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3화. 곤륜의 깊은 곳으로
곡형은 관백의 가슴에서 찢어진 갑옷과 검게 타버린 구멍을 보자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이건…… 구전현공, 너 대체 누구야!”
“그러니까 왜 끝까지 쫓아와서 죽지 못해 안달이야. 이러면 내 탓도 아니지.”
석목이 그리 말하며 대전 안에서 걸어 나왔다.
실력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관백이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자, 곡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발을 짚어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며 그는 손으로 법결을 빠르게 시전하였다.
석목의 머리 위 상공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붉은 불구름이 밀려오며 묵직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곡형이 소리를 질렀다. 그의 뒤에 드리웠던 화려한 빛들이 불구름으로 들어갔고, 구름 속에서 화염 운석이 가득 쏟아졌다.
석목이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가서 한 손을 휘두르자 남정번이 안에서 튀어나오더니 파란 물빛이 크게 번졌다.
살짝 구부러진 커다란 수벽이 석목의 두정골에서 나와 몸에 드리웠다.
우르릉!
순간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십 갈래 화염 운석들이 수벽에 부딪쳤고, 마치 깊은 바다에 빠지듯이 커다란 물꽃을 만들어내며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에 화염 운석은 전부 쏟아졌다. 수벽이 드리운 자리 밖엔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고, 석목의 뒤는 전부 무너져 폐허로 변했다.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며 손에 든 남정번을 휘두르자 커다란 수벽이 다시 말리더니 곡형을 향해 날아갔다.
곡형은 두 손으로 끊임없이 법결을 시전하고 있었고, 붉은색 둥그런 동거울이 허공에 나타났다.
석목은 동거울을 한번 훑어보았고, 동거울은 사람 머리만 했는데 거울 위에 화염 무늬가 가득 새겨져 있는것이 등급이 낮은 법보였다.
훅!
커다란 화염이 둥그런 동거울에서 뿜어 나왔고, 동거울은 허공에 화벽을 만들어내더니 석목이 만든 수벽과 부딪쳤다.
물과 불이 부딪치는 순간, 허공에서 칙칙 소리가 울리며 하얀 안개가 피어올랐다.
석목은 눈빛을 굳혔다. 왼쪽 손에서 검은빛이 밝아지며 빛 속에서 하얀색 한기가 여러 줄기로 나타나 수벽에 스며들었다.
허공에서 쩍, 쩍 얼어붙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파란 수벽이 순간 단단한 얼음으로 변하여 화벽과 부딪힌 자리의 온도가 갑자기 낮아지더니 빠르게 불을 꺼버렸다.
우르릉!
커다란 얼음벽이 화염을 덮어버리자 땅 위에 십 장 정도 깊이인 큰 웅덩이가 하나 나타났다.
수많은 얼음 파편이 주변으로 튕겼고, 곡형도 그 사이에 섞여 멀리 날아가 버렸다.
곡형은 바닥에 떨어져 아직 제대로 서지도 못했는데, 푸른색 검이 가슴을 찌르며 뚫고 나왔다.
퍽!
청명검이 곡형의 몸을 뚫고 나와서 다시 빠르게 석목의 손으로 돌아갔다.
석목은 두 사람의 시체를 두어 번 훑어보더니 손을 휘둘러 저장반지 두 개를 거두어들였다.
이어서 석목은 바닥에 놓인 은색 장검과 붉은색 동거울을 집어 들고서 자세히 들여다볼 겨를도 없이 두 덩어리 화염구를 만들어내어서 시체를 전부 태워버린 후 청리궁 뒤쪽으로 걸어갔다.
* * *
반 시진 후, 조극은 나머지 청란성지의 제자 두 명을 데리고서 낮은 궁전 근처로 다가왔다.
다시 궁전에서 벗어나려고 하던 순간, 조극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더니 자리에 멈춰 섰다.
“조 사형, 왜 그러세요?”
조극의 뒤에 서 있던 머리가 붉고 귀가 뾰족한 요족 남자가 물었다.
조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마 가운데에 세로로 박힌 눈을 번쩍 뜨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순간, 조극은 눈을 궁전의 문 앞에 놓인 빈 땅에 고정했다. 동공은 급격하게 줄어들더니 눈에서 살기가 흘러넘쳤다.
* * *
이틀 뒤, 곤륜성허 어딘가.
석목은 파손된 궁전 뒷벽의 구멍에서 걸어 나와 앞으로 한참 걸어가더니 커다란 보라색 안개벽 앞에 멈춰 섰다.
