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4화. 도마령
한참을 지켜보던 공수자는 좋아하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성핵정금이다. 성핵정금이야!”
석목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다급하게 물었다.
“선배님, 성핵정금이 있으니 최상급 영석이 얼마나 있어야 이 갑옷을 영보로 제련할 수 있습니까?”
“최상급 영석이 최소한 오십만 개는 필요하다.”
공수자가 고개도 들지 않고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았다. 전에 구전현공과 바꾸면서 석목은 모든 영석을 다 써버렸다. 최상급 영석 오십만 개가 아니라 영석 오만 개조차 지금 내놓을 수 없었다. 하물며 석목은 지금 영석을 모아서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구결과 바꿔야만 했다.
이때, 성핵정금을 관찰하고 있던 공수자의 몸을 감싼 안개가 갑자기 흔들렸다. 공수자는 얼굴이 희미해졌으며 곧 흩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왜 그러세요?”
석목이 다급하게 물었다.
“괜찮아. 공수자는 지금 자취로와 한 몸이 되어서 잔혼이 자취로와 오랫동안 떨어질 수 없어. 우선 재료부터 전부 모으고 난 후에 생각하자.”
연나가 칠보묘수를 흔들자 공수자는 다시 푸른 연기로 변하여 자취로로 감겨 들어갔다.
연나가 한 말을 듣자 석목은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취로를 거두어들였다.
보아하니 연나가 말한 제련 기회 세 번은 정말로 쓸 수 있는 기회 같았다. 다만 지출을 과하게 치러야만 했다.
“됐다. 내가 온 이유를 말할게. 네가 흑마성역에 한 번 가줘야겠어.”
연나가 말했다.
“흑마성역?”
석목이 물었다.
“음, 나를 위해 해줘야 할 일이 좀 있어.”
연나가 말했다.
“그래. 어떻게 하면 돼?”
석목이 곧바로 응했다.
연나는 석목이 전혀 망설이지 않고서 대답하자 조금 놀랐다. 연나가 석목을 한번 쳐다보더니 말했다.
“곤륜성허안에 흑마 성역으로 가는 통로가 있긴 한데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긴 너무 어려워. 그러니 다른 방법을 통해서 가야 할 것 같아.”
“그러니까 부석 성해에 있는 성역 공간 통로를 이용하라는 거야?”
석목이 물었다.
“맞아.”
연나가 말했다.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또 가야하다니. 잘됐네. 지금 성지에서 도마령이 떨어졌어. 이번 임무를 맡으면 될 것 같아. 명분이 생겼네.”
석목이 말했다.
* * *
반나절 뒤.
석목은 여러 가지 일들을 지시한 후에 동부에서 나왔다.
석목이 만법각 대전 밖에 도착했을 때, 대전 안이 시끌벅적한것이 제자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석목은 대전으로 걸어가서 잠깐 둘러본 후에 줄을 섰다.
대열 끝에 있는 탁자 뒤에 얼굴에 검은색 무늬가 새겨진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체격이 조금 뚱뚱한 요족 남자였다. 주변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따르면 그 남자는 도마 임무를 맡게 된 만 년 제자였다. 남자의 수련 경지는 성계 초기였다.
한 시진이나 기다려서야 석목은 대열 앞까지 다가왔다.
검은 무늬를 새긴 요족 남자는 고개도 들지 않고서 물었다.
“도마령 임무를 수행하려는 건가?”
“맞습니다.”
석목이 답했다.
“이건 도마 영패다. 넣어두거라. 네가 죽인 모든 흑마족이 거기에 기록될 게다. 앞으로 포상을 바꾸는 증거가 될 게야.”
요족 남자는 검은색 영패를 하나 건네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석목이 영패를 건네받으며 이제 막 돌아섰다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재빠르게 표정을 풀었다.
대전의 문에서 하얀색 피풍의를 두른 청년이 걸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바로 조극이었다.
대전에서 붐비던 제자들은 조극이 들어오자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양쪽으로 갈라지며 길을 비켜주었다.
조극이 시선을 돌려 대열 끝에 있는 석목을 바라보더니 석목에게 다가왔다.
석목이 실눈을 뜨고서 조극과 눈을 마주쳤다. 전혀 피하려는 기색이 아니었다.
제자들은 조극과 석목을 번갈아 보며 이상한 낌새를 느끼며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조극 사질이군. 임무를 올리러 온 건가?”
검은 무늬를 새긴 요족 남자가 조극을 한번 쳐다보더니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조금 전에 내비친 얼굴과는 확연히 다른 표정이었다.
다른 제자들이 봤을 때, 요족 남자가 말하는 투와 웃음은 아부처럼 보였다. 수련 경지가 성계 초기인 만 년 제자가 천위 제자에게 이렇게 공손한 태도를 보일 필요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극은 요족 남자를 신경도 쓰지 않으며 석목에게 향한 시선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푸른 잎이 새겨진 검은색 영패를 탁자에 던졌다.
“성계 흑마족 한 명! 천위 후기 열일곱 명, 천위 중기와 초기 쉰한 명, 총 사만육백 현령점.”
요족 남자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성…… 성계……”
“뭘 그렇게 놀라나. 처음도 아닌데. 조 사형은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잖아!”
“역시 조극 사형이야!”
“저기 저 조 사형과 눈을 마주친 녀석은 뭐하는 사람이지? 간이 부었군.”
“저 사람은 석목이야. 최근에 명성이 자자한 천 년 제자잖아. 그런데 조극 사형과 비교하면 그다지……”
“후후, 내가 저 사람을 좀 아는데. 조 사형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지!”
만법각에선 감탄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부러워하는 사람, 숭배하는 사람, 그리고 석목에게 기이한 눈빛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석목은 사람들이 나누는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시선을 거두어들인 후, 만법각에서 걸어 나갔다.
