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65화 (565/916)

565화. 천기곤초(天機棍鞘)

이제 막 궁전으로 들어갔을 때, 석목은 뜨거운 열기가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뜨고는 대전 안쪽을 훑어보았다. 대전 안쪽은 텅텅 비어있었으며 구석에만 다리가 셋 달린 사람만 한 보라색 동로와 커다란 석대 하나가 중앙에 놓여있었다.

동로 아래에는 붉은색 무늬가 구불구불 새겨져 땅 전체를 촘촘하게 그어놓았다.

“이곳은 연기를 하던 방 같군.”

석목은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낮은 목소리를 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석목은 동로 가까이에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며 미간을 치켜 올렸다.

보라색 동로 뒤편에 말라버린 시체 한 구가 비스듬히 기대어있었다.

보라색 동로는 다섯 척 정도 높이에 전체가 둥그스름했다. 발은 세 개에 귀가 두 개 달렸으며, 위에 먼지가 가득 앉았는데 큰 향로 같았다.

향로 뚜껑에는 불을 뱉는 요수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었고, 마른 시체의 두 손은 요수의 몸을 꽉 잡고서 몸을 연기 향로에 붙인 채로 있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오랫동안 버려진 연기 향로에서 여전히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왔다는 점이었다.

석목은 두 눈을 감고서 신식을 향로로 보냈다.

“하하, 다 되어가. 다 되어 간다고……”

석목이 두 눈을 번쩍 뜨며 동로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온통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조금 전에 동로에서 매우 허약한 신혼이 작은 목소리로 흥분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느꼈다.

석목은 앞으로 다가가 한참동안 공을 들여서야 자색 동로 위에 기댄 마른 시체를 뜯어내며 조심스럽게 한쪽에 놓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동로 위, 마른 시체가 막고 있던 자리에서 뾰족한 무기로 찌른 흔적이 뚜렷하게 보였다. 흔적은 동로의 주둥이에서 바닥까지 갈라져 있었다.

갈라진 균열 위에 어두운 보라색 부적 하나가 동로를 봉인하고 있었다.

석목은 한참 침묵하더니 손을 흔들어 보라색 부적을 뜯어버렸다.

그러자 동로에서 칙! 소리가 가볍게 울리더니 희미한 사람 그림자가 틈에서 튀어나와 빠르게 자라나며 석목의 몸 앞에 나타났다.

석목은 그림자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눈앞의 사람은 흰머리를 흩날렸는데 검은 얼굴에 주름이 가득 패여 있었다. 구부러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으며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계속 뭐라 말을 하고 있었다.

“하하하, 다 되어가, 다 되어가……”

“누구세요? 왜 신혼이 연기 동로에 있는 겁니까?”

석목이 그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사람은 석목의 목소리를 듣더니 그제야 눈앞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두 눈에 놀라고 화가 난 기색을 드러내며 호통을 쳤다.

“네 이놈, 뭐 하는 놈이냐? 이렇게 연기를 하는 자취각에 함부로 들어오다니!”

석목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 사람은 이목구비를 한참 일그러뜨리더니 얼굴에 고통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리고 말했다.

“생각났어, 네가 그 날강도구나…… 죽여 버릴 거야……”

이어서 그 사람은 미친 듯이 석목을 덮쳤다.

하지만 잔혼에 불과한 이 사람은 석목에게 아무런 위협도 주지 못했다. 석목은 몸을 살짝 비틀어서 가볍게 그가 날린 공격을 피해냈다.

석목의 몸을 스쳐 지나던 잔혼은 시선을 돌려서 석목의 가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어서 그 사람은 표정이 다시 변하더니 단번에 갑자기 석목 앞에서 쓰러지며 말했다.

“보…… 보화선자. 오…… 오셨습니까! 공수자(公輸子)가 명을 받들어, 백원 장군을 위해 제련한 영보(靈寶)인 ‘천기곤초’를 완성했습니다!”

보화선자? 영보?

석목은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영보’라는 말을 들은 석목은 매우 기뻐하며 그 사람에게 말을 했다.

“그래, 잘했다. 천기곤초는 어디 있는 거냐?”

“아직 자취로(紫翠爐) 속에 있습니다. 다시 동로에 불을 켜 정부(定符)를 해야 완성됩니다.”

공수자는 얼굴에 난감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석목은 연기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정부가 제련을 하는 마지막 단계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정부는 부문을 법보 속에 새겨서 법보가 여러 기능을 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말해봐, 이 곤초는 어떤 힘을 갖췄느냐?”

