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7화. 좁은 길에서 만나다
한참 뒤에 금색 빛이 흩어졌다.
성계 교룡의 커다란 몸통이 땅에 ‘쿵!’하고 떨어졌다.
교룡의 상태는 처참하기 그지없었고, 몸은 절반이 검게 타버렸으며 가슴 부위에는 소름 돋을 정도로 큰 구멍이 났다.
석목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석목은 요즘에야 천지무극의 마지막 단계를 깨우쳤다. 보통 곤봉은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을 때 굵은 번개를 감당하지 못해서 터져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단계를 시전하려면 등급이 높은 법보급 곤봉을 써야만했다.
여의빈철곤에 천기곤초를 끼워 넣자 그 위력은 보통 법보와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석목은 때마침 천기곤초의 위력이 궁금했던 참이었기에 이렇게 직접 시전해보니 천기곤초가 지닌 힘은 예상 밖이었다.
석목이 몸을 날려 성계 교룡 옆으로 날아갔다.
성계 교룡은 기운이 점점 약해졌고, 곧 죽어버릴 것 같았다.
“백원의 후예, 너무 좋아하지는 마. 내 본체가 나타나면 네가 죽을 날도 머지 않을 테니.”
성계 교룡이 위협을 했다.
“그래, 기다리지!”
석목은 짧게 대답을 하고는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여의빈철곤이 금색 그림자로 변하여 교룡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교룡의 머리가 터지면서 피가 흩날렸다.
이때 사람 머리만 한 금빛 두 덩어리가 교룡의 머리에서 나왔고, 빛덩어리들 속에는 작은 교룡 그림자가 한 마리씩 담겨있었다. 그것은 교룡에게서 분리된 혼이었는데 나오자마자 몸을 날려서 도망을 치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은 동공이 줄어들었다. 그리고는 등 뒤에 펼친 날개를 펄럭이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빚덩어리 앞에 나타났다.
이어서 석목의 몸에 금빛이 크게 번지더니 등 뒤에 커다란 토템 뱀 그림자가 일곱 마리나 나타났고, 뱀 그림자 옆으로는 뾰족한 돌기가 하나 자라있었다.
이때 뱀 그림자 일곱 마리가 빠르게 날아올라 단번에 금색 빛덩어리를 물어버렸다.
빚덩어리 속에 든 금색 교룡이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며 발버둥을 쳤고,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빛덩어리는 곧바로 찢어져 버렸고, 뱀 그림자가 순식간에 작은 교룡을 삼켜버렸다.
석목은 두 눈을 감고 몸속에 든 토템의 힘을 크게 부풀리자 석목의 몸에서 금빛이 크게 번졌다.
등 뒤에 있던 뱀 그림자 일곱 마리가 전부 부르르 떨더니 한참 뒤에 뾰족한 돌기에서 금색 뱀 그림자가 한 마리 새롭게 나타났다.
이 금색 뱀 그림자는 유난히 굵었으며 다른 뱀 그림자들 보다 훨씬 컸다.
석목의 몸속에 자리한 토템의 힘이 더욱 강력해졌고, 토템의 힘은 몸속 곳곳으로 흘러갔다.
이어서 눈부신 금빛이 석목의 몸에서 흘러나오며 그의 몸에 촘촘한 금색 용 비늘이 나타났다. 그리고 방대한 기운이 석목에게서 터져 나오더니 점점 치솟아 오르며 성계 경지 가까이 도달했고, 주변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석목은 몸속에 흐르는 기운을 느끼며 매우 기뻐했다.
이제 그는 몸속에 깃든 구전현공의 힘과 천기곤초를 더한 여의빈철곤만으로도 성계 초기 강자를 상대할 수 있었다.
석목은 들끓는 힘을 천천히 가라앉히며 토템의 힘을 거두었다.
오조의 분신이 나타나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석목은 다른 목적을 갖고서 곤륜성허에 왔지만 지금 오조의 분신이 예기치 못한 일을 당했기 때문에, 상대가 복수를 하러 올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오조의 분신을 총 세 개나 죽여 버렸으니 다음번에는 아마 오조의 본체가 나타날 수도 있었다.
