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76화 (576/916)

576화. 천정의 음모

흑마족과 삼대 성지의 제자들이 여기저기서 전투를 벌였다.

순간, 마기가 용솟음쳤으며 빛이 하늘을 찔렀고, 다투는 소리와 터지는 소리가 귓가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천위 강자들 수십 명이 전투를 펼치자 땅과 공기가 흔들리며 곧 터져버리기 직전이었다.

흑마족의 실력은 매우 뛰어났지만 숫자가 삼대 성지의 제자들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에 곧바로 석대 구석까지 밀려났다.

자릉은 몸이 매우 왜소하여 눈에 띄지 않았다. 자릉이 갑자기 청란성지의 제자 무리에서 날아 나오더니 손에 빛이 번지며 축운검파의 제자를 찔러버렸다.

펑!

축운검파 제자의 입에서 피가 뿜어 나왔다.

축운검파 제자의 주변에 있던 다른 축운검파의 제자들이 깜짝 놀라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지만 자릉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이진종 제자 무리에서 처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금 전에 튕겨져 날아갔던 축운검파 제자의 장검이 언제인지 모르게 이진종 제자의 등 뒤에 꽂혀있었다.

“빌어먹을 놈. 뒤에서 공격을 하다니. 우리를 전부 죽이고서 보월궁에 있는 보물을 독차지 하려는 게지?”

날카로운 여자가 내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삼대 성지의 제자들 모두가 걱정하고 있던 생각을 그대로 내뱉었다.

삼대 성지의 제자들은 멈춰 섰다. 더는 흑마족을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경계하고 있었다.

축운검파의 소주는 조금 전에 습격을 당한 동문 제자를 한번 쳐다보더니 눈빛이 차가워졌다. 이어서 소주는 청란성지의 제자들이 있는 곳을 향해 장검을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본 조극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장극을 들어 올리더니 축운검파의 소주와 싸우기 시작했다.

한쪽에 있던 이진종의 제자들은 이미 눈에 불을 지피며 축운검파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궁전 앞 석대 위는 싸움으로 난리법석이었다. 이때, 몸집이 왜소한 자릉이 혼전 속에서 벗어났다. 자릉은 입가에 음흉한 미소를 띠며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아무도 자릉을 발견하지 못했다.

* * *

보월궁 속, 석목과 연나가 마주보며 서 있었다. 두 사람은 궁궐 밖에서 벌어진 상황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때, 석목이 눈을 껌뻑거리며 무엇인가를 말하려다 다시 삼켰다.

“왜? 할 말이 있어?”

연나가 석목을 바라보며 물었다.

“실은……”

석목은 망설이더니 풍리와 함께 흑마 성역으로 전송이 되었던 일과 흑마 성역에서 보고 들었던 일들을 연나에게 말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듣던 연나는 전혀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연나, 너 정말 흑마 성역에서 믿는 보화성조야?”

석목이 물었다.

“맞아. 나는 보월궁의 주인인 보화야.”

연나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석목은 눈에 복잡한 기색이 어렸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연나가 직접 말하니 여전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말 보화성조라면 수련 경지가 통천에 오른 사람이었을 텐데, 왜 사령 계면으로 추락해서 한…… 한 해골이 되어 버린 거야?”

“그 이유는 나도 생각나지 않아. 다만 천정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

연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연나는 눈에서 사나운 빛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성계로 들어가면서 많은 일들이 떠올랐어. 내가 보화였을 때 네가 알고 있는 백원왕도 나와 관련이 있던 자였어. 백원왕과 꽤 끈끈한 관계였던 것 같아.”

연나가 천천히 말했다.

“너와 백원왕이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

석목은 깜짝 놀랐다.

“어렴풋이 생각날 뿐이야. 머리가 복잡해졌을 때, 선계에서 내려가 기분을 풀곤 했었는데 그때 한 성역에서 백원왕을 만난 것 같아. 그때 백원왕은 지능마저 꽃피지 않은 원숭이에 불과했지. 그 뒤로 여러 번 백원왕을 수련시켰어. 백원왕은 청란성지로 들어갔지. 청란성지에서 구전현공을 수련하여 실력을 키우고선 나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었어.”

연나는 하얀 손가락으로 미간을 짚으며 온힘을 다해 기억을 끄집어냈다.

