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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602화 (602/916)

602화. 일곤멸신 (1)

마각도 위.

한 세모난 제단 위에 누런빛이 밝아졌고, 제단 가운데에선 소용돌이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안색이 음울한 흑마족 중년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소용돌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머리카락이 몇 가닥 밖에 남지 않은 뚱뚱한 남자에게 말했다.

“흥! 이 고만족 놈들, 녀석들도 천정에 굽실거리는 개들이잖아. 이렇게 우리를 하대하다니. 마존에게 수비나 하라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치별, 화를 풀어! 우리는 이미 천정에 투항을 했으니, 천정이 하는 말을 따라야지 어쩌겠어. 그쪽에서 부르는 값이 충분하다면 그만이야.”

뚱뚱한 남자가 말했다.

“지철, 너는 이익을 쫓아 천정을 따라다니지만 나는 아니야! 나는 다만 강자를 따라다니며 내 가슴 속에 쌓인 화를 풀고 싶을 뿐이라고! 그런데 천 년이나 지났는데 천정은 여전히 우리를 못 믿고 있잖아. 아직도 고만족의 뒤치다꺼리나 하라는 게 말이나 되냐고!”

치별이 화가 나서 말했다.

“치 아우, 그만 화를 가라앉혀! 이 금제 속에선 사고도 일어나지 않지만 건질 것도 없어! 굳이 시끄럽게 굴 필요는 없잖아.”

지철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때,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순간 표정을 굳히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드러냈다.

지철은 치별을 한번 쳐다보더니 주변에 있는 흑마족 수십 명에게 말했다.

“너희는 이곳을 지켜라. 우리는 나갔다가 오겠다.”

그리고 두 사람을 빛을 번쩍이며 마각도 밖으로 날아갔다.

* * *

“후후, 난 또 누구라고. 계집애 명라잖아! 그렇게 피해 다니더니 웬일로 여기까지 찾아왔나? 아, 먼저 말해주는 건데 여긴 네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없어.”

지철이 악어 위에 앉아 있는 명라를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너 같은 짠돌이에게 내가 뭘 바라겠어! 가서 너희 주인님에게 알려. 나, 명라 어르신이 두 손을 들었다고!”

지철이 하는 말을 들은 명라는 아쉬운 듯이 먹다 남은 육포를 거두어들이고는 손을 털며 말했다.

“누가 주인님이야!”

명라가 하는 말을 들은 치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이구, 치 아우, 흥분하지 말고! 명라, 그게 진심이야? 우리를 갖고 노는 건 아니겠지?”

지철이 눈알을 굴리며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히히, 생각이 바뀌었어. 천 년이 넘게 지났는데 보화 언니는 정말 돌아오지 않으려나봐. 그러니 버틸 이유가 없는 것 같아. 그러니 너희를 따라서 천정에 구경이나 가려고. 맛있는 것들이 가득 있을지도 모르잖아?”

명라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후후, 명라, 잘 생각했다. 봉희 그 고집불통을 절대 따라하지 마. 미색을 목숨보다 더 좋아하면서도 그렇게 많은 미남들을 보냈는데도 싫다고 하다니. 굳이 천정과 맞서서 무얼 하겠다고? 그러니 처참하게 죽은 게 아니겠나.”

지철이 웃으며 말했다.

“음? 봉희 언니가 어떻게 죽었는데?”

명라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흥! 어떻게 죽긴? 그때 우리는 고만족 놈들과 같이 갔었지. 봉희는 혼자였어. 그러니 우리를 상대할 수 있었겠어?”

치별이 차갑게 말했다.

“내가 봐줘서 그랬지, 아니었더라면 봉희가 이끄는 나찰 부족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지철이 웃으며 말했다.

명라는 화가 극도로 치밀어 올라서 이를 부득부득 갈며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니까 너희가 언니의 육신을 없애고 신혼마저 온전치 못하게 만든거라고?”

“음! 봉희의 신혼이 아직 남아있나?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지철이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

“두 쓰레기 놈들.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명라는 왜소한 몸통을 부들부들 떨며 강력한 기운을 터뜨렸다.

