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8화. 꿈속으로 돌아가다
석목은 가부좌를 틀고서 푸른빛을 다시 뿜어냈다. 상처가 난 부위에서 푸른색과 나무 무늬가 교차하며 나타났고, 석목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채아는 석목의 몸에 나타난 나무 무늬를 보고는 신기하여 석목의 몸 곳곳을 날아다니며 쳐다보았다.
잠시 후에 석목의 몸에서 번지던 푸른빛이 전부 사라졌고, 석목은 연꽃에서 일어섰다.
채아가 곧바로 날개를 펄럭이며 석목의 어깨로 날아가 지저귀었다.
“석목, 조금 전에 네 몸에서 나무 무늬가 가득 나타났어. 나는 네가 성까지 바꾼 줄 알았잖아. 석두가 아니라 목두(木頭).”
“채아, 근처에 안전한 곳 있어?”
석목이 물었다.
“앞쪽 수십 리 밖에 작은 섬이 하나 있어. 며칠 동안 나도 그 섬에서 너를 기다렸던 거야. 따라와.”
채아가 말을 하며 날개를 펼쳐 짙은 안개 속을 뚫고 날아갔다.
석목도 하얀 구름을 밟고서 천천히 채아를 뒤따라갔다.
* * *
반 각 후, 석목은 채아를 따라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고, 삼 십 장 정도 되는 둥그런 섬 위로 내려왔다.
섬에 드리운 안개는 물 위보다 조금 옅었다. 높이가 백 장 정도 되는 작은 산들이 우뚝 솟아있으며 주변은 온통 얇은 모래들로 덮여있었고, 모래 속에는 백골들과 둥그런 돌들이 묻혀있었다.
“여기가 네가 지내던 곳이야?”
석목이 물었다.
“여긴 원래 푸른 구렁이가 머물던 곳인데 내가 다가오니까 푸른 구렁이가 주변에 있던 많은 요수를 데리고 도망을 갔어. 그래서 내가 이 섬을 차지하고 있었지.”
채아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짙은 안개가 자욱했으며 그 사이로 작은 섬들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리고 안개가 가장 짙은 곳에서 기이한 바람 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석목은 시선을 거두어들인 후, 몸을 번쩍이며 산중턱에 내려왔다. 산중턱엔 크기가 두세 장쯤 되는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컴컴한 모양새를 보니 공간이 꽤 커 보였다.
“아, 석두, 그런데 그 스님은 왜 천련심이 네게 꼭 필요하다고 하는 거야?”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물었다.
“나도 잘 몰라. 그런데 천련심에는 영력이 충분히 많아서 좋은 점도 많을 거야. 자세한 건 써봐야 알 것 같아.”
석목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럼 빨리 써봐.”
채아가 잔뜩 기대하는 듯이 말했다.
석목은 잠깐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 *
동굴에 금제를 설치한 후에 석목은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코를 찌르는 비린내가 몰려왔으나 석목은 미간을 찌푸린 채 신경을 쓰지 않고서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동굴은 크기가 백 장 정도 되는 공간이었는데 조금 습했고, 돌덩이와 마른 풀외에 구석에 백골 더미가 쌓여있었다.
석목은 중간으로 다가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금빛이 반짝이는 천련심을 꺼내 들며 한참 동안 자세히 살펴보더니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천련심이 석목의 배까지 내려가자 배에서 청량한 느낌이 올라와 석목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어서 금색 구슬이 녹아내리며 안에서 금색 액체가 흘러나왔고, 엄청난 천지 원기가 석목의 복부에서 들끓었다. 천지 원기는 사지와 뼈 사이로 스며들면서 청량한 느낌이 사라지며 순식간에 몸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바늘이 근육을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매우 얇고도 미세한 힘이 혈맥 속에서 격하게 부딪치는 것만 같았다. 천련심 속에 깃든 천지 원기가 이렇게 엄청나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풉!
석목은 참지 못하고 피를 한 모금 토해냈다.
하지만 피를 토해내니 온몸에 힘이 풀리며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도 서서히 사라졌고, 몸속에 난 상처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석두, 괜찮아? 놀라게 하지 마!”
옆에 있던 채아가 그 모습을 보더니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괜찮아, 천련심에 들어있는 힘이 너무 범상치 않아서 몸속에 흐르던 진기가 끝까지 폭발했어. 이제 폐관수련을 하며 성계로 진입해야 할 것 같으니 동굴 밖에서 호법을 서줘.”
석목이 두 눈을 감고는 눈에 빛을 번쩍이며 채아에게 말했다.
