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1화. 성계 (2)
마귀 늑대가 미친 듯이 짖어대며 다급한 마음에 호수로 몸을 던져 버렸다.
하지만 마귀 늑대가 깊은 호수 속으로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붉은 화염은 꺼지지 않은 채 오히려 활활 타올라 한참 동안 애를 먹었다.
한편, 나머지 요수들도 마귀 늑대처럼 몸에 불이 붙었다.
검은 새가 ‘탱!’ 소리와 함께 두 날개를 활짝 펴고는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새의 날개 아래에서 검은색 회오리가 튀어나와 허공을 한 바퀴 휩쓸더니 다시 새의 몸으로 날아가며 채아가 지핀 불을 꺼버렸다.
소머리가 달린 구렁이도 마찬가지로 ‘음매에!’ 소리를 지르며 두 콧구멍으로 파란색 물줄기를 뿜어냈는데, 물줄기가 위로 치솟아 올랐다가 다시 소의 몸으로 쏟아지며 불을 꺼버렸다.
그때 호수 속에서 허우적대던 마귀 늑대도 불길을 껐고, 불이 전부 꺼지자 세 성계 요수가 다시 주위를 둘러싸며 다가왔다.
순간 채아는 붉은빛을 더 크게 터뜨리며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채아는 허공에 잔영을 그리며 입으로 계속해서 붉은 화염을 뿜어내 석목 주변에 둥그런 화염벽을 하나 만들어내더니 석목을 안으로 감싸버렸다.
채아는 붉은 화염을 토해낼 때마다 기운이 조금씩 꺾였다.
연이은 화염 공격을 받자 요수들은 한참 동안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채아가 요수들과 맞붙어 싸우고 있는 동안 석목은 드디어 가장 중요한 마지막 관문에 들어섰다.
방대한 천지의 영기가 몸속으로 흘러들어오자 석목이 두르고 있던 금빛이 점점 두꺼워졌고, 풍기는 기운도 강력해졌다.
드디어 빛기둥에 드리운 마지막 영력 한 줄기가 석목에게로 스며들었다.
쾅!
천둥소리와 함께 석목의 몸에서 번지던 금빛이 점점 좁아지더니 피부색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영해 속에선 여전히 광풍이 휘몰아쳤다.
금단이 깨지자 금빛이 석목의 몸속 곳곳으로 흘러갔다가 다시 조금씩 뭉쳤다.
별빛처럼 뭉친 금빛은 희미한 금색 사람으로 변했고, 작은 사람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번천곤을 향해 뒤뚱뒤뚱 걸어갔다.
번천곤 옆에 선 아이는 유난히 작아 보였다. 이때 아이가 굵직한 곤봉을 덥석 끌어안더니 곤봉 위로 기어 올라가려고 아등바등했다.
아이는 번천곤 위로 한 뼘 정도 올라가는 듯했으나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고, 아이가 감고 있던 금빛도 흩어져버렸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포기할 줄 모르고서 계속 번천곤 위로 올라가려 했지만 아이는 수도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높이 올라갈수록 더욱 세게 떨어졌지만, 몸에 감은 금빛은 오히려 점점 더 단단해졌다.
바로 이때였다. 번천곤에서 빛이 밝아지며 하얀 원숭이 모양 그림자가 하나 나타나 아기에게로 달려오더니 작은 몸과 부딪쳐 둘이 합쳐져 버렸다.
하얀 원숭이와 금색 아이가 합쳐지는 순간, 안정을 되찾았던 석목의 영해 속이 또다시 격하게 흔들리며 파도가 더욱 강하게 덮쳤다.
이 순간 석목의 몸에서 맹렬한 기운이 폭발했는데 그 기운은 마치 만질 수 있는 실물처럼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석목 근처에서 채아와 싸우고 있던 성계 요수 세 마리는 석목이 내뿜은 기운 때문에 몸을 파르르 떨며 뿔뿔이 도망쳐 버렸다.
작은 섬에 있던 저급 요수들은 쓰러지거나 피를 흘리며 난장판이 되었다.
채아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지만 채아는 기운이 많이 약해져서 처음처럼 날렵하게 날지도 못했다.
채아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되자 그제야 멈췄다. 몸은 멈췄지만 두 눈알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서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고, 한참 뒤에야 요수 세 마리가 이미 물러나고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히히, 깜짝 놀랐지…… 이제 채아 어르신의 매운맛을 좀 알겠나? 잘 도망간 줄 알아…… 그러지 않았으면 구워먹었을 거야……”
채아가 비틀거리며 말했다.
