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화. 두 번째 보장
대전 밖으로 나오니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난 땅이 훤히 펼쳐졌다. 그 위에는 모양이 다양한 조각상들이 줄줄이 서 있어서 한층 더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빈 땅 양쪽에는 암벽이 백 장 앞까지 이어져 있었으며 그 끝엔 두 암벽이 합쳐지는 골짜기의 끝이 있었다.
이때, 먹구름을 뚫고서 달빛이 쏟아져 산골짜기를 환하게 비추었다.
석목은 풀숲에 서 있는 조각상들을 일일이 살펴보았다. 이때, 검은색 석상에서 빛이 반사되어 반짝였다.
석상은 크기가 세 뼘 정도 되었는데 모양새가 매우 투박했고, 달빛에 조각상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났는데 얼핏 보면 작은 아이 같기도 했으나 또 원숭이 같기도 했다. 석상은 손으로 귀를 긁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익살스러웠다.
석목은 석상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마음속에서 친근한 느낌이 몰려왔다.
이때, 번천곤에서 갑자기 빛이 크게 번지더니 격렬하게 흔들렸고, 번천곤에서 복잡한 부문이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석상도 무엇인가에 대답을 하듯 빛이 줄줄이 나타났다.
석목은 깜짝 놀라서 여의빈철곤을 꺼내 들고는 대전 문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이곳은 매우 은밀한 곳이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석상에서 나던 빛이 천천히 사라졌다. 산골짜기도 다시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석목은 다시 석상을 바라보며 얼굴에 심각한 기색을 드러냈다.
석목은 잠깐 멈칫하더니 앞으로 걸어가 오른손을 뻗어서 검은 석상을 매만졌다. 석목의 손에서 빛이 튀어나왔는데 그것은 석목의 붉은 피였다.
피가 스며들자 검은 석상이 순식간에 눈부신 빛을 뿜어내며 석목의 몸에 드리웠다.
붉은빛이 번쩍이자 석목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이때, 양 옆에 솟은 암벽들에서 빛들이 열 몇 갈래 날아오며 골짜기로 내려왔다.
“큰형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 놈이 왜 갑자기 사라진 겁니까?”
축염무와 닮은 남자가 초조해하며 말했다.
“염호, 다급해 하지 마라. 내가 봤을 때 저놈은 지하에 있는 비밀의 방으로 들어간 것 같구나. 저놈이 나오면 지하에 있는 보물들은 전부 우리 것이 될 거야.”
축염무는 두 눈에 빛이 번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히히, 장주님. 우리가 이곳에서 수백 년간 기다렸잖습니까? 드디어 저놈이 나타났군요.”
키가 작고 이마에는 뾰족한 뿔이 자라난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 * *
석목은 붉은빛에 감싸여 있었다. 눈앞이 컴컴해지며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어 석목이 둥그런 제단 위에 나타났다.
제단 위에 떨어진 석목은 곧바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등불 여덟 개가 빛을 뿜어내며 제단을 환하게 비추었다.
제단은 단 몇 장 정도 크기로 그리 크지 않았다. 제단 위에 새겨진 부문은 석목이 이곳에 드나들 수 있도록 한 간단한 전송진법이었다.
제단의 서쪽에 십자 모양 철판이 하나 서 있었으며 철판 위에 금빛 찬란한 갑옷이 한 벌 걸려있었다.
석목이 제단으로 다가갔다. 갑옷에는 금색 비늘이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가슴 부위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었으며 어깨에는 용머리가 걸려 있었다. 또한 금비늘로 만들어진 띠를 허리춤에 두르고 있었고, 복부에는 사나운 사자 모양 자물쇠가 하나 채워져 있었다. 갑옷에서 강력하고도 천하무적인 기세가 풍겼다.
“백원왕이 남긴 두 번째 보장은…… 최상급 법보였어!”
석목이 메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석목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앞으로 뻗어 철판 위에 걸린 갑옷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때, 귓가에서 ‘윙’ 소리가 가볍게 들리며 두 손이 형태 없는 광막을 누른 것 같았다.
