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0화. 일말의 희망
석목은 속도가 더욱 빨라져 몇 시진 만에 청란성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석목은 곧바로 산에 자리한 문을 뚫고 들어가 현령탑에 도착했다.
밖에서 오랜 세월을 떠돌아다녔지만 청란성지는 전혀 달라지지 않은 채 원래 그대로였다. 현령탑은 여전히 바삐 돌아갔으며 수많은 제자들이 각자 품은 목적 때문에 다급하게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제자들은 아무도 백 년 만에 돌아온 석목을 알아보지 못했다.
석목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웃던 얼굴이 심각한 얼굴로 바뀌더니 앞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석목은 자신의 영지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현령탑의 영석전으로 향했다. 가지고 있는 영석들을 전부 현령점으로 바꾸려던 참이었다.
그동안 석목은 많은 수련자들을 죽였다. 그 중에는 성계 존재도 몇몇 있었다. 성지로 돌아오는 길에서 석목은 성허에서 구한 재료들과 죽였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영기와 법보, 필요 없는 단약과 재료들을 팔아서 최상급 영석 사십만 개를 모았다.
잠시 후에 석목은 영석전에서 나왔고, 얼굴에 흥분된 기색이 어려 있었다.
석목의 현령벽에는 육십만 점이 넘는 현령점이 들어 있었다.
석목은 영석전에서 나와서 다시 성전각으로 향하며 탑령을 불렀다.
“탑령 선배님. 저는 구전현공 다섯 번째 단계와 그 이후에 있는 모든 공법 구결들을 바꾸려 합니다.”
석목은 탑령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올린 후에 말했다.
“구전현공은 청란성지의 삼대 조화신통 중에 하나로 다섯 번째 공법은 사만 현령점, 여섯 번째 공법은 팔만 현령점, 일곱 번째 십육만, 여덟 번째 삼십이만, 아홉 번째 육십사만 총 백 이십사만 현령점이 필요하다.”
탑령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은 현령점이 필요했다니. 단계를 뛰어 넘을 때마다 이전 단계보다 두 배나 많은 현령점이 필요했다.
“탑령 선배님, 제자가 가진 현령점이 부족하니 모든 공법을 전부 바꾸지는 못하겠고…… 우선 다섯 번째부터 여덟 번째, 총 네 단계 구결만 바꾸겠습니다.”
석목은 그리 말을 하며 현령벽을 꺼내들었다.
탑령이 하얀빛을 내뿜어 석목의 현령벽을 감쌌다.
현령벽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육십만 현령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이만 점도 채 남지 않았다.
석목은 가슴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이 육십만 현령점은 석목이 백 년 동안 생사를 드나들며 모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아홉 번째 단계를 바꾸려면 첫 단계 부터 여덟 번째 단계 구결을 바꾸는데 들이는 만큼 현령점이 필요했다.
총 육십사만 현령점!
만약 최상급 영석으로 바꾼다면 그건 별을 셀 때나 쓰는 숫자일 터였다. 남해성을 전부 뒤져서 모은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영석을 모으지는 못할 터였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석목은 꼭 아홉 번째 구결을 가져야만 했다. 또한 혈맥 진화도 성공해야만 했다.
현공은 아홉 번째 단계까지 전부 수련을 해야만 했다. 만약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죽을 위험을 맞을 수도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구전현공을 수련하는 건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공법 구결을 구하는 것만으로도 현령점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했다. 만약 가족 세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보통 제자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짧은 시간 안에 바꿀 수 없는 금액이었다.
석목이 육십만 현령점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생각지도 못하게 다양한 상황들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석목이 만약 얌전히 종문에서 내린 임무만 수행했더라면 아마 백 년이 더 지났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현령점을 모을 수 없었을 터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수련도 망칠 터였다.
석목의 현령벽을 받은 탑령은 입을 벌려서 옥간을 하나 뱉어냈다.
석목은 좋아하며 다급하게 옥간을 건네받았다.
아직 신식으로 옥간에 적힌 내용을 훑어보기도 전에 탑령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예로부터 오늘까지 인연이 닿아서 현공을 배우길 넘보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끝까지 수련을 한 사람은 매우 드물었지.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느냐? 현공을 수련한 자는 꼭 그 초심을 잃지 말고서 반드시 깊게 생각하며 신중하게 음직여야 한다.”