“석목……”
조극은 차가운 눈빛으로 석목이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굴에 살기가 스쳐 지났다.
만법각에서 나온 석목은 곧바로 종문의 전송대전으로 향했고, 석목은 깊은 고민에 잠겨있었다.
이전에 제풍에게 조극이 이번 도마령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이미 전해 들었다. 그리고 조극이 뛰어난 수확을 이루었다는 점도 전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마주치니 참 세상이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극은 이미 석목이 구전현공을 수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조극의 성향으로 봤을 때, 절대 석목을 놓아 줄 리 없었다. 하지만 종문 안에서 만큼은 쉽게 석목을 해치지 못할 터였다.
상황을 지켜보니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조극은 석목이 구전현공을 수련했다는 사실을 퍼트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쁜 일은 아니었다. 석목이 할 고민이 조금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 * *
반나절 뒤. 석목은 또 다시 성역 변경에 자리한 청란성지의 거점에 도착했다.
석목은 익숙하고도 낯선 곳을 둘러보며 마음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샘솟았다.
석목은 전송대전 밖에 서서 전송거점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거점은 예전에 석목이 이곳을 떠날 때 모습과 확연히 달랐다.
거점 밖에 늘어선 단단한 방어 보루가 석 장 정도 되는 회색 벽과 이어지면서 거점을 안으로 감쌌다.
벽과 보루가 둘러싼 안쪽에는 붉은색 대전이 여기저기 지어져 있었다.
먼 곳을 바라보니, 방어 보루 외곽에 자리한 전함 부두에 거대한 금색 전함 열 몇 척과 석목이 예전에 탔던 은월 전함이 나란히 한 줄로 서 있었다.
잠시 후에 석목은 시선을 거두어들이고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총무전으로 가서 도착 신고를 했다.
이제 막 반쯤 걸어갔을 때, 석목의 도마령에서 갑자기 영력 파동이 전해졌다.
석목이 검은색 영패를 꺼내 보니 영패 위에 빛이 번쩍이며 금색 글자가 한 줄 나타났다.
“모든 제자, 속히 도마전으로 집합.”
그 글자를 본 석목은 영패를 거두어들이고서 보루 가운데에 서 있던 가장 큰 건물로 향했다.
대전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했으며 제자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석목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알고 있는 얼굴들이 여럿 있었다.
우선 대전 오른쪽 가장 앞에는 조극이 서 있었다.
조극 옆에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공손한 표정으로 조극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석목도 아는 사람이었다. 영폭 때문에 다투었던 천 년 제자인 관력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조극의 뒤에 강능풍과 강수수가 서 있었다.
백 년 사이에 두 사람도 수련 경지가 적잖이 강해졌다. 강능풍은 천위 중기 정상이었으며 강수수는 천위 초기였다.
석목이 강능풍을 바라봤을 때, 강능풍도 무엇인가를 느낀 듯이 돌아섰다. 강능풍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복잡한 기색을 내비쳤다.
석목은 강능풍을 계속 바라보지 않고 시선을 돌려 왼쪽을 바라보았다.
대전 왼쪽 뒤편에 청장천과 적예자도 있었다. 둘은 무엇인가 말을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석목은 두 사람과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에게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청장천은 석목을 알아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석 형,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는지요?”
“석 형, 종문을 떠난 지 고작 백 년 사이에, 수련 경지가 천위 후기에 도달했군요. 처음에는 안 믿었는데 이렇게 보니 놀랍고 또 부럽습니다.”
적예자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후후, 두 분은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보아하니 이 임무를 시작한 지 꽤 오래된 듯합니다?”
석목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맞습니다. 도마령이 떨어졌을 때, 우리 둘은 곧바로 이곳에 왔습니다. 석 형, 이제 막 온 것 같은데 지금 수련을 한 경지로는 적어도 대장 직무 정도는 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청장천이 웃으며 말했다.
석목이 대답을 하려고 할 때, 대전 앞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조용!”
대전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대전 앞에 용무늬가 새겨진 금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이 나타났다. 키가 훤칠했으나 얼굴은 수척했으며 하얀 머리카락에서 바다처럼 깊은 기운이 풍겨져 나와 묵직한 위력이 느껴졌다.
“저 분은 누구십니까?”
석목이 몰래 전음을 보내서 청장천에게 물었다.
“석 형, 저 분을 모르십니까? 저 분의 성함은 관산해(關山海)입니다. 성지의 팔대 성계 호법들 중 한 사람입니다.”
청장천이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성주가 내린 도마령에 응하여 주신 여러분들은 우리 청란성지에서도 가장 뛰어난 제자들입니다! 흑마족이 세력을 확장하며 우리 미양 성역을 넘본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유난히 창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필히 최선을 다해 흑마족을 물리쳐 성역을 지켜야 합니다!”
관산해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관산해는 말을 하며 대전에 있던 제자들을 훑어보았다.
관산해의 시선이 석목의 얼굴을 스쳤을 때, 석목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관산해가 자신을 알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 성지에서 또 다른 제자들이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이어서 새로 들어온 제자들에게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진경시(陳庚時), 자리에 있는가?”
관산해가 계속해서 말했다.
“제자, 있습니다.”
얼굴이 푸른 귀신같은 요족 남자가 대답을 하더니 대열에서 걸어 나와 앞쪽으로 향했다.
“앞전에 사망한 부군(傅軍)의 자리를 대체하여 정(丁) 소대를 거느리고 계속해서 순찰 임무를 맡아라.”
관산해가 명을 내렸다.
“제자, 명을 받들겠습니다.”
얼굴이 푸른 남자가 대답했다.
“주홍문(朱紅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