허공에서 광막이 펼쳐지더니 광막 위로 금색 갑옷을 걸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바로 손에 금색 곤봉을 들고 있는 위풍당당한 백원왕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흩어져 버렸으며 흩어진 자리에 작은 금색 글씨가 나타났다.
‘이 갑옷의 이름은 진룡쇄금갑(真龍鎖金甲)이다. 내가 현공을 대성하기 전에 입었던 보물 갑옷이지. 나와 함께 크고 작은 전투를 천 여 차례나 겪으며 내 몸을 한 번, 또 한 번 지켜 주었으니 그 가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내 후예가 조심히 다뤄 이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를 바란다.’
“저, 석목은 절대 이 갑옷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겠습니다.”
석목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허공에 대고서 맹세했다.
석목이 말을 떨어뜨리자마자 빛이 흔들리며 글씨가 사라져버렸다.
석목은 두 손으로 갑옷을 매만지며 핏줄이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갑옷이 철판에서 사라졌다가 곧바로 석목의 몸을 둘러쌌다.
금색 갑옷을 두른 석목은 몸을 죄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도 무겁지 않았다.
석목이 영력을 시전하자 진룡쇄금갑에서 빛이 크게 번졌다.
석목이 갑옷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전에 발밑의 제단에서 붉은빛이 번쩍이며 석목을 삼켜버렸다.
* * *
산골짜기에서 붉은빛이 반짝이며 석목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큰형님, 저 금색 갑옷은…… 최상급 법보가 아닙니까?”
축염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축염무가 천위 강자 열 몇 명을 데리고서 석목을 포위했다.
“석 아우, 그러시면 아니 되지요. 제가 비행 영기를 고쳐드렸고, 또 이곳에서 머물게 하며 대접을 해드렸는데 야밤에 제 산장의 금지구역으로 들어가서 제 법보를 훔치시다니. 가슴이 매우 쓰립니다!”
축염무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 축 장주님. 그만하시죠? 일부러 산장에 머물게 한 이유는 바로 제 핏줄에 깃든 힘으로 지하에 있던 보물을 빼내려 한 게 아닙니까?”
석목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축염무가 멈칫하더니 이내 안색을 바꾸며 말했다.
“하하, 이미 아셨군요. 그렇다면 사실대로 말씀드리지요. 수백 년 전, 이곳에 지하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로 온갖 방법을 다 써서 봉인을 풀려고 했지만 끝내 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레 전, 조용했던 봉인에서 빛이 밝아지더니 귀하신 몸이 산장으로 오시더군요. 그때 알게 되었지요. 이 보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가 다가왔다는 사실을요.”
“큰형님.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뭘 하시려고 이렇게 길게 하십니까! 그냥 죽여 버리고서 저 보물을 빼앗아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축염호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 입 다물라!”
축염무가 차갑게 호통을 쳤다.
축염호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이 축염무를 꽤나 경외하는 것 같았다.
석목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축염무가 석목을 쳐다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제 둘째 동생이 조금 미련한 편입니다. 연기 밖에 모르는 상놈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지요.”
“축 장주님,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석목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습니다. 석 아우는 역시나 통쾌하신 분입니다! 제게 맡기신 그 비행 영기 말입니다. 산장에서 제일인 연기종사 여려 명을 불러서 적잖이 공을 들여 얼마 전에 이미 법보급 영기로 승급을 시켰습니다. 그걸 해내느라 산장에 모아둔 많은 희귀한 재료들을 써서 제가 피를 좀 많이 봤습니다! 이렇게 하시죠. 이 금색 갑옷 법보를 저에게 주실 수 있다면 재료 비용은 받지 않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축염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축염무는 잠깐 멈칫하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그것 말고도 제 산장의 보물 창고에는 꽤 좋은 법보들이 가득하니 석 아우가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골라도 좋습니다. 마음을 다해서 거래하길 희망하는데, 석 아우가 보기엔 어떻습니까?”
석목이 수련을 한 경지가 축염무와 비슷한데다가 지금 석목은 최상급 갑옷 법보를 두르고 있어서 축염무는 조금 신경이 쓰였다.
