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89화 (589/916)

589화. 동성성으로 돌아오다

석목은 다시 곤봉을 흔들어 검은 기운을 떨어트렸고, 그의 얼굴에 의외라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축염호는 수련 경지가 천위 중기였는데 들고 있는 도끼의 위력은 생각 보다 훨씬 강력했다.

“뭐야! 내 명을 거역하는 건가? 다들 장작과 함께 불타고 싶느냐?”

축염무는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하는 수 없이 다들 손에 빛을 번쩍이며 석목을 공격했다.

이때, 축염무 옆에 서 있던 삐쩍 마른 남자가 사람들 사이에서 벗어났다. 남자는 머리에 뾰족한 뿔이 하나 자라나 있었는데, 그 남자는 다가오지 않고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석목을 공격해오던 천위 무인들은 석목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채로 빙 둘러싸며 다양한 법기로 먼 곳에서만 공격을 퍼부었다.

석목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여의빈철곤을 휘두르며 날아오는 다양한 법기들을 일일이 물리쳤다.

이때, 석목 앞에 검은빛이 번쩍이며 거대한 도끼 허영이 사악한 기운을 감고서 다가왔다.

이번에 석목은 도끼를 막지 않고서 뒤로 물러났다.

쿵!

커다란 도끼가 땅에 꽂히며 깊은 균열이 생겨났고, 균열이 계속해서 갈라져 나가며 석목이 있는 곳으로 뻗어갔다.

석목은 그 자리에 서서 눈살을 찌푸리며 땅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굉장한 살기로군. 이제 나올 때도 되었지.”

석목 옆에 검은빛이 반짝이며 마기를 감은 분신이 나타났다.

“가!”

석목이 낮은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분신 주변에 마기가 용솟음치더니 순식간에 몸이 두 배나 커졌다. 분신은 머리가 두 개가 되며 팔도 네 개로 변하여 큰 걸음으로 축염호를 덮쳤다.

“흑마족 분신! 너는 대체 누구냐?”

축염무가 큰소리를 지르며 물었다.

석목은 축염무가 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서 축염호 무리에게 향했다.

축염무는 석목이 대답을 하지 않자, 몸에 빛을 번쩍이며 머리를 붉게 물들이고는 하늘로 솟았다. 그 모습은 마치 활활 타오르는 화염 같았다.

축염무가 손을 흔들자, 길이가 한 장 정도 되는 붉은 이룡언월도(螭龍偃月刀)가 나타났고, 이룡언월도에는 살아 숨 쉬는 듯이 생생한 용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축염무는 한 걸음 다가오더니 등 뒤의 언월도를 번쩍 들어서 앞을 향해 강하게 휘둘렀다.

석목은 지금 곤봉을 휘두르며 민소매를 입은 남자의 머리를 내리치고 있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뜨겁고 강렬한 기운이 빠르게 밀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잽싸게 돌아서서 바라보니, 길이가 이삼십 장 되는 붉은 화룡이 흉악한 모습으로 석목을 덮치고 있었다.

석목은 곧바로 곤봉을 치켜들었고, 곤봉 끝에서 금색 곤봉 그림자가 촘촘히 나타났다. 그리고 태산압정(泰山壓頂)의 기세로 화룡을 맞이했다.

“우르릉!”

강력한 한 방이었지만 붉은 화룡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격해오던 속도만 늦춰지며 땅 위를 향해 파고들었다.

석목의 곤봉도 반동 때문에 순식간에 뒤로 튕겼다.

이때, 석목의 눈앞이 희미해지더니 허공에서 검은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작은 몸집이 앞에 나타났다.

석목이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며 다시 곤봉을 거두어들이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려서 급한 대로 물갑옷만 한층 둘렀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입가에 음흉한 웃음이 어리더니 손에서 하얀빛이 번쩍였다. 이어 투명하고 뾰족한 무기가 석목의 가슴을 향해 찔러 들었다.

파란빛이 번쩍이더니 석목이 두른 물갑옷도 순식간에 터져버렸고, 뾰족한 송곳이 계속해서 찔러 들었다.

펑!

석목이 두르고 있던 갑옷에 송곳이 닿던 순간, 찬란한 금빛이 폭발했다. 수백 마리 금룡 허영이 갑옷 곳곳에서 번쩍이며 송곳이 찌른 자리로 모여들었다.

금룡 허영이 연달아 공격을 하자 송곳이 ‘퍽!’ 소리를 내며 부서져버렸다.

석목 앞에 나타났던 작은 사람도 큰 충격을 받아서 울부짖으며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석목이 차가운 얼굴로 손에 든 곤봉을 휘두르며 금색 빛을 날렸다.

펑!

