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6화. 검은 기운
석목이 무엇인가를 다짐한 듯이 결연한 기색을 내비쳤고, 그는 빈철곤에 빛을 뿜어내며 높이 치켜들었다가 다시 고만족 강자를 향해 내리쳤다.
여의빈철곤에서 하얀 양의 기운을 품은 화염이 번지며 금빛과 하얀빛이 서로 얽히면서 몇 배나 더욱 강해진 위력을 뿜어냈다.
석목이 연이어 큰소리를 지르며 팔을 휘두르자 여의빈철곤에서 곤봉 그림자가 줄줄이 뿜어져 나오며 통천십팔곤이 연이어 펼쳐졌다.
석목에게로 달려오던 몇몇 천위 고만족들이 단번에 튕겨져 날아가더니 양의 기운을 품은 화염에 활활 타오르다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타버렸다.
“이놈! 죽어라!”
이때, 울통에서 내뱉는 듯한 목소리가 고만족 무리에서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곧바로 석목의 심장까지 파고들었고, 그의 몸속에 흐르던 진기가 순식간에 멈춰버려 깜짝 놀랐다.
그림자가 희미하게 번지며 금발 고만족 한 명이 빠르게 무리에서 날아왔다. 그리고 금색 전창을 석목의 목덜미에 겨누었다.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곤봉을 둥그렇게 휘둘러 금색 전창을 막아냈다.
탱!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며 석목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날카로운 힘이 여의곤을 타고서 석목의 몸속으로 전해지더니 금색 비늘이 적잖이 찢어져버렸다. 이어 몸속에 흐르던 혈기가 용솟음쳐 석목은 입에서 피를 한 모금 토해냈다.
만약 진룡쇄금갑을 두르지 않았더라면 석목은 아마 큰 상처를 입었을 터였다.
금발 고만족도 몸을 비틀거리다가 이내 멈췄다. 두 사람이 수련을 한 경지가 단번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석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상대는 또 다른 성계 후기 강자였고, 이제는 쓴웃음만 절로 나왔다.
석목은 지금 상처를 입어서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고, 몸속의 진기도 회복되지 않았으며 영보인 천기곤초에 모아두었던 천지 영기마저 전부 써버려 더는 성계 강자를 상대할 수 없었다.
석목은 재빠르게 주변을 한 번 훑어보았다. 사령 대군은 숫자가 더욱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석목이 사령 대군 뒤로 도망을 친다고 한들 방어선만 빠르게 무너질 것이 뻔했다.
“겁도 없는 놈! 오늘이 네 기일이다!”
금발 고만족이 소리를 지르며 석목을 덮쳤고, 고만족이 휘두르는 전창이 빛을 뿜어내며 금빛이 찬란한 용 두 마리로 변하여 석목을 덮쳤다.
석목이 큰소리를 지르자 곤봉 그림자가 줄줄이 뿜어져 나와 금룡들과 강하게 부딪쳤다.
풉!
석목은 입에서 피를 마구 뿜으며 마치 종잇장처럼 휙 날아가 버렸다.
“죽으라고!”
금발 고만족이 전창을 휘두르자 금빛 두 갈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석목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이때 길이가 백 장 정도 되는 검은 검날이 먼 곳에서부터 날아왔는데 마치 하늘을 가르는 번개처럼 금발 고만족의 몸에 강하게 부딪쳤다.
금발 고만족은 단번에 튕겨져 날아가며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검날이 반짝이며 좌우에서 휘날리자 검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주변에 있던 몇몇 고만족들과 흑마족들은 피하지 못한 채 검은빛에 삼켜졌다가 이내 부서져 버렸다. 시체가 단번에 가루가 되었는데 그 중 두 명은 무려 성계 강자였다.
갑작스러운 상황 덕분에 석목은 좋아하면서 몸을 날려 칠색 알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검은색 검날을 바라보았다.
검은빛을 번쩍이며 훤칠한 사람이 허공에 나타났다. 그 남자는 막강한 위압감을 내뿜으며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바로 석무애였다.
석무애가 들고 있던 검은색 장검에서 투명한 빛이 번쩍였다. 그 빛은 마치 모든 것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냈다.
금발 고만족은 마지막 순간에 전창으로 간신히 몰려오는 검의 기운을 막아냈지만 큰 상처를 입어서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금발 고만족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먼 곳을 올려다보더니 이내 안색이 굳어버렸다.