“축 장주님. 제 부탁을 받아서 비차를 수리해주셨으며 또 등급까지 올려 주셨으니 그에 상응하는 영석은 제가 고스란히 치르겠습니다. 이 진룡쇄금갑은 선배님이 특별히 저를 위해 남겨주신 물건이라 거래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석목은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서 말했다.
“그러니까 어찌되었건 보물 갑옷은 내놓지 못하겠다, 이건가?”
축염무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천위 후기 기운을 그대로 풍겼다.
“좋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축염호가 소리를 질렀다. 석목을 둘러싸고 있던 산장의 천위 고수들이 쓰는 영기 법보들이 빛을 뿜어냈다.
“말 더럽게 많네. 빨리 덤벼!”
석목이 콧방귀를 뀌며 손을 흔들어 여의빈철곤을 꺼내 들었다.
“공격!”
축염무가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축염무가 말을 내뱉자 석목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덮쳤다.
하지만 그들이 다가오기도 전에 석목의 등 뒤에서 흑백 빛이 번쩍이더니 두 날개가 뻗어 나왔다. 날개 위로는 회색빛이 흐르고 있었다.
석목이 날개를 펄럭이면서 자리에서 사라지며 순식간에 공격을 해오는 사람들을 향해 파고 들어갔다.
석목이 곤봉을 휘두르자, 금색 곤봉 그림자가 사방을 휩쓸었다.
산골짜기에서 빛이 반짝이며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중 세 사람이 금색 곤봉 그림자에 부딪쳐 튕겨져 날아가 버렸다.
그들의 몸통이 다시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석목의 까만 오른팔이 날아왔다.
공기 속에서 차가운 기운이 밀려오며 단번에 세 사람을 얼음 조각상으로 얼려버렸다.
한편, 석목의 등 뒤에서 적들 대여섯 명이 법보에 빛을 번쩍이며 석목을 습격했다.
석목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 왼팔에 하얀빛을 번쩍이며 습격해오는 사람들을 향해 휘갈겼다.
하얀빛은 속도가 너무 빨라서 피할 겨를이 없었고, 습격을 해오던 적들은 불에 활활 타오르며 순식간에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
축염무가 명령을 내린 후, 단숨에 천위 무인 열 몇 명이 죽거나 큰 부상을 입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석목을 가운데 두고서 둘러쌌다.
“구전현공! 청란성지 사람인가?”
축염무는 굳은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
“그래서?”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청란성지와 축운검파는 지금 원수가 되었으니 네놈을 살려두면 안 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것 같군. 네놈 시체를 만검문으로 끌고 가면 꽤 쏠쏠한 자원들과 바꿀 수 있을 것이야!”
축염무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조금 어리둥절했다. 의외인 정보를 갑자기 알게 되자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금 그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석목이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날 죽이겠다고? 실력도 없는 놈들이!”
“다 같이 덤벼! 죽여 버려!”
축염무가 다시 명을 내렸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천위 무인들은 서로 눈치만 살필 뿐 아무도 먼저 칼을 빼들지 않았다. 조금 전에 신의 위력을 내뿜은 석목이 너무 무서웠던 것이었다.
“죽어!”
허공에서 축염호가 몸을 번쩍이며 소리를 지르더니 한 장 정도 되는 검은색 도끼를 휘두르며 석목을 향해 내리쳤다.
하늘에서 검은빛이 번쩍였다. 넓적한 도끼가 허공을 찢으며 사악한 기운을 감은 채 석목의 머리로 다가왔다.
하지만 석목은 콧방귀를 뀌며 피하지 않고, 여의빈철곤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펑!’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고, 빈철곤의 끝이 검은색 도끼날을 받치고 있었다.
부딪친 곳에서 굉장한 충격이 일어나며 기운 파동이 폭발하여 사방으로 퍼졌다.
축염호는 손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으며 도끼도 튕겨져 날아갔다.
석목이 들고 있던 여의빈철곤도 끊임없이 흔들렸고, 검은색 사악한 기운이 곤봉을 휘감으며 석목의 팔로 뻗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