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2화. 주염(朱厭)
전함 위에 있던 노란 거인과 흑마족 사람들이 전부 아래로 내려왔다.
광장에 있던 오라 부족 사람들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서 전부 날아올라 적들과 싸움을 펼쳤다.
한동안 허공에서 수백 명이 전투를 하며 각자 사용하는 법보로 마광을 번쩍였고, 이에 땅에서는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란 피풍의를 두른 사람들은 전부 덩치가 거대한데 몸도 강철처럼 단단했으며 힘도 엄청났다. 오라 부족 사람들이 몇 명씩 모여야 노란 피풍의를 두른 거인 한 명과 간신히 싸울 수 있었다.
오라 부족 사람들은 머릿수가 많았지만, 적들의 실력이 워낙 막강했기 때문에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사자님, 보화 어르신이 우리 오라 부족을 구원하기 위해 내린 지시가 있으십니까?”
올화라는 다급한 목소리로 간곡히 부탁하며 물었다.
이때, 전함이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선체 앞에 달린 짐승 머리에서 검은빛이 번쩍였다.
“큰일 났습니다. 고만족 전함은 엄청난 위력의 폭격을 할 겁니다. 천위 존재가 막아낼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석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올화라는 안색이 굳었다.
“저 전함은 제가 해결할 테니, 우선 부족 사람들에게 고만족을 막으라고 전하세요.”
석목이 말했다.
“네.”
올화라는 석목이 도와주려는 걸 눈치 채고는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때 풍리가 찬 목걸이에서 또 회색빛이 번쩍이더니 풍리의 눈빛이 흐릿해졌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풍리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몸을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커다란 전함 위, 천위 정상 경지인 고만족 우두머리는 싸우지 않으며 전함에 선 채 아래에서 펼쳐지는 전투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때, 전함 한쪽에서 그림자가 희미하게 보이더니 석목이 귀신처럼 나타났다.
이어서 석목의 손에서 금빛이 반짝이며 여의빈철곤이 나타났다. 여의빈철곤에서는 금빛이 흐르고 있었는데 곤초를 끼우고 있었던 덕분에 위력이 훨씬 강력했다.
석목이 큰소리를 지르자 여의빈철곤이 순식간에 열 배나 더 불어나서 거대한 금색 곤봉으로 변하더니 전함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누구야!”
전함 위에 있던 고만족 우두머리가 깜짝 놀라서 곧바로 손에서 금색 빛을 반짝이더니 금색 북이 하나 나타났다.
펑!
고만족 우두머리가 손바닥으로 강하게 바닥을 내리치자 금색 물결이 주변으로 퍼져나가 여의빈철곤을 막아냈다. 그러자 여의빈철곤이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석목은 전혀 당황하지 않으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이어서 그의 왼손에서 하얀색 화염이 크게 번지며, 화염이 순식간에 몇 장 정도 되는 화염창으로 변하더니 번개처럼 날아가 전함의 가장 앞에 달린 검은색 짐승 모양 머리를 뚫어버렸다.
우르릉!
하얀 화염이 순식간에 검은 짐승의 머리를 감싸더니 짐승 머리가 순식간에 녹아버렸고, 그 안에서 묵직하게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 광경을 본 고만족 우두머리는 잔뜩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고, 몸을 날려 석목을 덮치더니 노란빛을 감싼 커다란 주먹으로 석목을 내리쳤다.
“흥!”
석목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른손에 검은빛을 드리우더니 똑같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빛이 날아가면서 커다란 주먹 그림자를 만들더니 고만족 우두머리가 날린 주먹과 강하게 부딪쳤다.
쾅!
검은 주먹 그림자가 단번에 터져버렸고, 이어 고만족 우두머리가 날린 주먹에 하얗고 단단한 얼음이 뒤덮였다. 그리고는 몸속에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었다.
깜짝 놀란 고만족 우두머리는 낮게 신음소리를 냈고, 그 우두머리의 주먹에서 노란빛이 번쩍였다. 그러자 단단한 얼음에 균열이 줄줄이 나타나더니 이내 터져버렸다.
“너는 뭐 하는 놈이냐? 우리 고만족의 일에 끼어들다니?”
고만족 우두머리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석목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대답하지 않고서 손을 흔들어 여의빈철곤을 다시 거두어들였다. 이어서 여의빈철곤에서 금빛이 크게 번지며 수많은 금색 곤봉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밀물처럼 우두머리를 공격했다.
