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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591화 (591/916)

591화. “나 돌아왔다.”

“제 뚱보, 빨리빨리 일을 해야지. 이렇게 꾸물거리면 오늘 이 여덟 묘나 되는 영전에 물을 다 줄 수 있겠느냐! 안 들려?”

또 다른 키가 작은 남자가 사람들 속에서 걸어 나와 차갑게 말했다.

“네, 네!”

제풍은 벌벌 기며 일어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임호였다. 수련 경지가 지계 초기이자 이 영전의 우두머리 시종이었으며 예전과 똑같은 위치였다.

“그리고, 월말이 다가온다. 내가 지금 곤법을 하나 수련하고 있어서 쓸 비용이 만만치 않아. 월말 효도비는 예전보다 삼 할 정도 더 가져와.”

임호가 말했다.

제풍은 안색이 변했다. 제풍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제풍을 때리거나 욕설을 퍼붓는 것은 견딜만했다. 하지만 지금 버는 미약한 수입으로는 간신히 아들이 수련을 할 때만 보태줄 수 있을 정도였다. 쥐어짜려고 해도 더 이상 돈은 나오지 않았다.

“왜? 싫으냐! 죽고 싶어!”

임호가 순간 얼굴을 바꾸더니 제풍의 뺨을 후려쳤다. 귓가에 바람 소리와 함께 손바닥이 제풍의 얼굴에 찰싹 붙었다.

제풍의 뚱뚱한 몸통이 단번에 몇 장 멀리 날아가 버렸다. 입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반쪽이 된 얼굴에서 이가 전부 뽑혀버렸다.

임호는 흉악한 눈빛을 드러내며 또 다른 손으로 주먹을 휘둘러 제풍의 팔을 때렸다. 그 주먹은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만들어냈다.

만약 이 주먹이 제풍의 팔에 닿았더라면 제풍은 팔이 절대 남아나지 않았을 터였다.

주변에 서 있던 입이 뾰족한 사람을 비롯한 구경꾼들이 전부 처참해진 제풍의 모습을 보면서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때, 손바닥 하나가 옆에서 뻗어왔다. 손바닥은 강철처럼 단단했는데 단번에 임호의 손목을 잡고서 허공에 멈추었다.

임호는 안색이 변하며 온힘을 다해 벗어나려 했지만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임호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한 청년이 언제인지 모르게 옆에 나타났다. 청년은 이목구비가 뚜렷했으며 키가 훤칠했다. 그리고 눈빛이 평온하고도 깊었다.

“너는 누구냐? 빨리 이 손 놔!”

임호가 깜짝 놀라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석…… 석 부주님, 드디어 오셨군요!”

제풍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청년을 본 제풍은 표정이 얼어붙었다가 이내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풍은 이가 절반이나 뽑힌 바람에 발음이 심각하게 새고 있어서 웅얼대었다.

“석목!”

임호를 비롯한 무리는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당연히 석목이란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나 왔어.”

석목이 제풍에게 말했다.

제풍은 눈에 흥분을 한 기색이 스쳤다. 그리고 입가에 묻은 피도 닦지 않은 채 손으로 땅을 짚고서 일어섰다.

석목이 한 손을 휘두르자 임호의 몸이 휙 날아가더니 무겁게 땅에 떨어지며 입이 땅과 부딪쳐 버렸다.

“으아아!”

임호가 땅바닥에서 일어서더니 미친 듯이 날뛰며 석목을 향해 주먹을 휘갈겼다.

석목은 임호를 쳐다도 보지 않고서 손바닥을 뒤집어 날렸다.

퍽!

깔끔한 소리와 함께 임호의 몸통이 찢어진 마대처럼 날아갔다. 조금 전보다 더욱 강력한 힘이었다.

임호는 바닥에 쿵 떨어져 몸이 몇 번 구르더니 멈춰 섰다.

임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고 입안 가득했던 이가 전부 부러져 피범벅이 된 채로 흘러내렸다.

호되게 얻어맞은 후에야 임호는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벌벌 기어서 일어나더니 놀라고도 황공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며 한쪽에 서서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멍하니 한쪽에 서 있었다.

