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04화 (604/916)

604화. 암도진창(暗度陳倉)

곽파가 낭아봉을 몇 번 휘두를 때마다 사령 수십 마리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서 부서져 버렸다.

곽파의 뒤로 고만족 강자들과 흑마족들이 힘을 합쳐 소리를 지르며 공격을 했다.

그들과 달리, 사령 대군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며 제자리에 서서 반격만 했다.

펑! 펑! 펑!

부딪치는 소리와 터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며 끊이질 않았다.

고만족과 흑마족 백여 명은 마치 하얀 파도를 가르는 거대한 전함처럼 백골 대군들을 가로질러 길을 몇 갈래 터놓았다.

고만족은 체구가 강인하며 힘이 거센 종족이었다. 거기에 토템 비술의 힘과 맹수의 능력까지 겸비하고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 기세를 내뿜었다.

흑마족은 고만족만큼 체구가 거대하진 않았지만 마공을 시전하여 머리와 팔의 숫자가 세 배로 늘어났다. 또한 앞장선 고만족 무리 속에서 마보를 휘둘렀기 때문에 그 기세도 또한 놀라웠다.

하지만 사령 대군은 상황이 달랐다. 성계 마족의 시체인 찰고와 몇몇 천위 사령만 맞서 싸울 수 있었으며 나머지 지계 수준 아래나 선천 수준인 사령들은 단 한 번만 공격을 받아도 부서져서 사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석목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한 손으로는 최상급 영석에서 법력을 흡수하였고, 다른 한 손으로는 법결을 시전하여 취선대에 든 사령들을 소환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석목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상대는 공격 단 한 번으로 사령들을 이천 마리나 죽여 버렸다. 반대로 고만족과 흑마족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심지어 상처를 입은 사람도 거의 없었다.

연나가 오랜 세월 동안 모아온 방대한 사령 대군은 숫자가 족히 수십만이나 되었지만, 대부분은 경기가 낮아서 고만족과 비교했을 때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기껏해야 상대가 공격을 하는 속도를 조금 늦출 뿐이었다.

이런 상황이면 일각만 흘러도 사령 대군은 전멸당할 터였다. 석목이 갖춘 실력에 곤초가 모아온 위력을 더한다고 하더라도 고작 성계 강자만 몇 명 죽일 수 있을 터였다. 그것도 상대가 단 한 번도 피하지 못한 채 공격이 전부 적중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사령 대군으로 세운 방어선이 무너진다면 명라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연나를 지키기엔 무리일 터였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지만 석목은 조금도 물러서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때, 명라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석목 오라버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석목이 고개를 돌려보니 명라가 화난 표정을 짓고는 커다란 악어의 등 위에 서서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고 있었다.

명라는 도착하기도 전에 몸에서 빛을 내뿜으며 하얗고 통통한 손으로 허공을 잡았다.

그러자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와 용솟음치더니 마기를 감은 커다란 짐승의 발이 먹구름 속에서 튀어나왔다.

짐승의 발은 칠흑 같이 검은색이었으며 뾰족한 비늘을 촘촘하게 감고 있었는데 매우 포악스러웠다. 짐승의 발이 앞을 향해 웅크리며 가장 가까이에 있던 흑마족의 성계 초기 강자를 덥석 잡아버렸다.

흑마족 강자는 때마침 사령들 수백 마리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갑자기 방대한 영압이 몰려오자 흑마족 강자는 깜짝 놀라서 도망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도망가기에는 늦어버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마기를 내뿜으며 날카로운 빛 수십 갈래를 내뿜으며 짐승의 발을 자르려고 했다.

이어서 쇠가 부딪치는 소리들이 연이어 울려 퍼졌고, 짐승의 발에서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짐승의 발은 전혀 다친데가 없었다.

짐승의 발이 흑마족 강자의 머리를 덥석 잡아버리자 주변에 있던 사령들 수십 마리가 몰려오는 힘 때문에 부서지고 말았다. 이어서 짐승의 발을 덮고 있던 비늘이 층층이 뒤집히며 마치 얇고 작은 칼처럼 흑마족 강자의 몸을 쿡쿡 찔러 버렸다.

“으아……”

흑마족 강자가 찢어질 듯이 울부짖었지만 비명소리는 곧바로 멈춰버렸다.

성계 흑마족 강자의 몸을 찌른 검은색 비늘이 흑마족 강자의 몸을 살덩어리로 만들며 뭉개버렸다. 이에 흑마족 강자는 신혼마저 도망을 치지 못한 채 처참하게 죽어버렸다.

