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화. 전송에 차질이 생기다
석목이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다시 여의빈철곤을 거두어들이고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에 비치던 칠색 빛이 빠르게 사라졌다. 이번에는 정말로 힘을 다 써버린 것 같았다. 칠색 빛이 사라지자 가슴에 새겨진 문양도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다.
석목이 가슴을 매만지며 고개를 흔들었다. 칠색 문양이 지닌 힘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연나에게 물어봐야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석목은 여의빈철곤을 거두어들이고는 잠깐 숨을 고르며 팽악의 오른쪽 손가락에 낀 저장 반지를 바라봤다.
석목이 손을 흔들어 허공에 떠다니던 용 모양 비주의 파편을 저장 반지 속에 넣었다.
“이건 네가 가져.”
석목이 푸른색 저장 반지를 서문설에게 건네며 말했다.
“됐어.”
서문설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렇지만……”
석목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서문설이 말을 끊어버렸다.
“나는 이진종으로 다시 돌아갈 거야. 그런데 저 물건을 들고 가면 화를 부르겠지? 마음에 걸리면 나를 곤륜에서 데리고 나온 은혜를 갚았다고 생각해줘.”
서문설이 천천히 말했다.
이때, 찢어진 팽악의 시체에서 보라색 빛이 반짝이더니 팽악의 머리에서 튀어나왔다. 이어 빛 속에 든 작은 사람이 빠른 속도로 먼 곳을 향해 날아갔다.
“팽악의 신혼이야!”
서문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내가 갈게!”
석목이 큰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가슴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토템 허영이 나타났다. 토템의 머리 하나가 튀어 날아가더니 입을 벌리고서 작은 사람을 뒤쫓았다. 토템의 입에서 형태가 없는 흡인력이 뿜어져 나가 단번에 보라색 빛을 물어왔다.
보라색 빛이 석목의 손에 놓이자 이내 빛은 사라졌다. 그리고 팽악과 모습이 똑같은 아기가 나타났고, 아기는 석목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허덕이고 있었다.
석목이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팽악의 신혼을 쥐고 있는 손에서 검은빛이 크게 번졌다.
그런데 이때, 검은빛이 철침처럼 작은 아이를 쿡쿡 찔렀다.
얼굴이 팽악과 같은 작은 아이가 고통스럽게 허우적거리더니 ‘펑!’하고 터져버렸다.
“왜 그래?”
서문설이 물었다.
“성계 강자의 신혼은 역시 강력해. 강제로 혼을 뒤져보려고 했는데 먼저 자폭을 해버렸어.”
석목이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경지를 넘나들며 혼을 뒤지는 건 원래 쉬운 일이 아니잖아? 계속 가던 길을 가자.”
서문설이 말했다.
서문설이 재촉을 했지만 석목은 움직이지 않았다. 석목은 고개를 돌려서 서문설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공성 요새는 이제 못 갈 것 같아.”
“왜?”
서문설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팽악의 혼을 들여다보는 건 실패했지만 팽악의 잔혼에서 정보를 약간 얻어냈어. 팽악의 동생인 팽산이 요새에 있어. 팽산은 팽악이 죽은 이유를 어떻게 해서든 알아내려고 할 거야. 이렇게 돌아가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셈이나 다름이 없어.”
석목이 말했다.
“부공성 요새로 돌아가지 않고서 어떻게 여기서 떠나려고?”
서문설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괜찮아. 다른 수단으로 종문에서 설치한 전송 거점으로 갈 수만 있으면 돼.”
석목이 말했다.
“비차로 성해를 건너는 건 너무 위험해. 변장을 하고서 요새로 들어가는 쪽이 좋을 것 같아.”
서문설이 말했다.
석목이 손을 흔들었다.
“뇌적으로 변장을 했을 때도 팽악에게 들켜버렸어. 부공성 요새에는 성계 강자가 너무 많아. 변장은 너무 위험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조심해서 가.”
서문설이 말했다.
석목은 오매불망 그리워했던 여인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석목은 하고 싶던 많은 말들을 뒤로 한 채로 단 한 마디만 뱉어냈다.
“앞으로 이 성역은 점점 위험해 질 거야. 꼭 조심해서 다녀.”
서문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을 바라보는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서문설은 백옥비주를 타고서 망망한 성해에서 사라져버렸다.