“죽어!”
고만족 우두머리는 한쪽 손으로 허리춤에 걸려있는 북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자 북에서 노란색 물결이 퍼져 나가면서 단번에 금색 곤봉 그림자 수십 갈래를 부숴버렸다.
그의 또 다른 손에서 노란빛이 번쩍이더니 넓적한 전도(戰刀)가 한 자루 나타났고, 그 우두머리는 전도를 꽉 잡고서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눈부신 노란빛이 전도에서 뿜어져 나와 큰소리를 내며 또 곤봉 그림자 수십 개를 부숴버렸다.
석목은 엄청난 힘이 여의빈철곤을 타고서 몸으로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뒤로 몇 발자국이나 밀려나서야 간신이 멈추었다.
고만족 우두머리도 뒤로 한 발자국 밀려났고, 눈에서 빛이 번지며 전투 의지가 크게 일었다.
고만족 우두머리가 큰소리를 지르자 등 뒤에 푸른색 늑대 모양 허영이 나타났다.
늑대는 발이 세 개 뿐이었는데 머리에 커다란 외뿔이 하나 자라나 있었고, 늑대는 고작 수혼에 불과했지만 강력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다리가 셋 달린 늑대의 허영이 고만족 우두머리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우두머리는 몸이 순식간에 커지면서 촘촘한 회색 털이 온몸을 덮었으며 손가락에서는 길쭉한 손톱들이 튀어나왔다. 또한 머리에서는 굵고 푸른 외뿔이 하나 튀어나왔고, 두 눈은 푸른색으로 변했는데 풍기는 기운이 이전 보다 훨씬 강력했다.
“토템 수혼! 발이 세 개 뿐이라니. 혹시 태고의 거수들 중 곤랑(昆狼)인가!”
석목은 눈을 반짝였다.
고만족 우두머리의 거대한 몸이 위로 솟아오르더니 손에 든 전도에서 노란빛이 크게 번졌고, 그 빛은 마치 눈부신 태양 같았다. 이어서 전도가 석목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석목은 여전히 평온해보였고, 입에서는 낮은 소리가 흘러나왔으며 등에서는 뱀 허영 여덟 마리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석목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석목의 피부가 금색 비늘로 뒤덮였으며 이마에서는 외뿔이 튀어나왔다. 광폭한 기운이 석목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석목의 여의빈철곤이 가로로 휩쓸고 지나갔다.
“횡소천군!”
우르릉!
곤봉과 칼이 부딪치면서 허공에 커다란 불빛을 만들어냈다.
석목이 멀리 튕겨져 날아가더니 빛을 반짝이며 멈췄다.
고만족 우두머리의 거대한 몸도 튕겨 날아갔는데 몇 장이나 밀려나서야 간신히 몸을 멈춰 세웠다.
“우리 고만족의 토템술을 알고 있다니. 대체 누구냐!”
고만족 우두머리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석목은 대답을 하지 않았고, 아래에서 벌어지는 전투 상황을 바라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석목이 검은색 전함이 쏠 폭탄을 훼손시켜서 폭탄을 전투에 쓸 수 없게 되었지만, 오라 부족은 전투에서 여전히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더 이상 공격을 막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
석목은 다급해졌다. 이때 흉폭한 기운이 발아래에서 느껴졌고, 곧이어 회색 그림자가 검은색 대전 앞에서 하늘 위로 강하게 솟아올랐다.
풍리였다!
석목은 깜짝 놀랐다.
풍리는 몸에 회색빛이 크게 번지더니 순식간에 몸이 크게 부풀었다. 모든 근육이 울퉁불퉁 튀어나오면서 그 위로 회색 털이 촘촘하게 자라났다. 손에서도 뾰족한 손톱이 뻗어 나와서 순식간에 키가 수십 장인 회색 원숭이로 변했다.
“캭!”
회색 원숭이는 두 눈에 핏빛이 어렸다. 원숭이가 고개를 들어 큰소리로 울부짖자 잔혹하고 흉흉한 기운이 주변으로 퍼졌다.
그 원숭이는 웅장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였고, 눈 깜짝할 사이에 고만족 무리 안으로 뛰어들더니 두 팔을 세차게 흔들었다.
펑! 펑! 펑!
회색 원숭이가 주먹과 발을 휘두르자 천위 수련 경지인 고만족 한 사람과 지계 정상 수련 경지인 두 사람은 머리가 터져버렸으며 몸에는 구멍이 뚫리면서 순식간에 죽어버렸다.
