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5화. 강자와 약자가 뒤바뀌다
“너!”
팽악은 놀랍고도 화난 눈으로 서문설을 바라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한 글자를 뱉어냈다.
석목도 예상하지 못한 얼굴로 서문설을 한번 바라보았다.
서문설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손에 든 금색 검을 휘둘렀다. 금색 검에서 금빛이 크게 번지며 공기를 빠르게 갈라놓았다. 그리고 커다란 검빛이 번지더니 팽악을 향해 찔러갔다.
서문설이 팽악과 맞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그는 가슴이 벅차서 큰소리를 지르며 여의빈철곤으로 횡소천군을 시전하였다. 곤봉이 찬란한 그림자로 변하여 팽악을 가로로 휩쓸어버렸다.
팽악은 얼굴이 퍼렇게 질려 잽싸게 푸른색 부적을 하나 꺼내더니 복부에 난 상처에 붙여놓았다. 그러자 거침없이 흘러나오던 피가 순식간에 멎어버렸다.
이어서 팽악은 입으로 무엇인가 중얼거리며 머리 위에 뜬 청동고정에 하얀빛을 한 줄기 날렸다.
윙!
커다란 종 허영이 팽악 주변에 나타나더니 팽악을 안으로 감쌌다.
땡! 땡!
검빛과 곤봉 그림자가 종 허영에 쏟아지며 큰소리가 울려 퍼졌고, 팽악은 종을 뒤집어 쓴 채로 검빛과 곤봉 그림자 속에 묻혀버렸다.
석목이 천천히 허공에서 내려왔다. 석목은 기쁜 기색이 아니라 심각한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검빛과 금빛이 흩어지자 종 허영이 나타났는데 종은 흠집 하나 없이 그대로 있었다.
허영 속에 숨어 있던 팽악은 안색이 이미 완전히 돌아왔다. 복부에 난 상처도 사라졌으며 옅은 흉터만 남았다.
석목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서문설도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 그래! 명색이 이진종의 내문 제자인 서문설이 저 놈을 도와 나를 공격하다니. 오늘 내 손으로 없앨 목숨이 하나 더 늘었구나!”
팽악은 서문설을 쳐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서문설이 콧방귀를 뀌며 입으로 중얼거리자 금색 검이 서문설의 머리 위에서 날아왔다.
서문설이 두 손바닥을 한번 비비자, 금색 검에서 금빛이 크게 번지며 귀를 찢는 날카로운 검풍이 불었다.
이어, ‘칙칙’대는 소리와 함께 서문설 주변에 빛이 번쩍이며 금색 검영이 네 갈래 나타났다. 검영의 길이는 십 장 이나 되었고 검날에는 금색 부문들이 맴돌고 있었다. 이어 번개가 검영 위에서 튕기며 ‘칙칙’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참(斩)!”
서문설이 맑은 목소리로 소리 지르며 가느다란 손을 흔들었다.
검영 네 갈래가 날아올라 순식간에 허공을 가로질러, 엄청난 기세로 팽악이 뒤집어쓰고 있던 종 허영 위에 부딪쳤다.
종 허영은 격하게 흔들렸는데 마치 들끓는 물과 같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팽악은 마음을 졸이며 흔들리는 종을 바라보았고, 다행히 검영도 부서져버려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심장을 다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이때, 연이어 소리가 울려 퍼졌고, 팽악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동공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한쪽에 있던 석목이 곤봉을 미친 듯이 휘두르고 있었고, 금색 곤봉 그림자가 흩날리며 하얀 기류가 흘러나오면서 방대한 영력이 팽악을 압박했다.
곤봉 그림자와 하얀 기류가 빠르게 합쳐지며 금색 회오리 기둥을 만들어냈다. 허공에는 어디에서 밀려왔는지 모를 칠흑 같은 먹구름이 둥둥 떠 있었는데 먹구름 속에서 굵은 번개가 꿈틀거리며 천둥소리를 냈고, 허공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천지무극!”
이번에 시전한 천지무극은 예전보다 위력이 열 배나 더 강력했고, 하늘에 떠 있던 먹구름이 주변 십 리 안에 모두 드리웠다.
“가라!”
석목이 여의빈철곤으로 허공을 가리키자, 허공에서 굵은 번개가 우수수 쏟아졌다. 마치 거대한 금룡이 팽악 주변에 드리운 허영에 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쾅, 쾅!
종 허영이 격하게 흔들리며 빛이 미친 듯이 번쩍였다.
