만 흐르는 물로 만들어졌다고, 전부 천위 후기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청란성지의 제자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고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석목은 유유자적하게 걸어갔고, 두 눈에서 금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정원에 있던 인형 금제를 찾아서 일부러 금제들을 작동시켰다.

매번 금제가 작동될 때마다, 석목의 가슴 앞에 있는 칠색 영문에서 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영문이 반짝일 때마다 빛이 전 보다 조금씩 어두워진 것을 석목은 발견하지 못했다.

잠깐 사이에 석목은 금제를 네 개나 건드렸고, 금제 속에서 천위 인형들 수십 개가 쏟아져 나와 조극을 비롯한 사람들을 둘러쌌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석목은 절로 웃음이 나왔고, 고개를 돌려 청리궁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관백(關白), 곡형(曲馨) 너희 둘은 쫓아가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만들어.”

조극의 몸에 흑백 빛이 크게 번졌고, 혼자서 여러 인형들을 막아내며 큰소리로 외쳤다.

중년 남자와 요염한 여자는 한 마디 대답을 한 후에 몸을 번쩍이며 아수라장에서 빠져나와 석목을 쫓아갔다.

* * *

석목은 이제 막 푸른 죽림을 뚫고 나와서 백옥정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누군가 쫓아오고 있다는 기운을 느꼈다.

조극이 그 사람들 속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석목은 숲을 한번 훑어보더니 근처에 자리한 작은 궁전으로 걸어 들어갔다.

궁전은 앞쪽 부분만 온전했고, 뒷부분은 이미 붕괴되어있었다.

석목은 정문 앞으로 다가가서 일부러 몸을 멈춰 세우며 뒤에서 쫓아오던 두 사람을 기다렸다. 일부러 두 사람에게 자기 모습을 보여준 후, 석목은 파손된 문을 밀고서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석목은 대전 안에서 잠깐 기다렸다. ‘끼익’하는 문소리가 들렸고, 하얀 검의 기운이 대전까지 밀려왔다.

이어서 중년 남자인 관백이 손에 은색 장검을 들고서 귀신처럼 번쩍이며 들어왔다.

관백은 대전 안쪽을 조심스럽게 훑어보며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관백은 경계하는 표정에서 의아한 표정으로 변하였다.

“곡 사매, 이놈이 대전 안에 없습니다. 밖으로 도망을 간 걸까요?”

관백이 큰소리로 외쳤다.

관백이 말을 마치기 바쁘게 몸 앞 멀지 않은 곳에 서있던 원형 기둥 뒤에서 파란 물빛이 번쩍이며 물결이 밀려왔다.

이어서 석목이 형태가 없는 수막에서 튀어나와, 오른쪽 손에 하얀빛을 번쩍이며 관백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관백은 깜짝 놀라서 손에 든 장검을 다급하게 휘둘러 은색 검그림자들로 찬란한 은빛 검망을 하나 만들어내며 앞을 보호했다.

이어서 관백의 몸에서 은빛이 반짝이며 갑옷이 나타났는데 갑옷 위에는 부문이 맴돌고 있었고, 부문은 가슴과 배를 비롯한 부위를 안으로 감쌌다.

석목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서 하얀빛을 더 크게 드리우며 공격했다.

쾅!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은빛 검망이 하얀빛에 닿는 순간, 한참 동안 꿀렁거리더니 이내 터져버렸다.

석목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서 오른쪽 손을 관백의 가슴을 강하게 내리쳤다.

이 모든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심지어 곡형은 관백의 말에 대답하기도 전에 부문이 터져버리는 모습을 보았고, 관백의 몸통은 마치 천 조각처럼 휙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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