“가만히 두지 않으면 어쩔 건데? 하하하! 웃기고 있네! 우리가 널 놓아줄 거라 생각했어? 우리가 정말 너나 석무애가 천정에 귀속되길 원할 것 같아? 너희가 전부 귀속되면 우리는? 우리는 네 시체와 신혼을 천정에 가져가는 것이 살아있는 너를 데려가는 것보다 더 낫다고!”

지철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해!”

옆에 서 있던 치별은 화가 치밀어 올라서 두 주먹을 꽉 쥐며 공격을 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제 막 날아올랐을 때, 몸이 멈추며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둘이 당황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칠색 빛이 밝아지며 크기가 십 장 정도 되는 거대한 나무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나무의 두 나뭇가지가 꿈틀거리며 뻗어 나와 각각 지철과 치별을 꽁꽁 묶어놓았다.

이어서 연나와 석목이 동시에 나타났다.

“보…… 보화 성조……”

지철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치별도 온통 믿기지 않는 얼굴을 드러냈다.

“도…… 돌…… 돌아오셨습니까?”

“너희는 내가 돌아오지 못하길 바랐던 모양이로구나.”

연나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우…… 우리……”

지철이 말을 더듬으며 이어가질 못했다.

옆에 있던 치별은 얼굴에 복잡한 기색이 어리더니 갑자기 눈썹을 들썩거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래. 나는 네가 돌아오지 않길 원했다. 네 속박과 구속이 없으니 얼마나 살 것 같았는지 몰라.”

지철은 치별을 말리려고 하다가 갑자기 연나가 풍기는 기운을 느끼더니 겁에 질린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보화 어르신, 제가 남탓을 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때 왜 굳이 천정과 척을 지셨습니까?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처지니 모든 건 다 무상합니다. 자기 이익을 챙기는 편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지요. 그때 수련 경지가 신경 후기인 대승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준께 상대조차 되지 못했잖습니까? 다시 새롭게 태어나셨지만 고작 성계 정상까지 밖에 경지를 회복하지 못하셨으니 나방이 불에 뛰어드는 셈이 아니겠습니까?”

연나는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끝까지 듣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꼴을 보니 곱게 마원을 내놓지는 않겠군.”

말을 마친 연나는 법결을 시전하여 칠색 빛을 더 크게 드리웠다.

“너…… 너 뭐하는 거야?”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지철이 갑자기 두려운 기색을 내비쳤다.

“지철, 뭐가 그렇게 두려워! 강제로 마원을 빼앗겠다는 게 아니야? 기껏해야 수련 경지나 좀 잃겠지. 보화는 지금 수련 경지가 성계 수준이라고. 우리를 어찌할 수 있겠어? 고만족 몇 놈만 오면 전부 다 죽을 거야.”

치별이 소리를 질렀다.

“수련 경지나 좀 잃는다고? 너희 둘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조금만 있으면 내가 너희를 잘근잘근 씹어서 내 뱃속으로 집어넣을 건데?”

명라가 두 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말했다.

지철은 치별이 한 말을 전혀 듣지 못한 것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치별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마기를 감은 채 칠보묘수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이때, 연나는 법결을 멈추며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칠보묘수에서 일곱 가지 빛이 용솟음치며 두 사람을 감은 나뭇가지가 계속해서 자라나 끝까지 치솟았다. 이어서 빛을 반짝이는 사이에 두 사람의 이마를 찔렀다.

“으아악!”

지철과 치별, 두 사람이 동시에 처참하게 울부짖었다.

두 사람의 두개골에서 각각 푸른빛들이 흘러나와 나뭇가지를 타고서 칠보묘수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뭇가지에 화려한 빛이 번지며 두 갈래 빛이 밝아졌다. 이어서 나뭇가지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드디어 칠보묘수의 나뭇가지 일곱 개가 전부 밝아졌다. 일곱 가지 빛이 찬란하게 반짝이며 기이한 기운을 뿜어냈다.

한쪽에 서 있던 석목은 그 기운 때문에 눈앞이 희미했다. 순간, 석목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탐욕, 분노, 색욕……

이런 기분이 동시에 몰려오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충동이 마음속에서 휘몰아쳤다.

