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78화 (578/916)

578화. 나타나다

“검진!”

축운검파의 소주는 금색 갑옷을 입은 전사 한 명을 향해 장검을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소주가 하는 말을 들은 축운검파의 제자들은 세 명이 한 조로 모이더니 ‘천지인(天地人: 하늘과 땅과 사람)’을 기반으로 한 삼재검진(三才劍陣)을 몇 개 만들었다.

이 검진은 세 명이 진을 한 개 이루는 것이었는데 분리되었을 때는 서로를 호위할 수 있었으며 힘을 합쳤을 때는 막강한 위력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것은 공격과 수비를 모두 할 수 있는 기본 검진이었다.

검진을 형성한 축운검파의 제자들은 단번에 삼색 회오리를 터트렸으며 삼두사영 세 마리도 물리쳤다.

하지만 축운검파의 제자들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몇몇 전사들이 삼수사영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검진으로 날리는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곧바로 검진 가운데를 공격했다. 전사는 몸을 터뜨리는 대가로 검진 가운데에 있던 제자를 죽여 버렸다.

가운데에 있던 제자가 삼재검진에서 핵심이었다. 만약 가운데에 있던 제자가 전투력을 잃게 된다면 검진은 곧바로 파괴되었다.

“말도 안 돼! 영지가 없는 인형들이 어떻게 검진을 깨는 방법을 알고 있지?”

막린회가 깜짝 놀라며 소리 질렀다. 이진종의 제자들이 쓰던 사방진뢰대진도 산산조각이 났다.

흑마족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비록 흑마족들은 육신이 강했으며 기질이 사나웠지만 마기로 인형을 공격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흑마족들은 인형이 공격을 하자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진법이 쓸모가 없어진 데다 인형들의 실력이 막강해서 세력들은 전부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그리고 금색 결계 근처에서 쫓겨났다.

이때, 조극이 장극을 세로로 휘두르자 장극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며 단번에 금색 전사 한 명을 두 토막으로 잘라버렸다.

조극은 눈에 불을 켜고서 전투 현장을 훑어보았다. 이때 보라색 그림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흥, 그렇군!”

조극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서 조극은 몸이 희미해지며 석대를 짚더니 삼수사영 인형 무리로 찔러 들어가 가운데에 있던 한 마리를 향해 공격을 했다.

“죽어!”

조극이 큰 소리를 지르며 흑백 빛을 감은 장극을 앞으로 찔렀다.

이때 자릉은 삼수사영 인형의 등에 앉아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강력한 영력이 습격을 해오는 걸 느낀 자릉은 눈을 번쩍 뜨며 깜짝 놀라서 보라색 빛을 날렸다. 그리고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자릉이 타고 있던 인형이 세 머리를 쳐들며 삼색 회오리를 날렸다.

펑!

삼색 회오리와 흑백 빛이 장극 끝에서 터져버렸다.

조극이 또 다시 장극을 휘두르며 자릉과 싸움을 치렀다.

자릉이 통제를 할 수 없게된 인형들은 순식간에 약해져서 더는 진법을 공격하지 못했다. 그리고 제자들이 반격을 이어가자 인형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막린회와 구십라도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인형을 죽이라며 명을 내린 후에 조극과 함께 자릉을 가운데로 포위했다.

세 사람에게 둘러싸였지만 자릉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웃는 얼굴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

“어찌된 일입니까? 조 형, 이 아이는 청란성지의 제자가 아닙니까?”

막린회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조극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왜 여기 있는 수호 인형들을 조종하고 있지?”

조극은 자릉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자릉은 조극이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는 석대에서 부서지는 인형들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결연한 기색을 드러냈다.

“흥, 염치없는 도둑놈들. 선자궁의 보물을 넘보다니. 내가 살아있는 한, 너희가 보월궁에 발을 들일 일은 없을 거야. 너희를 곤륜에 묻어 버리겠어!”

자릉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순간, 자릉은 얼굴과 팔에서 보라색 부문이 줄줄이 나타나며 보랏빛이 번쩍였다.

자릉에게서 흘러나오는 영력 파동은 매우 격렬하고 불안정했고, 이제 곧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큰일이다. 저 여자가 옥석구분(*玉石俱焚: 선인과 악인이 모두 함께 재앙을 당함)을 시전하려 한다!”

