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2화. 한 방
관력이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서더니 동부에서 서성거렸다.
아무 이유도 없이 남의 동부를 빼앗았으니 누가 봐도 그렇다할 명분이 없었다. 관력은 자신의 신분을 생각해서라도 이런 치사한 일을 벌일 생각이 없었지만 석목이 정말 죽었다고 생각하여 사람을 보냈을 뿐이었다.
헌데 이제 석목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런 처사를 보아서 감정이 많이 틀어졌을 터였다. 그렇다고 무작정 찾아가 고개를 숙이며 저지른 잘못을 인정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알았다. 나가 보거라.”
관력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두 사람은 죄를 면제받기라도 한 듯이 공손한 표정으로 인사를 올리고는 다급하게 물러났다.
관력은 표정이 담담했지만 눈에서는 빛이 끊임없이 번쩍였다.
두 사람이 한 말에 따르면 석목이 동부 밖에 설치한 육원무토진(六元戊土陣)을 가볍게 뚫어버렸다는 소리였다.
그 대진은 관력이 직접 설치한 진법으로 엄청난 위력을 머금고 있었다. 대지에 흐르는 무토 정기를 연결하여 방어력이 극한에 도달한 진법이었다.
그런데 석목이 손을 한번 흔들어 가볍게 뚫어버렸다니. 이 정도 실력이라면 충분히 경계할 만했다.
“흥!”
관력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다시 표정이 차갑게 변하였다.
어찌되었건 관력은 천 년 제자들 중에서 다섯 번째인 사람이었다. 석목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여봐라!”
관력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동부 밖에서 몇몇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따라오너라.”
관력은 말을 하며 노란빛으로 변하여 밖으로 날아갔다.
* * *
동부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던 석목이 눈을 번쩍 뜨며 밖을 바라보았다.
노란빛이 먼 곳에서 빠르게 날아와 동부 근처에 내려왔다. 빛이 사라지자 관력이 나타났다.
관력이 입을 열기도 전에 동부 안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신이 관력이군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말이 끝나자 동부 입구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번지더니 석목이 나타났다. 석목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관력을 바라보았다.
“네가 그 석목인가? 흥, 좋아. 네 영폭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종문의 규칙대로 도전을 하고 싶었으나 네가 계속 이곳에 없었다. 이제 돌아왔으니 말을 길게 하지 않겠다. 종문의 규칙대로 한 판 붙자. 네가 진다면 이 영지를 두 손으로 내게 바쳐야 한다.”
관력은 석목이 비아냥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차갑게 말했다.
“아주 좋지. 그런데 도전을 하려면 영폭을 걸어야겠지?”
석목이 말했다.
관력이 푸른색 옥판을 몇 개 꺼내 들었다. 그것은 영폭을 다스리는 귀속 영패였다. 빼앗아간 석목의 영폭과 품질이 비슷했다.
“좋아, 그럼 붙을 장소부터 찾지! 내 영폭 근처에서 피를 보고 싶지는 않거든!”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에 파란빛을 크게 드리우더니 먼 곳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표정이 너무나 담담했다. 마치 보잘것없는 작은 일을 말하는 것만 같았다.
석목이 이런 태도를 보이자 관력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관력은 두 주먹을 꽉 쥐고서 노란빛을 번쩍이며 석목의 뒤를 따라갔다. 옆에 서 있던 몇몇 시종들도 다급하게 뒤를 따랐다.
제풍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비행 속도가 너무 느렸기 때문에 절대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부주님, 꼭 이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풍이 속으로 빌었다.
석목은 몸에 파란 빛이 크게 번지며 현계 공간 안쪽을 한 바퀴 빙 돌더니 지난번에 몇몇 천 년 제자들과 싸우던 골짜기에 내려섰다.
석목은 일부러 자신이 지나가는 행적을 노출 시켰다. 관력이 석목 옆에 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던 천 년 제자들도 두 사람이 무엇을 할 것인지 눈치를 챘을 터였다. 소식은 빠르게 퍼졌으며 구경꾼들이 바로 모여들었다.
