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3화. 성핵정금(星核精金)
석목이 한 방에 관력을 물리쳤으며 등곡산과 조우가 고개를 숙여 석목에게 패배를 인정했다는 소식이 천 년 제자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석목의 이름이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단 하루 만에 석목의 영폭을 점거하고 있던 몇몇 제자들이 조심스럽게 영폭과 영전을 되돌려 주었다. 또한 영석도 적잖이 가득 가져다주었는데 그것들은 영전에서 벌어들인 수입보다 훨씬 많았다.
허나 석목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제 석목은 보통 천위 제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요란하게 대결을 치른 것도 나중에 생길 수 있는 번거로운 일들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일들을 제풍에게 관리하라고 지시를 내린 후, 석목은 다시 동부로 들어가 비밀 석실에서 폐관수련을 했다.
제풍은 잔뜩 늘어난 영폭 영패를 보며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제풍은 다급하게 예전에 일하던 시종들을 불러들인 후에 갑자기 많아진 영지들을 어떻게 관리할지 논의을 하였다.
영폭이 많아지자 일손이 많이 부족해졌다. 하지만 석목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모든 것들은 문제가 아니었다.
제풍은 한참 고민을 하더니 먼 곳으로 날아갔다.
* * *
비밀 석실 속, 석목이 구전현공이 적힌 옥간을 꺼내 들어 머리에 가져다대고는 눈을 감고서 자세히 깨우치기 시작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보름이 지나갔다.
석목이 천천히 눈을 뜨고는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구전현공의 오, 육, 칠, 팔 단계 법결을 석목은 대체로 한번씩 깨우쳤다.
석목이 예전에 예측한 바와 같이 구전현공의 여섯 번째 단계는 쇠의 힘, 일곱 번째는 불의 힘, 여덟 번째는 물의 힘이었다.
이 공법 몇 개는 수련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공법들이었다. 뛰어난 자질과 인지 능력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오행 영재도 엄청나게 필요했다.
곤륜성허에서 얻은 식토로 간신히 다섯 번째 단계를 대성까지 수련할 수 있었다. 그 뒤에 배울 몇 단계 공법을 수련하는데 필요한 재료들은 아직 구하지 못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고개를 흔들었다.
석목이 지니고 있는 영석으로는 아홉 번째 공법을 구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니 오행 영재를 구한다는 건 지금 꿈도 꾸지 못했다.
이전에 관력을 비롯한 사람들의 손에서 가져온 영석이 수만 개나 되었지만, 석목에게 필요한 영석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석목은 한참 고민을 하더니 눈에 빛을 반짝이며 어떤 결심을 세운 것 같았다.
석목은 깊은 숨을 내뱉으며 공법을 시전하였고, 몸에서 노란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어서 석목은 손을 흔들어 사람 머리만 한 노란색 물건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것은 마치 평범한 흙덩어리 같았지만 매우 짙은 흙 속성 파동을 일으켰다. 그가 곤륜에서 가져온 식토였다.
석목은 노란빛을 크게 드리우며 식토 덩어리를 감쌌다.
* * *
사계절이 수없이 지나며 세월이 빠르게 흘러서 눈 깜짝할 사이에 이십 년이 흘렀다.
석목의 동부가 있는 산꼭대기에서 한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서 암석에 앉아있었다. 그 사람은 석목이었다.
석목의 등 뒤에 커다란 태양 허영이 하나 떠 있었다. 하늘에 뜬 햇살이 쏟아지며 금빛으로 변하여 석목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한참 후에 석목은 천천히 눈을 떴고 두 갈래 금빛이 뿜어 나왔다.
석목이 큰소리를 지르자 방대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폭발하였다. 석목은 수련 경지가 이미 천위 정상에 도달했다.
석목은 연달아 일각 정도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천천히 멈추었다. 석목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고생스럽게 이십 년 동안 수련을 하며 흡일식으로 드디어 명수결 아홉 번째 단계를 끝냈다. 또한 수련 경지도 천위 정상에 도달했다.
석목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서 손을 들어올렸고, 손바닥에서 노란색 빛이 한 덩이 나타났다. 이어서 노란빛이 사라지며 금빛이 나타났다. 하지만 매우 어두운 금빛이었고, 조금 전 노란색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석목은 구전현공 다섯 번째 단계를 끝냈다. 하지만 여섯 번째 단계는 쇠 속성 본원 영재가 부족하여 입문조차 할 수 없었다.
