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화. 채아의 실종
시간이 빠르게 흘러 삼 년이 지났다.
도마령 임무를 수행하면서 석목은 청란성지에서 이름을 떨쳤다. 신경 흑마족 강자 두 명을 죽인 성적으로 조극을 압도하며 짓눌러 일등을 했다는 소식은 청란성지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소문은 돌고 돌아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뒤로, 석목은 마치 세상에서 증발한 듯이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다. 이 밖에도 종문의 고위층들이 석목과 관련된 일들을 쉬쉬하는 분위기라 시간이 흐르자 제자들도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시 다른 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미양 성역은 지금 평화롭지 않기 때문이었다.
흑마족이라는 모두의 적이 사라지자 삼대 성지 사이에 생긴 모순은 다시 날카롭게 드러났다. 성지끼리 맞닿은 구역에서는 크고 작은 마찰과 충돌이 일어났는데 예전보다 훨씬 심각해졌다.
그중에 청란성지와 축운검파 사이에 벌어지는 충돌이 가장 심했다.
거검성과 서지성이 교차하는 지역에는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는 작은 행성이 하나 있었는데 만검문 쪽 사람들이 강제로 차지하였다.
청란성지의 서지성에 자리한 부속 종문인 청람문(青嵐門)은 위에서 지시를 받으며 계속해서 만검문을 공격하여 열 몇 차례나 교전을 치렀지만 두 종문은 실력이 비슷하여 각자 손해만 봤을 뿐 오랫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밖에서 떠돌아다니던 삼대 성지의 제자들이 상대 쪽 종문이 관할하는 구역에서 예기치 못하게 죽어버리는 일들도 점점 많이 일어났다. 미양 성역은 점점 불안해졌으며 보이지 않던 모순들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물론 석목은 이런 일들에 관심이 없다.
석목은 자신의 동부에서 폐관수련을 하며 오로지 경지를 올리는 일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다.
이날 동부의 비밀 석실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석목이 눈을 번쩍 뜨며 몸에 두르고 있던 파란색 물빛을 거두어들였다.
석목의 얼굴에서 어떠한 표정도 읽어낼 수 없었으나 눈빛은 한없이 깊어졌다.
잠시 후에 석목이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여전히 안 돼.”
석목이 고개를 흔들며 일어서서는 석실에서 서성거렸다.
순간, 석목의 귀가 파르르 몇 번 떨렸다. 석목은 걸음을 멈추고는 석문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제풍의 목소리가 비밀 석실 밖에서 들렸다.
“부주님, 마옥님이 뵙자고 하십니다.”
석목은 잠깐 멈칫하더니 말했다.
“알았다. 대청에서 기다리라고 전해라.”
“네.”
제풍이 대답을 하고는 자리에서 떠났다.
* * *
석목은 석실에서 나와 옷매무새를 만지고는 주실을 지나 대청에 도착했다.
대청에 들어와 보니 마옥이 때마침 찻잔을 든 채로 의자 옆에 서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은 초조해 보였다.
“마 아씨, 잘 지내셨나요?”
석목이 걸어들어오며 인사를 했다.
“석 오라버니……”
마옥이 다급하게 찻잔을 내려놓고는 석목을 향해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앉아서 말씀하시지요.”
석목이 주좌로 걸어가서 앉으며 물었다.
“석 오라버니께 너무 죄송합니다……”
마옥이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혹시 채아와 관련된 일입니까?”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석 오라버니, 그 일 때문에 왔습니다. 채아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마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혹시 대물림에 실패했나요?”
석목이 다급하게 물었다.
“채아를 데려간 후, 성금의 힘을 대물림하며 백 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성금의 힘을 모두 불어넣었으며 채아가 잘 깨우쳐 월등하게 강해져 이미 우리 가문의 새로운 성금이 되었답니다.”
마옥이 사실대로 말했다.
“그럼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석목이 초조해 하며 물었다.
“채아가 성수 비술을 수련하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고 난 다음에 청란성지로 돌아와서 오라버니와 다시 만나게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보름 전, 우리 가족에게 갑자기 어떤 스님이 찾아와선 채아와 인연이 있다면서 채아를 데리고 갔습니다.”
