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7화. 포위되다
석목이 달라지는 걸 지켜보던 연나는 손을 휘둘러 일곱 색깔 빛을 날려 석목에게 드리웠다.
그러자 석목이 풍기는 기운은 점점 더 커졌으며 파란빛, 금빛, 붉은빛이 동시에 번지면서 석목의 몸을 꽁꽁 감쌌다.
* * *
한참 후, 세 가지 빛은 순식간에 터져 버렸고, 빛 속에서 석목이 나타났다.
석목은 눈을 크게 뜨고서 빛을 뿜어내며 큰 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에 석목은 고개를 숙여서 두 손을 바라보며 매우 좋아했다.
이번 기회로 석목은 수련 경지가 천위 중기에 도달했다.
“가장 필요할 때 네가 도와줬어. 아니었더라면 또 오랫동안 폐관수련을 해야 했을 거야.”
석목은 연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때 연나가 손을 흔들어서 칠색 영패를 하나 꺼내며 석목에게 던졌다.
석목은 다급하게 영패를 건네받았다. 영패에서 일곱 가지 빛이 반짝였고, 빛들은 마치 흐르는 액체 같았는데 알 수 없는 힘이 영패에서 유유히 흘러나왔다.
“우선 수련 경지부터 안착시켜. 이 대전에서 폐관수련을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이 영패는 곤륜에서 나갈 수 있는 물건이야. 언제든 영패를 시전해서 떠나면 돼.”
연나가 말했다.
“이곳에서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다고?”
석목이 물었다.
“그래. 하지만 이 대전을 떠날 수는 없어.”
연나가 말했다.
말을 마친 연나는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한 표정을 드러냈다.
이때, 연나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대전 밖을 바라보더니 그녀의 얼굴에 분노가 스쳤다.
“너는 이곳에서 나가려고?”
연나의 모습을 본 석목이 물었다.
“해야 할 일이 있어.”
연나는 말을 마치고서 몸에 일곱 가지 빛을 감았다. 연나는 모습이 점점 희미해졌다.
석목이 입을 벌려서 무엇인가를 더 묻고 싶었지만 연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석목은 깊은 숨을 내뱉으며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석목은 이진종의 제자라는 신분으로 곤륜성허에 들어왔다. 그리고 팽악에게 신분을 들켜버렸다. 만약 곤륜이 닫히는 시기에 맞춰서 나가게 된다면 곤륜성허에서 찾은 물건들을 전부 주어야 할 뿐만이 아니라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터였다.
헌데 곤륜성허의 주인은 연나였으며 석목에게는 영패가 생겼으니 다급하게 나갈 이유가 없었다.
보월궁은 특별한 곳이라 천지영기가 매우 짙었다. 청란성지의 천성전에 비할 정도였으니 석목이 수련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천지영기와 비슷한 농도인 마기도 가득했다. 이곳은 천지영기와 마기가 은은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다면 분신도 이곳에서 수련을 하며 실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갑자기 무엇인가 떠오른 듯이 주변을 둘러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서문설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석목은 눈에 빛을 번쩍이더니 신경 쓰지 않고서 대전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조금 전에 머물던 편전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 분신을 꺼냈다.
짙은 마기를 느낀 분신은 매우 좋아하며 가부좌를 틀고서 공법을 시전하며 마기를 빨아들였다.
석목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고, 한참 후에 그의 몸에서 파란빛이 번쩍였다.
* * *
보월궁의 허공에서 빛을 반짝이며 서문설이 나타났다.
서문설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어서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렸고, 서문설의 몸에서 하얀빛이 번지더니 파동이 일렁이며 주변으로 퍼졌다.
잠시 후에 서문설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한쪽으로 걸어갔다.
서문설이 도착한 곳은 한 대전이었다. 그 대전은 난장판이었는데 벽에는 싸움 때문에 깊게 긁힌 흔적들이 가득했다. 격렬한 전투가 펼쳐진 것 같았다.
서문설은 대전을 한 번 훑어보더니 구석으로 다가갔다.
구석엔 커다란 시신이 한 구 누워있었다.