석목은 떠나가는 서문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 * *
며칠 후.
푸른색 피풍의를 입은 석목이 청란성지의 거점인 전송 대전 밖에 나타났다.
“전송 대전엔 제자들이 교대를 할 때에만 들어올 수 있소.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오.”
한 청란성지의 제자가 대전 문 앞에서 석목을 가로막았다.
석목이 웃는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기운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현령벽을 흔들었다.
“아. 동문 사형이시군요. 제가 못 알아봤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청란성지의 제자는 석목이 풍기는 강력한 기운을 느끼자 안색이 굳었다. 그리고 석목의 현령벽을 한번 바라보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석목이 현령벽을 거두어들이고서 큰 걸음으로 대전으로 들어갔다.
전송 진법이 가동할 때를 기다리며 석목은 대전 가운데 놓인 진법 위에 서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드디어 다시 청란성지로 돌아가게 되었다. 석목은 주변의 반룡 기둥이 하나씩 밝아지는 모습을 바라보자 마음이 벅차올랐다.
“동부는 잘 돌아가고 있겠지. 채아 그 녀석은 지금 돌아왔을까 모르겠네……”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네 이놈, 어딜 가!”
이때, 대전 밖에서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며 강력한 기운이 대전 밖에서 흘러들어왔다.
굵은 보라색 전룡이 대전 밖에서 꿈틀거리더니 빠르게 날아 들어왔다.
“팽산!”
팽산의 얼굴을 알아본 석목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대전 밖에서 흉악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던 사람은 바로 팽악의 신혼 기억 속에 있던 팽산이었다.
쾅!
마지막 반용이 밝아지려던 찰나, 보라색 전룡이 ‘쿵’ 소리를 내며 전송진법에 떨어졌다.
보라색 번개가 터지며 하얀빛이 번쩍였다.
주변의 천지 원기가 한참 동안 들끓더니 석목의 몸이 공간의 힘으로 휙 빨려 들어갔다.
석목은 마치 수많은 칼들이 몸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의식을 잃어버렸다.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석목이 천천히 눈을 떴다.
석목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워 앉았다. 온몸이 욱신거렸으며 한참을 비칠거리다가 쓰러질 뻔했다.
석목은 힘겹게 상체를 세워 주변을 바라보았다.
주변은 나무들이 우뚝 솟아있는 울창한 숲이었다.
석목은 눈을 감고서 몸속을 들여다보았다. 내상을 심하게 입었으며 기운도 고르게 흐르지 못했다. 전송되는 동안 공간의 힘 때문에 찢겨서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석목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법결을 몇 갈래 시전하여 천천히 구전현공의 네 번째 단계를 시전하였다.
석목의 오른쪽 복부에서 푸른빛이 밝아지며 푸른색 가마가 하나 나타났고, 이어서 피부가 대부분 푸른색으로 변하였으며 피부 위에 나무 무늬가 줄줄이 나타났다.
작은 가마가 나타나자 주변 십 장 범위 안에 자란 나무들이 같은 속도로 흔들리며 푸른색 나무 속성 영기가 나무들에서 흘러나왔다.
푸른색 영력이 가득 날아와 석목 주변에 크기가 한 장 정도 되는 소용돌이를 형성하더니 전부 푸른색 가마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푸른빛이 흘러 들어가자 빛이 더욱 크게 번졌다. 공간의 힘 때문에 찢어져 생긴 상처가 눈에 띄는 속도로 치유되었다.
푸른빛은 계속해서 흘러 들어왔고, 석목이 입은 내상도 전부 회복되었으며 피부에 난 작은 상처들마저 하나, 하나 사라졌다.
잠시 후에 석목은 바닥에서 일어나 시원하게 소리를 지르고는 입은 옷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고, 조금 전보다 훨씬 생기가 넘쳐보였다.
옷매무새를 만진 후, 석목은 곧바로 영우비차를 불러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높은 하늘에서 석목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북쪽 수십 리 밖에 면적이 꽤나 넓은 성곽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서 곧바로 성곽으로 날아갔다.
* * *
일 각 정도 날았을 때, 발밑의 비차가 격하게 흔들렸다. 고개를 숙여서 바라보니 영우비차에서 빛이 끊임없이 번쩍이며 매우 불안해보였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빛은 완전히 꺼져버렸다.
