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3화. 호랑이 인형
이때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을 가득 채우더니 눈부신 빛이 금색 번개 속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노란 태양 같았다.
쾅!
이어서 폭발 소리와 함께 눈부신 빛이 금색 번개를 찢고서 나오더니 그곳에서 고만족 우두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
고만족 우두머리의 모습은 처참했고, 검게 타버린 상처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으며 얼굴은 백지장처럼 질렸다. 고만족 우두머리는 마지막 발버둥을 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죽어!”
석목이 차가운 빛을 뿜어냈다. 여의빈철곤에서 금빛이 크게 번지더니 번개 기둥이 나와서 고만족 우두머리를 내리쳤다.
고만족 우두머리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고만족 우두머리는 석목의 공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갑작스럽게 날아든 공격을 피하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순간 커다란 금색 번개 기둥이 몸을 강하게 내리쳤다.
큰소리가 지천을 흔들었다.
촘촘한 번개 빛이 빙글빙글 돌더니 고만족 우두머리를 삼켜버렸다.
처참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으나 금세 조용해졌고, 금색 번개가 흩어지자 고만족 우두머리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우두머리의 눈빛은 흐렸고, 커다란 구멍이 생겨버린 가슴은 검게 타 있었다. 곧이어 고만족 우두머리의 커다란 몸이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이때 한 갈래 빛기둥이 날아와 정확하게 고만족 우두머리의 머리에 떨어졌다.
펑!
그 우두머리는 머리가 터졌고, 신혼 또한 도망가지 못한 채 파괴되었다.
고만족 우두머리의 머리를 내리친 금빛은 여의빈철곤이었다. 여의빈철곤은 허공에서 한 바퀴 돌더니 다시 석목의 손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고만족 우두머리의 시체를 바라보며 속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고만족의 끈질기고 사나운 전투력이 놀라웠다.
만약 천기곤초가 지닌 위력을 더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죽일 수 없는 상대였다.
우두머리가 죽어버리자 고만족 사람들은 겁에 질려 허둥지둥 움직였다. 전투를 이어나갈 의지가 사라진 고만족은 뿔뿔이 도망가기 시작했고, 그중 몇몇은 전함으로 도망을 가려고 했다.
“공격! 단 한 명도 놓쳐서는 안 돼!”
올화라가 흥분하며 소리를 쳤다. 올화라는 부하들에게 도망치는 고만족을 쫓아가라고 명을 내렸다.
석목은 다시 검은 전함을 항해 날아갔고, 손을 흔들어 전함을 타고서 도망을 치려던 고만족들을 가볍게 죽여 버렸다.
* * *
다시 펼쳐진 전투에서 오라 부족은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했다. 도망을 가던 고만족들은 전부 죽었으며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쿵!
회색 원숭이는 마지막으로 남은 고만족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주염 어르신!”
근처에 있던 오라 부족의 마족들은 전부 회색 원숭이에게 날아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회색 원숭이는 두 눈에 붉은빛이 번쩍였다. 순간, 원숭이가 파르르 떨며 자신의 힘을 억눌렀다.
이때 원숭이는 미간에서 회색빛이 번졌으며 눈은 핏빛으로 가득 찼고, 하늘을 찌르는 차가운 살기가 흘러나왔다. 원숭이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근처로 다가온 오라 부족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빨리 이곳을 떠나!”
이때 석목이 다가오며 소리를 질렀다.
석목이 검은빛을 감은 오른쪽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빛이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순식간에 회색 원숭이를 감쌌다.
뼈를 찌르는 듯한 차가운 기운이 폭발하며 하얀 얼음이 회색 원숭이를 가두어버렸다.
그러자 원숭이의 눈에 어렸던 핏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은 그제야 깊은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얼음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석목의 손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하얀 얼음이 빠르게 녹아내리며 전부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석 형, 고마워.”
풍리는 원기를 크게 다친 채, 간신히 고개를 들어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원기를 많이 다친 것 같으니 우선 회복부터 합시다.”
석목은 파란빛을 날려 풍리를 감싼 채 광장으로 데려왔다.