이틀 동안, 석목은 끊임없이 폐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방향을 바꾸었다.
여전히 연나와 연결을 할 순 없었지만 칠색 영문이 도움을 주어 수호 인형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길가에 설치된 금제만 피하면 그만이었다. 석목은 깊은 곳으로 들어가며 궁전 누각에서 옛날에 치른 전투의 흔적들을 찾은 덕에 법보 조각들을 많이 찾았다.
하지만 가슴에 새겨진 칠색 영문이 뿜어내는 일곱 가지 빛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어두워졌다. 그제야 석목은 영문이 소모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조극을 비롯한 제자들이 다른 특별한 술수를 부리지 않는 이상 따라잡을 수 없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석목은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찌르는 보라색 안개벽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안개는 보기엔 특별하지 않았지만 영목신통이 조금이라도 깊게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튕겨냈다.
석목이 법결을 시전하자, 동거울에서 불꽃무늬가 밝아졌다. 그리고 붉은 화염이 뿜어 나와 보라색 안개 위에 떨어졌다.
훅!
보라색 안개가 갑자기 소용돌이치며 단번에 화염을 삼켜버렸다. 잠깐 사이에 화염 덩어리는 완전히 부서지며 사라졌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고서 보라색 안개벽으로 시선을 돌린 후에 좌우 양쪽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런 입구도 찾을 수 없었다.
석목은 망설이지 않고서 보라색 안개벽의 오른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걷기 시작하니 반나절이나 걷게 되었다. 석목이 다시 돌아가려고 마음먹었을 때쯤, 드디어 커다란 백옥 궁전 하나가 나타났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백옥 궁전은 십 장 이상이었으며 대부분은 안개 속에 숨어있는 채 텅텅 빈 문 만 하나 드러났고, 안쪽에는 보라색 안개가 없었지만 미세한 빛이 흘러나왔다.
석목의 두 눈에 금빛이 흐르며 안쪽을 한번 바라보았다. 안에 금제 진법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석목은 큰 걸음으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쪽은 어두웠고 끝 쪽에서 빛이 은은하게 보였으며 석목은 조심스럽게 빛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때, 석목의 눈앞에서 빛이 크게 번지더니 조금 전까지 은은했던 빛이 갑자기 빠르게 부풀었다.
석목은 곧바로 몸에 빛을 크게 드리우며 금색 비늘을 만들어냈고 옅은 파란색 물갑옷도 둘렀다.
펑!
붉은 화염이 굳어진 화모(火矛: 불로 만들어진 창)가 석목의 가슴을 내리쳤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고, 물갑옷에 빛이 번쩍이며 커다란 힘을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화모의 힘을 전부 꺼뜨리기도 전에 문 쪽에서 또 보라색 빛이 번쩍였다.
사람 머리만 한 보라색 뇌구가 ‘칙칙’ 소리를 내며 문을 뚫고 나와서 조금 전에 화모가 떨어진 자리를 공격하였다.
펑!
보라색 번개가 석목의 가슴에서 터져버렸고, 파란 물빛도 터져버렸으며 금색 비늘도 수십 개가 찢어졌다. 물갑옷과 금비늘이 동시에 찢어졌다.
석목은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궁전 밖으로 밀려서 날아갔다. 가슴쪽 옷자락이 타버리며 가슴 근육이 전부 드러났는데 온통 피투성이였다.
이어서 상처가 난 자리에서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나무 무늬가 나타났고, 마치 푸른색 나무껍질 같았는데 원래 있던 상처가 눈에 띄는 속도로 회복되었다.
석목은 바닥에서 곧바로 일어났지만 사지가 마비된 것 같았다.
이때, 사자 머리가 세 개나 자라난 요수 인형이 안에서 달려 나왔다.
석목은 시선을 굳히며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가슴에 새긴 칠색 영문은 수호 인형을 멈추게 하는 일곱 빛깔을 더는 풍길 수가 없었다.
이어서 석목은 다시 한번 가슴을 금색 비늘과 물갑옷으로 둘러쌌고, 오른쪽 주먹에선 하얀빛이 은은하게 밝아졌다.
이때, 요수 인형은 이미 문에서 나왔다. 인형이 입을 크게 벌리자, 붉은색 화모가 튀어나와 석목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석목이 오른쪽 주먹을 휘두르자 하얀 주먹이 튀어나와 화모 위에 떨어졌다.
펑!
불곷이 사방으로 튀며 화모도 몇 토막으로 갈라졌다.
하지만 보라색 안개 구체가 다시 석목을 공격했다.