“나한테 맡겨!”
그 말을 들은 채아는 다급하게 답했다.
채아는 두 날개를 펼쳐 동굴에서 날아나가더니 산꼭대기에 멈췄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를 하는 태세를 취했다.
* * *
이 시각, 동굴 안.
석목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두 눈을 감고는 두 손으로 배 앞 허공에 원을 그리자 석목의 몸에서 찬란한 금빛이 눈부시게 비쳤다.
순간, 천련지의 허공에 떠 있던 짙은 안개가 용솟음치며 주변에 드리웠던 엄청난 영력들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석목이 있는 작은 산으로 몰려들었다.
안개와 연기가 끊임없이 산속으로 몰려가 석목 주변 하늘을 뚫어버릴 것만 같은 커다란 소용돌이를 만들며 석목을 안으로 감쌌다.
소용돌이는 점점 커지더니 섬 보다 더 커져서 주변 호수와 수많은 연꽃들을 안으로 빨아들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채아는 날개를 펼쳐서 더 높이 날아올랐다.
석목은 두 눈을 감고 있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이 시각 석목의 의식 속에선 호수처럼 파도가 번졌다.
이때, 석목의 의식 속에서 핏빛이 들끓더니 파리만 한 핏빛 글씨가 천천히 나타나더니 기이한 모양을 이루었다.
이어서 붉은 글씨는 순식간에 핏빛을 크게 뿜어내며 하나하나 사라져버렸고, 핏빛 안개로 뭉치더니 의식의 바다 속에 자욱하게 깔렸다.
석목의 몸이 격하게 흔들리며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기색이 어렸다. 머릿속이 마치 바늘로 찌르는 것만 같았으며 신식이 한참동안 혼란스러워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 * *
이어서 석목은 갑자기 광활한 성역 속에 놓이게 되었다.
앞쪽 수백 장 밖 하늘에서 갑자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석목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시선이 닿는 곳에서 불꽃이 사방으로 튀고 있었고, 커다란 행성 표면에서는 눈부신 불꽃이 터졌다. 이어 행성이 폭발하며 수많은 성진이 소용돌이를 만들어 부서진 행성 파편들을 전부 삼켰다가 다시 부숴버렸다.
그리고 무너지던 성해 앞쪽에는 천 장이나 되는 사람 그림자가 하늘을 찌를 듯한 커다란 곤봉을 기둥처럼 들고 서 있었다.
“백원왕!”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백원왕은 부문이 촘촘하게 새겨진 금색 갑옷을 두르고 있었는데 등 뒤에는 커다란 구멍이 가슴까지 뚫려있었으며 구멍에서 금색 피가 잔뜩 흘렀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등골이 다 오싹했다.
석목은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다. 백원왕이 이렇게 큰 상처를 입고도 위력이 하나도 꺾이지 않은 채 우주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아……”
백원왕이 입을 벌리자 검극(劍戟)처럼 생긴 뾰족한 이빨 네 개가 드러났다. 백원왕이 포효를 하며 번천곤을 가로로 휩쓸자 금색 곤봉 그림자가 뿜어져 나와 다른 한쪽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세상이 순식간에 모든 빛을 잃고서 오로지 금빛만 남은 것 같았다!
그 금빛은 우주의 수많은 운석을 삼키고는 활활 태워 한 줌의 재로 만들어버렸다.
석목은 금빛을 따라 먼 곳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우주 다른 한쪽에 키가 만 장 정도 되는 노란 피풍의를 두른 거인들이 서 있었는데 거인들은 한 줄로 서서 백 장이나 되는 커다란 산맥처럼 성역을 가로질렀다.
석목은 노란 피풍의를 두른 거인들 틈으로 그림자가 자욱하게 드리운 전함들과 다양한 갑옷을 입은 전사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노란 피풍의를 두른 거인들은 전부 엄숙한 표정으로 백원왕을 바라보며 오른손에 북채를 하나씩 들고서 허리춤에 있는 금색 짐승 모양 북을 내리쳤다.
이 광경은 석목이 남해성을 떠날 때 봤던 모습과 매우 비슷했고, 그는 의식을 열어두고 귀를 막아버렸다.
우르릉!
하지만 귀를 막았다 해도 천둥처럼 큰소리는 여전히 고막을 뚫고서 머릿속으로 전해졌다.
석목의 머리에서 윙윙 소리가 들리는 걸 느꼈지만 지난번처럼 힘이 풀리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큰소리와 함께 별 하늘이 함께 떨리며 기류 같은 커다란 물결이 줄줄이 퍼져나갔고, 금색 북 수백 개가 떨리며 하늘에 금색 물결을 만들었다. 이어서 물결이 곤봉 그림자와 강하게 부딪쳤다.
