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4화. 보월궁의 조각상
연나는 눈에 기쁜 기색을 드러내며 대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전 안은 조금 어두웠으며 텅텅 비어있었다. 땅 위에는 푸른색 옥석이 깔려 있었는데 길 양쪽에는 푸른색 돌기둥이 두 줄로 서 있었으며 다른 물건은 없었다.
이때 대전 가장 깊은 곳에 백옥 석대가 땅 위에서 솟아올라 부드러운 빛을 뿜어냈다.
연나는 석대를 바라보며 얼굴이 굳어 버리더니 곧이어 몸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얀 석대 위에는 백옥 조각상이 묵묵히 서 있었다.
먼 곳에서 바라보니, 백옥 조각상은 궁장을 입은 여인 같았다. 치맛자락이 흩날렸고, 무지개 같은 등거리를 걸치고 있었으며, 커다란 꽃을 밟고서 손에는 나뭇가지 모양인 무엇인가를 들고 있었는데 어떤 무기 같았다.
하얀빛이 번쩍인 후 연나는 빠르게 조각상 앞으로 다가갔다. 조각상을 자세히 바라보던 연나는 손을 뻗어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아름다운 눈에서 놀란 기색이 스쳐 지났다.
궁장을 입은 여인 조각상은 생김새가 연나와 똑같이 생겼고, 심지어 눈빛과 분위기마저 똑같았다!
연나는 얼굴에 망연한 기색이 스쳤고, 그녀는 가느다란 손을 얼굴에서 떼더니 앞으로 천천히 뻗어서 조각상의 얼굴을 매만졌다.
이때, 머릿속에서 번개가 스쳐 지나갔다.
“아!”
연나는 머리에 통증이 밀려와 입으로 고통스러운 소리를 질렀다.
이어서 머릿속의 희미했던 기억 조각들이 뚜렷해지며 기억 속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고, 뿌연 구름이 거둬지며 모든 것이 드러났다.
연나는 표정을 계속 뒤바꾸더니, 한참 지나서야 잠잠해졌다.
그녀는 드디어 생각이 떠올랐다. 왜 여기에서 익숙한 느낌이 들었는지, 그리고 수호 인형이 연나 앞에서 왜 전부 고개를 숙였는지.
왜냐하면, 연나는 곤륜의 주인이기 때문이었다. 곤륜은 연나가 살던 곳이었다.
연나는 머릿속에 옛 이름이 떠올랐다. 보화선자(寶花仙子)!
“보화선자, 그게 내 이름이었구나.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된 걸까……”
꽤 많은 기억들이 떠올랐지만, 더 많은 의혹이 생겼다.
연나는 수려한 미간을 찌푸리며 온힘을 다해 생각을 해내려 했지만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연나가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접고 석대에서 날아 내려와 대전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대전의 깊은 곳, 연나를 부르는 힘이 더욱 강력해졌다.
연나는 어느 정도 기억을 되찾았지만, 자신을 부르는 존재에 대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대전 뒤편은 길고 긴 회랑이었고, 비치는 빛은 조금 어두웠다.
회랑 끝에선 하얀 빛문이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연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빛문 너머로 들어갔다.
이어서 눈앞의 광경이 변하더니 작은 산골짜기가 나타났다.
주변은 전부 무성한 숲이었고, 풀들이 촘촘히 자라났으며 풀밭 가운데에 꽃봉오리들이 피어있었다. 구불구불한 작은 길이 숲의 깊은 곳까지 뻗어있었다.
깊은 곳에서 새소리가 들려왔으나 산골짜기는 대체로 조용했다.
연나는 작은 길을 따라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몇 번이나 굽이돌더니 곧바로 길 끝에 도착했다.
연나 앞에 청석 동굴이 하나 나타났고, 동굴은 사람 키만 했는데 너비는 대여섯 척 정도 되었다. 동굴 양쪽에는 푸른색 덩굴과 가시나무가 자라나 있었다.
동굴 왼쪽에 자란 덩굴로 가려진 석벽에 큰 글자들이 새겨져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묘수동부(妙樹洞府)……”
연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동굴은 매우 짧았고, 몇 걸음 걸어가니, 곧바로 끝이 나왔다. 눈앞은 소박한 석실이었으며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구석에는 돌만 몇 개 쌓여있었는데 동굴의 벽은 습하여 이끼가 끼어있었다.
석실 속에 유일하게 있는 특별한 공간……
연나의 눈길이 벽으로 향했고, 벽엔 하얀 원석이 하나 박혀있었다. 원석 위에 새겨진 그림이 희미하게 보였는데 나뭇가지 같았다.
연나의 머릿속에서 번개가 반짝였다. 나뭇가지는 대전에 있던 궁장 조각상이 든 나뭇가지와 모양이 똑같았다.
