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87화 (587/916)

587화. 귀에 익은 소리

“검이성…… 왜 이렇게 귀에 익지?”

석목은 한참 기억을 되짚었지만 그 이름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검이성은 거검성에 속한 작은 행성입니다. 그곳에 ‘주용산장(鑄融山莊)’이라는 곳이 있는데 다양한 영기를 제련하며 수리하는 일을 전문으로 맡고 있습니다. 그곳에 가시면 수리를 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기의 등급까지 올릴 수 있는 연기사가 계실 겁니다. 그곳으로 한번 가보십시오. 다만 비용은 만만치 않을 겁니다.”

남자가 말했다.

“전송진법은 성 어느 곳에 있습니까?”

석목이 한참동안 침묵한 후에 물었다.

“동쪽에 한 곳이 있고, 만검문 안에도 한 곳이 있습니다.”

남자가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석목은 포권으로 인사를 하며 추영각에서 나와 동쪽으로 향했다.

* * *

반나절 뒤, 검이성의 주요 도시인 용릉성(熔陵城).

푸른색 피풍의를 두른 석목이 용릉성 동문을 지나 모래가 깔린 길을 밟으며 성 밖으로 걸어갔다.

석목의 손에는 조금 전 성에서 산 하얀 옥간이 하나 들려 있었고, 그 옥간은 검이성의 지도였다.

“검이성, 검이성……”

석목은 한 손으로 옥간을 매만지며 계속 중얼거렸다. 분명 어디서 들어본 곳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때, 석목의 신식이 갑자기 움직였다. 신식의 바다 속에 있던 번천곤에서 빛이 크게 번지며 기이한 파동이 흘러나왔다.

석목은 매우 강력한 기운이 벅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이 행성에 있는 무엇인가가 석목을 계속 부르고 있었다.

“이런 느낌은……”

석목이 가던 길을 멈추더니 두 눈을 감고서 자세하게 기운을 느꼈다.

잠시 후에 석목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소리를 질렀다.

“생각이 났어…… 검이성, 이곳이 검이성이라니!”

성 밖 길가에서 행인들이 전부 이상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이도 젊은 것이 벌써 정신병에 걸렸다니. 안타깝네, 안타까워……”

석목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날개를 펼쳐 ‘훅!’ 소리를 내며 하늘 위로 날아올라 먼 곳으로 날아갔다.

* * *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서 도착하는데 반시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석목은 산봉우리를 몇 개나 넘어서 붉은색 산골짜기로 날아갔다.

“느낌이 점점 강력해지고 있어. 분명 이곳일 거야.”

석목은 산골짜기 위 허공에 멈춰서 두 눈에 빛을 흘리며 산골짜기를 샅샅이 훑으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산골짜기는 매우 비좁았다. 커다란 화산 사이에 놓인 골짜기였는데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산골짜기 안에 자리한 푸른색 돌과 회색 기와로 지은 건물에서 검은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석목은 날개를 펄럭이며 산골짜기 입구에 내려섰다.

산골짜기 입구에 십 장 정도 되는 회색 보루가 두 암벽 사이에 자리 잡은 채 입구를 꽉 막고 있었다. 보루 밑에는 묵직하고도 두터운 검은 철문이 하나 있었다.

석목이 철문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들어서 위쪽을 바라보니 철문 위엔 ‘주용산장’이라는 네 글자가 반듯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런 우연이!”

석목은 감탄했다.

이때, 보루에 난 창문에서 검은 얼굴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굵은 목소리로 석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누구신가?”

“저는 석목이라고 합니다. 영기를 고치러 왔습니다.”

석목이 큰소리로 말했다.

“아, 손님이시군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얼굴이 검은 남자가 말했다.

잠시 후에 보루에서 무언가를 끌어올리는 소리가 울리며 묵직한 철문이 조금씩 올라갔고, 문구멍 안에서 팔뚝을 밖으로 내놓은 건장한 사내 한 명이 걸어 나왔다.