석목은 흥분한 마음을 억누르며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선자님! 곤초를 번천곤 속으로 불어넣으시면 무한한 천지영기를 흡수하여 시전하는 동시에, 번천곤 속에 있는 천지영기를 뿜어내실 수 있습니다. 그 위력과 영성은 몇 배나 더 커질 것입니다! 다른 힘은 사용하실 때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영보의 위력을 말하던 공수자는 희색이 만연한 표정으로 줄줄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럼 다시 자취로를 켜서 이 영보를 제련할 수 있는가?”

석목은 눈앞의 보잘것없어 보이는 연기로를 가리키며 물었다.

“선자님께서 지시만 하신다면 공수자는 언제든지 제련할 수 있습니다.”

공수자는 흥분한 기색을 거두어들이며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공수자는 돌아서서 대전 주변에서 걸어다녔다. 공수자가 멈춰선 곳마다 빛이 밝아졌다.

* * *

한 참 후에 대전에는 아홉 갈래 빛이 동시에 밝아졌다.

공수자는 자취로 앞으로 다가가 이미 몇 장 정도 물러난 석목을 한번 바라보더니 동로 속으로 법결 몇 갈래를 불어넣었다.

법결이 빛을 뿜으며 줄줄이 들어가서 자취로에 떨어졌다. 동로의 뚜껑에서 불을 토해내던 요수의 두 눈에는 순간 붉은빛이 번쩍였다.

윙!

형태가 없는 파동이 자취로에서 퍼져 나와 사방팔방으로 흘러갔다.

이어서 쿵! 소리와 함께 궁전의 땅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석목은 깜짝 놀랐다. 발밑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와 주변 공기가 빠르게 뜨거워졌다.

다만 석목에게 이 정도 고온은 별것도 아니었다. 석목은 고개를 숙여서 땅을 바라보았고, 땅 위에 새겨진 붉은색 무늬가 눈부시게 빛나더니 화염 같은 빛이 한 층 깔려서는 흔들거리고 있었다.

붉은색 빛이 구불구불한 무늬를 따라 끊임없이 제련 동로의 세 발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어서 자취로 겉에 보라색 빛이 번쩍이더니, 자취로 위에 두껍게 깔렸던 먼지가 전부 사라졌다. 동로는 더 이상 먼지투성이가 아니라 보라색 기운이 감돌며 기이한 빛을 뿜어냈는데 매우 화려하고 고풍스러워 보였다.

동로 위에선 비취색 부문들이 끊임없이 번쩍였으며 속에서 붉은색 화염이 들끓었다. 눈부신 빛은 연기 동로 속으로 투영되었다.

궁전 주변에 드리운 아홉 갈래 빛이 동시에 번지더니 동로를 향해 다가가며 빛기둥을 만들었다.

빛기둥이 이제 막 동로에 닿자, 동로가 격하게 흔들렸다. 동로 속에서 화염이 다시 변하여 칠색으로 변하였다.

이와 동시에, 대전 안은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 매우 뜨겁게 변했다.

자취로 안에 든 칠색 화염이 점점 더 끓어올랐고, 빛도 점점 밝아져 마치 칠색 태양 같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석목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크게 놀라고 있었다.

이때, 공수자의 신혼이 날아올라 자취로 위에 나타났다.

공수자는 집중하여 연기로를 바라보았다. 눈에 미친 듯이 열망을 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고, 이어 공수자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 공수자는 한 몸을 바쳐서 연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혼을 담아 정부를 했으니 더는 아쉽지 않습니다.”

이어서 공수자의 신혼이 반짝이며 제련 동로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우르릉!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커다란 금색 빛기둥이 하늘에서 쏟아져서 자취각 대전의 지붕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곧바로 자취로 위에 떨어졌다.

자취로는 단번에 찬란한 빛 속으로 묻혔으며 하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석목은 대전 천장의 뚫린 구멍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허공에 짙은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대전을 모두 막아버렸고, 금색 빛기둥이 짙은 구름 속에서 떨어졌다.

“이렇게 소란스럽다니. 누군가에게 발각되진 않겠지!”

석목은 걱정이 되어서 다급하게 신식을 보내 주변 수십 리에 드리웠다.

순간 석목은 격렬한 영기 파동을 느꼈다. 그리고 곧바로 시선을 자취로로 돌렸다.

자취로의 금빛에서 서투른 부문이 줄줄이 나타나며 향로 위로 떨어졌다.

윙!

자취로가 격하게 흔들리며 금색 빛기둥의 빛이 점점 옅어지더니 결국 사라졌다.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자취로의 뚜껑이 천천히 열리더니 금빛이 자취로 속에서 튀어나왔다. 이어서 수많은 금빛이 뿜어 나와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석목은 두 눈에 금빛이 흐르며 집중하여 바라보았다. 허공에 드리운 금빛 사이에서 길이가 다섯 척 정도 되며 아이 팔뚝만큼 굵은 금색 곤초(*棍鞘: 방망이를 감싸는 집이나 부속품)가 하나 나타났고, 곤초는 가운데가 비어있었다.