석목은 제풍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손을 휘둘러서 푸른빛을 날려 제풍의 몸에 덮었다.

제풍의 얼굴에 생긴 상처가 빠른 속도로 나았으며 심지어 뽑혔던 이도 적잖게 자라났다.

“부주님, 감사합니다!”

제풍은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듯이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러더니 석목을 향해 깊게 인사를 올리고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동부가 왜 이 모양이 된 건가? 이놈들은 또 어디에서 온 거야?”

석목이 근처에 서 있는 임호를 비롯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부주님, 부주님께서 전방에 나가신 후, 오랜 세월이 흘러……”

제풍은 눈물을 글썽이며 석목이 사라진 백여 년 동안 동부의 영폭과 백 묘가 넘는 영지를 다른 천 년 제자들에게 빼앗긴 사실을 일일이 말해주었다.

“천 년 제자들은 서로 도전을 하여 상대의 영폭을 정정당당하게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동부에 없는 동안 멋대로 내 영폭을 점령했다는 소리인가?”

그 말을 들은 석목은 화가 치밀어 올라서 목소리를 억누르며 말했다.

“미양 성역에선 몇 년 동안 여기저기서 분쟁이 생겼습니다. 종문은 밖에서 벌어진 일들을 처리하느라 종문 안 천 년 제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문에서도 부주님이 운명을 하셨다고 여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제풍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임호를 비롯한 시종들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다들 꺼져. 그리고 가서 너희 주인놈들한테 알려. 하루 시간을 줄 테니 조용히 내 영폭과 영전을 그대로 돌려놓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다 죽여 버릴 거니까!”

석목은 이렇게 말만 던져놓고서 임호 무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제풍을 끌어당긴 후에 몸을 날려 동부 방향으로 날아갔다.

임호를 비롯한 사람들은 석목과 제풍이 멀리 사라지자 그제야 길게 한숨 내뱉었다. 그리고 한참 의논을 나누더니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석목과 제풍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동부로 돌아 왔지만 동부 밖에 드리운 노란 광막이 두 사람이 가는 앞길을 막았다.

석목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손에 파란빛을 내뿜어서 커다란 손을 만들어낸 후에 광막을 강하게 내리쳤다.

석목이 손을 비틀자, 파란색의 커다란 손도 석목이 움직이는 걸 따라서 빠르게 돌아갔다. 노란 광막이 끊임없이 흔들렸으며 움직임이 점점 격해졌다. 그리고 ‘펑!’ 소리와 함께 터져버려 노란 점으로 변하며 흩날렸다.

“누구야! 멋대로 동부에 쳐들어오다니!”

푸른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동부에서 날아 나왔다. 조금 전에 나타났던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사나운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석목의 얼굴은 본 두 사람은 곧바로 표정을 바꾸었다.

“또 네놈이냐, 네 이놈……”

눈꼬리가 올라간 청년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청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석목의 파란색 손이 나타나 청년을 내리쳤다.

눈꼬리가 올라간 청년은 입에서 피가 마구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위축이 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꺼져! 가서 그 관 부주에게 알려라. 조용히 내 영폭과 영지를 전부 제 자리로 돌려놓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네놈 꼴이 될 게다!”

석목이 큰소리를 지르더니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동부로 들어갔다.

다른 한쪽에 서 있던 푸른색 옷을 입은 남자가 멍하니 석목을 쳐다보았다. 순간 그 남자는 머리에 빛이 반짝였다. 석목의 신분이 생각난 것이었다.

“생각났어! 석목이야. 그 해에 혼자 환마도를 뚫고서 파격적으로 천 년 제자가 된 석목!”

그 남자는 목이 메어 말했다.

눈 끝이 올라간 남자는 큰 부상을 당한 채로 간신히 앉았다. 그리고 어안이 벙벙했다.

두 사람은 서로 부축하며 빠르게 동부를 떠나서 먼 곳으로 날아갔다.

석목이 동부로 걸어 들어갔다. 비록 다른 사람이 동부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동부에서 살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석목은 동부를 한 바퀴 돌아보고는 대청에 들어와서 앉았다.

