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9화. 혼전
석목은 산이 무너질 정도로 강한 힘이 가슴으로 밀려오는 느낌을 받았고, 이어 숨이 막히는 통증이 몰려와 석목은 낮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찢어진 갑옷에서 피범벅이 된 가슴이 드러났다.
입가에는 빨간 피가 묻어있었다. 석목은 힘겹게 일어섰고, 가슴에서는 푸른색 빛이 끊임없이 번쩍였다.
잠깐 사이에 석목의 가슴에서 흐르던 피가 멈춰버렸으며 상처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너, 벌써 현공을 이 정도까지 수련했구나. 그렇다면 절대 살려둘 수 없지!”
조극은 석목의 가슴에서 번쩍이는 푸른빛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석목은 깊은 숨을 한 번 내뱉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석목의 눈에서 순수하고 짙은 빛이 반짝였다.
이어서 눈부신 금빛이 번쩍이더니 몸에 금비늘이 촘촘하게 나타났고, 등 뒤에는 뱀 여덟 마리가 고개를 높게 치켜들고서 조극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토템의 힘이 몸속에서 끓어오르자, 석목이 풍기는 기운은 점점 강력해지더니 성계 가까이까지 도달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조극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든 장극을 꽉 쥐었다. 그러자 장극을 감싼 회색빛이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아졌다.
석목은 조극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몸을 앞으로 숙이자 등 뒤에 있던 뱀 머리 여덟 개가 동시에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날아가 조극을 물려고 했다.
토템 뱀이 조극의 주변을 둘러싸며 공격을 하자 물러날 곳이 없게 된 조극은 오히려 앞으로 발을 내딛으며 석목을 공격했다.
“좋아!”
석목이 큰소리를 질렀고 ‘탱!’하는 소리와 함께 여의빈철곤을 꺼내 들었다.
여의빈철곤에서 눈부신 빛이 크게 번지며 석목을 둘러쌌다.
찬란한 빛이 흐르는 여의빈철곤은 순식간에 조극의 머리를 공격했다.
이때 조극은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조극이 소리를 지를수록 원숭이 허영은 더욱 단단해졌고, 허영은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어 올리더니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두 손으로 든 장극으로 날아오는 곤봉을 막아냈다.
쾅!
큰소리가 울리며 숲이 격하게 흔들렸다.
하늘에서는 금빛이 넓게 퍼지면서 원숭이 허영과 뭉쳤다가 다시 회색빛으로 변하더니 이내 찢어져 버렸다.
조극이 미친 듯이 피를 뿜으며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날아가던 몸으로 나무를 열 몇 그루나 부러뜨려 버린 다음에야 숲속에 ‘쿵!’하고 떨어졌다.
석목이 허공에서 내려와 토템의 힘을 서서히 거두어들였다. 석목도 강력한 힘 때문에 몸을 비틀거렸다.
석목은 곧바로 최상급 영석 두 개를 꺼내서 손에 쥔 채로 빠르게 회복을 했다.
이때 숲에서 푸른색 빛이 크게 번졌다.
석목이 빛을 바라보니 피범벅이 된 조극이 허공에 떠 있었고, 몸이 나무 같이 변한 조극의 가슴에는 푸른색 가마 허영이 나타났다.
조극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모두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고, 푸른색 나무 정기들이 흔들리는 나무들에서 흘러나와 가마 허영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무 정기들은 한참 동안 푸른 가마 주변에서 맴돌더니 커다란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나무들의 정기가 더욱 빠르게 흘러들어갔다.
푸른빛 속에서 조극은 몸을 빠른 속도로 회복하였고,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해졌다.
푸른빛 속에 묻혀 있던 나무들은 전부 누런색으로 변하여 아무런 생기도 없었다.
조극 주변에 있던 나무들은 모두 말라있었다.
“구전현공을 네 번째 단계까지 대성하면 이런 모습이구나!”