영우비차는 영력을 잃은 채 아래로 떨어졌다.
석목은 등 뒤에 자란 날개를 펼쳐 허공에서 한 바퀴 빙 돌며 다시 영우비차를 거두어들였다.
“부석 성해를 가로질렀더니 비차가 많이 망가졌네. 한 번 크게 수리를 해야겠어.”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어서 석목은 두 날개를 펄럭이며 성곽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반각 후에 석목은 날개를 거두어들이고는 커다란 성벽 앞에 내려왔다.
“만검성(萬劍城)…… 여기가 거검성(巨劍星)이라고? 왜 이곳으로 전송이 된 거야……”
석목은 고개를 들어 성벽 위에 걸린 커다란 편액을 바라보니 헛웃음이 절로 났다.
거검성은 축운검파가 관할하는 다섯 부속 행성 중 하나였다. 청란성지가 다스리고 있던 서지성(西遲星)과 붙어있어서 두 성지의 변두리라 할 수 있었다.
전송진법을 쓸 때 방해를 받아서 석목은 청란성지로 돌아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더 멀리 전송되었다.
잠깐 망설이던 석목은 성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선 빨리 청란성지로 돌아갈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성문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온 석목은 펼쳐진 시끌벅적한 광경에 시선이 끌렸다.
성문 바로 앞에서 뻗어나간 넓은 길가에는 전부 높낮이가 다른 점포 건물들이 자리했고, 점포들 위엔 다양한 간판들이 걸려있었으며 안에서는 시끌벅적하게 물건을 파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붐볐으며 마차가 끊이질 않았다.
“축운검파의 부속 행성답게 검법을 수련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었군.”
길거리에는 검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석목은 감탄을 자아냈다.
석목은 청석길을 밟으며 성 안에서 약 반각 정도 걸었다. 만검성에는 연기를 하는 점포도 매우 많았다.
백 장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크고 작은 점포들이 백 곳이 넘게 줄지어 있었다.
평범한 연기 점포들과 달리, 만검성의 점포들 뒤뜰에는 검은색 굴뚝이 하나씩 서 있었다.
석목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들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추더니 그 중에 한 점포로 걸어 들어갔다.
* * *
높이가 삼 층인 이 점포 건물은 전체가 붉은색이었으며 이름은 ‘주령각(鑄靈閣)’이었다. 건물의 생김새와 내부 장식도 꽤 그럴듯해보였다.
석목이 걸어 들어오자, 한 남자가 새하얀 얼굴로 활짝 웃으며 석목을 맞이했고, 손을 굽히며 말했다.
“귀한 손님이 오셨군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제 비행 영기가 고장이 났는데 혹시 고칠 수 있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하하, 고객님 잘 오셨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점포가 가장 잘하는 일 중에 하나가 비행 영기를 만들거나 수리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석목은 손을 흔들었다. 영우비차가 빛을 반짝이며 바닥에 떨어졌다.
영우비차의 긁힌 자국을 훑어보던 남자의 새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고객님, 이 비차는 등급이 꽤 높은 것 같군요. 아마 상급 영기와 최상급 영기 중간 정도 될 듯싶은데요?”
“맞습니다. 만약 법보로 등급을 올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그 대가는 제가 톡톡히 치르겠습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객님 너무 죄송합니다만 이 누추한 가게에서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남자가 송구스러운 투로 말했다.
“음? 어째서 그렇습니까?”
석목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우선 이 비차는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그리고 등급이 너무 높을 뿐만 아니라 희귀한 바람 속성 영재도 필요합니다. 우리 가게에 있는 연기사들은 이 비차에 난 상처조차 해결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영기의 등급을 높이는 일은 고사하고 수리조차 못합니다.”
남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만검성에 있는 어느 가게로 가면 됩니까?”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제가 알기로 이 성에선 만검문 말곤 아마 아무도 수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남자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심각한 기색을 드러냈다.
만검문은 축운검파의 부속 세력 중에 하나였는데 거검성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석목은 만검문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만검문에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만검문의 연기사들은 수리할 수 있겠지만 그분들은 바깥일을 잘 받지 않습니다. 종문 밖 사람들을 위해서 수리를 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석목이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본 남자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럼 방법이 없단 말입니까?”
석목은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만 손님께서 직접 검이성(劍離星)에 다녀오셔야 합니다.”
남자가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