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09화 (609/916)

609화. 기회와 인연

그 광경을 본 비부 신장은 두 손으로 각각 금빛을 한 줄기씩 뿜어내며 번개 영역을 지탱했다. 이어서 비부 옆에 금빛이 반짝이더니 금색 망치가 하나 나타났다.

비부가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자 금색 망치에서 빛이 반짝이며 크기가 열 장 정도 되는 금색 사자로 변하였다. 사자는 털에 금빛이 반짝였는데 마치 황금으로 만든 것만 같았다.

사자가 입을 크게 벌리자 파동이 일렁이며 튀어나와 날아오는 꽃잎들을 맞았다.

하지만 금색 파동은 칠색 영역에 닿자 곧바로 흩어져 버렸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몇몇 꽃잎을 날려버릴 수는 있었다.

한동안 연나와 비부는 대치했다.

가까이에 있던 석목은 연나와 비부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때 붉게 타오르던 연나는 안색이 하얗게 변하며 몸을 비틀거렸다. 연나의 뒤에 나타난 칠색 나무 허영도 부들부들 떨며 빠르게 어두워졌다. 칠색 영역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하하! 그런 거였군! 너는 신경 초기라는 수련 경지로 칠색 영역을 시전하였지만 네 진기로 오랫동안 버틸 수 없을 테지!”

비부 신장이 기뻐하며 소리를 질렀다.

비부는 눈에 흉악한 빛이 스쳤다. 그리고 몸 주변에 드리운 번개 영역은 빛이 더 밝아졌다가 순식간에 줄어들어 길이가 열 장인 번개창으로 변하였다. 번개창에서 두려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굳이 죽겠다면 날 원망하지 말아라!”

비부 신장이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번개창이 쏜살같이 날아와 연나의 가슴으로 향했다.

이때, 연나의 등 뒤에서 떨리고 있던 나무가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칠색 영역도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았다.

연나가 몸을 꼿꼿이 세우고는 얼음 같은 눈을 반짝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나무가 휙! 내려와 번개창을 감쌌다.

동시에 칠색 나뭇가지에 균열이 생기며 눈부신 빛이 튀어나가 비부 신장의 몸을 뚫어버렸다.

비부는 가슴에 큰 구멍이 뚫렸는데 이상하게도 피가 전혀 흘러나오지 않았고, 그의 눈빛에 내키지 않는 듯한 기색이 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에서 뿜어내던 빛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으아아!”

울부짖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막힌 듯이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한 채 묵직한 소리가 되었다. 이어서 비부는 몸이 순식간에 불어나더니 이내 터져버리며 몸 속에서 작은 금색 사람이 하나 나타났다.

연나가 날린 빛이 빠르게 작은 사람을 감싸려고 날아갔다.

금색 사람은 얼굴에 화가 나면서도 두려운 기색이 어렸고, 빛이 다가온 순간, 작은 사람은 투명해져서는 순식간에 번개창으로 스며들었다.

번개창에서 빛이 크게 번지며 굵은 번개가 줄줄이 튀어나와 단번에 묶여 있던 나뭇가지를 뚫어버리며 곧 연나의 몸을 찌를 듯 날아갔다.

연나는 눈에 막연한 기색이 스쳤다.

“보화 어르신!”

“성조님!”

석무애를 비롯한 흑마족들은 이미 나머지 성계 고만족들을 전부 물리치고서 위험에 처한 연나를 바라보더니 깜짝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흑마족들이 갖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이제 날아와서 도와주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순간, 연나의 곁에서 그림자가 희미해지더니 두 사람이 나타났다. 석목과 석목의 분신이었다.

분신은 검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분신의 몸에서 검은색 부문이 튀어나와 몇 뼘 정도만 한 공간을 하나 만들어냈고, 그 공간에 칠색 영역의 기운이 은은하게 섞여있는 것 같았다.

번개창이 검은 공간에 떨어져 잠깐 느려지는 듯했다.

“하!”

석목은 몸에서 다양한 빛을 뿜어내며 전부 여의빈철곤에 불어넣었다. 그리고 빈철곤을 맹렬하게 휘두르며 번개창의 끝을 강하게 내리쳤다.

두 무기가 부딪치는 순간, 석목은 몸통이 ‘휙!’ 튕겨져 날아갔고, 그는 입에서 붉은 피를 뿜었는데 핏속에 부스러진 내장이 섞여있는 듯했다.

번개창은 살짝 흔들리는 것 같더니 각도가 틀어져 연나의 왼팔을 뚫고서 지나갔다.

연나는 왼팔이 부러지며 붉은 피를 흘렸다. 부러진 팔은 번개에 감겨 활활 타오르며 순식간에 한 줌의 재로 변하였다.

