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598화 (598/916)

598화. 전무(顓武) 마존

흑마 성역의 깊은 곳에는 명옥성(冥獄星)이라는 큰 행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명옥성은 미양 성역의 동성성처럼 흑마 성역에서 명성이 자자한 행성이었다.

명옥성은 마기가 아주 짙어서 안개와 비슷했다. 흑마족에게 명옥성은 수련을 하기에 동천복지인 장소였다.

하지만 이렇게 조건이 뛰어난 곳에서 흑마족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체구가 거대한 고만족만 여기저기 있었다.

흑마 성역을 천정에게 빼앗긴 상황에서 고만족은 천정의 충실한 시종이었으니 그 지위는 자연스럽게 이제 막 투항한 흑마족의 삼대 부족인 상웅, 구망, 구려보다 높았다.

흑마 성역에서 마기가 짙은 지역은 대부분 고만족이 다스리고 있었다.

명옥성에 자리한 커다란 산맥의 깊은 곳, 웅장한 궁전이 백 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궁전들은 자연스럽게 고만족의 손아귀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고만족이 머무는 행궁이 되었다.

고만족 수십 명이 궁전 깊은 곳에 자리한 커다란 방에 모여 있었다.

고만족들은 실력이 전부 성계였으며 주좌에는 유난히 키가 훤칠한 고만족 둘이 앉아있었다.

그 중에 한 명은 얼굴이 검푸른 색이었으며 몸은 강철 같았다. 또한 눈썹과 머리카락은 붉은색이었으며 매우 방대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신경 강자였다.

고만족 사내 옆에는 여자 고만족이 한 명 서 있었고, 똑같이 키가 훤칠했지만 피부가 하얗고 몸매와 용모가 뛰어났다.

이 여자도 신경 존재였다.

“우리 부족의 모든 부대는 이미 준비를 끝냈는가?”

눈썹이 붉은 사내가 말했다.

“비부(蚍蜉) 신장님께 보고합니다. 이미 흑마 성역의 주요 행성들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반항을 하던 세력들도 이미 진압하여 흑마 성역은 이제 우리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아랫줄 첫 번째 자리에 있던 금발 고만족 사내가 자신 있게 말했다.

다른 고만족들도 통쾌해하며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래도 너무 방심을 하면 안 된다. 상웅, 구망, 구려는 이미 천정에 귀속되었지만 삼대 부족은 진심으로 복종을 한 게 아니다. 언제든지 반란을 할 수 있으니 시시각각 유의해야한다. 수라, 흑염 부족은 비록 흑마 성역에서 쫓겨났지만 다시 반격을 할 가능성이 있으니 절대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제준(帝夋) 어르신께서 흑마 성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에게 맡기셨으니 절대 실수를 하면 아니 된다.”

비부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고만족들은 ‘제준’이라는 두 글자를 듣자 몸을 파르르 떨며 엄숙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됐다. 별일이 없으면 물러나거라. 잠시 후에 함께 폭풍마각으로 간다.”

비부 신장이 말했다.

성계 고만족 수십 명이 우르르 일어서서 인사를 올린 후에 걸어 나갔다.

순식간에 대전에는 비부와 피부가 하얀 여인만 남았다.

“후후, 제준 어르신이 내린 임무를 드디어 다 완성해나가는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네.”

사람들이 전부 나가자 비부 신장은 표정을 순식간에 바꾸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지금 잠시 흑마 성역을 차지했을 뿐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우선 다른 일들은 제쳐두고서 흑마 성역에 있는 영광들을 빨리 채굴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고만족 여자가 말했다.

비부 신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고만족 남자가 대전 밖에서 걸어 들어왔고, 남자는 표정이 매우 어두웠다.

“두 신장께 보고드립니다. 조금 전에 찰고(紮古) 어르신의 혼등이 꺼졌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두 신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찰고가 어디서 죽었느냐?”

비부 신장이 물었다.

“찰고 어르신은 한 개 분대를 이끌고 미양성역과 연결된 공간 통로 근처에서 주둔하며 상황을 감시하셨습니다.”

들어온 사내가 말했다.

비부 신장은 표정을 바꾸더니 피부가 하얀 여인과 눈을 마주쳤다.

“그래, 나가 보거라.”

비부 신장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부하는 인사를 올리고는 물러났다.

“구봉(九鳳), 네 생각은 어떠하냐? 찰고는 실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찰고가 잘 다루던 토템은 망월서우(望月犀牛)였다. 방어력이 매우 뛰어나 성계 후기인 강자라 할지라도 결코 쉽게 죽이지는 못할 테지.”

비부 신장이 말했다.

“혹시 미양 성역으로 도망간 흑염과 수라 부족 사람들이 넘어왔을까요? 석무애와 운리만 아니라면 찰고가 소식을 전할 새도 없이 죽어버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구봉 신장이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이 일은 꼭 확실하게 조사를 해봐야 한다. 만약 흑염, 수라 부족이 죽였다면 결코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지.”

비부 신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영패를 하나 꺼내들며 검은 빛을 영패 속으로 불어 넣었다.

잠시 후, 조금 전에 나갔던 금발 고만족이 걸어 들어왔다.

비부 신장은 찰고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금발 고만족에게 말해주었다.

“이 일은 절대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곧바로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공간 통로를 확실하게 알아보아라!”

비부 신장이 말했다.

“네!”

금발 고만족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하고는 다급하게 나갔다.

“이 일도 해결해야 하겠지만 폭풍마각 쪽에 더욱 집중을 하셔야 합니다.”

구봉 신장이 말했다.

“그건 당연하겠지.”