작은 사람이 금빛에 맞아 터져버려 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한편, 머리가 두 개에 팔이 네 개 달린 몸으로 변신한 분신이 팔을 휘두르더니 천위 초기 무인 한 명을 납작하게 눌러버렸다.

분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법보가 많든 적든 전부 마기에 오염이 되어서 공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채 뒤로 밀려났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축염무는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고, 그는 붉은빛을 크게 드리우며 손에 든 대도를 휘둘러 ‘휙, 휙’ 바람 소리를 만들어냈다.

“구룡곤궐(九龍困闕)!”

한 장 정도 되는 붉은색 화룡 여덟 마리가 검영에서 꿀렁이며 먼저 나온 화룡과 함께 석목을 가운데로 둘러쌌다.

눈 깜짝할 사이, 아홉 마리 화룡이 석목 옆에서 끊임없이 맴돌았고, 그것들은 마치 화염 사슬 아홉 개 같았다. 화룡들은 둥그런 불벽처럼 조금씩 석목에게로 좁혀 들어갔다.

주변 온도가 순식간에 몇 배나 오르며 기운이 들끓고 있었다.

이때, 석목이 두르고 있던 진룡쇄금갑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석목은 여전히 화룡이 드리운 영압을 느낄 수 있었지만 뜨거운 열기는 조금도 전해지지 않았다.

“여기까지야!”

석목은 두 눈에 빛을 번쩍이며 소리를 질렀다.

이어서 석목의 등 뒤에 토템 허영이 나타나 빛이 크게 번지며 삼사십 장 정도 되는 구렁이 허영 여덟 마리가 나타났고, 구렁이들의 몸에는 금색 비늘이 펄럭이고 있었다.

이어 머리 여덟 개가 동시에 하늘 위로 향하더니 입을 크게 벌리고는 흉악한 눈빛으로 불벽을 물어뜯었다.

구렁이 여덟 마리와 아홉 갈래 화룡이 허공에서 얽히고설켰고, 구룡곤궐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서 부서져 버렸다.

“이건 아니야!”

축염무는 얼굴에 놀란 기색이 어렸다.

이때, 석목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곤봉을 위로 치켜들었고, 곤봉이 곤초에서 뽑혀 나와 촘촘한 부문을 감은 채로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금빛이 태양처럼 밝아지면서 산골짜기를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었다.

석목이 한 손으로 법결을 시전하자 곤봉에서 두려운 위력이 폭발하였다. 그리고 커다란 금색 곤봉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강하게 내리쳤다.

그 모습을 본 축염무는 얼굴에 두려운 기색을 내비쳤다가 다시 미친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축염무가 손에 든 이룡언월도에서 빛이 크게 번지더니 물통만 한 붉은색 화룡으로 변하여 금색 곤봉으로 향했다. 동시에 몸에서는 불꽃무늬가 줄줄이 나타나며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는 갑옷을 몸에 둘렀다.

우르릉!

격렬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골짜기에서 번개가 터졌고, 금색 곤봉 그림자가 끊임없이 번쩍이더니 붉은 용이 조각으로 부수어져 사방으로 퍼졌다.

먼지가 하늘을 휘감았고 수많은 돌들이 암벽에서 우르르 굴러 떨어졌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흩날리던 먼지가 가라앉으며 골짜기에 한 장 정도 되는 커다란 웅덩이가 하나 나타났다. 주변에 자리한 대전은 웅덩이에 반쯤 걸친 채로 무너져 버렸다. 축염무의 황폐한 시신이 웅덩이 속에 누워있었고, 그가 두르고 있던 화염 갑옷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한편, 석목의 분신도 이미 전투를 끝마쳤다. 분신은 손에 검은색 도끼를 들고 있었는데 마치 그 무게를 가늠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축염호를 비롯한 사람들의 시신이 분신의 발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석목이 입고 있던 진룡쇄금갑이 금빛을 반짝이며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석목은 축염무의 시신을 훑어보며 한 손을 흔들어 축염무가 손가락에 끼고 있던 저장 반지를 빼내서 자신의 손에 끼웠다.

이어 석목은 저장 반지 속에서 수리를 끝마친 비차를 꺼냈다.

비차는 원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네모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비차 양쪽에 검붉은 날개가 새롭게 달렸으며 앞머리 부분에는 용 모양 장식이 달려서 원래 비차보다 패기가 넘쳐 보였다.

“축 씨 형제의 공법은 별 볼일이 없었는데 연기 기술은 아주 뛰어나군! 이 비차를 이제 용우비차(龍羽飛車)라 불러야지!”

석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석목은 한 손을 흔들어 분신을 소환했다. 분신은 축염호가 쓰던 검은색 도끼를 들고 있었다.

“꽤 괜찮은 법보 같으니 앞으로 네가 사용하도록 해라.”