석목이 다시 손을 내려놓고는 기분이 조금 침울해졌다.
지금 석목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성배를 응결시켜서 성계를 돌파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실력의 질이 오를 터였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흡일식이 도와주는 건 성공할 확률을 조금 높여줄 뿐이었다.
연나만 봐도 그랬다. 연나는 전생이 보화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실패를 겪은 후에야 성공했다. 그러니 석목은 더 많은 어려움을 겪을 터였다.
특별한 조화나 인연이 있지 않은 이상 지금 상황으로는 수백 년, 심지어 천 년을 수련한다고 해도 성계 돌파에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석목은 고개를 흔들며 골치 아픈 생각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접고는 아래를 향해 날아갔다.
* * *
석목이 비밀 석실에서 걸어 나와 이제 막 주실로 들어왔을 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풍, 들어와.”
석목은 바깥의 기운을 느끼고는 말했다.
나무문이 ‘끼익’하고 열리더니 검은 모자를 쓴 제풍이 나타났다. 제풍은 뚱뚱한 몸으로 문 사이를 비집고서 들어왔다.
“부주님, 출관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수련 경지가 한 층 더 높아지셨군요.”
제풍이 인사를 올리며 공경하는 태도로 말했다.
“예의를 갖출 필요는 없다. 출관하자마자 온 것을 보니 다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구나?”
석목이 웃으며 물었다.
“부주님이 폐관수련을 하시기 전, 저에게 미양 성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보라고 하셨지요. 지금 때마침 상황이 좋지 않아서 이렇게 급하게 보고를 드리러 왔습니다.”
제풍이 말했다.
“말해 보거라.”
석목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삼대 성지들이 사이가 나빠지면서 틈이 점점 벌어졌습니다. 그리하여 힘을 합쳐 흑마족의 침입을 막는 일에서도 많은 허점이 생긴 것 같습니다. 흑마족이 삼대 성지를 각각 공격하는 전략을 취했나 봅니다. 삼년 전에 삼대 성지가 함께 만든 부공성 요새가 뚫렸으며 그 뒤로 흑마족은 파죽지세로 몰려왔습니다. 그리하여 부석 성해 지역의 팔, 구 할 정도를 전부 점령 당했답니다.”
제풍이 말했다.
“그 부분은 이미 예측했다. 다만 이렇게 빨리 나빠질 줄은 몰랐지.”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삼대 성지는 문제가 심각한 걸 인식했는지 ‘도마령(屠魔令)’이라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각 종파에서 실력이 중견 정도 되는 자들을 소집하여 부석 성해 밖에 있는 전송거점으로 집합을 시키려는 것입니다. 아마 부석 성해 변두리에서 힘을 합쳐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여 흑마족이 침입을 하는 걸 막으려는 모양입니다.”
제풍이 계속해서 말했다.
“도마령…… 또 연합군을 만들겠다는 뜻인가?”
석목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삼대 성지의 연합군이 참 같잖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말은 연합군이라고 하지만 통합하여 지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방어 구역을 나누어서 힘을 합쳐 막겠다는 게 요지인 듯합니다. 한 달 전, 속승 진인께서 직접 나서셔서 종문의 제자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이번에 참가한다면 앞날을 보장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전적이 우수한 제자들에게는 많은 최상급 영석을 포상으로 주겠다는 약속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주님께서 친히 수행을 지도해주는 기회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제풍이 말했다.
포상으로 영석을 많이 주겠다는 건 석목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 하지만 신경 강자가 친히 수련을 지도하는 일은 절대 흔한 기회가 아니었다.
제풍은 석목이 망설이는 모습을 드러내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주님, 혹시 도마령 소집에 응하실 겁니까?”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련 경지를 높이는 일이다. 도마령 같은 일엔 관심이 없다. 그래, 그 일은 알았으니 나가 보거라.”
석목이 잠깐 고민을 하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제풍은 한 마디 대답을 하고는 인사를 올리며 물러났다.
* * *
제풍이 나가자 석목은 주실에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비밀 석실로 걸어 들어갔다.
비밀 석실 문을 열고서 막 들어왔을 때였다.
석실의 돌탁자 옆에 궁장을 입은 여인이 한 명 서 있었다.