곤초는 겉에 매우 정교한 용무늬와 꽃무늬 말고도 투박하고 현묘한 무늬들이 줄줄이 새겨져 있었다. 소박하고 맑은 기운이 곤초 속에서 흘러나왔다.

곤초가 이제 막 동로에서 나오자, 석목은 주변 공기에 흐르던 영기가 끊임없이 곤초로 모여드는 것을 느꼈다. 눈으로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매우 놀라웠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입을 벌려 빈철곤을 꺼냈다.

이어서 금색 곤초를 향해 흔들었다. 하얀빛이 왼손에서 흘러나와 곤초를 감싼 채 자취로의 꼭대기에서 끌어왔다.

석목은 손을 뻗어 곤초를 잡고서 손바닥을 아래로 향했다.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석목은 여의빈철곤의 길이와 굵기를 조절한 후에 곤봉의 끝을 곤초에 끼워 넣었다.

퍽!

단번에 곤봉이 꽂혔으며 밖으로 한 척 정도만 드러났다.

여의빈철곤을 곤초에 이제 막 끼워 넣었는데 곤봉에서 갑자기 불이 번쩍이더니 곤초가 머금고 있던 천지영기가 전부 빈철곤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석목이 멈칫하며 무엇인가 떠오르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최상급 영석 한 주머니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석목은 앞으로 걸어가 ‘탱!’하는 소리를 내며 곤초를 끼운 여의빈철곤을 영석 더미 속으로 찔렀다.

영석 더미가 내뿜던 빛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그리고 눈 깜박할 사이에 그냥 돌 더미로 변하였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눈꺼풀이 톡톡 튀었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석목은 손을 내밀어 여의빈철곤과 곤초를 동시에 들고서 한참을 훑어보더니 ‘챙!’하는 소리를 내며 여의빈철곤을 곤초에서 조금 뽑아냈다.

곤봉에서 커다란 금빛이 흘러나왔고, 풍성하던 영력의 파동이 속으로 스며들어 반 토막만 남은 곤봉을 금색으로 물들였다.

석목은 기분이 벅차올랐다. 손에 든 게 단순한 영기가 아니라 방대한 힘을 압축하여 엄청난 위력을 가진 최상급 법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석목은 손으로 금빛 찬란한 곤초를 한참 매만지더니 다시 여의빈철곤을 끼워 넣었다.

여의빈철곤에서 금빛이 사라졌고, 방대한 영압도 동시에 사라졌다.

석목은 멈칫하더니 손에 든 여의빈철곤을 작게 줄였다.

놀라운 것은 여의빈철곤만 줄어들었을 뿐이 아니라 곤초마저 함께 줄어들었다.

석목은 잠깐 침묵하더니 손에 빛이 번지며 여의빈철곤과 곤초를 다시 거두어들였다.

이때, 석목의 단전에서 빛이 크게 번졌다. 작은 여의빈철곤이 단전 속에 나타났다.

이 모든 일을 한 후, 석목은 곤초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여길 떠나려 했다.

신식을 펼친 범위 안에선 아직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지만, 조금 전에 너무 큰 소란을 피웠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몰래 다가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석목은 발길을 돌렸다가 다시 거두어들이고는 고개를 돌려 자취로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동로의 겉에 난 균열을 한번 바라본 석목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 동로는 파손되었지만 이런 천지 영보를 제련해내는 물건이면 정말 대단한 물건일 거야. 이곳에 두기에는 너무 아까워.”

여기까지 생각을 한 석목은 손에 빛이 번지며 무지갯빛을 보내서 자취로를 감싸더니 이내 거두어들였다.

석목은 시선을 돌려서 다시 내동댕이쳤던 시체를 바라보았다.

공수자의 시체인 게 분명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으로 미루어보자면, 곤륜에 적이 쳐들어왔을 때, 공수자는 아마 천기곤초를 제련하고 있었을 터였다. 또한 천기곤초는 거의 대성에 가깝게 제련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때, 곤륜이 파멸할 만한 재난을 맞았을 것이고, 공수자는 마지막까지 이 보물을 지키려고 했지만, 공수자는 이곳에서 죽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수자는 강한 집념으로 환생하지 않은 채 신혼을 자취로에 붙여놓았을 터였다.

하지만 자취로에는 신혼을 기르고 안정시키는 효과가 없었고, 오랜 세월이 흘러서 자취로 속에서 기생을 하던 신혼은 힘이 점점 쇠퇴한 것이었다.

이미 못해도 천 년이나 흘렀을 텐데 공수자의 신혼이 흩어지지 않고서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석목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고는 시체를 들고서 궁전 밖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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