석목은 말을 하며 저장 반지 하나를 꺼내서 분신에게 끼워주었다. 그리고 검은 도끼 법보를 저장 반지에 넣도록 시켰다.

석목은 다시 분신을 거두어들이고는 용우비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흔들어 화염구 두 개를 아래로 던졌다.

용우비차에 달린 붉은 용 날개 두 쌍이 빛을 번쩍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장까지 날아올랐다.

“엄청난 속도로군!”

석목은 기쁜 기색을 내비치며 감탄했다.

* * *

한참 비행을 하던 석목은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비차 뒤에 박혀있는 나무 원판을 바라보았다.

원판은 빛이 반짝였으며 부문이 가득 새겨져 있었고, 원래 평평했으나 홈 여섯 개가 새로 생겨났다.

“이건 어디에 쓰는 거지?”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석목은 잠깐 멈칫하더니 최상급 영석 여섯 개를 꺼내서 홈 안에 박아 넣었다.

영석이 박히자 나무 원판에서 빛이 크게 번지며 금색 광막이 나타나 석목과 비차를 한 번에 안으로 감쌌다.

금색 광막에 육각형 무늬가 줄줄이 나타났는데 곤륜성허에서 본 상고시대 봉인 금제와 조금 비슷해 보였다.

나무 원판은 석목이 곤륜성허에서 찾은 법보들의 잔해로 만든 것이었다. 법보들의 잔해에서 흐르는 나무 속성과 비천학익목(飛天鶴翼木)이 비슷해서 함께 꺼냈는데 이렇게 묘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석목은 주먹을 쥐고서 금색 광막을 몇 번 내리쳤고, 광막에서 철과 같은 질감까지 느껴져 석목은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이 보호 광막처럼 단단하다면 성계 경지 아래인 강자는 전력을 다해도 절대 부수지 못할 터였다. 그리고 성역에서 오랫동안 비행을 해도 비차에 무리가 가지 않을 터였다.

용우비차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속도가 두 배나 더 빨라졌다. 비차는 하늘에 빛줄기를 그으며 검이성의 주요한 성인 용릉성으로 날아갔다.

* * *

며칠 후, 석목은 서지성에 자리한 전송대전에 도착했다.

전송대전은 사람들로 붐볐다. 거검성으로 가는 전송진법에 드리운 긴 줄이 대전 안에서 광장까지 이어졌다.

석목은 어제 만검성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목격했었다.

축염무의 입에서 두 성지가 매우 날카로운 관계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석목은 특별히 그 일을 알아보았다. 그제야 석목은 미양 성역의 달라진 정세를 대략이나마 알게 되었다.

삼대 성지는 백여 년 전에 곤륜성허에 들어간 후, 겉으로는 사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았지만 암암리에 갈등은 점점 심해졌다.

몇 십 년 동안, 삼대 성지는 갈등이 줄어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점점 격해져 최근에 드디어 폭발하였다.

그 중에 청란성지와 축운검파 사이에 벌어진 갈등이 가장 심했다. 충돌은 끊임없었으며 싸움도 빈번히 일어났다.

거검성과 서지성은 두 성지가 교차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대규모 충돌이 촉발되면 가장 큰 화를 입을 것이 뻔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다급하게 다음 행성으로 이동을 하려는 것이었다.

* * *

보름이 지났다. 여러 행성을 전전하던 석목은 드디어 동성성으로 돌아왔다.

하늘에서 눈꽃이 흩날렸으며 눈앞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멀리 있는 산과 풀밭, 그리고 호수 위에도 두터운 눈이 깔려있었다.

동성성은 지금 겨울이었기에 세상이 하얗게 변했으며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석목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감탄을 했다. 그해에 동성성을 떠나 전방으로 나간 후, 눈 깜짝할 사이에 백년이란 시간이 흘러서야 다시 동성성으로 돌아왔다.

석목은 묵묵히 앞으로 걸어갔다. 하얀 눈을 밝자 ‘뿌드득’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고,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전방에선 흑마족이 대거 침입하고 있었지만 이 모든 일들은 이제 석목과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석목은 전방에서 십 년 동안 주둔을 하며 임무를 다했기 때문이었다.

곤륜성허에서 일어난 일들을 겪은 후, 석목은 자신이 마주한 현실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더욱 명확하게 생각했다.

석목이 백원왕의 후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천정은 절대 석목을 가만두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연나는 천정이 이미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석목도 속수무책으로 죽기만을 기다리지는 않을 터였다.

석목은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수련 경지를 높일 생각이었고, 구전현공을 빨리 수련해야만 했다. 그래야 천정과 맞설 수 있었다.

한참 동안 눈길을 걷자 눈앞이 점점 맑아졌다. 그리고 석목은 몸을 날려서 청란성지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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