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17화 (617/916)

617화. 금색 구슬

유풍 신장은 긴장을 풀었고, 더는 분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그림자로 변하여 석목을 쫓아가더니 순식간에 석목의 머리 위에 다가왔다.

“죽어!”

유풍은 큰소리를 지르며 손에든 금색 장검에서 찬란한 금빛을 내뿜었는데 마치 금색 화염 같았다.

크키가 백 장인 검의 허영이 나타나 석목을 강하게 내리쳤다.

석목은 안색을 바꾸며 피하려 했지만, 몸에 힘이 풀려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고, 검빛 때문에 곧 두 덩어리로 갈라질 것이 뻔했다.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석목의 몸에서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금색 곤봉 하나가 석목의 몸에서 튀어나와 몸 앞을 막았다. 곤봉에는 금색 부문들이 줄줄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건 번천곤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기운이 번천곤에서 흘러 나와 금색 기류를 만들어냈다.

탱!

검빛이 번천곤과 부딪치며 부러졌다.

번천곤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금색 물결이 일렁였다. 검빛은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부러져 버렸다.

뿐만 아니라 금색 물결이 터져버리며 유풍 신장도 튕겨져 날아갔다.

“뭐야!”

유풍 신장은 열 장 멀리까지 밀려나서야 간신히 몸을 멈춰 세웠다. 유풍은 얼굴에 놀란 기색이 어렸다.

“천정 놈들, 죽어 마땅해!”

매우 작았지만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가 번천곤에서 흘러나왔다.

유풍 신장은 그 목소리를 듣더니 눈에 놀라움이 스쳐 지났다.

하지만 유풍이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번천곤에서 금빛이 크게 번지더니 유풍의 머리에 멈춰 섰다가 곧바로 유풍을 강하게 내리쳤다.

두려운 기운이 번천곤에서 흘러나왔는데 유풍의 신경 초기 경지보다 훨씬 강력했다.

유풍 신장은 얼굴에 절망을 한 기색이 스쳤고, 두려운 위력의 압박에 갇혀버렸다. 주변 공기가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수련 경지가 신경에 도달한 유풍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은 마치 호박석 속에 갇힌 파리처럼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안 돼!”

유풍은 이를 악물며 온힘을 다해 금색 장검을 높이 치켜들고는 머리 위를 막으려고 했다.

번천곤이 금색 장검을 내리치며 ‘탱!’ 소리와 함께 장검은 곧바로 터져버렸다.

번천곤은 속도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유풍 신장의 머리를 내리쳤다.

유풍 신장의 머리가 순식간에 터져버리며 머리 없는 시체가 되어 힘없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한 방에 유풍 신장을 죽여 버린 후, 번천곤은 허공에서 잠깐 머물다가 이내 빙글빙글 돌며 다시 금빛으로 변하여 석목의 영해 속으로 들어갔다.

석목은 어안이 벙벙해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고, 그는 파란빛을 감고는 허공에 멈춰 섰다. 유풍 신장의 시체를 바라보던 석목의 눈에 기이한 빛이 스쳤다.

석목은 영해 부분을 매만졌다. 조금 전에 들린 목소리는 매우 작았지만, 백원왕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혹시 백원왕의 신혼이 아직 번천곤에 남아있는 걸까?”

석목이 속으로 생각했다.

유풍 신장이 죽어버리자 분신을 묶어두었던 금색 진법도 곧바로 사라져 분신이 다시 석목 곁으로 돌아왔다.

석목은 눈을 한번 굴리더니 자신도 모르게 깊은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오늘 분신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이미 고만족 성계 강자의 손에 죽어버렸을 터였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 분신을 거두어들인 후, 단약을 하나 꺼내서 삼키고는 파란빛을 날려 유풍 신장이 쓰던 저장 반지를 가져왔다.

허나 아직 유풍 신장이 쓰던 물건들을 구경할 때가 아니었다.

석목은 손가락을 튕겨 유풍 신장의 시체에 화염을 쏘았다. 시체가 타버리더니 한 줌의 재만 남았다.

* * *

석목은 불의 날개를 펄럭이며 방향을 찾아 단숨에 수 십 리까지 날아가서야 천천히 허공에서 내려왔다.

호수에는 연꽃이 가득 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넓고 얇은 비취가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석목은 발끝으로 연꽃을 짚으며 몸을 날려 몇 장 크기나 되는 연꽃을 찾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연꽃잎은 보기에는 평범해 보였지만 매우 단단했기 때문에 석목이 앉아있어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바른 자세를 취한 석목은 법결을 짚어 구전현공을 시전하였다. 오른쪽 복부에 생긴 푸른색 작은 가마에서 빛이 밝아지며 몸의 근육들이 푸른색으로 변하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나무 같았다.