시신은 금색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갑옷은 모두 찢어져 하얀 백골이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백골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왔는데 마치 보물이 내뿜는 빛 같았다.
칼인지 검인지도 모를 금색 무기 한 자루도 한쪽에 버려져 있었다. 무기에서 금빛이 뿜어 나왔는데 매우 대단한 법보였다.
시체는 뼈가 여기저기 부서져 있었지만 그래도 온전한 편이었다. 시체에서 강력한 기운이 풍겼다.
“이것은…… 장태 신장(神將)의 시신이잖아!”
서문설이 벅차오르는 기분을 억누르며 손을 흔들어서 옆에 있는 금색 무기를 손에 넣었다.
* * *
보월궁 밖, 마기가 들끓었으며 빛이 화려하게 번졌고, 큰소리는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여기저기서 격전을 치르고 있던 사람들은 족히 이 백 명은 되었는데 전부 살기가 가득한 눈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각이 흘렀을 뿐인데 열 몇 명이 혼전 중에 부상을 입었다. 심지어 죽어버린 제자들도 있었다.
혼전 속에서 조극이 장극을 들고서 축운검파 소주의 검날을 밀어냈다. 그리고 왼손을 흔들며 찬란한 빛을 만들어내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조극은 석대 위를 한 번 훑어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때, 조극의 이마가 뒤집히며 은빛을 뿜는 눈알이 나타났다. 은빛 줄기가 이마에 자라난 눈에서 뿜어져 나와 석대 전체에 드리웠다.
석대 위에서 격전을 치르고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제자리에 멈춰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축운검파 소주의 검날도 조극을 가리킨 채로 굳어버렸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멈춘 순간은 아주 잠깐 후에 풀렸다.
몸이 풀린 사람들은 더 이상 싸움을 이어가지 않았고, 다들 복잡한 표정으로 조극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눈빛에 놀랍고도 경계를 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묶여버린 시간은 단 한순간이었지만, 바로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죽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조극은 모두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실력이 대단했다.
“흑마족, 이진종과 축운검파 도우님들, 다들 우리 청란성지의 제자들처럼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이곳에 들어온 것이겠지요? 곤륜성허는 선계의 승지입니다. 수많은 보물들이 이곳에 묻혀있습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으니 아마 그 사실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시간을 소모해버린다면 보물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다들 그걸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조극은 아래를 훑어보며 말했다.
정신없이 싸움을 이어가고 있던 제자들은 잠깐 멈춘 사이 이성을 되찾았다. 조극이 말을 꺼내자 제자들은 서로 전음을 보내며 논의했다.
막린회와 수봉월을 비롯한 사람들은 서로를 한 번 씩 바라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법보와 영기를 거두어들였다.
다른 제자들도 서로 한 번 씩 바라보더니 무기를 거두어들였다.
제자들에겐 모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종문과 사존에게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제자들은 조금 전에 섣불리 벌인 일들이 후회스럽기만 했다.
여기에 온 제자들은 실력이 비슷했기 때문에 싸워봤자 좋은 점이 하나도 없었고, 힘만 쓸 뿐이었으며 자칫 잘못하면 중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을 수 도 있었다.
“다들 현명할 거라고 믿습니다. 이곳을 보세요. 보월궁 밖에 드리운 결계는 다른 곳과 다릅니다. 힘을 합치지 않으면 절대로 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계를 깬다고 해도 그 안에 수호 인형이 많이 있을 겁니다. 이렇게 싸우다가는 아무도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겁니다.”
조극이 제자들을 훑어보더니 계속 말했다.
“그럼 조 도우님 생각은 어떤가요?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막린회가 물었다.
“제 생각이라면 힘을 합쳐서 궁전 문을 여는 게 우선인 것 같습니다. 궁전에 들어간 후에는 각자 갖춘 능력으로 보물을 쟁취합시다.”
조극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막린회가 입을 열었다.
“조 형이 한 말이 옳습니다. 우리 이진종은 싸움을 멈추고서 여러분과 연합할 의향이 있습니다.”
청란성지는 성주의 직전제자인 조극이 의견을 제시했으니 당연히 아무도 반박을 하지 못했다.