석목은 눈이 반짝였다. 석목은 갑자기 예전에 꿈속에 나타났던 광경이 떠올랐다. 꿈속에 나온 백원왕은 매우 어렸으며 선녀를 한 명 만났는데 그 선녀가 연나였던 것 같았다.

“그럼 회색 원숭이는? 이름이 주염이라고 했었는데. 흑마 성역에 있던 대전에서 네 석상과 나란히 놓여있는 것을 보았어.”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주염은 내 부하였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주염과 백원왕은 각각 다른 원숭이 공법을 수련했어. 하지만 주염은 자질이 백원왕에 미치지 못했지.”

연나가 말했다.

“그렇구나…… 백원왕과 알고 지낸 사이라면 백원왕이 왜 죽었는지도 알고 있나?”

석목이 고개를 흔들더니 또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물었다.

“그 일은 나도 기억나지 않아. 기억 조각들만 떠오를 뿐이야. 하지만 천정과 관련이 있다는 건 확실해. 백원왕은 구전현공을 완벽하게 수련했어. 너무 실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천정에게 위협이 되었지.”

연나가 말했다.

“그런데 천정이라는 곳은 대체 어떤 세력이야?”

‘천정’이라는 단어를 석목은 수도 없이 들었다.

“천정은 내가 있는 곤륜과 같은 상위 계면에 자리 잡고 있었어. 그곳을 선계라고 할게. 천정은 여러 성역을 통치하는 거대한 조직이야. 하지만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어. 천정도 쉽게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지만 떳떳한 녀석들은 아니야.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성역들에 있던 영석 광산과 자원을 갈취하고 있었어. 수많은 종족과 행성이 천정에게 파멸을 맞았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도 천정과 대립하지 않았을 거야.”

연나가 사나운 빛을 번쩍이며 말했다.

“영석 광산과 자원을 갈취 한다고!”

석목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순간 석목은 머릿속에 남해성과 다른 몇몇 행성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영석 광산을 과도하게 채굴했던 몇몇 사건들도 생각났다.

정말 이 모든 일이 천정과 연관이 있다는 소리인가?

남해성은 영맥이 고갈되면서 천지영기가 매우 희박해졌다. 인진성은 수많은 생명들이 파멸되어서 곧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성역 곳곳을 떠다니는 성진 조각들과 처참한 상황을 석목은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행성은 수많은 생명들이 머무는 서식지였다. 하지만 지금 천지영기가 부족하여 성역에 드리운 혼돈의 힘이 스며들어서 결국은 파멸을 맞이할 터였다.

천정이 이런 일을 벌이다니,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너는 백원왕에게 대물림을 받아서 구전현공을 수련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천정이 너를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천정이 구전현공을 대성까지 수련한 사람을 절대 살려둘 리 없어. 그러니 너도 꼭 조심해야만 해.”

여기까지 말한 연나는 표정이 심각해졌다.

“걱정 마, 나도 알고 있어. 외진 성역의 어촌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부 백원왕 덕분이야. 나에게 은혜를 베풀었지. 정말 백원왕이 천정에게 죽었다면, 그리고 천정이 너를 해쳤다면 이 일은 그냥 지나갈 수 없어.”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는 천정이 무섭지 않아? 천정은 네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어.”

연나는 석목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서워한다고 천정이 날 찾아오지 않을까? 무서워서 피하기보다는 부딪치며 싸우는 편이 낫겠지. 싸워서 죽으면 또 어때!”

석목이 큰소리로 웃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큰소리를 쳤다.

연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용기는 있어야 백원왕의 후예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천정과 싸우기 위해선 용기만으로는 부족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야. 천정이 아직 우리가 존재한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으니 그 사이에 실력을 연마해야 해.”

연나가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네가 한 말이 맞아.”

연나가 하는 말을 들은 석목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제 성계에 들어섰어. 영해 속에 팽악이 심어놓은 금제를 깨는 건 문제가 없을 거야. 네 머릿속에 있는 금제를 풀어줄게.”

연나가 말했다.

연나가 하는 말을 들은 석목은 매우 기뻤다. 곤륜에 들어온 후부터 금제가 늘 맘에 걸렸는데 연나에게 풀 방법이 생겼다니.

“따라와.”