제풍은 조용히 한쪽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돌아 온 이상, 영폭과 영지는 당연히 다시 돌려받아야 한다. 그리고 녀석들이 한 짓을 두고서 끝장을 볼 거야! 다시 되찾은 것들은 당연히 네가 맡아서 관리를 해야 해. 예전에 흩어진 시종들도 네가 다시 불러들여. 부족하면 믿을 만한 사람들을 더 붙여줄 테니까. 이건 최상급 영석 오백 개다. 부족하면 다시 날 찾아와.”

석목이 말을 하며 지니고 있던 저장 반지를 제풍에게 던져주었다.

“네.”

제풍이 다급하게 대답을 하며 자세를 낮추고는 저장 반지를 건네받았다. 제풍은 얼굴에 기쁜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잠깐 망설이다가 말을 보탰다.

“부주님, 부주님은 실력이 매우 뛰어나시지만 우리 영폭과 영전을 빼앗아간 제자들은 천 년 제자들 중에서도 뛰어난 제자들입니다. 꼭 조심해서 움직이셔야 합니다.”

석목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그래, 그 세 사람이 누구더냐?”

“그 중 가장 센 놈은 관력(關力)이라는 놈인데 천 년 제자들 중에서도 다섯 번째인 제자입니다. 몸을 다지는 공법을 수련하였으며 힘이 무지막지하게 강하여서 다루시기 곤란할 수 있습니다.”

제풍이 말했다.

“나머지 두 놈은?”

석목이 덤덤한 표정으로 계속 물었다.

“나머지 둘 중에 한 놈은 등곡산(騰谷山)인데 순위는 아홉 번째입니다. 종문에서 내려오는 십대 진종공법 중에 하나인 열염진강공(烈焰真罡功)을 수련하였습니다. 마지막 놈은 조우(趙羽)인데 대택현금검결(大澤玄金劍訣)을 수련하였습니다. 이 역시 종문의 십대 진종공법 중에 하나이며 제자들 중에 열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풍이 말했다.

“그래, 알았다. 이 단약은 들고 가서 복용하도록 해라. 내상이 빠르게 회복되고 수련 경지도 다시 지계로 돌아올 게다.”

석목이 아무렇지 않게 옥병을 하나 꺼내서 제풍에게 건네었다.

“부주님, 감사합니다.”

제풍은 좋아하며 옥병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몸을 굽혀서 인사를 올렸다.

“됐다. 나가 보거라.”

석목이 손을 흔들었다.

제풍은 인사를 한번 올리고는 공손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석목이 일어나 동부에서 바뀐 곳들을 전부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동부 안팎으로 금제를 몇 층 더 두르고는 자리에 앉았다.

단번에 두 사람을 때리며 높은 곡조로 자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렸으니 석목의 영폭을 빼앗아간 천 년 제자들은 아마 곧 제 발로 찾아올 터였다.

석목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몸에 파란빛을 감은 채로 조용히 기다렸다.

* * *

석목이 돌아왔다는 사실이 천년 제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면서 한 차례 파동이 일었다.

석목의 영폭을 빼앗았다는 사실은 모든 천 년 제자들이 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제자들과 상관이 없는 일인데다가 석목의 영지를 빼앗은 사람들은 실력이 유별났기 때문에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 하물며 종문에서도 눈을 감아줬으니 제자들이 나설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이제 석목이 돌아왔다. 영지를 빼앗은 제자들은 피를 볼 수밖에 없을 터였으니 천 년 제자들 대부분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그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현계 공간, 한 영폭 근처에 자리한 동부, 눈꼬리가 올라간 청년과 또 다른 시종 한 명이 청년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아있었다.

이 청년은 키가 매우 훤칠했는데 족히 한 장은 되었다. 피부는 고동색이었으며 빛이 반짝이는 것이 마치 동인(銅人) 한 명 같았다. 청년은 천 년 제자들 중에서 다섯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관력이었다.

관력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자가 확실히 석목이 맞느냐? 확실하게 본건가?”

관력이 천천히 입을 벌리며 물었다.

“부주님, 확실합니다.”

부상을 당하지 않은 남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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