“이 분은…… 주염 어르신!”
“주염 어르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라 부족의 마족들은 회색 원숭이를 보더니 기뻐하며 소리를 질렀다.
회색 원숭이는 괴성을 지르며 고만족 무리 안에서 살육을 벌였고, 아무도 원숭이를 막을 재간이 없었다. 순식간에 천위 경지 고만족 네다섯 명이 죽어버렸다.
오라 부족 마족들은 기세가 하늘을 찔렀으며 곧바로 이 치열한 전투에서 우위를 차지해 반격을 시작했다.
허공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석목은 일그러졌던 표정을 풀었다.
하지만 맞은편에 서 있던 고만족 우두머리는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이때 석목이 한 손을 흔들자 앞에 파란색 빛이 반짝이더니 남정번이 나타났다.
석목은 파란빛을 번쩍이며, 남정번 속에 빛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남정번에서 빛이 크게 번지더니 물 흐르는 소리가 주위로 울려 퍼졌고, 엄청난 양의 물이 남정번에서 흘러나와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 몇 십장 안으로 흘러갔는데 물줄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본 고만족 우두머리는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가까스로 물을 피했다.
“곤랑이 물을 무서워한다더니 정말이었군.”
석목이 웃으며 크게 말했다. 그리고는 몸에서 파란빛이 크게 번지며 손바닥으로 허공을 밀었다.
그러자 남정번에서 흘러나오던 물들이 순식간에 앞으로 쏟아지며 고만족 우두머리는 물속에 빠져버렸다.
이어서 석목은 오른쪽 팔에 검은빛을 두른 채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팔에서 검은색 빛기둥이 나오며 흐르는 물을 향해 날아갔다.
쩍! 쩍!
길이가 백 장이나 되는 방대한 물이 순식간에 얼어붙더니 거대한 고만족 우두머리도 얼어버렸다.
석목은 고만족 우두머리를 곧바로 죽여 버리지 않고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부문이 감돌고 있는 여의빈철곤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풍차처럼 빠르게 돌아갔다.
곤봉에서 그림자가 줄줄이 튀어나오더니 하얀색 기류가 흘렀다.
곤봉 그림자와 기류는 순식간에 합쳐지며 금색 회오리 기둥으로 뭉치더니 하늘과 땅을 이어놓았다.
이때 허공에는 난데없이 먹구름이 나타났고, 먹구름 속에서는 금색 번개가 꿈틀거렸다.
얼음에 갇혀버린 고만족 우두머리는 회오리 기둥을 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그 우두머리는 얼음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쩍! 쩍!
이때 얼음에 틈이 쩍쩍 갈라지더니 균열은 양쪽으로 뻗어 나가며 곧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도망가려고? 꿈 깨!”
얼음에 난 균열을 본 석목은 큰소리를 지르며 여의빈철곤으로 얼음을 향해 손을 뻗었다.
천지무극!
금색 회오리 기둥이 날아오르더니 고만족 우두머리와 강하게 부딪쳤다.
얼음은 부서졌지만 고만족 우두머리는 또다시 회오리 기둥 안에 갇혀버렸다.
화가 난 고만족 우두머리가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노란빛을 뿜어냈고, 우두머리가 들고 있던 전도에서 빛과 파동이 일어나더니 회오리 기둥과 부딪쳤다.
“쇄(碎)!”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손에 든 곤봉으로 회오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금색 회오리 기둥이 곧바로 터져버렸다.
고만족 우두머리는 흠칫 놀라더니 틈을 타서 도망을 치려고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때,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며 수많은 금색 번개가 땅으로 쏟아져 땅에서 검은 화염이 타올랐고, 타오르던 화염이 고만족 우두머리를 덮쳤다.
번개와 화염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얽히고설켰다. 순간 세상이 금빛과 검은빛으로 가득 찼고, 그곳에서 파멸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금색 번개와 검은 화염이 고만족 우두머리를 가둬버렸고, 갇힌 곳에서 천지영기가 주변으로 흩어졌다.
먼 곳에서 전투를 펼치던 고만족과 오라 부족은 싸움을 멈추고서 멍하니 이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석목은 여의빈철곤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하늘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쏟아지던 금색 번개가 점점 굵어졌다.
고만족 우두머리는 이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석목은 여전히 긴장을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