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5화. 거점에 잠입하다
“석목, 자리에 있느냐?”
잠시 후에 관산해가 소리를 질렀다.
석목이 대전의 앞쪽으로 걸어나가 관산해에게 인사를 올리며 대답했다.
“제자, 있습니다.”
“너는 천위 후기 제자라 따로 소대를 이끌어야 마땅하나, 지금 각 소대를 맡을 대장들은 정원이 다 찼다. 그리고 너는 이곳에 처음 오게 되었으니 아마 여기 상황을 잘 모를 테지. 우선 조극의 소대에 들어가서 명을 따라라.”
관산해가 석목을 한번 쳐다보며 말했다.
“관 호법께서 내리신 지시를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제자가 명을 거역한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석목이 대답을 하자마자 주변이 시끌벅적해졌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관산해는 안색이 차갑게 변하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관산해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흘러나와 석목을 짓눌렀다.
석목은 엄청난 위압감을 느끼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하지만 곧바로 구전현공을 시전하여 저항했다. 그리고 느긋하게 말했다.
“제자가 부석 성해에서 흑마족과 십여 년 간 싸웠습니다. 부석 성해와 흑마족에 대해서라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 처음 온 것도 아니니 혼자 움직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관산해는 깊은 눈으로 차갑게 석목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석목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으며 관산해와 눈을 마주했다.
두 사람이 팽팽하게 대치를 하자 대전은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석목을 바라보는 제자들은 온통 믿기지 않는 눈빛을 비쳤다.
석목이 수련을 한 경지가 약한 건 아니었지만 천위와 성계는 하늘과 땅에 버금가는 실력 차이가 났다. 모든 사람들이 조극처럼 경지를 뛰어넘어서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때, 관산해가 기세를 거두어들이더니 차갑게 말했다.
“네가 대열에 합류하고 싶지 않다고 하니 나도 더는 밀어붙이지 않겠다. 그럼 혼자서 움직이되 다른 대열이 임무를 수행하는 걸 방해해선 아니 된다.”
“석 형, 제가 전해 듣기로 성지에서 관력이라는 천 년 제자와 다투었지요? 관산해는 관력의 선조입니다.”
석목의 귓가에 청장천의 전음 소리가 들렸다.
“그렇군요.”
석목은 그제야 조금 납득을 했다.
하지만 관산해는 석목이 원하는 대로 혼자 행동할 수 있도록 허락을 했으니 그만이었다.
“제자, 명을 받들겠습니다.”
석목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고 돌아서서 사람들이 보내는 시선을 느끼며 대전 밖으로 걸어 나갔다.
* * *
도마전에서 걸어 나온 석목은 신식으로 연나와 연결을 시도하였다.
얼마 전에 동부에 찾아와 부석 성해로 가서 흑마 성역에 가라며 말을 한 후로 연나는 계속 소식이 없었다. 석목이 연결을 하려고 해도 아무런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끝내 연나에게 회신을 받지 못한 석목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석목은 대전 바깥 광장에 서서 부석 성해를 바라보았다.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석목은 우선 공간 통로 쪽으로 가서 상황을 파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석목은 용우비차를 불러서 올라타며 최상급 영석 여섯 개를 원판에 끼워 넣었다.
용우비차에 빛이 크게 번지더니 광막이 한 층 나타나며 비차를 안으로 감쌌다. 그리고 빛으로 변하여 하늘 높이 날아갔다.
* * *
부석 성해의 변두리, 커다란 운석 조각들이 하늘에서 떠다녔는데 운석 조각들 위에 부문이 가득 새겨진 검은색 돌기둥들이 꼿꼿이 서 있었다.
그것은 흑마족이 쓰는 금제 진법을 감지하는 것들로 흑마족의 첩자가 들어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 설치해 두었다.
이때, 은월 전함 한 척이 막 부두로 돌아와 커다란 운석 조각 사이에서 날아왔다. 석목은 비차를 조종하며 전함 옆을 스쳐지나 부석 성해 속으로 날아갔다.
반나절 정도 날아간 석목은 운석 조각들이 수년 전 보다 훨씬 많아졌으며 부피도 훨씬 커진 채로 공간들을 촘촘하게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격전을 치렀기에 이 지경이 되었을까.
석목은 비차를 조종하며 조심스럽게 뭉친 운석 조각들 사이를 피해 나가며, 운석의 부피가 매우 작아서 더는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날아오면 석목은 비차를 강하게 움직여서 운석을 날려버렸다. 보호 광막이 있으니 이 정도는 괜찮았다.