명라는 번개 같은 속도로 흑마족 강자 하나를 죽여 버린 후, 짐승의 발을 비틀어서 이번에는 고만족 성계 강자를 덥석 잡았다.

잠깐 사이에 고만족과 흑마족 성계 강자들 여서일곱 명이 짐승의 발 때문에 죽어버렸다. 하지만 짐승의 발이 휘둘러지며 사령들도 적잖이 부서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곽파는 눈에서 불꽃이 이글거렸다. 곽파가 고개를 돌려 낮게 소리를 질렀다.

“너희 몇 명은 나를 따라와라.”

고만족 몇 명이 곧바로 곽파를 따라가서 명라와 싸움을 벌였다.

비록 곽파는 명라보다 실력이 많이 뒤떨어졌지만, 토템 비술의 힘을 익혔으며 몇몇 고만족 성계 강자들과 힘을 합쳐서 명라가 가하는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명라는 곽파 일행을 상대하느라 다른 적들을 공격할 틈이 없었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아수라장이 된 전장을 훑어보았다.

* * *

해안 저편에서 몸에 보라색 비늘이 자라난 고만족이 넓적한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 고만족은 등에 뼈가 튀어나온 강자였는데 지금 막 찰고의 시체가 휘두르는 푸른색 곤봉을 막아내고 있었다.

순간, 찰고는 어깨에서 빛을 반짝였으며 키가 작은 수정 해골이 나타났다. 수정 해골은 하얀색 뼈칼을 들고서 뛰어오르더니 곧바로 고만족의 두 눈을 쿡! 찍어버렸다.

“으아……”

고만족의 입에서 처참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고만족은 손에 힘이 풀려버려 뒤로 물러났다.

혼화가 이글거리는 찰고의 두 눈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찰고는 다시 푸른색 곤봉을 높이 치켜들더니 무겁게 휘갈겼다.

펑!

고만족의 머리가 잘 익은 수박처럼 쩍! 갈라졌다.

무야도 귀신처럼 나타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며 사령 대군이 싸우는 곳곳에서 움직였다. 무야는 마치 영성이라도 있는 듯이 전혀 무야가 상대할 수 없을 성계 강자들을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그리고 미처 막을 겨를이 없는 천위 강자들을 찾아가 기습했다.

하지만 몇몇 실력이 있는 사령들을 제외한 사령 대군은 대부분 곧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수많은 사령 대군이 고만족과 흑마족이 퍼붓는 공격 때문에 무너져버리면서 방어 전선이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석목은 손을 흔들어 취선대를 거두어들였다.

지금 쏟아져 나오는 사령들은 전부 선천이나 후천 경지라 적을 단 한순간도 막아낼 수 없었기 때문에 더 꺼내봤자 소용이 없었다.

석목은 흑백 날개를 펼쳐 허공에서 내려오며 곤초에서 여의빈철곤을 뽑았다. 그리고 곤봉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성계 초기 흑마족을 향해 휘둘렀다.

그 흑마족은 머리가 세 개에 팔이 여섯 개인 모습으로 변신하여 지금 막 백골 짐승 열 몇 마리와 싸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강력한 영력 파동이 밀려오자 흑마족은 마기를 감은 검은색 장검 두 자루를 가로쥐며 등 뒤를 막았다.

펑!

흑마족 강자는 막을 수 없는 방대한 힘 때문에 몸통이 튕겨져 날아갔고, 흑마족 강자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백골 짐승이 흉악한 이빨을 드러내며 덮쳤다.

흑마족 강자는 몸을 일으켜 세울 겨를도 없이 손을 흔들어 덮쳐오는 백골 짐승을 찢어버렸다.

이때 석목이 날개를 펄럭이며 빠르게 쫓아와 찬란한 빛을 뿜고 있는 곤봉을 휘두르며 흑마족 강자를 내리쳤다.

“아아!”

흑마족 강자가 공격을 피하고 못한 채 곤봉이 내뿜는 금빛에 묻혀 부서져 버렸다.

흑마족 강자를 죽여 버린 후, 석목은 좋아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안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천기곤초에 모아온 천지 영기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쓸 때마다 줄어드는 영기는 지금 일고여덟 번 정도 더 쓸 수 있었지만 성계 강자는 아직 서른 명이나 남았다.