“네, 제자, 꼭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석목은 멈칫했다. 탑령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의문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공손하게 대답했다.
탑령이 서서히 사라졌고, 석목은 오래 머물지 않고서 곧바로 성전각에서 걸어나왔다……
* * *
청란성지의 깊은 곳, 이곳은 푸른색 공간이었다. 푸른색 안개가 자욱했으며 커다란 옥벽이 허공에 떠 있었다. 옥벽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백 개가 넘었다. 조극의 이름이 가장 앞선 오른쪽에 새겨져 있었다.
이름 밑에는 금색 성운 모양 그림이 몇 개 둥둥 떠 있었는데 그림에서 빛이 반짝였다. 조극의 이름 밑에 성운이 여덟 개 떠 있었다.
이때, 맑은 빛이 먼 곳에서 날아와 옥벽 위에 떨어졌다.
빛이 스친 곳에서서 푸른색 안개가 들끓었고, 옥벽은 빛을 반짝이더니 이름이 하나 더 나타났다. 석목의 이름이었다.
석목의 이름 밑에도 똑같이 성운이 여덟 개 떠있었다.
옥벽 앞에서 빛이 반짝이자 커다란 두 눈이 불쑥 튀어나와 석목의 이름을 바라보았고, 커다란 두 눈은 한번 꿈뻑거리더니 다시 눈을 감고 허공에서 사라져버렸다.
들끓던 푸른색 안개가 다시 조용해졌으며 모든 게 평온을 되찾았다.
* * *
석목은 성전각에서 나와 곧바로 이 층의 현계 공간으로 갔다.
현계 공간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제자들이 영지의 폭포와 동부 사이에서 날아다녔다. 예전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해진 광경이었다. 미양 성역의 혼란한 정세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석목은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서 곧바로 동부로 날아갔다. 한 시진 뒤, 석목은 자신의 영폭(靈瀑) 동부로 돌아왔다.
석목은 눈을 번쩍이며 영폭 곳곳에 있던 영전(靈田)을 바라보았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은 전부 낯선 사람들이었으며 예전 시종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석목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이 머물던 동부로 날아갔다. 제풍을 불러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눈앞 허공에 노란색 광막이 나타나서 길을 가로막았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진법은 매우 낯설었고, 절대 석목이 설치한 금제가 아니었다.
“누구신가! 감히 관 부주의 영지에 쳐들어오다니!”
동부에서 푸른 옷을 입은 사람 두 명이 날아오더니 금제 뒤에 서서 일그러진 얼굴로 석목에게 소리를 질렀다.
“관 부주?”
석목은 안색이 굳었다. 이곳은 분명 자신이 머물던 동부인데 관 부주라니.
눈앞에 선 두 남자는 전부 수련 경지가 지계 후기였다. 보아하니 시종들의 우두머리들 같았다.
“너희 관 부주는 어디 있는 게냐?”
석목이 침묵을 하다가 물었다.
그리고 신식을 보내 순식간에 주변 백 리에 드리웠다.
“하, 우리 관 부주님은 천 년 제자들 중에서도 다섯 번째이신 분이다. 네가 만나고 싶다 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왼쪽에 선 눈꼬리가 위로 올라간 남자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또 다른 남자는 석목의 얼굴을 훑어보더니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석목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왼쪽을 바라보았고, 곧바로 파란빛으로 변하여 그곳으로 날아갔다.
눈꼬리가 올라간 남자는 콧방귀를 뀌더니 얼굴에 경멸을 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그런데 저 사람, 좀 눈에 익어.”
옆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눈에 익다고? 잘 모르겠는데?”
눈꼬리가 올라간 남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 내 기억이 잘못된 것 같군. 됐다. 저놈이 알아서 꺼졌으니 됐어.”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말하며 둘은 동부로 날아갔다.
* * *
동부와 삼십 리 정도 떨어진 영폭 근처, 이곳엔 영전이 일고여덟 개 깔려있는데 다양한 영초들이 심어져 있었다. 많은 시종들이 영전에서 바삐 움직이며 일을 하고 있었다.