“오조의 본체는 실력이 어느 정도일까……”
여기까지 생각을 한 석목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석목은 머리가 잘려나간 교룡의 시체를 한번 바라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빛을 뿜던 금색 전창 두 자루가 빛이 어두워지면서 석목의 저장반지 속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 치른 전투로 적잖은 소란을 피웠다. 그리고 여긴 자취각과 가까이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을 게 분명했기에 석목은 잠깐 고민하더니 화염구를 만들어 교룡의 시체를 향해 날렸다.
교룡의 시체가 활활 타올랐고, 석목은 불타고 있는 시체를 한번 바라본 후,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날아갔다.
* * *
반나절 뒤, 석목은 나무와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난 숲에 도착했다.
석목은 한 그루의 나무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는데 나무는 세 사람이 팔을 벌려 감싸야 할 정도로 굵었다. 석목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서 손으로 법결을 시전하여 푸르스름한 빛을 몸에 둘렀다.
그의 오른쪽 복부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더니 작은 가마 모양 그림자가 배에서 나타났다.
숲속의 짙은 나무 정기가 사방팔방에서 흘러나와 복부에 나타난 가마 모양 그림자로 모여들었다.
이어 가마는 빛이 점점 밝아지더니 석목의 상처 부위에 푸른색 빛이 한 층 쌓였고, 상처는 나무처럼 변했다.
잠시 후에 석목은 눈에서 맑은 빛을 뿜어냈다.
얼마 전에 석목은 작은 은색 탑 앞에서 조심하지 못했던 탓에 금제를 건드려서 수많은 수호 인형들에게 공격을 받았었는데 인형들 중에는 성계 존재도 있었기 때문에 그는 온힘을 다해 도망쳤다.
하지만 공간 균열 때문에 빠르게 날아갈 수 없어서 수호 인형으로부터 적잖이 공격을 받아서 상처를 많이 입었었다.
다행히 목화(木化)의 힘으로 전투를 치르며 누적된 모든 상처를 전부 회복했고, 그은 몸을 일으켜 세우며 기지개를 한번 켜고는 숲의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 * *
숲은 매우 컸다. 석목은 두 시진이 넘게 걸었지만 궁전 건물을 단 한 채도 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다시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향하려 할 때, 앞쪽에서 강렬한 영력 파동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런 느낌은…… 본원의 물건!”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파동이 몰려오는 곳으로 날아갔다.
숲을 한참 가로지르던 석목은 주변에 자란 나무들이 점점 적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고, 한 참 뒤에 너비가 한 장 정도 되는 하얀 길이 나타났다.
길가에 자란 나무숲에는 정교한 석상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석상들은 가지런히 한 줄로 서 있었으며 파손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어 석상들을 바라본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속도를 줄이더니 파란색 빛을 내뿜어 수막(水膜)을 둘렀다.
풍기는 기운을 완벽하게 숨긴 후, 석목은 길을 따라 걷지 않고 길 옆에 있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반바퀴 정도 돌아본 석목은 커다란 소나무 뒤에서 멈췄다.
소나무와 몇 리 정도 떨어진 곳에 텅 비어있는 땅이 있었는데 가운데에 삼 층짜리 둥그런 제단이 하나 놓여있었다.
석목은 제단을 훑어보았다. 제단은 백옥석으로 쌓았는데 높이는 육칠 장, 너비는 십 장 정도였고, 제단 위에는 예스러운 부문이 각양각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제단 가운데에서 부드러운 누런색 빛이 반짝이며 순수한 흙 속성 영기가 빛에서 흘러나왔다.
제단의 네 변은 하얀 도로 네 갈래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도로 위에는 높은 백옥 건물이 하나씩 서 있었다.
석목이 가장 가까운 곳에 서있는 백옥 건물을 바라보니 건물 위에 ‘진곤단’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 * *
진곤단 위에서 세 사람이 흥분한 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앞에 있던 사람은 귀가 뾰족하며 이가 튀어나온 요족 남자였고, 요족 남자는 청란성지의 제자처럼 옷을 입고 있었는데 풍기는 기운이 천위 후기였다.
“주 사제, 저 사제, 힘을 들여서 이곳을 막고 있던 봉인을 뜯은 보람이 있네요. 이렇게 굉장한 보물이 이곳에 있었다니.”
요족 남자는 흥분한 기색으로 말했다.