만약 명라가 곽파를 비롯한 적들을 막고 있지 않았더라면 석목은 진즉에 버티지 못했을 터였다.

“아니, 지철 마존은 어디에 있지?”

석목은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전 제대로 공격을 시작한 후로 지철은 이미 석목의 눈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이어서 석목은 머릿속을 번쩍이며 속으로 “큰일이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돌아서서 칠보묘수가 변한 알 방향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이때, 천위 후기 고만족 한 명이 석목을 덮쳤다.

석목은 곧바로 손을 흔들어 마기를 감고 있는 분신을 꺼냈다.

분신은 나오자마자 검은색 도끼를 치켜들고는 도끼 그림자를 내뿜어서 휘갈겼다.

고만족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커다란 망치를 휘둘렀다. 그러자 고만족 주변에 있던 해골 열 몇 구가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망치를 어깨까지 끌어올리며 도끼 그림자를 막아냈다.

그 틈에 석목은 이미 수백 장 멀리까지 날아가서 칠보묘수와 멀지 않은 곳에 멈추었다.

* * *

하지만 이때, 석목은 등 뒤에서 강력한 영력 파동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석목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 여의빈철곤을 등 뒤로 휘둘렀다.

펑!

석목은 마치 커다란 산에 부딪친 듯이 강력한 힘 때문에 밀려서 날아가 버렸다.

지철이 단극을 두 자루 들고서 석목을 노려보고 있었다.

“암도진창? 지철 마존, 당신이 계획한 건 물거품이 됐어!”

석목이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후후, 네놈한테 들켜버렸군. 널 너무 쉽게 여겼어.”

지철이 웃으며 말했다.

“마존으로서 네게 은혜를 베푼 성조를 배신하며 반역을 저지른 것으로도 모자라 자기 부족 사람들에게까지 등을 돌리다니.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군. 천정이 대체 네게 무엇을 해주겠다고 말했지?”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물었다.

“성조? 허허, 그 여자가 우리를 버린 이상 더는 우리에겐 성조가 아니야! 사실대로 말하지. 내가 칠보묘수를 얻어서 칠도마념을 깨우쳐 몸을 단련하여 몸과 성배가 하나가 되면 내가 곧 새로운 성조가 되는 거지! 그때가 되면 천정이라 할지라도 나를 함부로 하지 못하겠지? 하하! 시간을 끌 생각 따윈 작작 하거라. 오늘이 네 기일이다!”

지철은 미친 것만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덤벼봐. 너와 치별, 둘 중에 누가 더 대단한지 궁금하군!”

석목이 실눈을 뜨고는 여의빈철곤을 꽉 잡았다.

“흥! 치별이 방심을 해서 네놈이 꾸민 함정에 넘어간 거야. 나는 그놈처럼 멍청하지 않아!”

지철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어서 지철은 은빛이 나는 단극을 맹렬하게 흔들었다. 날카로운 두 갈래 은빛이 빠르게 튀어나와 허공에서 반짝이더니 사라져버렸다.

석목이 멈칫했고, 그가 별다른 동작을 취하기도 전에 가슴께에 공격을 당해서 묵직한 신음을 뱉어냈다. 이어 그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또 다시 뒤로 날아갔다.

이때 석목의 가슴에서 금빛이 한참 동안 흘렀다. 그리고 진룡쇄금갑의 용 모양 무늬가 몇 번 번쩍이더니 다시 어두워졌다.

석목의 오른쪽 복부에 푸른색 작은 가마가 나타나더니 빛을 뿜어내자 그의 상처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석목의 안색이 다시 멀쩡하게 돌아왔다.

“진룡쇄금갑에 구전현공까지. 보아하니 정말 백원왕의 후예가 틀림없겠군! 네놈의 머리통을 들고서 천정으로 가면 꽤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지철은 눈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동시에 지철이 손을 하늘로 치켜들더니 단극에서 은빛이 폭발하며 은색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이어서 지철은 큰소리를 지르며 단극을 앞으로 찌르자 소용돌이에서 빛이 용솟음치며 굵기가 한 장 정도 되는 은색 구렁이 두 마리가 튀어나와 입을 크게 벌리고서 석목을 공격했다.

은빛이 뭉친 구렁이었지만 마치 살아서 숨을 쉬는 듯이 꿈틀거렸다. 심지어 몸에 자라난 뾰족한 비늘마저 뚜렷이 보였는데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는 모습이 매우 섬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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