석목은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 *
석목과 조극이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며 전투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 주변 공기가 한참 동안 이글거리더니 갑자기 커다란 부문이 나타났다. 그리고 부문에서 하얀빛이 번쩍이며 현묘한 전송진법이 하나 생겼다.
진법을 본 석목과 조극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둘은 거의 동시에 뒤로 물러나면서 진법이 나타난 곳을 바라보았다.
진법에서 그림자가 희미해지더니 사람들이 네 명이나 튀어나왔다.
네 명은 진법에서 나오자마자 두 무리로 갈라졌다.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이진종의 제자 세 명이 한 곳에 서 있었다.
석목도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세 사람은 막린회, 수봉월, 만호종을 비롯한 천위 후기 경지인 제자들이었다.
다른 한쪽에는 온몸에 칠흙 같은 검은 마기를 두른 키가 훤칠한 흑마족 고수가 있었고, 흑마족 고수가 풍기는 방대한 기운은 천위 정상에 도달해 있었다.
이 흑마족은 키가 두 장 정도나 되었으며 근육이 매우 탄탄했다. 또한 피부에는 검은 마문이 새겨져 있었고, 어깨 위에는 머리가 세 개나 자라있었는데 가운데 머리가 가장 컸으며 나머지 두 개는 가운데에 비해 작았다. 머리에도 온통 마문이 새겨져 있어서 모습이 매우 흉악스러웠다.
또한 갈비뼈에는 팔이 여섯 개나 자라있었다. 옆으로 뻗어 나온 손마다 마기를 감싼 마보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전부 검은빛이 반짝였다. 손에는 귀두 마도, 해골 단곤, 검은색 작은 깃발, 검은색 바리, 그리고 보라색 창 하나와 붉은색 창 하나를 들고 있었다.
마보 여섯 개는 전부 엄청난 마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도 평범한 보물들은 아니었다.
네 사람은 이곳으로 전송되기 전에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던 것 같았다. 법보에서 튀어나온 네 사람은 여전히 싸울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이곳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잠시 멈칫하더니 전부 뒤로 물러났다.
네 사람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로를 바라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목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이진종 제자처럼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수봉월을 비롯한 세 사람은 석목을 한참 동안 훑어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세 사람은 이진종 제자처럼 옷을 입고 있는 석목이 누군지 몰랐다.
제단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흙 속성 파동을 느낀 네 사람은 눈에 탐욕스러운 빛이 스쳤다.
석목은 흑마족을 한번 바라보더니 깜짝 놀랐다.
석목은 수봉월을 비롯한 세 사람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세 사람은 이진종에서도 뛰어난 제자들이다. 보통 천위 제자들은 절대 세 사람을 범접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세 사람이 힘을 합쳐서 흑마족 한 명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흑마족도 실력이 범상치 않은 것 같았다.
석목이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흑마족은 고개를 돌려서 석목을 한번 바라보더니 흠칫 놀랐다.
“석목!”
흑마족이 놀라며 말했다.
“누구……?”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무리 기억을 되뇌어 봐도 흑마족 중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 흑마족 고수에게서 확실히 익숙한 기운이 풍겼다.
그래도 여전히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흑마족 남자가 이제 막 말을 꺼내려고 할 때, 조극이 갑자기 석목을 가리키며 수봉월을 비롯한 세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진종의 세 도우님, 저는 조극이라고 합니다. 속승 진인의 직전제자지요. 이 사람은 우리 삼대 성지의 배신자입니다. 흑마족과 힘을 합쳐 비경에 있는 우리 삼대 성지의 제자들을 전부 죽여 버리고서 보물들을 독차지 하려고 했습니다. 세 분, 저와 힘을 합쳐서 이 두 놈들을 죽여 버립시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 있는 보물들을 전부 저 녀석들이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조극이 하는 말을 듣던 석목은 눈썹을 치켜뜨더니 얼굴에 차가운 기색이 스쳤다.
“이봐요. 청란성지에서 오신 사형. 이진종의 제자가 흑마족과 결탁했다 말하시는데 그 증거라도 있습니까?”