연나가 눈빛을 반짝이며 손을 하얀 원석 위에다가 가져다 대자 옅은 하얀빛이 손에서 뿜어 나왔다.
퍽!
석실에서 가벼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동굴 속에 묵직한 소리가 울렸고, 하얀 원석이 박혀있던 벽면에 세로로 균열이 생기더니 천천히 양쪽으로 갈라졌다. 균열 속에서 물안개가 가득 찬 입구가 나타났다.
속에는 희미한 물안개가 자욱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깊은 곳은 매우 밝았는데 일곱 가지 빛이 그곳에서 뿜어져 나왔다.
연나의 눈에서 빛이 크게 번졌고, 하얀빛으로 변하여 가장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연나가 물안개의 가장 깊은 곳에 다가갔을 때, 얼음 산봉우리 주변에 자리한 보월궁 앞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작은 사람이 허공에 나타났다. 자릉이었다.
연나는 활짝 열려있는 대전의 문을 바라보며 눈에 복잡한 기색이 어렸다.
놀라움, 아쉬움, 공포 등등……
잠시 후, 자릉이 깊은숨을 내뱉더니 표정이 다시 차분해졌다.
자릉은 앞으로 걸어가 대전의 정문으로 다가왔다.
이곳에는 작은 석상이 하나 놓여있었는데 생김새가 마치 원숭이 같았다. 원숭이는 흉악한 모습이었다.
자릉은 원숭이 석상 앞으로 다가가 두 손을 내밀더니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보라색 빛을 한 줄 날려서 원숭이 몸에 떨구었다.
원숭이 조각상이 천천히 반 정도 돌더니, 대전 앞에 있던 문을 향하여 입으로 일곱 가지 빛을 뿜어냈다.
이어 대전의 문이 닫혔고, 동시에 대전 주변에 금색 빛이 번쩍이며 두꺼운 금색 광막이 나타나서 대전을 감쌌다.
자릉은 깊은 눈빛으로 궁전을 한 번 바라보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사라졌다.
궁전 깊은 곳에 자리한 동굴에서는 연나가 물안개 속으로 들어갔고, 연나의 눈앞에서 빛이 크게 번지더니 하얀 공간이 하나 나타났다.
공간은 면적이 매우 넓었는데 커다란 동굴 같았고, 공간에서 부드러운 빛이 뿜어 나왔다.
동굴 가운데에는 두 척 정도 크기인 석대가 하나 있었는데 석대 위에는 나뭇가지 하나가 비스듬히 꽂혀있었다. 나뭇가지에는 잔가지가 몇 갈래 자라나 있었는데 조각상이 손에 든 나뭇가지와 똑같았다. 맑고 부드러운 일곱 가지 빛이 뿜어 나왔다.
연나는 숨을 멈추었다. 칠색 나뭇가지에서 굉장한 영력 파동이 주변으로 발산되자 동굴 전체가 미세하게 떨렸다.
이에 연나는 한 치도 의심도 없이 확신이 들었다. 연나를 계속 부르고 있던 물건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칠색 나뭇가지였다!
연나는 석대를 향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이때, 낮은 소리가 울려 퍼졌고, 우르릉 소리와 함께 사람만 한 금색 갑옷 그림자가 동굴 위에서 떨어지며 연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금색 갑옷을 입은 사람 모양의 인형이었다.
연나는 안색이 변했다. 칠색 나뭇가지에 이끌려 위에 인형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인형은 금색 자물쇠가 달린 갑옷을 두르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금색 가면을 쓰고 있어서 그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인형은 한 손에 금색 검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둥그런 방패를 들고 있었는데 풍기는 기운이 아주 방대했다. 성계 경지의 수호 인형이었다.
하!
금색 갑옷을 입은 인형이 낮게 울부짖더니, 손에 든 검에서 빛이 크게 번졌다. 이어서 찬란한 금빛을 뿜으며 연나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연나의 눈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그녀는 조금도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손가락을 짚었다. 일곱 가지 빛이 손가락에서 튀어나와 금색 갑옷을 입은 인형의 미간에 스며들었다.
인형은 몸통을 크게 흔들더니, 손에 든 금색 검이 연나의 머리 가까이에서 멈춰버렸고, 한참 뒤에 인형은 다시 천천히 검을 거두어들였다.
인형은 옆으로 두 발자국 물러나서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앉으며 손에 든 금색 검으로 바닥을 짚었다.
연나는 인형은 신경 쓰지 않고서 천천히 석대 옆으로 걸어가 칠색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눈에서 기이한 빛이 흐르며 감정이 벅차올랐다.
그녀는 깊게 숨을 내쉬며 천천히 하얀 손을 뻗어서 칠색 나뭇가지를 잡더니 뽑아버렸다.
단단하게 석대에 꽂혀있던 칠색 나뭇가지가 가볍게 뽑혀 나왔다.
퍽!