“사자 어르신들, 두 분 덕분에 우리 오라 부족이 화를 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올화라 대장로는 두 사람에게 다가오더니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보화 어르신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네, 네……”
올화라는 얼굴에 기쁜 기색이 스쳤다.
“제 친구가 원기를 많이 다친 것 같습니다. 제단으로 데리고 가서 회복을 해야 하니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석목이 말했다.
“사자 어르신, 걱정하지 마십시오. 방해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올화라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풍리를 데리고서 제단 대전 속으로 사라졌다.
* * *
대전에 들어온 풍리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고, 그는 주변에 드리운 마기를 빨아들이며 원기를 회복했다. 하지만 회복을 하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
석목은 풍리의 가슴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목걸이에는 회색빛이 옅게 남아있었는데 사나운 기운이 느껴졌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흔들더니 한 손을 흔들어서 분신을 꺼냈다.
석목이 법결을 하나 시전하자 분신이 입을 크게 벌려 풍리의 몸속에 순수한 마기를 불어 넣었다.
분신에게 도움을 받은 풍리는 안색이 빠르게 회복되었으며 몸에서 흘러나오던 검은빛도 점점 밝아졌다.
한 시진이 지나자 풍리는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
“풍 형, 어떤가요?”
석목이 물었다.
“많이 좋아졌다. 고맙네.”
풍리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으며 일어섰다.
“그럼 다행입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삼켜버렸다.
“석 형, 왜 내가 회색 원숭이로 변신했는지 알고 싶은 거지?”
풍리가 말했다.
석목은 잠깐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혹시 회색 목걸이 때문인가요? 저도 그 목걸이를 걸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 물건은 불길하니 지니고 다니지 않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풍리는 망연한 기색을 드러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석 형도 이 목걸이가 내게 어떤 의미일지 잘 알거야. 여전히 석연치 않는 일들이 많지만, 지금은 자세하게 말해 줄 수 없네. 하지만 이 목걸이를 절대 버릴 수 없어.”
“오라 부족 사람들은 풍 형이 변신한 모습을 주염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까?”
석목이 풍리를 바라보며 또 물었다.
“음. 이 목걸이 속엔 흉수인 주염이 봉인되어 있는 것 같아.”
풍리는 침묵을 하다가 짧게 대답했다.
풍리가 자세한 내용을 말하기 싫은 듯 보였기 때문에 석목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허허, 석 형 걱정하지 말게나. 조금 전에 대전에서 눈에 들어온 게 있어. 흉수를 다스릴 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풍리가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석 형, 마 속성을 지닌 분신을 키우고 있는가? 그날 곤륜에서 분신을 시켜서 제단에 놓인 보물을 가져갔지?”
풍리는 석목 옆에 있는 분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쉽게도 이 분신은 힘이 미약합니다. 전투를 할 땐 별 쓸모가 없습니다.”
석목은 있는 그대로 말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듣던 풍리는 눈을 깜빡이며 석목에게 회색 옥간을 하나 건넸다.
“이건 무엇입니까?”
석목이 멈칫했다.
“이번에 석 형이 나에게 큰 도움을 줬는데 마땅히 보답을 할 길이 없었네. 이 옥간은 우연히 얻게 된 마공 공법인데 마공을 빠르게 늘릴 수 있는 방법이 들어있어. 그리고 내가 몇 년 동안 마공을 수련하며 깨달은 내용들도 옥간에 적혀있으니 아마 석 형에게 도움이 될 거야. 답례라 생각하고 받아주게.”
풍리가 말했다.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석목은 사양하지 않고서 기쁜 마음으로 옥간을 받았다.
석목은 분신의 수련 경지가 한계에 달하여 고민이 많았던 참이었다.
“궁금했던 일들이 실마리가 풀려서 저도 이곳에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저는 다시 곤륜성허로 돌아가겠습니다. 풍 형은 어쩌실 계획입니까?”
석목이 전송진법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이곳에서 더 머물러야 할 것 같네. 이 목걸이 속에 봉인된 흉수를 통제하는 방법을 좀 더 찾아봐야겠어.”
풍리가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 분신을 집어넣고서 제단 위 진법으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성석을 꺼냈다.