“손님, 따라오십시오.”

사내는 석목을 한번 쳐다보더니 곧바로 석목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골짜기는 길고 비좁았기 때문에 건물들이 전부 한 줄로 지어져 있었다.

양 옆에 들어선 암벽들 위에는 크고 작은 구멍이 수백 개 뚫려 있었고, 구멍에서 붉은색 불빛들이 번쩍였다.

석목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내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 * *

푸른색 대전을 몇 개 가로지른 후에 두 사람은 가장 안쪽에 있는 대전 안에서 멈추었다.

“이쪽으로 따로 오세요.”

사내는 석목을 데리고서 대전 왼쪽으로 걸어가더니 벽에 뚫린 문을 지나서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안에는 암벽을 파내어 만든 돌계단이 있었다.

돌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넓은 동굴에 도착했다.

“들어오세요. 저희 산장의 주인님이 안에 계십니다.”

남자는 석목을 안으로 모셨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석목이 들어오자, 몸집이 건장하고 얼굴이 붉은 남자가 석목을 맞이했다. 얼굴이 붉은 남자는 석목을 향해 인사를 하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후후, 귀한 손님이 오셨군요. 어서 오세요. 저는 주용산장의 장주인 축염무(祝炎武)라고 합니다.”

“저는 석목입니다. 직접 맞이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석목이 포권을 하며 인사를 하고는 말했다.

석목은 축염무를 대충 훑어보았다. 축염무는 수련 경지가 약하지 않았다. 천위 후기인 무인이었다.

“하하, 석 아우님, 젊은 나이에 이미 수련 경지가 천위 후기라니. 실로 대단하십니다.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축염무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다름이 아니라 비행 법기를 하나 수리하려고 하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석목이 말했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 영우비차를 꺼냈다.

축염무는 비차로 다가가 한번 훑어보더니 안타까운 투로 말했다.

“상급 영기군요. 재료도 좋고 연기도 꽤 잘된 편입니다. 그런데 석 아우께서 이 비차를 아껴서 사용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구 써서 망가졌군요.”

“혹시 수리를 할 수 없는 겁니까?”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하하, 우리 주용산장에서 수리할 수 없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저를 믿고 맡겨주세요. 이레 뒤, 새로운 비차를 맞이하게 되실 겁니다.”

축염무가 자신 있게 말했다.

“아, 장주님께선 혹시 이 영기의 등급을 더 높이실 수 있습니까? 제가 법보 파편을 좀 가지고 있는데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석목이 물었다.

“이 비차와 속성이 같거나 비행 법보에서 나온 파편이라면 시도해볼 수는 있습니다.”

축염무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손을 흔들어 용주 파편 열 몇 개와 둥그런 목판을 꺼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시 비용은 얼마나 듭니까?”

석목이 물었다.

“수리를 하는 비용은 최상급 영석 팔백 개입니다. 등급을 높이는 비용은 다시 논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축염무가 잠깐 침묵을 한 후에 말했다.

“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통쾌하게 응했다.

최상급 영석 팔백 개는 결코 적은 비용이 아니었다. 하지만 석목에게 그 정도 영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석목은 빨리 영우비차를 수리해서 청란성지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연나가 한 말처럼 공수자가 깃든 자취로를 사용하여 비차를 수리할 수도 있었지만 단 세 번뿐인 소중한 기회를 고작 법보의 등급을 올리는 데 쓰고 싶지는 않았다.

공수자는 영보급 영기를 제련하는 연기대사였다!

“허허, 석 아우, 역시 통쾌하십니다. 이레 동안 마음 편히 우리 산장에서 쉬다가 가십시오.”

축염무는 눈에 빛을 반짝이며 웃었다.

석목도 그러려던 참이라 웃으며 축염무가 내놓은 제안에 응했다.

“거기 누구 없느냐. 석 아우를 앞마당에 있는 객방으로 모셔라.”

축염무가 지시를 내렸다.