흑마족의 구십라도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축운검파의 소주는 검을 등 뒤로 꼽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의를 한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동의를 한 후에 각자 종문 제자들의 시신을 거두었다. 그리고 결계 앞으로 모였다.
제자들은 잠깐 의논을 하더니 대책을 하나 내놓았다.
이진종은 이미 진법을 깨어버릴 방법을 생각해냈기 때문에 앞장서서 결계 광막을 따라 진법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잠깐 사이에 금색 광막 주변에는 이미 보라색 깃발들이 꽂혀있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진법을 설치 한 후에 막린회는 다른 제자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조극, 축운검파 소주와 구십라를 비롯한 천위 후기 강자들 열 몇 명이 진법 앞으로 다가와서 법결을 시전하여 보라색 깃발 속으로 영력을 불어넣었다.
보라색 깃발 열 몇 개에서 빛이 번지며 보라색 짙은 안개가 흘러나와 금색 광막으로 스며들었다.
이어서 안개가 빠르게 소용돌이치며 금색 광막을 감쌌다.
안개는 빠른 속도로 광막 속으로 스며들었고, 보라색과 금색, 두 갈래 빛은 점점 희미해졌다.
이때, 스며들어간 보라색 안개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금빛도 조금씩 사라지며 좁은 입구가 한 뼘 정도 나타났다.
석대 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매우 좋아했다.
이대로 반각만 더 지나면 입구가 몇 배나 더 커질 것이고, 제자들은 보월궁으로 들어갈 수 있을 터였다.
제자들이 흥분된 기색으로 입구를 바라보고 있을 때, 이변이 생겼다!
쿵!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라색 번개가 허공에 나타나더니 깃발 하나를 부숴버렸다.
그러자 금색 광막을 두른 보라색 안개가 한참 동안 흔들리더니 점점 얇아졌다.
우르릉!
번개가 계속해서 튀어나왔으며 터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며 또 깃발이 몇 개 찢어져 버렸다.
금색 광막이 꿀렁이며 안개가 더는 뭉치지 않았다. 조금 전에 뚫은 작은 입구마저 조금씩 붙어버렸다.
“어떻게 된 거야?”
석대 위에 서 있던 제자들은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때, 허공에서 검은 그림자가 거친 물살처럼 몰려왔다.
“수호 인형입니다. 다들 준비하세요!”
조극이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
조극이 하던 말을 들은 제자들이 이제 막 법보를 꺼내 들었을 때, 보라색 번개 수십 갈래와 화염창이 석대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여기저기서 빛이 터졌으며 다양한 법보들의 빛이 번쩍였다!
이어서 날개가 두 개 달렸으며 사자 머리가 세 개나 자라난 삼수사영(三首獅鷹) 인형 열 몇 마리가 날개를 펄럭이며 제자들을 덮쳤다.
삼수사영 인형은 등에 금색 갑옷을 입은 전사들이 타고 있었다. 전사들은 금색 전도를 휘두르며 석대 위에 있는 제자들을 공격했다.
“전부 천위 후기 인형이잖아!”
한 이진종의 제자가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석대로 내려온 삼수사영들은 세 머리에 달린 입을 전부 벌리며 보라색 번개, 타오르는 화염 그리고 날카로운 칼바람을 동시에 뿜으며 족히 석 장은 되는 삼색 회오리를 열 몇 갈래나 만들어냈고, 회오리는 허공에서 얽히고설키더니 또 다시 제자들을 공격했다.
몇몇 이진종의 제자들이 힘을 합쳐 동시에 법결을 시전하였다. 제자들이 들고 있던 법보에서 빛이 번쩍이며 높이가 십 장 정도 되는 보라색 번개벽을 만들며 삼색 회오리를 막았다.
펑!
삼색 회오리가 보라색 번개벽에 부딪치며 벽을 찢어버리려고 했다.
번개벽은 ‘칙칙’대는 소리를 내며 간신히 삼색 회오리를 막아냈다.
이때, 벽 끝에서 또 회오리가 하나 더 날아오더니 먼저 날아온 회오리와 합쳐지며 보라색 벽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이진종의 제자들 중에 한 명은 미처 물러나지 못해서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그의 몸통이 그대로 갈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