연나는 입에서 붉은 피를 쏟으며 안색이 순식간에 하얀 종잇장처럼 변하였다.

“보화 언니!”

명라가 빠르게 날아와 연나의 몸을 부축했다.

“보화 어르신!”

석무애 무리도 날아왔다.

명라는 연나의 앞을 막으며 경계하듯이 석무애 무리를 바라보았다.

“괜찮다. 아무 일도 아냐.”

연나가 고개를 흔들며 손을 흔들었다. 나무가 빠르게 줄어들어 다시 칠보묘수로 변하더니 연나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연나는 기운이 다시 안정되었다.

연나는 오른손에 칠색 빛을 만들어내며 부러진 왼쪽 어깨를 매만졌다.

칠색 빛에서 살덩어리가 꿈틀거리며 새로운 팔이 천천히 자라났다.

남은 성계 고만족들은 이미 죽어버렸고, 지철과 치별의 부하였던 흑마족들은 전부 투항을 했다. 이 시각 마각도 근처에는 더 이상 천정 쪽 사람들이 없었다.

드디어, 흑마 성역은 다시 흑마족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보화 어르신, 다시 흑마 성역에 돌아오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석무애는 몸을 낮추며 연나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운리, 명라, 전무 그리고 다른 흑마족들도 전부 무릎을 꿇으며 인사를 올렸다.

“다들 일어나거라.”

연나가 덤덤하게 말했다.

석무애를 비롯한 사람들은 일어서며 벅차오르는 기분으로 연나를 바라보면서 연나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만족 우두머리가 비록 처형을 당했지만, 흑마 성역에 있는 다른 행성들에 여전히 많은 고만족들이 남아있다. 천정이 존재하는 이상, 흑마 성역을 삼키려 들 테니 다들 절대 방심을 해서는 안 된다.”

연나가 담담한 투로 말했다.

“네!”

석무애를 비롯한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리, 전무. 너희는 사람들을 데리고 흑마 성역에 남아있는 고만족들을 전부 깨끗이 정리해라. 단 한 명도 남겨서는 아니 된다. 석무애, 미양 성역에 있는 우리 종족들을 전부 불러들여라. 더는 미양 성역에서 난동을 부리지 못하도록 명해라.”

연나가 지시를 내렸다.

“네!”

세 사람은 명을 받들고는 곧바로 날아갔다.

세 사람은 떠나기 전, 석목과 옆에 있는 분신을 한번 쳐다보았다. 세 사람은 눈에 탐욕스러운 빛이 잠깐 스쳤다가 사라졌다. 아마 석목과 연나의 관계를 떠올리고는 욕심을 버린 것 같았다.

세 사람은 세 갈래 빛으로 변하여 먼 곳으로 날아갔다.

연나는 세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더니 곧바로 석목의 옆으로 다가왔다.

명라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두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 * *

석목은 한쪽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는데 안색이 매우 좋지 않았다. 몸에서 푸른빛을 번쩍이며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는데 기운이 매우 불안했다.

조금 전에 내뿜은 강력한 힘은 여의곤을 통과하면서 조금 줄어든 채로 석목에게 다가왔지만, 신경 강자가 날린 공격이라 석목이 감당하기엔 무리였다. 진룡쇄금갑이 충격을 대부분 막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석목은 여전히 큰 상처를 입었다.

연나는 두 손을 흔들며 칠색 빛을 석목의 몸속으로 보냈다.

석목의 기운이 순식간에 안정되었고, 안색도 빠르게 돌아왔다. 석목은 깊은숨을 내뱉으며 눈을 뜨고는 일어서서 연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신경에 순조롭게 진입할 수 있었던 건 다 네 덕분이야. 그리고 조금 전에 나를 또 한 번 구해줬네? 고마워.”

연나가 말했다.

“아니야. 우리는 같은 적을 두고 있잖아. 그리고 너는 여전히 내 영총이니까.”

석목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마지막 한 마디는 연결된 신념으로 전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연나는 멍하니 있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부정하진 않았다.

“이제 어쩔 계획이야?”

석목이 물었다.

“흑마족은 오랫동안 천정의 압제에 시달렸어. 아마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사령 대군도 이번에 큰 참사를 당했으니 다시 정비를 해야만 해.”

연나가 말했다.

“알았어. 여기서 벌어진 일도 일단 한 단락 끝을 맺었으니, 나도 미양 성역에 돌아가야지.”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게 되면 꼭 조심해서 다녀야 해. 천정은 아마 미양 성역에 사람을 잠입시켜두었을 거야. 천기곤초로 성계 강자와는 맞붙을 수는 있지만, 신경 강자와는 여전히 상대할 수 없을 거야. 그리고 네 분신이 홍루 마조가 쓰던 파손된 영역을 물려받은 것은 네게 기회이자 인연인 것 같아.”