깊이 들어갈수록 교전을 한 흔적은 점점 많아졌으며 전함이 부서지며 나온 파편과 망자들의 찢어진 시체가 점점 더 빈번하게 나타났다.
부석 성해에 처음왔을 땐 삼대 성지의 제자들이 눈에 띄었는데 이틀이 지나자 석목이 지나간 자리에는 흑마족에서 보낸 순찰 척후들 밖에 없었다.
의외의 일이 일어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석목은 흑마족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서 의식을 하며 피해 다녀서 종적을 드러내지 않았다.
며칠 동안 비행을 한 후에 석목의 눈앞에 커다란 행성 파편이 나타났다.
“이곳은…… 부공성 요새!”
석목은 한참 동안 살펴보고 나서야 그곳이 부공성 요새라는 걸 알아차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햇다.
눈앞에 놓인 파편들은 면적이 매우 넓었다.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거의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그 위에 삼대 성지가 지었던 건물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거의 대부분이 무너졌으며 석목이 머물던 주영산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부공성 요새가 이 모양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석목이 예전에 일으킨 공간 난류 때문이라는 것을 석목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석목이 놀라고 있을 때, 부공성 요새에서 검은색 안개가 용솟음치더니 흑마족 열 몇 명이 요새에서 날아 나와 석목에게 다가왔다.
원치 않던 상황이 일어나자 석목은 곧바로 비차를 돌려서 오른쪽에 자리한 커다란 운석 조각 위로 날아갔다.
몸을 잘 감춘 후에 석목은 곧바로 용우비차를 거두어들였다. 석목에게 파란색 빛이 번지며 수막을 덮어썼다.
흑마족 열 몇 명은 빠르게 날아와 석목과 몇 장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추었다.
“왜 사라졌지? 조금 전에 분명 알 수 없는 기운이……”
가장 앞에 서 있던 훤칠한 성계 강자가 의문을 품은 듯이 물었다.
“총령님, 이 부석 성해는 이미 우리가 전부 차지하고 있습니다. 삼대 성지에서 보낸 척후는 절대 이렇게 멀리 올 수 없습니다.”
한 흑마족이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정말 이곳까지 올 수 있는 놈이라면 절대 평범한 척후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조금 더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하겠지. 두 명씩 한 조로 붙어 다니고, 흩어져서 자세히 뒤져봐라.”
성계 총령이 명을 내렸다.
“네.”
흑마족 수십 명이 동시에 대답했다.
흑마족들은 석목 주변 수십 장을 반 시진 정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석목이 남긴 종적을 찾아내지 못하자 어쩔 수 없어 돌아갔다.
흑마족들이 다시 부공성 요새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석목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제 막 비차를 움직여 떠나려 할 때, 석목 옆에서 강력한 영력 파동이 흘러나왔다. 석목은 무심결에 주먹을 옆으로 휘갈겼다.
석목의 주먹이 아직 튀어나가기도 전에 칠색 빛이 주먹을 감싸며 막아냈다.
“연나……”
석목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석목 옆에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파란색 궁장을 입고 있는 연나였다.
석목은 연나가 검은색 상자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사령계에서 왔어?”
“음.”
연나가 대답했다. 연나는 더 길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석목은 입을 벌리고는 무엇인가 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연나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우선 이곳에서 떠나자.”
두 사람은 석목의 용우비차를 타고서 빛으로 변하여 부석 성해의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 * *
사흘 뒤.
석목과 연나는 비차를 타고 십만 장 정도 되는 커다란 운석으로 내려와 먼 하늘을 바라봤다.
그곳은 검은 안개가 자욱한 커다란 흑색 부도였다. 부도 위에는 포악스럽고 기이한 검은색 건물이 수십 갈래 뻗어서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흑마족의 거점이었다.
석목은 검은색 건물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탑을 가리키며 말했다.
“공간 통로와 흑마족의 부도는 거리가 너무 가까워, 이렇게 그냥 가면 흑마족이 알아차릴 거야.”
연나는 탑 꼭대기에 드리운 둥그런 광막을 바라보았다. 그 위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마기가 드리워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에 연나는 칠색 빛을 번쩍이며 칠보묘수를 꺼내 들었다.
연나가 묘수를 든 채 휙 옆으로 흔들자, 칠색 빛이 번쩍이며 키가 훤칠한 사내가 나타났다.
“흑마족……”
그 모습을 본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구십라, 네가 길을 안내하거라.”
연나가 명령을 했다.