“이것은 천지에 흐르는 칠도마념이야. 마음을 단단히 잡아야 영향을 받지 않을 거야.”

연나의 목소리가 석목의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연나의 목소리는 마치 봄바람처럼 단번에 흔들리던 석목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석목은 곧바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신식으로 몸과 마음을 잘 감쌌고, 다행히 휘몰아치던 감정은 점점 사라졌다.

다른 방향에 서 있던 명라도 눈빛이 잠깐 희미해졌다가 곧바로 돌아왔다.

“칠보 마원이 전부 모였어. 바로 깨우쳐야 하니까 너희 둘이 호법을 서줘.”

연나가 석목과 명라에게 부탁했다.

“그래!”

석목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명라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연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석목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검은빛 한 줄기가 연나의 손에서 튀어나와 석목의 손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연나는 허공으로 떠올라 칠보묘수가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칠보묘수의 나뭇가지는 마치 영성이라도 깃든 듯이 전부 뻗어 나와서 연나의 몸을 맞았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묶여있던 치별과 지철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허공에서 떨어졌고, 두 사람은 이미 경지가 신계에서 성계 후기로 떨어졌다.

석목과 명라는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긴장을 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때, 일곱 가지 색을 비치던 나뭇가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연나를 누에처럼 감싸버렸고, 연나는 빛을 내는 타원형 알로 변하였다.

휙!

가벼운 바람 소리와 함께 칠보묘수는 빛이 훨씬 밝아졌다. 둥그런 광막이 눈앞에 나타나서 나무와 칠색 알을 안으로 감쌌다.

이어서 일곱 가지 빛이 전부 이어지며 계속해서 맴돌았고, 알 표면에 나타난 얼굴 허영도 점점 밝아졌다.

얼굴 허영은 모두 일곱 가지였는데 각자 크기가 달랐으며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빛이 한 층 씩 밝아질 때마다 칠보묘수에서 흘러나오는 기운도 더욱 세졌는데 마치 허영의 힘을 전부 칠보묘수로 불어넣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큰 소동을 피웠으니 조금 있으면 고만족이 나타날 거야. 고만족들이 연나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을 테니 너는 여기서 계속 호법을 서줘.”

석목은 시선을 거두어들이며 가까이에 서 있는 명라에게 말했다.

“석목 오라버니,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허공에 뜬 알을 바라보던 명라는 시선을 석목에게 옮기며 걱정이 되는 듯이 물었다.

“너는 여길 잘 지켜, 고만족은 내가 해결할게! 절대 연나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할 거야.”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석목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마각도 앞바다에서 기이한 파동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치별과 지철이 명라가 다른 곳에 집중을 하고 있던 틈을 타서 마각도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못난 놈들!”

명라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곧바로 쫓아가려고 했다.

“이곳을 지키고 있어. 저 두 놈은 내가 해결할게!”

석목이 팔로 명라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퍽!

석목은 등 뒤에 흑백 빛을 밝히며 두 날개를 펼쳐서 빠르게 마각도로 날아갔다.

* * *

지철과 치별은 이미 마각도 앞바다에 가까이 도착했다.

두 사람은 석목이 날아오는 모습을 보더니 가던 길을 멈춰 섰다.

“고작 천위 무인 한 놈이 우리 둘을 막겠다고? 죽지 못해서 안달이 났나 보군!”

지철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때마침 분풀이를 할 곳을 찾고 있었는데 우선 저놈부터 죽이지 뭐.”

치별은 곧바로 하늘로 솟아올랐다.

“명라가 오는지도 잘 봐! 소식은 이미 전했으니 비부가 오기만 하면 모든 걸 해결 할 거야.”

지철은 먼 곳에 서 있는 명라를 바라보며 당부했다.

치별은 지철이 하는 말을 들은 척조차 하지 않고서 두 손을 흔들었다. 치별은 팔에 쇠처럼 생긴 발이 하나 나타났고, 쇠발에는 검붉은 빛이 희미하게 번지고 있었다.

석목은 실눈을 뜨고서 치별을 바라보더니 흑백 날개에서 눈부신 빛을 뿜으며 속도가 조금 더 높여 빠르게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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