푸른빛이 맴돌자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석목이 두 눈을 떠보니 몸에 드리운 푸른빛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이어 석목이 천천히 연꽃잎에서 일어섰다.

주변을 둘러보니 석목을 중심으로 주변에 뜬 연꽃잎들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고, 마치 연꽃잎들이 머금고 있던 강력한 기운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이때, 왼쪽 백 장 밖에 모여 있던 커다란 연꽃잎이 잠깐 흔들리며 주변으로 퍼졌고, 연꽃잎 속에서 어두운 금색 짐승의 눈이 나타났는데 눈에서 흉악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호수에서 물결이 일렁이더니 둥그런 물결 가운데서 검은색의 뾰족한 뿔이 천천히 튀어나왔다.

오른쪽 백 장 밖, 검은색 연꽃 밑에는 온몸이 칠흑같이 검은 다리가 셋 달린 두꺼비 몇 마리가 엎드려있었다. 두꺼비들은 턱이 볼록하게 부풀다가 다시 줄어들길 반복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울리지 않았으며 옅은 은색 눈으로 석목을 노려보고 있었다.

“많이도 왔네.”

석목은 신식을 거두어들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눈에 보이는 요수들과 물속에 숨어있는 요수들까지 족히 수십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주변 허공에서도 석목을 감싼 채 맴돌고 있는 요수들이 수두룩했다. 그중 대부분은 천위 경지 기운을 풍기고 있었으며 심지어 몇 마리는 성계 경지 였다.

이 요수들은 조금 전에 벌어진 싸움 때문에 놀라서 도망을 갔다가 다시 돌아온 녀석들도 있었으며 싸움 소리 때문에 쫓아온 요수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든지 석목을 침입자라 생각하는 건 틀림없었다.

석목이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몸에 빛을 반짝이며 진룡쇄금갑을 둘렀다.

그리고 손목을 치켜 올려 여의빈철곤을 들고서 다시 옆에 세워두었다.

이때, 호수 깊은 곳에서 산들바람이 불어왔지만 석목 주변에 피어난 안개는 흩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짙어졌다.

석목에게로 몰려오는 요수들의 숫자가 더 많아졌는데 그중 몇 마리는 이미 석목과 이삼십 장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석목은 곤봉을 꽉 쥐고는 뒤를 공격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이때, 앞에서 몰려오는 짙은 안개 속에서 새가 날카롭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석목은 귀를 한번 움직이더니 곤봉을 휘두르려는 손이 허공에서 멈춰 버렸다.

이어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새 소리가 울려 퍼지자 석목을 포위하고서 공격하려던 요수들이 하나둘 씩 뒤로 물러났다. 마치 조금 전에 울렸던 새 소리를 엄청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석목이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할 때, 앞쪽 짙은 안개가 용솟음치며 커다랗고 영롱한 그림자가 안개 속에서 날아왔다.

덩치가 커다란 새였는데 깃털이 오색영롱하니 눈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풍기는 기운도 매우 강력했는데 석목을 둘러싸고 있던 요수들보다도 강력했다.

이제 막 늑대 무리를 보냈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다가오다니, 석목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석목이 곧바로 곤봉을 치켜들자 곤봉에서 금빛이 크게 번졌다.

석목이 앞으로 발을 짚어 곤봉을 다시 머리 위로 치켜들고는 막 휘두르려던 찰나였다.

앞에서 날아오던 영롱한 새가 갑자기 입을 크게 벌리며 사람의 말을 뱉어냈다.

“어이, 어이, 돌머리 석두야, 때리지 마. 제대로 좀 보라고. 나야, 나라니까!”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멈칫했다. 앞쪽에 나타난 영롱한 새는 몸에서 갑자기 빛이 번쩍이더니 커다란 몸통이 눈에 띄는 속도로 작아졌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통통하고 깃털이 영롱한 앵무새로 변했다.

“채아!”

석목은 가슴이 벅차올라 채아를 불렀다.

“나라고 했잖아! 석두, 왜 이제야 왔어?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다고.”

채아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뱉고는 날개를 펄럭이며 석목에게로 날아가 어깨에 내려앉았다.

“너 이 자식, 내가 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석목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

“당연히 스님이 가기 전에 알려준 거지. 네가 곧 여기로 올 거니까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했어.”