조극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큰소리를 지르며 가장 먼저 뒤로 물러났다.

막린회와 구십라도 빠르게 석대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석대에 서 있던 사람들은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아무도 물러나지 않았다.

“죽어 버려!”

자릉이 외치며 강렬한 빛을 뿜어냈고, 곧 터지기 직전이었다.

이때, 부드러운 빛이 허공에서 쏟아지며 자릉에게 드리웠고, 빛이 드리우자 아주 불안했던 자릉의 영력 파동은 차분해졌다.

자릉이 고개를 들어 부드러운 빛 속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자릉이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부들부들 떨며 속삭였다.

“주인님……”

하얀빛이 허공에서 번쩍이며 커다란 연꽃이 나타났다. 연나가 파란색 궁장을 입고서 연꽃 위에 서 있었다.

연나는 검은 머리를 곱게 빗었으며 하얀 옥 장식을 머리에 꽂고 있었다. 절세미인은 얼굴에 코가 오뚝하게 솟아 있었으며 입술은 벚꽃 같았다. 연나는 마치 정교하게 빚은 조각상처럼 얼굴에 흠잡을 곳이 하나도 없었다.

연나는 옷자락이 바람에 흩날리며 흰색 꽃들과 어우러져서 마치 선녀 같았고, 평범한 사람이 절대 풍길 수 없는 다른 세상의 기운을 풍겼다.

석대에 서 있던 사람들은 전부 넋이 나간 채로 고개를 들어 연나를 바라보았다.

“보화…… 성조……”

구십라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구십라 옆에 서 있던 흑마족들은 구십라가 하는 말을 듣더니 전부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다.

“성조? 아직 나를 성조로 생각하기는 하는 건가?”

연나는 차분한 눈빛으로 흑마족들을 훑어보더니 아무런 감정도 섞이지 않은 말투로 물었다.

“성…… 성조님, 용서해주십시오……”

흑마족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전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지.”

연나는 말을 하며 손으로 법결을 시전하였다. 그러자 연나 앞에 빛이 번쩍이며 칠색 나뭇가지가 나타났다.

“칠보묘수!”

구십라는 가볍고도 나지막하게 소리를 냈다.

조극이 눈에 빛을 뿜으며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연나는 칠보묘수를 들어 올리더니 가볍게 휘둘렀고, 나뭇가지 끝에서 일곱 가지 빛이 밝아졌다.

흑마족들은 발밑에 갑자기 커다란 연꽃이 피어나더니 흑마족들을 감싸버렸다.

연꽃에서 빛이 반짝이자 흑마족들이 전부 사라져 버렸다.

“성계 강자다!”

누군가 사람들 속에서 소리를 질렀다.

삼대 성지의 제자들은 연나가 풍기는 기운 파동이 밀려오자 시끌벅적해졌다.

누가 먼저 선두로 달렸는지 몰라도 석대에 서 있던 제자들은 뿔뿔이 석대에서 내려와 황급히 주변으로 도망갔다.

연나는 허겁지겁 도망가는 제자들을 훑어보며 몸에서 일곱 가지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한 손으로 허공을 몇 번 찍자 보월궁의 하늘에 고리처럼 생긴 삼 층 금제 진법이 나타났다.

진법에서 하얀빛이 날아와 삼대 성지 제자들의 몸에 드리웠다.

하얀빛이 드리운 순간, 제자들이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자 연나는 들어 올렸던 손을 다시 내려놓았다. 연나는 안색이 조금 피곤해 보였다.

연나는 다시 자릉을 바라보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 * *

곤륜성허 속, 어떤 공간.

제단의 바닥에 하얀빛이 갑자기 생기더니 진법 부문이 줄줄이 나타났다.

이어서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진법에서 떨어져 나왔다. 모두 사라진 삼대 성지의 제자들이었다.

조극은 진법에서 나오자마자 흑백 빛을 내뿜는 장극을 몸 앞으로 치켜들었다.