조금 전에 안내를 하던 사내가 다시 들어와 석목을 데리고 나갔다.

축염무는 멀어져가는 석목의 뒷모습을 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서 바닥에 널려있는 비차와 법보 파편들을 전부 거두어들였다.

* * *

석목은 사내를 따라 앞마당에 자리한 한 객방에 도착했다.

객방은 그리 큰 편은 아니었지만 방 안을 장식한 물건들은 매우 정교했고, 필요한 물품들도 전부 갖춰져 있었다.

석목은 신식을 보내서 객방을 한번 훑어보았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석목은 침상에서 가부좌를 틀고서 두 눈을 감고는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그렇게 몇 시진이 흘렀다.

어둠이 내려왔으며 차가운 달빛이 창을 뚫고서 들어와 석목의 몸에 드리웠다.

석목은 천천히 두 눈을 뜨더니 손으로 법결을 시전하였다. 파란색 수막이 나타나 석목의 기운이 조금도 흘러나오지 못하게 감싸버렸다.

석목은 침상에서 내려와 밖으로 걸어 나갔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석목은 곧바로 대전을 가로질러 산골짜기 뒤쪽으로 조심히 다가갔다.

산골짜기의 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대전은 불이 대부분 꺼져 있었으며 암벽에 뚫린 구멍에서만 불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제련을 할 때 나는 ‘탱, 탱’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여러 건물을 지난 석목은 낮에 왔던 가장 안쪽에 있는 대전에 도착했다.

그리고 왼쪽 돌계단 입구를 한번 바라보고는 대전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전에 도착하니 특유의 느낌이 점점 강렬해졌다.

석목은 대전 안을 에돌아 뒷벽으로 다가갔다. 대전 뒷벽에는 문이 하나 더 있었는데 진법으로 봉인이 되어있었고, 문에서 금빛이 흘러나왔다.

문 위에는 편액이 하나 걸려있었다. 편액에는 빨간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금지(禁地)’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석목은 금지구역 앞에서 잠깐 머무르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그리고 다시 왔던 길을 따라서 돌아갔다.

* * *

이레 뒤.

해질녘, 축염무의 석실 안.

“네? 하루가 더 걸린다고요?”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예. 석 아우, 비차는 이미 수리를 마쳤는데 지금 막 등급을 올리려고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하루 정도면 성공할 것 같습니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 산장에서 하루만 더 머물다 가세요.”

축무염은 진심을 다하여 석목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그럼 하루 더 신세를 지겠습니다.”

석목은 망설인 후에 대답했다.

다시 객방으로 돌아온 석목은 침상 앞에서 서성였다. 석목은 심각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잠시 후에 석목이 발길을 멈추더니 창밖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비차 수리를 끝낸 후에 움직이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군……”

* * *

어두운 밤, 검은 구름이 달을 가려 산골짜기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석목이 귀신처럼 객방에서 나와 빠르게 산골짜기로 향했다. 그리고 봉인된 대전 문 앞에 나타났다.

“금건팔극진(金乾八極陣)……”

석목이 주변을 훑어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하얀 골편을 몇 개 꺼내서 진법 주변에 꽂았다.

잠깐 사이에 대전 문에 적힌 팔각형 진법 주변은 이미 하얀 골편들로 가득했다. 골편은 더 큰 진법을 만들어서 원래 있던 진법을 둘러쌌다.

석목이 두 손가락을 붙이며 입으로 현묘한 법결을 외웠다.

금제 진법 밖에 설치된 진법에서 누런빛이 줄줄이 나타났다.

빛들이 하얀 골편에서 뿜어져 나와 위로 뻗어나가면서 팔극봉금진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금제 진법에서 내뿜던 금빛을 전부 삼켜버렸다.

석목이 허공에 주먹을 쥐자 진법 두 개가 동시에 흔들리며 전부 찢어져 버렸다.

봉인을 찢은 후에 석목은 대전 문을 열고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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