“석무애!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요?”
석목은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놀랍기도 했으며 기쁘기도 했다.
“이 자식, 고맙다!”
석무애는 석목을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석무애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멀리 있던 먹구름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가까이 날아왔다.
먹구름이 흩어지며 그림자가 빽빽이 나타났는데 가장 앞에 서 있던 두 사람은 운리와 전무였다.
두 사람 뒤로 흑마족이 백여 명 서 있었다. 얼핏 봐도 삼분의 일은 성계 강자였으며 나머지는 전부 천위 후기나 정상인 흑마족이었는데 구십라도 무리 속에 있었다.
이 밖에도 본 적이 있는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들은 전부 수라, 흑염을 비롯한 흑마족의 삼대 부족에서도 뛰어난 실력자들이었다.
석목은 이제야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다시 금발 고만족을 바라보니 그는 두려워서 도망을 가려는 눈치였다.
* * *
한편, 곽파는 석무애를 비롯한 흑마족 강자들을 보자 안색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곽파가 늘 자부했던 고만족의 용맹은 신경 강자 세 명 앞에선 너무 보잘것없는 것들이었다.
그 광경을 보던 명라도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곧바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으며 검은빛이 크게 번졌다. 수많은 번개 구체가 빛에서 튕겨져 나와 폭발하며 보라색 새장에 틈을 하나 벌려놓았다.
그리고 새장에서 벗어나 곧바로 석목 옆으로 날아오며 칠색 알 앞을 막았다.
곽파를 비롯한 성계 강자 고만족들은 명라를 쫓아가지 않고서 뿔뿔이 날아가 한쪽에 모였다.
“사실 너와 보화 어르신이 흑마 성역에 들어간 이후로 나와 운리는 곧장 너희들을 따라갔다. 그리고 조금 전에 전무와 구십라를 만나서 너희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석무애가 말했다.
“그렇군요.”
석목은 속으로 “다행이다.”라고 외쳤다.
석무애는 고개를 들어 연나가 변신한 알을 바라봤다. 연나의 기운이 빠르게 강해지는 모습을 보며 얼굴에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석무애는 다시 눈길을 금발 고만족에게로 던졌다. 석무애는 두 눈에서 원한과 분노가 빛이 되어 이글거렸다.
“천정의 사냥개 같으니라고! 네놈의 숨통을 끊어주마!”
석무애가 큰소리를 지르자 검은색 장검에서 십 장 정도 되는 빛이 튀어나와 금발 고만족에게로 날아갔다.
금발 고만족은 겁에 질린 얼굴을 한 채 뒤로 물러나서는 단칼에 금룡 두 마리를 만들어내어 다급하게 빛을 막아냈다.
“이제 반격을 할 차례야!”
운리가 주변을 한 번 훑어봤다. 곧바로 여기서 벌어진 상황을 파악한 운리가 손을 휘두르며 날아올랐다.
운리의 뒤에 서 있던 두 부족 수라, 흑염 사람들은 그들이 모시는 마존이 공격을 하는 모습을 보며 곧바로 날아올라 곽파 무리를 공격했다.
“그래, 그래!”
전무는 귀찮은 듯이 중얼거리더니 한 손을 들었다. 손바닥에서 붉은빛이 크게 번지며 빛은 커다란 손바닥 모양으로 뭉치더니 고만족을 향해 내리쳤다.
석무애를 비롯한 대단한 신경 강자들이 세 명이나 합류했으며 성계, 천위 무인들도 상대보다 숫자가 많은 덕분에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이 되어서 앞서 제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석목과 명라는 공격에 참여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연나의 곁을 지켰다.
석목은 두 손에 최상급 영석을 하나씩 든 채로 목화의 힘을 시전하여 상처를 빠르게 회복했다.
이때 마각도가 모두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마기 파동이 섬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다. 엄청 강렬한 기운은 아니었지만 조금 특별한 기운 파동이었다.
미세한 파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석목과 명라는 그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마각도를 바라보았다.
“섬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명라가 물었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침묵한 후에 말했다.
“고만족의 주력 부대가 여기 있으니 고만족의 신경 강자도 이곳에 있을 거야. 우리가 이렇게 요란스럽게 싸움을 하고 있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걸 보니 아마 섬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겠지. 명라, 혹시 폭풍마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잘은 모르지만 여긴 흑마 성역에서도 상고시대의 유적지라 금지구역이죠.”
