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6화. 침입하는 이유
일각 후.
석목과 연나는 구십라의 안내를 받으며 산꼭대기의 검은 탑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마탑 앞 입구에는 사자 머리에 사슴 몸통, 날개가 한 쌍 달린 검은색 짐승이 앉아있었는데 석목 일행이 오는 모습을 보자 곧바로 일어서서 허리를 굽히며 날카로운 이를 드려내고 으르렁댔다.
이때, 연나가 검은 안개를 거두어들이고서 다시 궁장을 입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연나가 앞으로 걸어가 두 손을 들어 마수의 머리를 가볍게 매만졌다. 마수는 입에서 곧바로 낮은 신음소리를 흘리며 다시 순종을 하듯이 배를 땅에 붙였다.
연나는 짐승의 머리를 가볍게 두 번 두드린 후에 몸을 일으켜 마탑으로 들어갔다.
석목과 구십라도 곧바로 따라 들어갔다.
잠시 후에 세 명이 탑 꼭대기에 올라와 마기 안개로 휘감긴 둥그런 통로를 따라 위로 날아갔고 망망한 성해에 도착했다. 이어 둥그런 광막이 둘러진 공간 통로와 백 장 정도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공간 통로 근처는 흑마족 수 백 명이 촘촘하게 늘어서 있었으며 열 몇 소대로 나뉘어 근처에서 순찰을 돌고 있었다.
석목은 어두운 곳에 숨어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엄한 경비를 어떻게 뚫고서 공간 통로로 잠입하겠는가?
이때, 연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자!”
연나가 담담하게 말을 하며 손을 흔들자 하얀빛이 석목과 구십라에게 드리웠다.
‘쓱!’하는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은 희미한 빛으로 변하여 번쩍이더니 공간 통로 속으로 날아갔다. 그 속도는 너무 빨라서 절대 육안으로 볼 수 없을 속도였다.
근처에 있던 한 천위 흑마족이 공간 통로를 한번 바라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엇인가 반짝이며 스친 것 같았으나 자세히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천위 흑마족은 멈칫했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며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 순찰을 돌았다.
석목은 눈앞이 캄캄해지며 칠흑 같은 통로에 놓이게 되었다.
석목은 존경스럽고도 놀라운 눈빛으로 연나를 한번 쳐다봤다.
연나는 속도만 믿고서 날아 들어온 것이었다. 만약 들키기라도 했더라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런 말들을 연나에게 해봤자 아마 아무 소용이 없을 터였고, 그는 고개를 흔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검은색 통로는 너비가 십 장 정도 되었는데 마치 지하 통로 같았다. 주변에는 검은색 기류가 흐르고 있었으며 기류 속에서 공간 균열이 번쩍였고, 공간 파동도 아주 격렬했다.
세 사람이 서 있는 공간 통로 가운데는 비교적 안정이 된 상태였다.
석목이 기운 파동 속의 찢어진 공간 균열을 바라보며 조금 걱정이 되었다. 공간 균열에 닿기라고 한다면 연나는 살아남겠지만 석목과 구십라는 부서지고 찢겨져 가루가 될 터였다.
“바짝 붙어서 따라와. 여긴 안전하지 않아. 투명한 공간 균열도 적잖게 찢어져 있어. 너희가 닿게 되면 죽을 거야.”
연나가 담담하게 말을 하며 앞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깜짝 놀라서 연나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하지만 구십라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연나는 눈에서 은빛을 반짝이며 공간 통로를 이리저리 비집고서 날아갔다. 석목과 구십라는 연나의 뒤에 바짝 붙어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았다.
* * *
세 사람은 족히 반시진이나 날았다. 그리고 연나가 갑자기 멈춰 섰다.
석목이 앞을 바라보더니 안색이 변했다.
앞의 공간 통로는 커다란 검은색 봉인 광막이 드리워 길이 막혀있었다.
봉인 광막에는 수많은 부문들이 번쩍였으며 그 생김새가 매우 복잡했다. 매우 정교한 봉인이었다. 적어도 석목은 그 봉인을 해제할 수 없었다.
“이곳에 왜 봉인이 걸려있는 것입니까? 예전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구십라는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
“아마 요즘 설치한 것이 아닐까요?”
석목이 말했다.
구십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허화(虚化) 비술로 우리를 데리고서 이 봉인을 뚫을 수 있을까?”
석목이 연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연나는 눈빛을 반짝였다. 연나는 검은색 봉인 앞으로 걸어가서 손을 들어올리더니 은빛을 감은 손바닥을 검은색 봉인에 올려놓았다.
윙!
이때, 검은색 봉인에서 검은빛이 크게 번지더니 수많은 검은색 부문들이 나타나서 연나가 감은 은빛을 막아냈다.
“누가 공간 통로로 잠입을 한 거야! 음!”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공간 통로가 격하게 흔들렸다.
그림자가 반짝이더니 검은색 봉인 앞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석목은 안색이 변했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부석 성해에서 봤던 석무애였으며 다른 한 사람은 검은 피풍의를 두른 청년이었는데, 잘생긴 얼굴에 짙은 마기를 풍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선인 같았다.
검은 피풍의를 두른 청년이 풍기는 기운은 신경에 가까웠다!
석목은 신음을 내듯이 깊은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눈에 빛을 크게 뿜으며 금빛으로 몸을 감싼 후 싸울 태세를 취했다.
“잠깐만.”
연나가 석목의 앞을 막아서며 석무애와 청년을 바라보았다.
“당신…… 정말로 보화 성조 어르신입니까?”
석무애는 연나를 바라보며 눈에 복잡한 기색을 드러냈다.