두 사람이 골짜기에 내려섰을 때, 이미 백여 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두 사람을 따라 함께 골짜기에 내려왔다.
* * *
관력은 따라온 제자들을 한 번 훑어보더니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몇 년간 밖을 돌아다니며 큰일을 겪으면서 실력이 크게 늘었다. 때마침 전력으로 싸워서 단번에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석목을 물리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당하게 영폭을 가져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석목을 크게 망신시킬 수도 있었다.
“석 사제, 이렇게 질질 끌었으니 이제 시작해도 되겠는가? 아, 혹시 지금이라도 후회가 되면 패배를 인정하고 영지를 바치면 돼. 그렇다면 내가 한번 봐주지.”
관력이 가까이에 있는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석목은 마치 관력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한 듯이 주변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사람들 사이에 하얀 피풍의를 두른 청년이 뒷짐을 진 채로 서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조극이었다.
조극도 석목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두 사람은 눈빛을 마주쳤다. 하지만 곧바로 각자 시선을 돌렸다.
관력은 석목이 그가 하는 말을 신경도 쓰지 않자, 화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 관력은 큰소리를 지르며 몸에서 뜨거운 고동색 빛을 뿜어냈다.
관력은 피부가 순식간에 고동색으로 변하였다. 그 모습은 마치 동인 한 명 같았는데 두텁고도 무거운 기운을 풍겼다.
쿵!
관력이 앞으로 발을 내딛자, 산골짜기 전체가 격하게 한번 흔들렸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주변에서 구경을 하던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더니 시끌벅적해졌다.
“역시 관 사형이야!”
“관 사형의 혼원이기공이 더욱 강력해졌어!”
“석목은 오늘 큰일났구만!”
“백 년 전에 막 천 년 제자가 되었을 때, 엄청 잘난 척을 했으니 한번 크게 당해봐야 해!”
석목은 주변 사람들이 지껄이는 시시콜콜한 말을 들었으나 전혀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려 관력을 바라보더니 입을 벌리고서 하품을 해대며 느긋하게 말했다.
“안 움직이고 뭐해?”
“깝죽거리지 마!”
관력은 화가 치밀어 올라 큰소리로 외치며 주먹을 날렸다.
관력은 주먹에서 고동색 빛이 반짝였는데 마치 동을 쏟아 부어 빚은 것만 같았다. 주먹에서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산골짜기의 공기가 순식간에 밀물처럼 밀려왔다.
구경꾼들이 다급하게 뒤로 십여 장 물러났다.
석목은 흉흉하게 몰려오는 방대한 기운을 느꼈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고서 팔을 들어 올렸다.
이어서 석목의 몸에는 순식간에 금빛이 크게 번졌다. 그리고 금색 비늘이 촘촘하게 튀어나왔다. 비늘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와 구경꾼들은 똑바로 볼 수도 없었다. 이어서 방대한 기운이 파도처럼 터지듯 나왔다.
그에 비해 관력이 풍기는 기운은 마치 작은 파도와 같았는데 순식간에 큰 파도에 삼켜졌다.
허공에 서 있던 관력은 안색이 바뀌었다. 관력은 눈에 두려운 기색이 어렸다. 하지만 이미 주먹을 날렸기 때문에 다시 거두어들일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을 둘러싼 구경꾼들도 전부 관력과 같이 두렵고도 믿기지 않는 기색을 얼굴에 내비쳤다.
조극은 석목이 터뜨린 기운을 느끼며 실눈을 뜨고서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석목이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 나가며 단번에 주먹을 한 방 날렸다.
찬란한 금빛을 휘감은 주먹에서 한 줄기 하얀빛이 나타났다. 이어서 하얀빛이 사라졌으며 다시 검은빛이 나타났다.
흑백 두 갈래 빛이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번쩍이며 하나로 합쳐져 옅은 혼돈의 빛을 만들어내며 석목의 주먹을 감쌌다.