명라가 말했다.
“명라, 너는 여길 지키고 있어.”
명라가 한 말을 들은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길을 돌렸다. 석목은 눈에서 순수한 빛을 반짝였다.
* * *
이어서 석목은 손에 들고 있던 회색 영석을 던져버리고 물과 불의 날개를 펄럭이며 순식간에 가까운 곳에 있던 성계 초기 고만족 앞에 나타났다.
석목의 여의빈철곤에서 금빛이 크게 번졌다. 석목은 흑백 빛이 섞인 곤봉을 강하게 휘둘렀다.
성계 초기 고만족은 수라 부족에 속한 흑마족 성계 강자와 격전을 치르고 있던 터라 곤봉이 다가오자 깜짝 놀라서 다급하게 입을 벌리며 푸른색 화살을 뿜어내어 막아내려고 했다.
쿵!
여의빈철곤에서 금빛이 크게 번지며 푸른색 화살이 부서졌다. 그리고 기세를 몰아 고만족 성계 강자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고만족 성계 강자는 머리가 수박이 갈라지듯 터져버렸다. 푸른빛을 감싼 작은 아기가 머릿속에서 흘러나와 멀리 도망을 가려고 했다.
석목은 곧바로 날개를 펄럭이며 푸른빛을 쫓아가 단번에 잡아버렸다.
검은빛이 석목의 손에서 날아가며 푸른색 신혼을 감쌌다.
수혼!
잠시 후에 푸른색 신혼에서 빛이 크게 번졌다.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낮게 들리며 신혼이 터져버렸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명라 옆으로 날아왔다.
“어떻게 되었어요? 뭔가 알아내기라도 했나요?”
명라가 곧바로 물었다.
“고만족의 두 신경 강자가 여기에 있는 건 확실해. 그리고 마각도에서 비경을 하나 찾아낸 것 같아. 오랫동안 찾던 보물이 섬 속에 있나봐.”
“비경! 보물!”
명라는 눈을 반짝였다.
명라가 말을 떨어뜨리기 바쁘게 마각도가 다시 격하게 흔들렸다. 이어 검은색 기둥이 섬 가운데에서 솟아올라 하늘에 뜬 구름까지 찔렀다.
* * *
엄청난 마기 파동이 검은색 빛기둥에서 흘러나오자 바다 위에 치던 파도마저 하늘에 닿을 듯이 휘감겼다. 하늘에 뜬 수많은 구름들이 빠르게 돌아갔으며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이어서 검은 기둥을 중심으로 커다란 소용돌이가 하나 만들어졌다.
갑자기 나타난 빛기둥 때문에 격전을 치르던 석무애 무리가 전부 동작을 멈추었다.
잠깐 사이에 고만족은 절반이 넘게 죽어버렸으며 금발 고만족, 곽파와 같은 실력자들 몇 명만 간신히 허우적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전부 큰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고만족과 함께하던 흑마족의 성계와 천위 강자들은 석무애 일행이 나타난 후로 저항하길 멈추고는 조용히 한쪽에 서 있었다.
석목은 검은색 기둥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짙은 마기 파동 속에서 시체의 기운이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때 사람 모양 빛이 검은색 기둥에서 튀어나오며 시체의 기운이 더욱 강력해졌다.
검은빛 속에 갇힌 건 칠흑 같이 검은 시체 한 구였다. 부문들이 검은 기운 속에서 용솟음치며 검은색 결계를 희미하게 만들어냈다.
“저건……”
석무애 일행은 검은색 시체를 보더니 몸을 부르르 떨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몸에 빛을 드러내며 뿔뿔이 검은색 시체를 잡으려고 날아갔다. 이미 중상을 입은 금발 고만족도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금빛으로 변하여 시체를 향해 달렸다.
명라도 기쁜 기색을 드러내며 몸을 흔들어 시체 쪽으로 날아갔다. 명라는 작은 손으로 큰 손을 하나 만들어내서 시체를 잡으려고 했다.
이때 키가 훤칠한 두 그림자가 검은 기둥이 솟아오른 마각도 가운데서 튀어나왔다.
한 사람은 눈썹이 붉은 한 사나이였으며 다른 한 사람은 피부가 하얀 여인이었는데 바로 고만족의 두 신장 비부와 구봉이었다.
“도둑놈들! 건드리지 마!”
두 신장은 석무애를 비롯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걸 보더니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