석목은 멈칫했으며 연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미양 성역의 삼대 성지에게 듣긴 했습니다. 곤륜성허 속에 칠보묘수를 들고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고요. 어르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어르신이었군요.”
검은색 피풍의를 입은 청년이 말했다.
“석무애, 운리(雲履), 오랜만이다.”
연나가 천천히 입을 열며 말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석목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석목이 입을 열 때가 아닌지라 입을 다물고서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보화 어르신도 우리가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는 계셨네요.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우리 흑마족의 칠대 부족은 밤낮없이 공봉(供奉)을 했습니다. 허나 우리에게 관심조차 돌리지도 않으셨지요.”
석무애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말투에 한이 맺혀 있었다.
“무야, 무엄하도다. 보화 어르신이 그동안 사라졌던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셨을 게다. 어르신께서 머무시던 행궁인 곤륜은 이미 무너졌다. 그 해에 어떤 큰 재난을 맞으셨기때문에 보화 어르신이 오랫동안 사라지셨다.”
운리는 책망을 하듯이 석무애에게 말했다.
석무애는 다시 콧방귀를 한번 뀌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화 어르신, 무야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동안 흑마족이 곤경에 처하게 되어서 무야가 이러는 것입니다.”
운리는 허리를 굽혀 연나에게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괜찮다. 그건 내가 저지른 실책이다. 내 잘못으로 흑마족을 보호하지 못한 것이다.”
연나는 눈에 슬픈 빛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화 어르신, 그 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셨었습니까?”
운리가 물었다.
“그 일은 아직 알 필요 없다. 지금 흑마 성역은 어떤 상황이더냐?”
연나가 말했다.
“보화 어르신, 그 해에 어르신이 사라지신 후, 우리 흑마족의 칠대 부족은 통솔을 받을 사람을 잃어버렸지요. 처음에는 화목하게 잘 지냈으나 점점 모래알처럼 흩어졌습니다. 심지어 서로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천정이 그 틈을 노려서 간섭을 했으며 음모를 꾸며서 우리 칠대 부족 사이에 생긴 모순을 격화시켰습니다.
그 뒤로는 고만족까지 흑마 성역으로 보냈습니다. 지금 흑마족의 칠대 부족은 정세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구려, 상웅, 구망 삼대 부족은 이미 완전히 천정에 귀속이 되었으며 천정의 앞잡이가 되었습니다. 또한 나찰(羅剎), 오라 두 부족은 이미 천정에게 포위가 되었습니다.
부족을 이끄는 마존이 고만족에게 살해를 당했으며 모든 부족이 무너질 위기에 쳐했습니다. 몇몇 부족 사람들만 간신히 명을 이어가고 있으나 살아있어도 죽은 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운리가 한숨을 내뱉으며 침통한 투로 말했다.
석목은 눈빛을 반짝였다. 예전에 풍리와 함께 만난 그 작은 부족이 오라 부족이었다. 오라 부족이 흑마족의 칠대 부족 중에 하나였다니.
“……지금은 우리 흑염(黑魘), 수라, 두 부족만이 온전한 편입니다. 고만족과 다른 삼대 부족이 연합하여 핍박을 하고 있지만 천정에 고개 숙이며 투항하기는 싫어서 멀리 있는 다른 성역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 공간 통로를 통해서 미양 성역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운리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그제야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했다. 흑마족이 갑자기 미양 성역을 대규모로 침공하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흑마 성역이 완전히 천정에게 속한 후, 우리 두 부족은 이미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천정이 사람을 보내서 이 공간 통로를 뚫고들어와 우리를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저와 석무애는 더 이상 방법이 없어서 공간 통로에 이런 봉인 금제를 설치해 두고서 추격자가 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습니다.”
운리가 말했다.
“그동안 너무 고생이 많았다. 천정이 저지른 일은 나도 대충은 알고 있다.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꼭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다.”
연나는 운리가 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보화 어르신, 경솔한 말입니다만 지금 막 돌아오시지 않았습니까. 어르신은 성계로 실력이 내려 앉으셔서 신경에도 이르지 못하셨습니다. 제 실력보다 경지가 더 낮으신데 어떻게 우리를 데리고 천정과 맞설 수 있겠습니까?”
석무애가 말했다.
연나는 눈빛만 반짝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화 어르신, 석무애가 한 말은 무례하지만 사실입니다. 그리고 천정이 지금 도처에서 어르신께서 남기신 종적을 찾아 나섰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어르신이 흑마 성역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천정은 꼭 사람을 보내서 잡으려 들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흑마 성역으로 가시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운리가 말했다.
“그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계획을 다 세워두었다. 너희들이 굳게 지키는 마원(魔源)으로 내 나무를 밝혀주거라.”
연나가 차분한 표정으로 말하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연나의 손에서 칠색 빛이 흐르더니 칠보묘수가 나타났다.
석무애와 운리는 그 말을 듣고서 서로를 한번 바라보았고, 연나가 이미 결심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두 사람은 곁에서 보화 선자를 모셨던 사람들이었으니 보화의 성격을 모를 리 없었다.
두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서 오른손을 들어 검지와 중지를 붙여 이마에 가져다댔다.
이어서 주먹만 한 푸른빛과 노란빛이 두 사람의 뒤통수에서 튀어나와 반짝이며 칠보묘수의 두 가지에 들어갔다.
두 가지에서 화려한 빛이 흐르더니 마치 어둡던 무엇인가를 밝히듯 맑은 푸른빛과 노란빛을 뿜어냈고, 빛들 속에서 기이한 기운 두 갈래가 흘러나왔다.
석목은 멍하니 옆에 서 있었다. 석목은 ‘마원’이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석목이 끼어들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중에 연나에게 물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