“홍루 마조는 대체 누구야?”

연나가 하는 말을 듣던 석목은 좋아하며 또 물었다.

“홍루 마조는 상고시대에 흑마 성역에 있던 뛰어난 마조였어. 예전의 나와 실력이 비등할 정도였지. 다만 경계를 돌파하지 못해서 폭풍마각에서 운명했어. 그러면서 절반은 영혼이며 절반은 마족인 시체가 되어 폭풍마각에서도 깊은 곳에 묻히게 되었지. 홍루 마조가 죽은 해에 그 시체를 빼내려 시도를 했지만 결국은 실패했어. 그런데 비부가 그걸 해낸 거지.”

연나가 말했다.

석목은 한 마디 대답을 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분신이 곧바로 날아왔다. 분신의 몸에서 투명한 검은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검은색 부문이 안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아, 그런데 조금 전에 말한 그 영역은 뭐야? 비부 신장이 네 영역을 보더니 막 도망가려고 했잖아.”

그가 물었다.

“영역은 신경 후기나 정상인 존재들만이 깨닫고서 시전할 수 있는 대신통이야. 영역 안에 있는 모든 법칙을 전부 자신이 통제할 수 있지. 네 분신은 홍루 마조의 시체를 흡수했기 때문에 영역의 힘을 일부나마 물려받은 거야. 시간이 흐르면 아마 전부 깨달을 수도 있을 거야. 너도 나중에 직접 한 번 시도해봐. 네가 갖춘 자질이라면 영역이 지닌 오묘한 점을 깨달을 수도 있어. 그러면 경지를 돌파할 때도 큰 도움이 될 거야.”

“정말?”

연나가 하는 말을 듣던 석목은 좋아서 어찌할 줄 몰랐다.

연나가 한 말에 따르면 분신은 홍루 마조에게 대물림을 받은 덕분에 나중에 신경을 돌파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아, 만약 분신의 실력이 나보다 훨씬 뛰어나게 된다면 내가 통제할 수 없지 않을까?”

석목이 또 물었다.

“너와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서 자아가 생기지만 않는다면 걱정할 일은 없어.”

연나가 말했다.

“그렇군. 그럼 나는 가볼게.”

석목은 연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영우비차를 불렀다.

“내가 데려다줄게.”

연나는 손에서 칠색 빛을 반짝이더니 칠보묘수가 나타났다.

연나가 칠보묘수를 한 번 흔들자, 허공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연나가 다시 한번 손을 흔들자, 석목 주변에 칠색 진법이 나타났는데 바로 대나이술이었다.

석목은 멈칫하며 대나이술의 힘에 몸을 맡긴 채 틈으로 빨려 들어갔다.

석목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순식간에 난류 속으로 빠져들었다.

공간의 힘이 사방팔방에서 몰려왔지만 칠색 진법이 전부 막아내준 덕분에 석목은 매우 안전했다.

* * *

석목은 공간 난류 속에서 얼마나 떠돌았는지 알 수 없었다. 긴장도 조금씩 풀렸다.

연나를 따라 갑자기 흑마 성역에 진입하여 이렇게 많은 신경 실력자들과 떠돌아다닌 게 마치 꿈만 같았다.

석목은 흑마 성역을 떠돌아다니며 많은 수확을 거두었다. 도마령 속에 든 성계와 천위 흑마족만 해도 엄청났다. 심지어 지철과 치별이라는 두 신경 능력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 두 놈은 정말 운이 지지리도 없었다. 두 사람이 깨우친 신경의 도를 연나가 강제로 뽑아버렸기에 수련 경지가 대폭 떨어졌다. 그때 때마침 석목은 곤륜에서 제일가던 연기대사인 공수자가 심혈을 기울여 제련한 천기곤초가 있었던 덕분에 운 좋게 두 신경 강자의 목숨을 주웠다.

하지만 석목은 둘러댈만 한 좋은 이유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다면 청란성지의 성조도 사실을 알고서 깜짝 놀라 턱이 빠져버릴 터였다.

물론 이번에 가장 많은 이득을 본 사람은 석목의 분신이었다. 흔하지 않은 기회를 만나 살아생전에 곤륜의 주인에 버금갔던 신경 강자의 시체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심지어 수련 경지가 석목보다 더 높아졌다.

석목은 이번에 돌아가면 정말 제대로 준비를 해서 성계를 돌파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의 분신보다 수련 경지가 낮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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