채아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더욱 의문스러워졌다. 그 스님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석목이 천련지에 오리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 일부러 채아를 통해 석목을 이곳으로 끌어들였나?

“채아, 너를 여기로 데리고 온 스님 말이야. 대체 누구야?”

석목이 물었다.

“그 사람? 무슨 묘공(妙空)이라고 하던데.”

채아가 답했다.

“묘공? 그럼 묘공 스님이 너를 여기로 오라며 꼬드겼을 때 너한테 뭐라고 했어?”

석목이 멈칫했다. 묘공이란 이름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채아에게 물었다.

“나를 꼬드겨? 하하, 그 머리만 큰 놈이 이 채아 어르신을 꼬드길 수 있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채아가 고개를 치켜들며 센 척을 했다.

석목은 조금 황당해하며 계속해서 물었다.

“그럼 너한테 뭐라고 했기에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뭐라고 했냐면,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나를 영력이 가득한 곳으로 데려다 준다고 했어. 거긴 영재도 많은데 또 너를 만날 수도 있다고도 했어. 얼굴도 착하게 생긴 놈이 그런 말을 하니 다시 생각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지. 맛있는 영재도 있는데 석두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때마침 심심하던 차에 하는 수 없이 따라왔지.”

채아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했다.

“이 바보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와?”

석목이 채아의 이마를 튕기며 말했다.

“아이고! 아파! 다 그 마씨 가문 사람들 때문이야. 나를 성금으로 모시면서 무슨 비술을 수련하라지 뭐야.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뤄야 성지로 가서 너를 만날 수 있다고 그랬어.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겠어. 그리고 그 스님이 그러는데 천련지에는 석두, 네게 필요한 중요한 물건이 하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여기까지 따라서 온 거란 말이야!”

채아가 날개로 머리를 감싸고는 억울한 듯이 말했다.

“무슨 물건?”

석목이 물었다.

채아가 날개를 뒤적이더니 석목에게 용의 눈알만 한 금색 구슬을 하나 내밀었다.

“자, 이거야. 그 스님이 그러는데 이게 무슨 천련심인가 뭔가라고 하더라고.”

채아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석목이 금색 구슬을 받아서 자세히 훑어보았다. 구슬은 금빛을 감추고 있어 얼핏 보면 특이한 점이 하나도 없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슬 속에 금색 액체가 흐르고 있는 게 보였다.

금색 액체에는 매우 풍성한 영력이 담겨 있어서 석목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 구슬 안에 든 천지 원기가 이렇게 풍부한데, 네가 꿀꺽하지 않고 어떻게 잘 참았네?”

석목이 감탄하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채아는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리며 석목을 바라보더니 후회스러운 듯이 말했다.

“천지 원기가 풍성하다고? 내 눈에는 왜 안 보이지? 나는 그냥 평범한 구슬인 줄 알았잖아. 아이고, 아까워……”

“아, 그 스님은?”

석목이 물었다.

“며칠 전에 나를 데리고 이 천련심을 찾아준 후에 떠나갔어.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하니 나는 여기서 너를 기다리면 될 거라고 말했어. 그런데 그 스님의 안색이나 혈기가 좋아 보이지 않더라고.”

채아가 갸우뚱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며 말했다.

“여긴 안개가 자욱해서 시야에 거슬릴 뿐만 아니라 또 요수들도 많잖아. 사람 한 명…… 아니, 새 한 마리가 여기서 며칠 동안 어떻게 지냈다는 거야?”

석목이 물었다.

“처음에는 나도 엄청 무서웠지.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여기 있는 요수들은 무엇 때문이지 다 나를 무서워하더라고. 내가 ‘꽥!’ 소리를 내면 전부 도망가. 그래서 나는 여기서 영물이나 잡아먹고 영재나 주워 먹으면서 너를 기다렸지.”

채아가 말했다.

“아마 네가 마씨 가문 성금의 힘을 물려받아서 그럴 거야. 네가 풍기는 기운이 자연스럽게 저급한 요수들을 물리쳤을지도 몰라”

석목이 생각에 잠긴 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채아는 좋아하며 날개를 계속 펄럭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내 몸에서 왕의 냄새가 풍긴다는 뜻이지?”

채아가 하는 말을 들은 석목은 또 어이가 없어졌다. 석목이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며 비릿한 피 냄새가 목까지 차올랐다.

“석두, 왜 그래?”

채아가 다급하게 물었다.

“괜찮아. 조금 전에 상처를 입었어. 나를 위해서 호법을 해줘, 나는 잠깐 쉬어야 할 것 같아.”

석목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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