쿵!
금색 물결이 터져버렸고, 금색 곤봉 그림자는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앞을 향하며 노란 피풍의를 입은 거인들을 쓸어냈다.
거센 바람이 숲을 스치듯 금색 곤봉이 곧바로 노란 피풍의를 두른 거인들을 쓸어버렸다.
펑! 펑! 펑!
소리가 수백 갈래 연이어 울려 퍼졌고, 노란 피풍의를 두른 거인들이 손에 든 커다란 북들이 그 힘 때문에 격하게 흔들리며 산산조각이 났다. 거인들이 두르고 있던 노란 피풍의도 금빛 때문에 모두 타서 먼지로 흩날려 고동색 피부가 드러났다.
석목이 노란 피풍의를 두른 거인들을 바라보니 거인들은 근육이 매우 탄탄했으며 근육 위로 복잡한 토템 무늬를 잔뜩 새긴 채로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흉악해 보였다.
거인들의 몸에 새겨진 토템 부문에서 빛을 반짝이며 온몸에 하얀 뼈가시를 드러냈다. 두 팔에도 으스스한 커다란 가시가 두 개 자라났는데 길이가 족히 천 장은 되는 것 같았고, 마치 긴 창처럼 하늘을 찔렀다.
몇몇 거인들은 광대뼈가 높이 튀어나오고 턱뼈가 앞으로 뻗어 있었고, 피부는 검푸른 색으로 변했다. 피부 위로 둥그런 비늘들이 촘촘하게 자라났는데 팔마저 함께 길어져 짐승처럼 엎드렸다.
거인들마다 토템 무늬의 모양이 달라서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토템의 힘을 시전한 거인들은 두 눈이 전부 붉은빛으로 변하였다. 원래도 감정을 읽을 수 없던 눈이 텅텅 비어서 살기 가득한 차가운 기운만을 내뿜고 있었다.
아무도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흉악한 짐승으로 변한 거인들은 커다란 맹수들로 변하여 백원왕을 향해 덤벼들었다.
맹수들이 지나가자 금색 갑옷을 입은 수만 명이 전부 빛을 번쩍이며 날아왔다.
노란 피풍의를 두른 거인들과 비교했을 때 갑옷을 입은 사람들은 마치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 하지만 전장에 뛰어든 후, 갑옷을 입은 사람들은 무리를 짓고 공격은 하지 않았으며, 수백 명씩 한 조로 묶인 채로 흩어져서 노란 피풍의를 두른 거인들 사이로 섞여들었다.
그 광경을 본 백원왕은 두 눈에 금빛을 반짝였다. 백원왕은 번천곤을 들고서 두 발로 허공을 짚고는 거대한 몸통으로 날아올랐다. 그 모습은 마치 별똥별이 홍수 속으로 질러 들어가는 모습 같았다.
백원왕이 들고 있는 번천곤은 마치 하늘을 찌르는 기둥 같았는데 백원왕의 손에 들려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번천곤을 한 번 흔들 때마다 거인 여러 명이 뼈가 부러지며 비늘까지 벗겨졌다. 그리고 커다란 몸통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고, 미처 피하지 못한 금색 갑옷을 두른 병사들은 고기 덩어리로 뭉개져 버렸다. 이에 병사들의 사지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노란 피풍의를 두른 거인들의 몸집이 백원왕보다 몇 배나 더 컸다. 그리고 거인들의 거센 힘으로 산까지 부숴버릴 것 같았지만 백원왕 앞에서는 마치 돌로 금덩이를 부수듯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단 한 순간에 서른 명에 가까운 거인들이 죽어버렸으며 금색 갑옷을 두른 병사들은 훨씬 많은 수가 더욱 처참하게 죽어버렸다.
하지만 백원왕은 혼자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몰려오는 갑옷을 두른 병사들의 기습을 받았다. 특히 구멍이 뚫린 가슴은 이미 많이 약해져서 병사들이 집중적으로 공격을 하는 대상이 되었다.
갑옷을 두른 병사가 백여 명이나 몰려온다 해도 백원왕에겐 전혀 위협이 될 수 없었으나 천 명, 심지어 만 명정도 몰려온다면 백원왕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
백원왕의 가슴에 난 상처가 점점 심해졌다. 순간, 백원왕이 커다란 손을 흔들자 파도가 일렁이며 성해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고, 갑옷을 두른 병사 천여 명이 파도 속에 빠져서 죽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