석목은 주먹에 드리운 기세를 순식간에 거두어들이고는 옅은 금빛만 내뿜었다.
이 모든 건 단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허공에서 주먹 두 개가 강하게 부딪쳤다!
쾅!
무거운 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엄청난 힘이 두 사람 주변에서 격하게 흔들렸다.
두 사람이 밟고 있던 대지에 거미줄 같은 균열들이 갈라지며 빠르게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땅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근처에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그 힘에 밀려 뒤로 몇 걸음씩 물러났다. 몇몇 사람만 제자리에 서 있었다.
팍!
맑고 청량한 소리가 울렸다. 뼈가 부러진 소리였다. 관력이 처참하게 소리를 지르며 종잇장처럼 날아가더니 무겁게 뒤에 있던 산봉우리에 부딪쳤다. 그리고 몸이 암벽에 처박혀 버렸다.
관력은 오른쪽 팔이 이상한 각도로 꺾였으며 손목을 감싼 근육이 나선형으로 찢어져서 섬뜩한 뼈가 그대로 드러났다.
구경꾼들은 전부 어안이 벙벙했다.
한 방, 단 한 방에 체술이 강하기로 유명한 관력을 처참하게 꺾어 버렸다!
“너……”
관력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석목을 가리키며 입으로 붉은 피를 토해냈다.
석목은 그림자를 번쩍이며 관력 앞에 나타났다. 석목은 얼굴에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어 관력의 목덜미를 잡았다. 그리고 암벽에서 관력을 끌어내어 다시 바닥으로 내던졌다.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몸으로 또 다시 내던져지자 입에서 피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곧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영폭 영패를 내놔.”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관력은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다급하게 푸른색 옥패를 꺼냈다.
석목이 손을 휘둘러서 영패를 거두어들이고는 입을 열었다.
“이것만으론 부족하지. 그동안 내 영지에서 벌어들인 영석들도 전부 토해내!”
석목은 눈에서 차가운 살기가 흘러나왔다.
관력은 석목의 눈빛을 읽고는 몸을 파르르 떨며 다급하게 손을 흔들어 최상급 영석을 한 무더기 꺼냈다.
석목은 영석들을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부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관력을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구경꾼들 앞으로 날아갔다.
“등곡산, 조우! 둘도 이곳에 온 것 같은데 이제 나오지. 빨리 영지와 얽힌 일을 해결해야 각자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게 아닌가.”
석목은 꽤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등곡산과 조우는 석목이 바라보자 안색이 굳었다.
이어서 두 사람이 날아 나와 환심을 사려는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 영폭 영패 몇 개와 영석을 무더기로 내놓았다. 전부 최상급 영석이었다.
“석 사제, 오해하지 말게나. 그때는 누군가 꼬드겼기 때문에 그랬소. 절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오. 석 사제는 수련을 한 경지가 깊은 것 같은데 도전은 안 해도 될 것 같소. 이 영지와 영석은 고스란히 내놓겠소. 너그럽게 봐주시오.”
석목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영패와 영석을 전부 거두어들인 뒤에 파란빛으로 변하여 먼 곳으로 날아갔다.
석목이 사라지자 그제야 골짜기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웅성 의논을 나누며 놀라움과 감탄을 자아냈다.
“고작 백 년인데 이 석목이라는 자는 이렇게 놀라운 경지에 이르다니!”
“내 말이 그 말이야. 천 년 제자들 중에는 아무도 석목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다음 천 년 제자 대결은 재미있겠군!”
구경꾼들은 한창 침을 튀기며 대화를 하더니 삼삼오오 모여서 뿔뿔이 흩어졌다.
조극은 조용히 제자리에 서서 눈빛만 반짝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조극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은 조극의 안색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고는 전부 입을 다물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에 조극은 차갑게 웃더니 몸에 빛을 번쩍이며 먼 곳으로 날아갔다.
몇몇 제자들이 조극의 뒤를 다급하게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