* * *
작은 섬 위.
석목이 꼿꼿하게 서서 두 눈을 감은 채 몸속에서 용솟음치는 강력한 힘을 느끼며 좋아서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석목은 드디어 경지를 돌파했고, 이제 엄연한 성계 무인이었다!
이제 석목은 분신에게 도움을 받지 않아도 이전에 부딪쳤던 성계 고만족들을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유풍 신장과 다시 마주친다면 여전히 이길 수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이전처럼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석목은 두 눈을 감고서 몸속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영해 속에 있는 작은 아이는 두 손을 몸 앞으로 뻗어서 번천곤을 품에 안았다.
성계에 들어서면서 금단이 작은 아이로 변했고, 이 아이는 석목과 똑같이 생겼다. 석목이 응결시킨 성배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성배가 번천곤을 품에 안고 있어서 그런지 예전에 들던 모호한 느낌과 달리 번천곤과 더욱 뚜렷이 연결된 것 같았다.
석목은 기쁜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연결에 집중을 했다.
영해가 흔들리며 번천곤이 반짝였고, 이어 번천곤이 영해에서 튀어나와 손으로 날아갔다.
번천곤을 잡은 순간, 석목은 번천곤 속에 담겨있는 엄청난 위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힘은 석목이 지닌 힘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었다.
그는 흥겨운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큰소리를 지르며 번천곤을 휘둘러 발밑 허공을 갈랐다.
순간 석목의 안색이 변했다.
석목이 곤봉을 휘두르자 번천곤이 순식간에 방대한 흡인력을 드리우며 그의 몸속에 깃든 진기를 빠르게 흡수했는데, 순식간에 진기를 전부 빨아들여버렸다. 곤봉에서 금빛이 번지며 수많은 부문들이 튀어나와 금색 곤봉 그림자를 이루며 앞을 향해 날아갔다.
금색 곤봉 그림자는 놀라운 기운을 뿜어내며 스친 자리에 있던 세상 만물들을 전부 빨아들인 것 같았다. 그리고 허공이 한 층, 한 층 사라지더니 완벽한 무(無)로 돌아갔다.
이어서 놀라운 힘이 다시 흩어지며 아래에 있는 섬에 드리웠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섬과 섬 근처에 있던 호수가 순식간에 산산이 조각나 텅 빈 공간이 되었다.
섬을 중심으로 수십 리까지 뻗어 나간 둥그런 공간은 허무 그 자체였는데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금색 곤봉 그림자는 계속해서 앞으로 날아가더니 호수 깊은 곳까지 찔러 들어가다가 이내 사라져버렸고, 어느 정도 깊이까지 빠져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르릉!
호수 깊은 곳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며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푹!
이어 굵고 커다란 용암 기둥이 땅속에서 뿜어져 나와 하늘 위로 치솟았다.
석목의 몸속에 깃든 진기가 전부 번천곤으로 빨려 들어가서 석목은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한 방을 날린 후에 번천곤은 빛을 반짝이며 다시 석목의 영해 속으로 들어갔다.
거친 숨은 잘 멈추지 않았지만 석목에겐 광분에 가까운 희열이 몰려왔다.
석목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최상급 영석을 하나 꺼내 들고는 안에 든 영력을 흡수했다.
석목은 여전히 번천곤과 이어져 있었고, 이는 석목이 진기를 회복하기만 하면 언제든 번천곤을 다시 소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룬 수련 경지로는 백원왕과 함께 성역을 누비며 천하를 제패했던 이 영보를 완벽하게 다룰 수 없었다. 억지로 번천곤을 쓴다 해도 그 위력을 전부 발휘할 수는 없을 터였다.
조금 전에 날린 일격은 백원왕의 잔혼이 번천곤을 써서 유풍을 죽여 버렸을 때와 비교하면 위력을 반도 쏟아내지 못한 것이었다.
물론 평범한 성계 존재는 조금 전에 날린 한 방을 절대 막아낼 수 없을 터였다. 그리고 번천곤은 석목이 지닌 가장 강력한 필살기였다!
석목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 채아가 날아와 어깨에 내려앉았다.
“석두, 드디어 성공했구나! 아, 조금 전에 쓰던 금색 곤봉은 무슨 법보야? 엄청 대단해 보이던데!”
“아, 내 필살기야. 수련 경지가 낮을 때는 아무리 시도해도 시전 할 수 없었는데 성계에 진입하니 시전 할 수 있게 되었어.”