비부 신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흑마 성역의 성해 속, 하얀빛이 하늘을 그으며 지나갔다. 빛은 속도가 매우 빨랐는데 마치 허공을 가로지른 후, 순식간에 만 리 밖 공간에서 튀어나오는 듯했다.

하얀빛은 석목 일행이었다.

구십라가 안내를 하며 연나의 하얀 비주가 놀라운 속도로 날아가자 세 사람은 사흘 만에 상웅 부족이 머무는 주요 행성인 흑염성에 도착했다.

석목은 하얀 비주에 서서 눈앞에 놓인 커다란 행성을 바라보았다.

흑염성은 동성성과 비슷할 정도로 컸다. 멀리서 바라보면 행성이 전부 검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는데 마치 들끓는 연기 같았다. 아마 이 행성의 이름도 모습에서 비롯되었을 터였다.

흑염성의 마기는 흑마 성역의 마기보다 더욱 짙었다.

“여기가 상웅 부족의 주요 행성인 것 같은데 우리가 조금 더 조심을 해야 하지 않을까?”

석목이 연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연나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왜? 그 신경 마존을 처치할 수 있을 것 같아?”

석목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나에게 방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연나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더니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하얀 비주는 속도가 더욱 빨라져 곧바로 흑염성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행성 주변에 드리운 검은 화염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반시진 후, 하얀빛이 흑염 행성에 솟은 한 산 위에 떨어졌다. 그리고 빛이 반짝이더니 석목 일행이 나타났다.

석목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처는 마기가 아주 짙었는데 보월궁과 비슷할 정도였다.

여긴 산맥에서도 변두리였는데 먼 곳을 바라보면 커다란 성이 하나 산맥 밖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성에서 수많은 인파가 북적이는 모습을 보니 매우 번화했다.

“여기가 맞아?”

연나가 시선을 거두어들이며 물었다.

“보화 어르신, 저긴 흑염성에서도 중요한 성인 마현성(魔玄城)입니다. 제가 알기로 상웅 부족의 총전이 마현성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경화(鏡花) 마존도 아마 성 안에 있을 것입니다.”

구십라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연나는 하얀빛으로 변하여 산맥 밖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멀어져 가는 연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구심이 들었다. 연나는 무엇을 믿고서 이렇게 자신 있게 움직이고 있는가?

하지만 연나가 이렇게 하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석목은 연나를 믿기로 결심했다.

석목이 연나를 뒤따랐으며 구십라도 고개를 한번 흔들더니 곧바로 따라갔다.

이때, 세 사람 앞의 허공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마흔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뚱뚱한 남자였는데 붉은 피풍의를 두르고 있었다. 또한 머리카락을 높게 묶였는데 그 모습이 수탉의 꼬리처럼 괴상했다. 그 남자는 게으른 표정으로 한 눈은 감았으며 한 눈은 뜨고 있었다. 잠이 덜 깬 모양이었다.

“전무(顓武) 마존!”

구십라는 그 남자를 보더니 찬바람을 들이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도 안색이 굳었다. 이 사람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나타났다. 풍기는 기척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신경 강자일 터였다.

석목은 여의빈철곤을 꽉 쥐고는 곁눈으로 연나를 바라봤다.

연나는 전혀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전무 마존이 갑자기 나타난 게 하나도 놀랍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이구. 먼 곳에서부터 강력하고도 익숙한 기운이 다가오기에 귀찮아서 나와 볼까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래도 나와 봐야 할 것 같아서 나왔는데, 보화 어르신이 방문해주셨군요. 정말 실례했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전무 마존은 뚱뚱한 두 손을 굽히며 인사를 올리면서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오랜 시간 못 본 것 같은데 여전히 게을러터진 모습이구나.”

연나가 담담하게 말했다. 마치 오래된 친구와 담소를 나누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보화 어르신,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다만 움직이기가 귀찮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어디에 계셨습니까?”

전무 마존은 연나를 훑어보고는 곧바로 연나의 실력을 파악했다. 그리고 눈에 드리운 긴장을 풀며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그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돌아 왔다는 것이지.”

연나는 전혀 표정이 달라지지 않으며 말했다.

“네, 네! 보화 어르신의 위풍당당한 기세와 담력은 예전과 똑같군요. 이 부하는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아마 흑마 성역에 일어난 일들도 알고 계시겠지요? 저는 이미 천정에 투항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천위 부하 두 명을 데리고서 전혀 거리낌없이 흑염성에 오시다니 너무 거만하신 게 아닙니까?”

전무 마존은 얼굴에 기이한 웃음이 어렸다. 이어서 전무 마존은 몸을 번쩍이며 사라졌다.

순간, 전무 마존이 세 사람의 머리 위에 나타나 옷자락을 휘둘렀다. 옷자락이 순식간에 몇 십 배나 커져서 붉은빛을 뿜어내며 세 사람 위에 드리웠다.

석목이 깜짝 놀랐다. 비록 온몸으로 경계를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피하지 못한 채 수많은 붉은빛 속에 갇혔다.

석목은 마치 큰 산이 누르고 있는 것 같아서 허리를 굽히며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구십라는 상황이 더욱 나빴다. 구십라는 곧바로 바닥에 엎드려 입을 벌렸다가 다물기를 반복했는데 마치 물에서 나온 물고기같이 허우적대고 있었다.

연나는 여전히 꼿꼿이 서 있었지만 똑같이 붉은빛으로 층층이 감싸였다.

“보화 어르신, 실례했습니다. 어르신을 잡아서 돌아가면 천정이 큰 상을 내릴 것 같아서요! 저는 게을러서라도 물질을 탐내거나 하는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문 앞까지 찾아온 선물을 사양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전무 마존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웃었다.

전무 마존이 웃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소매에서 붉은빛이 튀어나와 ‘쉬익’하는 소리를 내며 세 사람을 거두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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