검은 머리를 높이 묶고 있었는데 검은 폭포처럼 허리까지 드리웠다. 어여쁜 몸매와 궁장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연나, 네가 어떻게 왔어?”
석목이 물었다.
“왜? 오면 안 돼?”
연나가 물었다.
석목은 연나의 이런 태도를 보는 게 진즉에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신경도 쓰지 않고서 더 말을 이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연나가 풍기는 기운이 지난 번보다 또 강력해졌다는 사실을 느꼈다.
“연나, 네 수련 경지가 벌써 성계 중기…… 아니, 후기?”
석목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연나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
“자취로는 아직 네가 지니고 있지?”
석목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줘봐.”
연나가 말했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보라색 빛이 반짝이며 다섯 뼘 정도 되는 보라색 동로가 나타났다.
“이 동로를 꽤 오랫동안 연구했는데 아무런 수확이 없었어. 공수자 선배님이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으시더라고.”
석목이 말했다.
연나는 석목이 하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서 손을 흔들었다. 이어 연나의 손바닥에서 칠색 빛이 밝아지며 칠보묘수가 나타났다.
연나는 칠보묘수를 들고서 자취로를 향해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칠색 빛이 튀어나와 자취로에 떨어졌다.
자취로가 번쩍이더니 좁은 틈에서 푸른색 안개가 피어올랐다.
푸른 안개가 허공에서 맴돌더니 삐쩍 마른 노인의 허영으로 뭉쳤다.
허영은 온전하지 않았다. 상반신만 드러냈을 뿐, 허리 아래는 안개로 뭉쳐진 채 자취로와 연결이 되어있었다. 얼핏 보면 자취로에서 자라난 몸통 같았다.
“공수자 선배님?”
석목은 노인의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놀란 듯이 물었다.
하지만 허영은 석목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한 듯이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석목은 깜짝 놀라 귀를 가다듬었다. 허영이 하는 말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연기의 도(道)는 천지현화(天玑玄火)에 있고 지각물치(地格物致)에……”
“이것은 《천공연물》에 적힌 내용이야. 공수자의 잔혼이 자취로에 붙어서 기령이 된 후, 이미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어.”
연나가 말했다.
“모든 기억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기의 도를 잊지 못한 것이구나……”
석목이 중얼거렸다.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선배님이 존경스러웠다.
“금룡쇄금갑을 불러.”
연나가 말했다.
연나가 하는 말을 듣던 석목은 의문을 품었지만 이내 금빛이 크게 번지며 쇄금갑을 꺼냈다.
정신을 못차리던 공수자는 금룡쇄금갑이 나타나자 두 눈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안개로 변한 공수자의 몸통이 석목을 감싸고돌며 계속해서 말을 뱉어냈다.
“최상급이야…… 최상급.”
석목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수자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아쉽구나…… 아쉬워!”
석목은 더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서 다급하게 물었다.
“무엇이 아쉽다는 겁니까?”
공수자는 금색 갑옷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마치 석목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는 것 같기도 했으나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충분한 최상급 영석과 성핵정금(星核精金)만 있으면 이 금색 갑옷을 최소한 하급 영보로 제련할 수 있어.”
“선배님, 성핵정금은 무엇입니까?”
석목이 또 다급하게 물었다.
“성핵정금도 모르는 것이냐?《금석강목》을 읽지도 않고서 무슨 연기를 배운다고?”
공수자가 석목이 하는 말을 듣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화가 난 듯이 호통을 쳤다.
석목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공수자는 석목을 가르침을 원하는 제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석목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제자가 우둔합니다. 명확하게 가르쳐 주십시오.”
“성핵정금은 행성의 핵심에 있는 가장 순수한 존재란다. 매우 희박하지만 다양한 법기를 제련하는데 쓰는 최상급 영재 중 하나지. 성핵정금은 행성이 파멸된 후에야 나타나는 것인데 그 모양이 워낙 흔하여 평범한 돌처럼 아무런 영기도 없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성핵정금을 쉽게 발견하지 못할 게다.”
공수자가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 말을 듣던 석목은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사람 머리만 한 어두운 금색 돌을 꺼내 들었다.
공수자는 금색 돌을 보더니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가 다시 빠른 속도로 석목에게로 다가왔다. 안개로 변한 공수자의 몸이 금색 돌에 부딪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