성석에서 한 갈래 빛이 튀어나와 진법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전송진법이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그러더니 진법은 빛이 서서히 밝아졌다.
법진이 돌아가자 성석이 빠르게 소모되며 점점 줄어들었다.
석목은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성석이 부족할까봐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도 석목이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진법에서 하얀빛이 반짝이며 석목은 모습이 사라졌다.
* * *
곤륜성허.
붉은 건물들로 둘러싸인 정원에서 큰소리가 울려 퍼지며 먼지가 흩날렸다.
보라색 호랑이 인형 수십 마리가 보라색 옷을 입은 사람 한 명을 포위하고 있었다.
보라색 옷을 입은 사람은 몸이 말랐으며 용모가 아리따운 여인 서문설이다.
서문설은 백옥영치를 휘둘러 하얀빛을 뿜으며 호랑이 인형들이 날리는 공격을 막았다.
서문설은 연이은 맹공격을 막아내느라 안색이 창백해졌고, 영력도 많이 써서 몸이 비틀거렸다.
이때, 보라색 호랑이 두 마리가 서문설을 덮쳤다.
호랑이는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뾰족한 앞발로 서문설을 공격했다.
놀란 서문설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서 빛을 뿜어내어 백옥영치를 좌우로 휘둘렀다. 그러자 영치에서 차가운 빛이 두 덩이 나타났다.
서문설은 간신히 호랑이 인형이 날리는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이때, 종아리에서 살을 후비는 것만 같은 통증을 느꼈다. 호랑이가 날린 보라색 번개 한 줄기가 종아리에 떨어진 것이었다.
서문설이 낮은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더니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순간 ‘칙칙’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호랑이 인형 수십 마리가 서문설을 덮쳤다.
그 광경을 본 서문설은 옥치를 가로로 들고서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또 다른 손으로 법결을 시전하였다.
윙!
옥치에서 하얀빛이 뿜어 나와 서문설 주변에 한 장 정도 크기인 광막을 만들어냈다. 덮치던 호랑이들은 광막에 부딪치자 전부 튕겨져 날아갔다.
펑! 펑! 펑!
호랑이 인형들은 광막에 부딪치는 동시에 날카로운 앞발로 광막을 내리찍었고, 광막에서 번개가 사방으로 튀었다.
서문설은 이를 악물었다. 광막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끊임없이 흔들렸다.
호랑이 인형이 끈질기게 광막을 공격하자 광막은 점점 줄어들며 빛도 서서히 어두워졌고, 터져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서문설은 다급한 마음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쿵!
때마침 정원 허공에서 금빛이 퍼지며 굵은 빛기둥이 광막 위로 떨어지더니 이내 터져버렸다.
빛기둥이 터지자 그 자리에서 물결이 일렁거리며 빛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공격을 하던 호랑이 인형 수십 마리는 금빛에 닿는 순간 전부 튕겨져 날아갔다.
이어서 금빛 속에서 보라색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더니 정원으로 내려왔다.
그 사람은 속도가 매우 빨랐고, 정원에 내려오는 순간, 발을 빠르게 움직이며 잔영을 줄줄이 남겼다.
우르릉!
보라색 그림자가 몇 번 움직이는 사이에 빛이 줄줄이 터지며 호랑이 인형들은 산산조각이 났다.
서문설은 뛰어난 실력을 보며 깜짝 놀라서 헛바람을 들이켰다. 하지만 그 사람이 이진종의 제자들처럼 입은 것을 확인한 후에 긴장을 조금 풀었다.
“감사합니다. 어느 관에서 오신 사형이신지요?”
서문설은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두 손을 모아 인사를 올리며 공손한 말투로 물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고개를 살짝 들어 상대방의 얼굴은 확인한 서문설은 깜짝 놀라서 목소리마저 나오지 않았다.
“너…… 석목……”
구릿빛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 검 모양 눈썹과 맑은 눈동자. 그 남자는 석목이었다. 석목은 단단한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분위기를 풍겼다.
서문설은 한참 동안 석목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순간 무엇인가 떠오른 듯이 복잡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며 물었다.
“뇌적 사형이 정말 너였구나?”
“맞아.”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내 느낌이 맞았어. 정말 너였던 거야.”
서문설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