칠색 나뭇가지를 뽑는 순간, 가벼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눈부신 일곱 가지 빛이 뿜어 나와 동굴 전체가 칠색 세계로 변하였다.
이때, 동굴이 격하게 흔들리며 수많은 돌 부스러기들이 쏟아졌고, 방대한 영력 파동이 칠색 나뭇가지에서 솟아 나와 동굴 전체를 흔들었다.
힘이 전부 폭발한다면 산골짜기와 대전 전체를 삼킬 터였다.
얼음 산봉우리도 미세하게 흔들렸다. 위쪽 허공에서 커다란 칠색 무지개가 나타났는데 매우 아름다웠다.
백 리 안에 있던 천지영기가 들끓기 시작했고, 수많은 소용돌이가 생기며 빠르게 돌고 있었다. 이어 날카로운 소리가 사방팔방으로 멀리 퍼져나갔다.
동굴 속에서 연나는 칠색 속에 묻혀 변화무상한 모습을 보였다. 칠색 무지갯빛이 나뭇가지에서 흘러나와 연나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연나의 경맥 속에서 진기가 빠르게 흘렀고, 몸에서 풍기는 하얀빛은 점점 밝아지더니 피부도 맑은 색으로 변하였다. 연나는 뼛속부터 신성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연나의 몸속 진기는 몇 날 며칠 동안 빠르게 흘렀다. 그리고 전부 단전의 영해 속으로 들어가며 영해 속의 금단 속으로 스며들었다.
금단은 겉에서 화려한 빛이 뿜어 나왔고, 얇은 부문이 맴돌며 칙칙 소리를 냈다. 금단에 균열이 한 줄 생겨났다.
연나의 미간 사이에 새겨진 연꽃 모양 영문에서 빛이 크게 번졌고, 등 뒤에는 커다란 하얀 꽃의 허영이 하나 나타났다. 이어서 꽃이 안쪽으로 말리더니 연나를 받쳐 올렸다.
연나가 하얀 꽃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칠색 나뭇가지를 눕혀서 무릎에 올려놓았다. 절세미녀의 얼굴에는 놀라고 기쁜 기색이 스쳤다.
조금 전에 칠색 나뭇가지에서 흘러나오던 방대한 힘 덕분에 지난번 성계 진입에 실패했던 성배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나는 두 눈을 감았다. 마음은 유난히 차분해졌으며 몸엔 일곱 가지 빛이 드리우고 있었다.
* * *
이 시각, 석목은 한 장 정도 너비인 백석길 위에서 걸어 다녔고, 길 양쪽에는 커다란 궁전과 누각이 연이어 서 있었다.
얼마 전에 석목이 사자 머리 인형을 죽여 버린 후, 궁전에는 더는 장애물이 나타나지 않았다. 석목은 순조롭게 백 장 정도 거리를 걸어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변하더니 이곳으로 전송되었다.
석목이 추측한 바에 따르면, 얼마 전에 머물렀던 곳이 곤륜성허의 외곽이고 이곳은 아마 안쪽 구역일 터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에 있는 궁전도 마찬가지로 상처투성이였지만 겉보기엔 그나마 온전했다. 모양새도 예전에 봤던 궁전보다 훨씬 화려했으며 건물마다 아름다운 무늬와 기이한 요수가 새겨져 있었고, 겉에서는 투명한 빛을 뿜어냈다.
* * *
이틀 뒤에 석목은 ‘자취각(紫翠閣)’이라는 정원 앞에 나타났다.
칠색 영문이 주는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석목이 나아가는 속도는 큰 영향을 받았다.
궁전 안쪽에 설치된 금제 진법이 이미 파손되었거나 효과를 잃었다는 것을 반복하여 확인한 후에야 석목은 안으로 들어가 수색을 했다.
그런데도 조심하지 못해서 숨겨진 금제 두 개를 건드렸다. 한 번은 천위 인형 서른 개에게 공격을 받아서 간신히 벗어난 적도 있었다.
자취각의 정원 앞에 선 석목은 두 눈에 금빛을 흘리며 안쪽을 바라보았다. 문 안쪽은 드넓은 하얀색 광장이었고, 광장 위에는 십 장 정도 크기인 원정 석상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원정 석상 주변 땅 위에는 섬뜩하고 깊은 골이 곳곳에 패여 있었으며 진법의 무늬를 처참하게 갈라놓았다.
이 밖에 인형 잔해 무더기도 열 몇 군데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이 처참한 광경은 최근에 생긴 것 같지 않았다. 아마 천여 년 전에 생긴 큰 재난 때문에 생긴 흔적일 터였다.
석목은 신식을 보내서 여러 번 정찰을 했고, 또한 영목신통으로 한참 동안 관찰을 한 후에야 이곳에 금제와 인형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하얀 광장을 가로질러 커다란 궁전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궁전의 문을 열고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