수봉월은 조극이 하는 말을 듣더니 안색이 굳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두 사람과 눈빛을 교환하더니 떠보는 투로 물었다.
수봉월은 석목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석목이 이진종의 제자들처럼 입고 있었기에 자신이 종문의 제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석목의 편에 서서 말했다.
“수 사매. 이 사람은 우리 이진종의 제자가 아니야. 이진종에서 온 백 명은 내가 전부 기억하고 있어. 그런데 이런 사람은 없었어!”
막린회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뭐?”
수봉월은 안색이 변했다.
“너는 누구냐? 우리 이진종의 제자처럼 사칭을 하다니. 네가 입고 있는 그 옷도 이진종의 물건이지? 혹시 우리 이진종의 제자를 죽인건가?”
막린회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맞습니다. 이 놈은 얼마 전에 우리 청란성지의 제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유적 근처에서 또 이진종의 제자까지 죽였지요. 그 제자는 눈썹이 보라색인 천위 초기 청년이었습니다. 보라색 뇌전비검을 사용하고 있었지요.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조극이 눈알을 굴리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눈썹이 보라색인 천위 초기 청년, 그리고 뇌전비검? 혹시 이화관의 뇌적 사제인가!”
수봉월은 눈에서 차가운 빛이 크게 번졌다.
석목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으며 해명을 할 수도 없었다.
이때 석목이 두 팔을 흔들며 손에 든 여의빈철곤을 치켜들었다. 석목이 팔을 휘두르자 금색 곤봉 그림자가 촘촘하게 나타나서 하늘을 뒤덮으며 조극을 향해 쏟아졌다.
그 모습을 본 조극이 차갑게 웃었고, 그의 손에 든 장극에선 회색빛이 더욱 크게 번졌다. 그리고 장극을 치켜들며 몰려오는 곤봉 그림자를 막아냈다.
펑!
터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빛이 번쩍이며 균열이 줄줄이 나타났다.
이진종 제자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수봉월이 가장 먼저 몸을 날려 석목을 공격하려고 했다.
“뭐야. 너희는 나를 상대해야지!”
이때, 흑마족이 큰소리로 웃더니 손에 든 검은색 바리를 흔들었다. 그러자 바리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수봉월을 가로막았다.
순간 수봉월은 안색이 굳었고, 그는 마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멈추더니 한 손을 흔들어 작은 깃발을 꺼내 들더니 깃발에서 번개가 나와서 밀려오는 검은 마기를 막아냈다.
“이놈부터 죽여!”
막린회는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그리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막린회는 만호종과 동시에 날아올라 법보를 꺼내 들고서 흑마족 남자를 공격했다.
세 명을 상대하고 있던 흑마족 남자는 조금도 두렵지 않은 것 같았다. 흑마족 남자는 어깨에 얹은 두 머리로 입을 크게 벌리더니 검은 불을 뿜어냈다. 동시에 손으로는 법보를 휘두르며 막린회와 만호종이 날리는 공격을 막아냈다.
네 사람은 다시 격전을 펼쳤다. 허공에서 오색찬란한 법보들의 빛이 흩날렸으며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흑마족 남자는 수봉월을 비롯한 세 제자들보다 실력이 눈에 띄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몸집이 거대했으며 머리가 세 개, 팔이 여섯 개나 달려 있었다. 그리고 마기와 검은 불이 여기저기서 번쩍여 자칫 잘못하면 사용하는 법보가 망가질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진종의 제자들은 신중하게 무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진종의 제자들이 공격을 보수적으로 하니 충분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석목은 조극과 싸우며 계속 곁눈으로 옆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석목은 흑마족 남자가 적군인지 아군인지 판단을 할 수 없었다. 흑마족 남자는 혼자서 세 사람과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세 사람이 대책을 찾아가며 흑마족을 몰아세우는 듯 했지만 결국엔 계속 대치만 했다.
만약 이진종의 세 사람이 흑마족을 죽여 버린다면 석목은 위기에 처하게 될 터였다. 그렇다고 지금 제단에 놓인 보물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