팽악은 하얗게 질려버린 안색으로 빠르게 법결을 하나 시전 하더니 그제야 종빛이 밝아지며 허영도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팽악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허공에 뜬 먹구름이 용솟음을 치며 또다시 굵은 빛이 하나 나타나서 종 허영에 무겁게 떨어졌다.
때앵!
종 허영이 또 미친 듯이 흔들렸다.
종의 울림이 가시기도 전에 또 번개가 하나 떨어졌다.
금색 번개들이 끊임없이 종 허영 위로 쏟아지자 허영은 쉴 새가 없었다.
팽악은 두 손을 종에 딱 붙이고서 물을 퍼붓듯 몸속에 깃들었던 진기를 불어넣었고, 다시 허영을 안정시키려 시도했다.
하지만 굵은 번개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종 허영은 점점 격하게 흔들렸으며 빛도 점점 어두워지더니 수십 번 번개를 받아낸 종은 결국 터져버렸다.
“말도 안 돼!”
팽악은 믿기지 않는 듯이 중얼거렸다.
천위 후기 후배 두 명이 팽악이 두른 방어벽을 뚫어버리리라곤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이때, 석목이 중얼거리며 여의빈철곤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러자 먹구름 속에 드리운 번개가 번쩍였고, 번개 수십 갈래가 동시에 팽악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팽악은 성계 중기 존재였다. 물론 당황하긴 했지만 곧바로 정신을 가다듬고서 머리위에 떠 있던 종에 피를 한 모금 뱉어냈다.
그러자 종에서 빛이 크게 번지며 순식간에 크기가 수십 배나 불어났다. 그리고 겉에 빠르게 맴도는 부문들을 휘감은 채 빛들을 줄줄이 뿜어내어서 번개를 막아냈다.
펑, 펑, 펑.
금색 번개 수십 갈래가 다시 종에 쏟아지자 격렬한 흔들림은 순식간에 멈추었으나 ‘쩍’하는 소리와 함께 종 허영 위에 균열이 생겼다.
팽악도 드디어 두려운 표정을 드러냈다. 청동고정은 오래전에 유적지에서 찾아낸 등급이 높은 법보였다. 청동고정과 동급인 다른 법보라 할지라도 결코 쉽게 망가트릴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법보였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이렇게 가볍게 부셔져 버렸다!
금색 번개들이 드리운 범위는 매우 넓었고, 팽악이 가까운 곳에 멈춰 세웠던 금색 용 모양 비주도 번개를 맞아서 ‘펑’하고 부서져 버렸다.
팽악이 움직이기도 전에 석목이 곁에 나타났다.
석목의 여의빈철곤에서 하얀 화염이 번지며 금색과 하얀색이 번갈아가면서 번쩍였고, 곤봉이 풍기는 기운은 엄청나게 세차고도 강력했다.
곧바로 석목이 큰소리를 지르며 활활 타고 있던 곤봉을 휘둘러 청동고정을 내리쳤다.
“맹호출동!”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딱 한 번 크게 울리더니 팽악과 청동고정이 동시에 수십 장 멀리까지 튕겨 날아갔다.
갈라졌던 균열이 빠르게 벌어지며 ‘쾅’하는 소리와 함께 찢어져 버렸다.
풉!
팽악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입에서는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이게 말이 되느냐!”
팽악은 반쯤 미친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고작 백 년 전 일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팽악은 석목은 물론 석목보다 실력이 더 뛰어난 여자까지 손바닥에 둔 채로 갖고 놀았다.
하지만 불과 백 년이 지난 오늘, 팽악은 처참하게 당했다. 심지어 오랫동안 아껴 두었던 법보까지 꺼내 들었는데도 석목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당신과 엮이고 싶지 않았소. 그런데 굳이 여기까지 쫓아오지 않았는가?”
석목이 가볍게 말을 내뱉으며 다시 곤봉 그림자를 휘날리며 팽악을 공격했다.
팽악이 자리한 다른 한 쪽에서 그림자가 번지더니 서문설이 나타났다. 서문설의 몸에 하얀빛이 크게 번지며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오며 수많은 눈꽃이 휘날렸다.
흩날리는 눈꽃들 속에서 얼음이 반짝였다. 이어서 굵은 얼음 기둥이 나타나더니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팽악에게 밀려갔다.
팽악은 놀라서 차가운 바람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으며 팔짱을 낀 채로 손바닥 자국을 만들어냈다.
이어서 팽악 주변에 굵은 번개가 줄줄이 나타나더니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따끔한 통증이 느껴지는 빛들이었다.