석목이 대충 설명을 해주었다.
채아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아무튼 석목의 실력이 강해지면 채아에겐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이때, 채아는 눈빛이 변하더니 먼 곳을 바라보며 빛을 반짝였다.
“왜 그래?”
석목이 물었다.
“아이고, 큰일 났어. 요수들이 또 찾아왔어! 아니, 방금 전보다 더 많아졌잖아!”
채아가 말했다. 조금 심각한 목소리였다.
“요수?”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며 채아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석목의 눈에서 금빛이 흐르더니 표정이 점점 굳었고, 그는 곧바로 파란색 영석을 하나 꺼내들었다. 빛을 감고 있는 이 영석은 선급 물속성 영석이었다.
순수하고 방대한 영력이 선급 영석에서 뿜어져 나와 석목의 몸속으로 스며들자 석목은 영력을 빠른 속도로 회복했고, 호흡을 몇 번 하자 영력이 절반 넘게 회복되었다.
하지만 이때,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며 온 호수가 일렁였고, 거대한 몸집 수십 개가 먼 곳에서 빠르게 날아와 석목과 수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다. 자세히 보니 몸집이 엄청난 요수가 수십 마리나 있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거대한 요수들은 대부분 성계 존재였는데 얼마 전에 마주쳤던 금염철시 독수리와 푸른 구렁이도 그 속에 있었다.
이 밖에도 실력이 성계에 도달한 요수들이 이삼십 마리나 더 있었다. 요수들은 포효하며 눈에 빛을 반짝이자 방대한 요기가 석목을 짓눌렀다.
석목과 채아는 포위되었다!
예전 석목이라면 이미 놀라서 얼어붙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석목은 수련 경지가 성계에 도달했으니 이 많은 요수들을 전부 해치울 수는 없다고 해도 내 몸 하나 지키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석목은 도망을 칠 생각은 하지 않고서 묵묵히 허공에 서 있었다.
“석두, 이제 어떻게 해?”
채아가 불안한 듯이 발을 동동 구르며 물었다.
“괜찮아. 이 정도 요수들이면 해볼 만해.”
석목이 채아의 몸을 두드리고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잠깐 사이에 석목은 영기를 모두 회복했다. 역시 선급 영석이라 영력을 보충하는 속도가 놀라울 정도였다.
석목은 조금 어두워진 선급 영석을 거두어들이고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빈철곤을 꺼내 들어 앞에 있는 요수들을 바라보니 조금 흥분이 되는 것 같았다.
조금 전에 번천곤이 지닌 위력을 살짝 맛보긴 했지만, 그건 법보가 지닌 위력이었다. 성계에 진입한 후로 아직 스스로 실력을 검증해보지 않았으니 석목은 이참에 성계의 자신이 지닌 힘을 느껴보고 싶었기에 그가 몸에 파란빛을 반짝이며 막 날아가려고 했다.
이때, 발밑에 있던 호수가 마구 들끓더니 물기둥이 하늘을 찌르며 솟아올라 석목을 날려버렸다.
석목은 깜짝 놀라며 물과 불의 날개를 펼쳐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물기둥은 마치 살아있는 듯이 방향을 틀어 계속해서 석목을 쫓아다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석목을 따라잡았다.
석목은 깜짝 놀라며 큰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순식간에 토템 변신을 하더니 여의빈철곤에 금빛이 크게 번지며 곤봉 그림자가 되어 물기둥을 막아냈다.
순간, 굵직한 물기둥 끝에서 파란빛이 반짝이며 파란 번개 구체가 수백 개나 날아왔는데 번개 구체는 전부 집채만 했으며 굵은 번개를 감은 채 무시무시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쾅, 쾅!
파란색 번개 구체와 곤봉 그림자가 부딪치자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촘촘한 곤봉 그림자가 순식간에 터져버려 수많은 번개 구체가 우르르 몰려왔다.
석목은 퍼렇게 질린 얼굴로 금빛과 파란빛을 크게 드리워 몸을 보호했다.
이어서 파란색 번개 구체가 석목의 몸을 ‘쿵!’ 내리쳤다.
풉!
석목은 붉은 피를 뿜어내며 튕겨져 날아갔고, 몸을 덮은 비늘이 찢겨버려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석목의 눈에 두려운 기색이 스쳤고, 이 파란색 번개 구체가 낯설지 않았다. 번개 구체는 수강신뢰였는데 상상을 뛰어넘는 위력을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