키가 훤칠한 흑마족은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비쳤다. 구십라가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성조님, 부족이 머무는 부도성은 방어 태세가 매우 준엄합니다. 성조님은 부족 사람으로 변장하여 저와 함께 들어가실 수 있으나 이분은…… 아마 성으로 모시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 속에는 마기가 감돌고 있어서 천위 후기의 수련 경지로는 더욱 적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연나는 구십라가 하는 말을 듣더니 두 손을 위 아래로 겹쳐서 현묘한 법결을 몇 개 시전하였다. 연나의 손에서 검은빛이 날아가더니 석목의 가슴에 떨어졌다.
석목은 가슴이 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웠고, 그가 고개를 숙여 가슴을 내려다보니 가슴 부위에 검은색 문양이 한 줄 나타났다.
검은색 문양은 몇 번 번쩍이더니 순간 엄청난 마기 안개를 뿜어내며 석목의 몸을 감쌌다.
석목이 풍기던 기운은 순식간에 바뀌었으며 인간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어서 연나의 이마에 새겨진 검은색 연꽃 문양에서도 검은빛이 반짝이며 마기가 줄줄이 뿜어져 나와 연나를 감쌌다.
마기가 전부 사라지자, 하얗던 연나의 얼굴이 검게 변하였으며 파란색 궁장도 검은 비늘 갑옷으로 바뀌었다. 또한 몸에서 풍기던 기운을 완전히 변하여 석목조차 연나를 알아 볼 수 없었다.
구십라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서 있었다.
“저 자가 변신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한 시진 밖에 되지 않는다. 지체하지 말고서 빨리 길을 안내하거라.”
연나가 말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구십라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세 사람은 구십라의 둥그런 비판(飛盤)을 타고서 허공으로 날아올라 흑마족이 머무는 부도성으로 날아갔다.
* * *
비판에서 마기가 용솟음을 치며 어떤 광장에 떨어졌다.
석목은 비판에서 내려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부도는 부공성 요새와 비슷했는데 높이가 백 장 정도 되는 커다란 산봉우리 같았다.
생김새가 기이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으며 부도 곳곳에 촘촘하게 모여 있었다.
구십라는 산봉우리 끝에 선 높은 탑을 가리키며 말했다.
“공간 통로로 들어가는 입구는 저 탑에 있습니다.”
“가자.”
연나가 담담하게 말했다.
구십라는 돌아서서 광장 밖에 깔린 넓이가 석 장 정도 되는 검은색 돌길을 따라서 산봉우리 위로 올라갔다.
석목과 연나는 구십라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세 사람이 광장을 벗어나기도 전에 흑마족 무리가 앞으로 걸어왔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사람은 몸집이 둥그스름하며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기쁜 기색을 드러내며 앞으로 다가와 말을 했다.
“음, 구십라 형님?”
구십라는 그 사람을 보더니 반가워하며 답했다.
“아, 아인라, 나야. 나 돌아왔어.”
아인라라 불리는 흑마족 청년은 구십라를 덥썩 안으며 흥분을 한 채 말했다.
“곤륜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시지 않았기에, 다시는……”
“후후, 그 해에는 사고를 조금 겪었지. 하지만 지금 이렇게 돌아왔지 않은가.”
구십라는 더는 설명하지 않으며 짧게 말했다.
아인라는 석목과 연나를 훑어보더니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구십라 형님, 이 두 분은?”
“내 부하네. 그 해에 곤륜으로 들어간 후로 이 두 사람만 나와 함께 나올 수 있었지.”
구십라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이구……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인라는 구십라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서 깊게 한숨을 내뱉으며 물었다.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니 나중에 자세히 말해주겠네.”
구십라가 말했다.
“아, 이제 막 돌아오셨으니 아직 마존 어르신을 뵙지 못했지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아인라가 물었다.
“아니야. 내가 알아서 가마.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것이지? 자기가 맡은 직책을 잊지 말게나.”
구십라가 다급하게 말했다.
“구십라 큰형님의 가르침을 잘 지키겠습니다. 마존 어르신은 지금 의사청에 계시니 빨리 가보십시오.”
아인라가 말했다.
그리고 흑마족 무리를 데리고서 광장 한쪽으로 다가갔다. 석목과 연나의 옆을 지나칠 때에도 친근한 표정으로 웃기만 하는 것을 보니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흑마족 무리가 떠나자 구십라는 곧바로 연나와 석목을 데리고서 흑석 산길을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 가는 동안 적잖은 흑마족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지만 구십라는 잘 넘겼다.
구십라는 수련 경지가 천위 정상일 뿐만 아니라 흑마족에서도 꽤 신분이 높은 사람 같았다. 어느 마존의 직전제자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