연나는 손을 흔들어 주변에 드리운 투명한 결계를 거두고는 대전 옆에 자리한 편전으로 걸어 들어갔다.

석목은 고개를 돌려 서문설을 한 번 바라보더니 서문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연나를 따라 편전으로 들어갔다. 서문설은 석목과 연나가 나누는 대화를 듣지 못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어두웠다.

서문설은 눈을 감고서 한참 동안 조용히 서 있더니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망연했던 기색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으며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큰 걸음으로 대전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 * *

편전 바닥엔 크기가 한 장 정도 되는 정밀한 진법이 새겨져 있었다. 진법 위에는 하얀 수정석이 열 몇 개 박혀있었다.

연나는 가느다란 손을 연이어 짚었다. 그러자 빛 한 줄기가 손에서 튀어나와 진법 위에 떨어졌다.

윙! 윙!

진법이 작동하며 하얀빛이 뿜어져 나와 석목에게 드리웠다.

연나는 두 손으로 진법을 시전하며 입으로 무엇인가 중얼거렸다.

진법 속에서 하얀빛이 끊임없이 번쩍였으며 수많은 부문이 진법에서 날아와 석목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석목은 고통스러워하며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연나가 손을 흔들자 하얀 빛기둥이 손바닥에서 튀어나와 석목의 영해 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얀빛이 석목의 영해 속으로 들어가서 영해를 꽁꽁 감싸더니 하나로 뭉쳤다.

이어서 청동색 빛이 줄줄이 나타나 여기저기로 튀었고, 하얀빛은 봉인을 뚫어 버리려는 것만 같았다.

석목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영해 속을 칼로 찌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석목은 연나를 믿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서 참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햐얀빛에서 수많은 줄기가 흘러나와 청동색 빛을 감쌌다.

청동색 빛은 하얀 줄기에 묶인 채로 멈춰버리더니 하얀빛과 합쳐졌다.

한참 뒤에 석목은 눈을 뜨며 검은 피를 한 모금 뱉어냈고, 지친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어렸다.

영해 속에 있던 청동색 빛은 이미 팔에서 구 할 정도 사라졌다.

“팽악, 이 놈이 쓴 수법은 정말 대단하군. 금제의 힘을 대부분 풀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조금 남아있더라도 네 영해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야. 깨끗이 사라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연나가 말했다.

“고마워. 아, 네 영해에 걸린 금제는 이미 풀었어?”

석목이 물었다.

“물론이지.”

“그럼 다행이네.”

석목이 긴장을 풀었다.

연나는 석목을 바라보면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너 백원왕에게 흡일식 법결을 알아냈지?”

“맞아.”

석목이 의아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흡일식은 내가 백원왕에게 물려 준 법결이야. 그때는 상권 밖에 물려주지 못했는데 흡일식은 하권도 있어. 네가 정말 천정과 싸우겠다면 이 공법을 전부 알려줄게. 네 수련 경지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연나가 말했다.

“좋아.”

석목은 멈칫하더니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연나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허공을 짚었다. 한 줄기 금빛이 허공에서 튀어나와 석목의 미간 사이로 스며들었다.

석목은 머릿속에서 금빛이 번졌다가 터져버렸고, 흩날리는 빛 속에 수많은 금색 글자들이 나타나서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것은 흡일식 하권이었다.

석목은 굶주린 사람처럼 글자들을 읽어 내려갔다. 석목은 한참 뒤에 눈을 뜨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석목은 편청(*偏廳: 외따로 자리한 마루)의 허공에 걸려있는 태양을 바라보며 곧바로 흡일식을 시전했다.

석목은 머릿속에서 금빛이 번쩍였다. 이어 금색 태양의 허영이 하늘에 나타나자 금빛이 태양에서 흘러나와 전부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석목의 뒷통수에 걸려있던 태양의 허영은 점점 커져서 맷돌만 해지더니 계속 부풀어 올라 석목의 몸을 집어삼켰다.

태양의 허영이 더 커지자 더 많은 금빛들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석목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석목은 몸에 옅은 금빛이 맴돌고 있었는데 매우 신비스러운 모습이었다. 마치 금색 갑옷을 두른 것만 같았다.

석목의 몸 속 진기가 빠르게 흘렀다. 명수결, 적원화경, 흡일식, 심지의 토템의 힘까지 어우러지면서 풍기는 기운이 점점 강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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