마옥이 말했다.
“스님이요? 어떤 스님입니까?”
석목은 의문스러운 듯이 말했다.
“나이는 마흔 살 정도 되어보였으며 머리와 귀가 컸습니다. 민머리에는 상처가 하나 났으며 노란색 승복을 입고 있었는데 목에는 크기가 다른 검은색 진주를 걸고 있었습니다.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습니다.”
마옥이 잠깐 고민을 한 후에 말했다.
“그럼 가문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을 막아내지 못하고서 이렇게 가문의 성수를 데려가게 내버려 뒀다는 말입니까?”
석목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만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채아는 우리 가문의 성금입니다.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막으며 막무가내인 스님을 쫓아내려고 했지요. 열 명이나 되는 강력한 실력자들이 막았으며 마지막에는 성계이신 선조님까지 산에서 내려오셨는데 그 스님을 막지 못했습니다.”
마옥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강제로 채아를 데려갔다는 말입니까?”
석목이 화가 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스님은 실력이 우리 가문의 장로들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아무도 부상을 당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스님은 어떻게 채아를 데려갔다는 말입니까?”
석목이 의문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 스님을 가문의 모든 강자를 물리친 후, 채아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채아가 동의하지 않으면 알아서 떠나겠다 했으며 절대로 강요하지 않으리라 말했습니다. 선조님께선 어쩔 수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셨습니다. 하지만 스님이 무슨 말로 꼬드겼는지 채아가 그 스님을 따라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마옥이 계속해서 말했다.
석목은 채아가 목숨이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두통 때문에 이마를 살짝 짚으며 말했다.
“채아는 욕심쟁이라 아마 또 무슨 보물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따라갔을 겁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듣던 마옥은 채아가 어떤 성향인지 떠올리며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 그럼 그 스님이 채아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알고 있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그 스님이 사실대로 말해주었습니다. 천련지(天蓮池)라는 곳에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마옥이 답했다.
“천련지? 거기가 어디인지 알고 있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그 스님은 말만 던진 채로 다른 걸 물어보기도 전에 떠나버렸습니다. 우리 가문 사람들은 모든 책들을 뒤져보았지만, 천련지가 어디인지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채아는 석 오라버니의 영총이니 혹시 신식으로 닿을 수 있지 않을까하여 이렇게 다급하게 청란성지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알고 지내는 종문의 장로님에게 부탁을 하여 청란성지의 이 층 공간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마옥이 깊은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채아는 비록 저와 신식이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위치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청란성지에는 다양한 책들이 있으니 성전각에서 천련지와 관련된 정보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지체하지 말고서 바로 성전각으로 갑시다.”
마옥이 말했다.
“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두 사람이 곧바로 석목의 동부에서 나와 이제 막 현령탑으로 가려고 할 때였다.
동부에서 나오자마자 하늘에 빛이 한 줄기 날아갔다.
빛 속에 있던 사람도 동부 밖으로 나온 석목을 본 듯이 곧바로 멈추었다.
석목은 허공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강능풍……”
강능풍은 멈칫하더니 미소를 띠며 공손하게 말했다.
“석 사제군요. 저는 그래도 능풍 사형이라는 말이 더 친근하던데.”
“후후, 예전에 비경에서 그런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저도 호칭을 바꾸지는 않았을 겁니다.”
석목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먼 길을 떠나려는 것 같군요? 최근에 미양 성역이 꽤 복잡하게 되었는데 조용히 성지에 있는 편이 좋을 겁니다. 꼭 나가야 한다면 항상 조심하십시오.”
강능풍은 석목이 하는 말은 신경 쓰지도 않고서 하늘을 한번 쳐다보며 말했다.
석목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무엇인가를 물어보려고 할 때, 강능풍은 갑자기 소매를 흔들더니 빛으로 변하여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석 오라버니, 능풍 사형은 우연히 여길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는한데 꼭 여기서 오라버니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옥은 능풍이 한 영문 모를 말을 듣자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석목은 마옥이 던진 질문을 부정하지 못하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영우비차를 불러 마옥을 데리고 성전각으로 날아갔다.