번개를 온몸에 휘감고 있는 팽악은 마치 뇌신(雷神) 같았다.
팽악이 두 손을 앞으로 뻗자, 번개가 손바닥에서 튀어나와 왼쪽과 오른쪽에 번개벽을 하나씩 만들어냈다.
곤봉과 얼음 기둥이 두 벽에 떨어졌다.
석목은 안색이 살짝 일그러졌다. 손이 강한 힘 때문에 마비가 된 것 같았다. 곤봉 그림자는 마치 단단하기 그지없는 강철벽에 부딪친 것처럼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뿐만 아니라 번개가 여의빈철곤을 타고서 몸까지 흘러와 석목은 몸도 마비가 되는 것만 같았다.
석목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발을 짚어 열 장 밖으로 물러났다.
서문설도 석목과 비슷한 마비 증세를 느꼈으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흥!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날 죽이려고 덤벼? 몹쓸 것들!”
팽악이 차갑게 웃자 번개가 더 크게 번졌고, 하얀 번개가 등 뒤에 커다란 뇌전 허영을 만들어냈다.
뇌전 허영은 몸은 사람 같았으나 머리는 새 같았는데 몸에 넉넉한 피풍의까지 두르고 있었다. 용 모양과 뱀 모양의 번개가 허영 주변에서 꿈틀거렸다. 그리고 하얀 번개가 작은 사람 모양으로 뭉치더니 허영의 몸 위에서 통통 뛰고 있었다.
새 머리에 박혀있는 두 눈은 한없이 고요했고, 깊은 눈에서 수많은 번개가 얽히고설키며 강력한 번개 파동을 뿜어냈다.
사람 모양 허영을 쳐다보던 석목은 순간 벼락을 맞은 듯이 얼굴이 굳어버렸다.
팽악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번개 허영을 만들어내느라 엄청난 진기를 소모한 모양이었다.
팽악이 코로 공기를 가득 들이마시더니 눈에서 사나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어서 팽악이 법결을 하나 시전하였다.
그러자 번개 허영이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자 번개가 더 크게 번졌고, 이어서 굵은 번개가 두 눈에서 뿜어져 나와 네모난 번개 부적 도장 두 개로 변하였다. 부적은 엄청난 속도로 석목에게로 향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천지에 있는 모든 천둥번개를 다스리는 신령과도 같았다.
그러자 석목이 다급하게 빈철곤으로 날아오는 부적 도장들을 막았다.
날아오던 부적 도장 두 개 중에 하나가 여의빈철곤에 부딪쳤다. 그러나 한 개는 석목이 막아내는 걸 뚫고서 가슴에 박혔다.
그러자 석목은 몸을 격하게 흔들면서 뒤로 ‘쿵, 쿵, 쿵’ 소리를 내며 밀려났다. 빈철곤도 힘 때문에 튕겨져 날아가서 석목은 손이 찢어져버렸고, 그의 손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하지만 석목의 가슴으로 향한 번개 도장은 마치 진흙탕에 빠져버린 듯이 가슴 속으로 쑥 빠져 들어가며 사라져 버렸다.
“뭐야!”
석목만 놀란 게 아니었다. 팽악도 안색이 굳어버렸다.
이때였다. 석목의 가슴에 칠색 빛이 번졌다.
조금 전에 날아온 번개 도장이 때마침 연나가 남긴 칠색 문양에 빨려 들어간 것이었다.
칠색 빛이 번쩍이며 하얀빛이 튀어나왔다. 그 빛은 조금 전에 날아 들어온 도장이었는데, 다시 가슴에서 튀어나와 빠른 속도로 팽악의 가슴 위에 떨어졌다.
안타깝게도 팽악의 가슴에는 칠색 문양이 없었기 때문에 도장이 박힌 곳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다. 팽악은 입으로 붉은 피를 토했고, 눈에는 온통 믿기지 않는 기색이 드리웠으며 등 뒤에 서 있던 새 머리 허영은 사라지고 없었다.
팽악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머리 꼭대기에서 금빛이 번쩍이며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색 곤봉이 하얀 화염을 감고서 날아와 ‘펑!’하는 소리와 함께 팽악의 가슴을 무겁게 내리쳤다.
팽악의 입에서 또다시 피가 쏟아졌으며 가슴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몸이 곧 찢어져 버릴 것 같았다.
이때 금색 검빛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팽악의 목덜미에서 멈추었다.
팽악의 머리가 한쪽으로 툭 꺾이며 떨어져 버렸고, 굴러 떨어진 머리에 박힌 두 눈에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두 눈은 천천히 빛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