“이게 다 도 사형께서 감각이 뛰어나신 덕분입니다. 이 석령토(夕靈土)는 ‘지모지정(地母之精)’이라 불리는데 최고의 보물입니다. 우리는 횡재했습니다.”
몸집이 조금 뚱뚱한 중년 남자가 제단 가운데서 비치는 누런 빛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주 사제,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이 물건은 제가 특별히 쓸 곳이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보물들 중에 주 사제와 저 사제가 각자 원하는 것들을 두 가지씩 골라보세요. 그리고 이 석령토는 저에게 주시면 됩니다.”
성이 도씨인 요족 남자가 간절하게 부탁했다.
“그건……”
주씨 남자는 얼굴에 난감한 기색을 내비치며 옆에 있던 저씨 남자를 바라보았다. 저씨 남자는 몸집이 가녀렸으며 온몸에 딱딱한 털이 자라나 있었는데 키도 매우 작았다.
저씨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는데 고민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세 개!”
성이 도씨인 요족 남자가 이를 악물고서 말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몸을 가볍게 흔들며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고민을 하는 중인 것 같았다.
성이 도씨인 요족 남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눈빛이 차가워졌다.
이때, 숲속에서 우렁찬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누군가 나타나더니 말했다.
“하하하, 두 분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은데 그 물건을 저에게 맡기는 건 어떻습니까?”
“조극!”
제단 위에 있던 세 사람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조금 전에 말을 꺼낸 사람은 풍치가 있는 표정을 짓고 있던 조극이었다.
일 리 밖에 있는 어두운 곳에 숨어있던 석목도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다. 석목은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좁은 길에서 또 만났다니, 정말 조극과 석목은 떼어 놓으려고 해도 떼어낼 수 없는 원수였다!
“도승, 혹시 구전현공 네 번째 단계를 이미 대성했나? 이렇게 급하게 석령토를 가지려 하다니. 저 두 사람이 대답을 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려고 했지?”
조극은 요족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단에 있던 두 사람은 도승이 구전현공을 수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고, 두 사람은 조극이 하는 말을 듣더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요족 남자를 경계했다.
“조극, 이간질 시키지 마. 네가 백원왕의 후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고 구전현공을 수련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없지. 우리를 갈라놓고서 내 물건을 빼앗으려는 꼼수지?”
도승이 사나운 목소리로 외쳤다.
도승이 하는 말을 듣던 두 사람은 긴장을 풀며 다시 조극을 바라보았다.
“흥, 고작 너희를 상대로 일부러 힘을 빼서 갈라놓을 필요까지 있겠어? 한 번에 죽여 버리면 될 텐데.”
조극이 차갑게 말했다.
“조극, 사람을 너무 우습게보지 마!”
“가자!”
제단 위에 있던 세 사람은 조극이 하는 말을 듣더니 화를 내며 동시에 몸에 빛이 번졌다. 그리고 각자 법보를 꺼내들며 날아올라 조극을 포위했다.
“좋아.”
조극은 큰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어서 은색 장극을 꺼냈다.
그리고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가더니 장극으로 원을 그렸다. 그러자 하얀 빛이 헤엄치는 용처럼 주변에서 원을 그리더니 퍼져나갔다.
그 모습을 본 세 사람은 곧바로 각자 무기를 들어서 공격을 막아냈다.
이때, 조극은 이마에서 살이 밖으로 뒤집히더니 세로로 찢어진 눈알이 나타났고, 눈알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얀빛이 나타나자 도승은 얼굴에 경계를 하는 기색이 스쳤고, 그는 몸에 하얀 화염을 두른 채 빠르게 움직이며 뒤로 물러났다.
석목은 네 사람 가까이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쪽 상황이 뚜렷하게 보였다. 도승의 몸을 감싸던 하얀 줄기는 하얀 화염에 불타서 빠르게 부서졌다.
하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운이 그리 좋지 않았다.
몸이 조금 뚱뚱한 남자는 손에 넓적한 칼을 세운 채 제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뚱뚱한 남자가 벗어나기도 전에 조극이 장극으로 가슴을 뚫어버렸고, 뚱뚱한 남자는 양기가 가득한 화염으로 타오르며 순식간에 재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몸에 검은 털이 자란 남자는 간신히 팔 한 쪽만 공격을 피해서 음기가 닿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얼음 조각상으로 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