* * *
성전각에는 전집들이 하늘에 뜬 별들처럼 많았다. 그 중에 미양 성역의 지리와 풍습을 기록한 책들만 해도 삼천육백 권이 넘었다.
석목과 마옥은 각각 정보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반나절이나 걸려서야 낡은 《미양성도지》에서 천련지와 관련된 기록을 몇 줄 찾아낼 수 있었다.
전집에 적힌 바에 의하면 천련지는 미양 성역 북쪽에 자리한 매우 평범한 곳인 ‘은련성(隱蓮星)’에 있었다.
은련성은 상고시대에 요수들이 최초로 나타난 장소들 중 한 곳이었다. 명성이 자자한 통천 요왕이 은련성 출신이었다. 지능이 뛰어난 요수들 중에 대다수는 스스로 한계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은련성으로 돌아가 마지막 보금자리로 삼는다고 적혀있었다.
그리하여 은련성에는 막강하고 신비스러운 금제들이 많아 강력한 요수의 요단을 넘보는 세력의 강자들도 바라만 볼 뿐 다가가지 못하는 금지구역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은련성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져갔다.
그리고 천련지는 은련성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거긴 환경이 매우 험한 데다 아직도 사나운 요수들이 많이 살고 있어 은련성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으로 꼽혔다.
기록에 의하면 천련지는 끝없이 드넓어 또 ‘은련지해(隱蓮之海)’라고도 불렀다. 천련지에 들어가면 쉽게 길을 잃을 수 있거니와 요수의 배부른 한 끼가 식사가 될 수도 있다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자세한 환경이 어떠한지는 아무도 몰랐다.
성전각에서 나온 석목과 마옥은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 스님이 채아를 그런 곳으로 데려갈 줄 알았더라면 가문 사람들 모두 목숨을 걸어서라도 채아를 지켰을 겁니다.”
마옥은 후회스러운 듯이 말했다.
“스님이 채아를 그리로 데려간 건 어떤 꿍꿍이가 있을 게 분명합니다. 채아는 겁도 많고 탈도 많지만, 제 영총이니 아무나 데려가게 두어서는 아니 되겠죠. 제가 찾으러 가겠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석 오라버니,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채아를 빼앗긴 건 저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마옥이 말했다.
“너무 위험한 곳입니다. 요수는 물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만로성에서 성해를 뚫고서 은련성으로 가는 길마저 마 아씨가 쉽게 건너지 못할 겁니다.”
석목이 말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듣던 마옥은 한참 고민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제 실력이 약한 것은 맞습니다. 석 오라버니를 따라가게 되면 아마 더 큰 짐이 되겠지요. 저는 성지에서 조용히 석 오라버니가 가져올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런데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님이 만약 채아를 해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가문 사람들의 목숨을 남겨 두지 않았을 겁니다. 억지로 채아를 데려가지 못할 일도 아니었으니 채아에게 나쁜 마음을 품진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채아를 찾아서 이유를 물어보면 될 겁니다.”
석목이 위로를 하며 말했다.
걱정을 하고 있던 마옥은 표정이 조금 풀린 것 같았다. 마옥은 석목에게 인사를 올린 후에 자리에서 떠났다.
석목은 비록 마옥을 위로했지만 실은 많이 걱정스러웠다. 천련지가 그토록 위험한 곳인데 채아가 천련지에 있다고 하니 어떻게 마음이 놓이겠는가.
그리고 그 스님은 내력이 불분명했다. 마옥이 한 말이 맞았다면 그 스님은 실력도 엄청났다.
그리고 강능풍에게 기분 나쁜 충고를 듣자 석목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이번에는 워낙 먼 곳으로 가야 하니 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몰랐기 때문에 석목은 다급하게 떠나지 않았다. 석목은 우선 현령탑으로 갔다가 다시 동부로 돌아와서 제풍을 비롯한 관사들을 전부 불러 모으고는 동부에서 할 일들을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