석목은 뒤로 몇 장 정도 물러나서 여의빈철곤을 꺼내 들었고, 그는 곤봉을 앞으로 밀어서 곤봉 끝과 번개 구체를 강하게 부딪쳤다.
쿵!
보라색 번개 구체가 터져버리며 빛이 주변으로 흘러갔다.
이어서 석목의 손에 빛이 반짝이더니, 하얀 화염이 솟아올라 여의빈철곤을 감쌌다.
석목은 앞으로 한 발자국 크게 내딛었고, 손에 든 곤봉에서 하얀 빛그림자가 흘러나와 산 같은 기세로 머리가 세 개 달린 사자 인형을 공격했다.
석목이 기세등등하게 공격을 날려도 머리가 셋 달린 사자 인형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석목에게 향했다. 세 마리가 동시에 하늘로 향하더니 입을 크게 벌렸다.
붉은 화염 한 줄기와 보라색 빛이 동시에 뿜어 나오며 허공에 드리운 금색 바람에 말려서 삼 장 정도 높이의 삼색 회오리로 변하더니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석목이 낮게 소리를 지르자 두 손에 흑백 빛이 크게 번졌고, 하얀 화염이 들끓던 곤봉 그림자가 희미한 회색빛으로 변하더니 무겁게 몰려왔다.
우르릉!
이어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고, 삼색 회오리가 회색 곤봉 그림자 밑에서 꿀렁이더니 터져버렸다.
커다란 금빛이 찢어졌고, 보라색 번개도 주변으로 튕겼으며 화염 덩어리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커다란 기운 파동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며 주변에 드리운 보라색 안개벽마저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어 석목의 두 팔에 흑백 빛이 크게 번지자 곤봉은 기세가 줄어들지 않고 계속 밀려오며 요수 인형의 몸에 떨어졌다.
쿵!
회색빛 속에서 요수 인형의 몸이 순식간에 부서지며 회색 기운 속에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에 석목은 내려와서 단약을 두 알 삼키고는 긴 숨을 내뱉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한 손으로 여의빈철곤을 들고서 궁전의 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궁전 안쪽 한곳엔 얼음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었고, 높이가 수백 장은 되어 보였는데 산에서 투명한 빛과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풍겼다.
산꼭대기 위에는 커다란 궁전이 하나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높이는 십 장 정도 되었으며 하얀 옥석으로 지어졌다. 궁전에서는 부드러운 빛이 뿜어 나왔고 매우 화려했다. 다만 겉에는 흉한 균열이 촘촘하게 나있었으며 심지어 뚫려버린 곳도 있었다.
궁전 앞 계단과 평대 위에는 더 많은 균열이 나있었고, 커다란 해골 인형도 널브러졌는데 인형의 조각 같아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난장판이었다.
궁전 앞쪽 문은 꽉 닫혀있었고, 문 위에 커다란 편액이 갈라진 채로 양쪽에 걸려있었는데 왼쪽에는 ‘보월’, 오른쪽에는 ‘궁’이 새겨져 있었다.
이때, 하얀 둔광이 먼 곳에서 날아오며 빠르게 가까운 곳까지 도착했다.
하얀 그림자가 반짝이더니, 연나가 나타났다.
연나는 더는 임도처럼 분장을 하지 않았다. 원래대로 절세미인으로 돌아왔다.
연나는 궁전 앞의 혼란스러운 광경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어서 눈길이 궁전으로 향했는데 얼굴에 기쁨이 어렸다가 망연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보월궁……”
연나는 궁전 위에 걸린 편액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은연중에 연나를 불러낸 곳이 바로 이 궁전이었다. 궁전에 와보니 예전에 와본 것 같은 익숙한 느낌이 몰려왔지만 여전히 언제 봤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연나가 고개를 흔들며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여 대전의 문 앞으로 걸어왔다.
이어서 연나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매우 강렬한 예감이 몰려왔는데 연나를 부른 물건이 바로 대전 안에 있는 것 같았다.
궁전은 대문이 꽁꽁 닫혀 있었는데, 연나가 가까이 다가가자 위에 일곱 가지 빛이 한 층 나타났다. 절대 깨질 것 같지 않은 단단한 빛이었는데 어쩐지 불안해 보였다.
연나는 눈빛을 반짝이자 손바닥에 일곱 가지 빛이 나타났다.
연나가 손바닥을 문에 가져다 대자 위에 드리운 빛이 곧바로 번쩍이기 시작하며 빠르게 사라졌다.
찌익!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