몸집이 뚱뚱한 중년 남자가 두 손에서 푸른색 빛을 뿜어 영전 근처에 서 있던 푸른색 옥기둥에 불어넣었다.
이 사람은 제풍이었다. 제풍은 지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얼굴이 여기저기 멍들어 있었으며 수련 경지도 다시 선천 경지 중에서도 초기로 돌아갔다.
기둥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허공에서 푸른색 구름이 되어 뭉쳤다.
제풍은 안간힘을 써서 법결을 시전하였다. 그러자 허공에 드리운 푸른 구름이 한참 들끓으며 영초 위에서 영우(靈雨)가 조금씩 떨어졌다.
“어머, 이게 누구신가. 위풍당당하던 제 관사가 아니오. 영전에서 직접 일을 다 하시다니. 하하!”
한 무리가 먼 곳에서 걸어왔다. 그 중 입이 뾰족하고 볼이 붉은 남자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제풍은 그 남자를 한 번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고개를 푹 숙였다.
“어이, 어르신이 지금 너랑 말을 하잖아. 내 말을 씹어?”
입이 뾰족한 남자는 얼굴이 흉악스럽게 변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제풍에게 다가와 주먹을 휘갈겼다.
제풍은 안색이 변하더니 다급하게 시전을 하던 법결을 멈추고서 손을 들어 주먹을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입이 뾰족한 남자는 실력이 선천 중기였기 때문에 단번에 제풍의 손을 뚫고서 주먹으로 얼굴을 내리쳤다.
제풍은 몸이 튕겨져 날아가 진흙탕에 떨어졌고, 입에서는 피를 뿜었다.
“하하!”
그들이 큰소리로 비웃었다. 입이 뾰족한 남자는 제풍에게로 다가가 발길질을 몇 번 더 했다. 그 남자는 얼굴에 의기양양한 웃음이 어려 있었다.
제풍이 천천히 앉더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손을 숨기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백여 년 전, 석목은 흑마족과 전쟁을 하러 전방에 나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석목이 전방에서 사라졌다는 소문이 떠돌았으며 누군가는 석목이 전장에서 죽었다고 말했다.
물론 전부 헛소문이었지만 석목의 생사와 관련된 소문은 계속해서 이 층 공간에 떠돌았다.
그리고 일 년, 오 년, 심지어 십 년, 이십 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석목의 소식이 눈곱만치도 들려오지 않자 사람들은 석목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석목이 지켜주질 못하자, 다른 천 년 제자들은 석목이 머물던 동부와 영지를 조금씩 차지했으며 석목을 모시던 시종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석목의 관사인 제풍마저 수련 경지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눈앞에 선 입이 뾰족한 남자는 제풍 밑에서 일을 하던 시종이었다. 놀고먹기를 좋아했으며 게으름을 피운 탓에 제풍이 몇 번 꾸짖었다. 그 덕분에 고생을 좀 맛보았다.
석목이 사라지자, 입이 뾰족한 남자는 바깥사람들과 결탁을 하여 석목의 영폭을 빼앗았다. 그것을 눈치 챈 제풍이 남자를 말리려고 하자 함께 난동을 피우러 왔던 사람들이 제풍이 수련을 한 경지를 전부 없애버린 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입이 뾰족한 남자는 오히려 지위가 올라가 시종들 사이에서 우두머리 행세를 하고 다녔다.
두 사람의 처지가 뒤바뀌자, 원래부터 앙심을 품고 있던 고약한 놈은 시도 때도 없이 제풍을 찾아와서 괴롭혔다. 주먹을 갈기고 발로 차는 일은 일상다반사였다.
하지만 제풍은 이 모든 일들을 감당하며 청란성지를 떠나지 않았다.
십여 년 전, 제풍의 아내가 아들을 낳았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점점 자랐으며 수련에 꽤 적합한 자질을 보여서 어린 나이에 이미 수련을 시작했다. 아들의 앞날을 위해서 제풍은 어떻게 해서든 청란성지에서 버텨야만 했다.
그리고 제풍은 마음속으로 여전히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