조극은 몸을 살짝 비틀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함께 전송된 제자들이 있었다. 제자들은 둥그렇고 커다란 제단 위에 서 있었는데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제단 주변에는 화려한 꽃무늬가 새겨진 백옥 돌기둥들이 여덟 개 서 있었고, 돌기둥은 하늘 높이 솟아 있었으며 높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여긴…… 여긴 어디야?”

누군가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로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같은 처지에 놓인 제자들은 아무도 그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제자들은 전부 경계하며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수호 인형들을 대비하고 있었다.

조극은 이성을 되찾고는 주변에 있는 백옥 돌기둥들을 바라보았다.

조극이 기둥을 바라보자 눈앞이 희미해지며 백옥 기둥에 새겨진 꽃들이 꿈틀거리면서 활짝 폈고, 꽃에서 눈부신 일곱 가지 빛이 흘러나왔다.

꽃을 바라보던 조극은 머리가 묵직해지며 눈앞이 점점 흐려졌고, 또한 머리가 지끈거렸다.

조극은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흉악한 인형들이 나타나서 조극을 노려보며 덮치려고 했다.

“하!”

조극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장극을 앞으로 휘둘러 가장 가까이에 있던 갑옷 인형을 찔렀다. 장극에서 빛이 마구 뿜어져 나와 빽빽하게 날아갔다.

퍽!

빛줄기가 순식간에 인형의 가슴을 뚫어 버렸고, 인형은 처참하게 소리를 지르더니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조극, 너 뭐하는 짓이야?”

축운검파의 소주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조극의 이마가 뒤집어지며 세로로 생긴 눈알이 나타나더니 은빛을 뿜어냈다.

은빛이 나타나자 조극은 다시 이성을 되찾았다. 정신을 가다듬고서 앞을 바라보니 축운검파 소주의 옆에 서 있던 축운검파 제자는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뚫려있었고, 그 제자는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돌기둥을 쳐다보지 마세요. 환각 진법입니다.”

조극은 축운검파 소주가 호통을 치는 건 신경 쓰지도 않고서 큰소리로 외쳤다.

조극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삼대 성지의 제자들 몇 명은 마치 귀신이 들린 것처럼 법보와 무기들을 꺼내 들더니 옆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했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큰 부상을 당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제자들이 다가와서 말렸지만, 귀신이 들린 제자들은 이성을 잃고서 말리려는 제자들을 죽이려 들었다.

난동을 피우는 무리들을 제지하지도 못했는데 또 다른 무리들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점점 많은 제자들이 이성을 잃으며 제단 위는 난장판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핏빛이 사방으로 튀었다.

간신히 이성을 되찾은 몇몇 제자들은 제단 변두리를 향해 날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변두리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막고서 있어 절대 뚫고서 지나갈 수 없었다.

제자들은 이대로 포기를 할 수 없었다. 몇몇 제자들은 하늘 위로 날아가서 도망을 치려고 했지만 어둠 속에 빠져버려 소리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조극은 무엇인가 생각난 듯이 금색 옥결을 하나 꺼내들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부숴버렸다.

그러자 금빛 소용돌이가 나타나서 조극의 몸을 감싸고는 그곳에서 사라져 버렸다.

막린회는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막린회는 이진종 내문에서도 뛰어난 제자였기 때문에 그만이 쓰는 방법이 있었다. 막린회는 간신히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막린회는 미친 듯이 싸우고 있는 만호종과 수봉월을 한번 쳐다봤다. 그리고 백옥 부채 한 개를 꺼내서 몇 배나 부풀렸다.

이어서 막린회는 부채에 피를 한 모금 뱉어냈고, 백옥 부채가 핏빛으로 변하며 빛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막린회가 손을 흔들자 부채는 빛이 강력해지며 넓게 펼쳐졌고, 막린회가 부채에 뛰어올랐다.

부채에서 핏빛이 반짝이더니 막린회가 부채와 함께 사라졌다.

한편 축운검파의 소주는 동문 세 명에게 쫓기고 있었다. 소주는 눈에 차가운 빛이 어렸다.

축운검파의 소주는 이를 악물고서 왼손으로 법결을 시전하였다. 그러자 미간에 금색 검 모양 부문이 나타나며 금빛이 한 줄기 튀어나가 허공에 좁은 구멍을 하나 찢어놓았다.

축운검파의 소주는 그 구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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