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화. 여섯 번째 단계
“아쉽네. 아쉬워……”
진룡쇄금갑을 가운데 두고 한 바퀴 빙 둘러본 공수자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선배님, 충분한 최상급 영석과 성핵정금만 있으면 이 갑옷을 영보급으로 제련할 수 있는 겁니까?”
석목은 공수자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공수자는 멈칫하며 말했다.
“옳다. 맞는 말이야! 음, 네 이 녀석 보는 눈이 좀 있군.”
“저는 우둔한 편입니다. 보는 눈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떤 선배님께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석목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오? 그분도 연기사인가? 성함이 어떻게 되느냐?”
공수자는 눈빛이 맑아지며 다급하게 캐물었다.
“그분은 성함을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최상급 영석과 성핵정금이 있다고 해도 그분께서 갖추신 연기 실력으로는 이 갑옷을 영보급으로 만들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공수자 대사님을 찾아가면 해결해주시리라고 말해주셨죠. 선배님께서 지니신 연기술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 꼭 해내실거라고 말했습니다.”
석목이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후후, 그럼, 물론이지! 충분한 최상급 영석과 성핵정금만 있다면 이 정도 는 식은 죽 먹기지. 이 정도 영석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성핵정금은?”
공수자가 석실 안에 있는 영석을 한 번 훑어보며 말했다.
“선배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석목은 기쁜 마음으로 성핵정금을 꺼냈다.
그리고 손을 흔들자 진룡쇄금갑이 몸에서 벗겨져 공수자 앞으로 날아갔다.
“성핵정금! 이렇게 큰 성핵정금이라니. 충분하다!”
공수자는 빛을 날려 성핵정금과 진룡쇄금갑을 감쌌다.
그리고 엄숙한 표정으로 두 손을 흔들며 법결을 줄줄이 시전하였다.
자취로에서 보랏빛이 뿜어져 나왔고, 동로 아래에 보라색 화염이 나타나자 뜨거운 기운이 주변으로 퍼졌다.
석목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자취로를 바라봤다.
공수자가 손을 흔들자 진룡쇄금갑과 성핵정금이 뚜껑이 열린 자취로 속으로 들어갔다.
공수자가 법결을 시전하자 자취로에 부문과 진법이 하나하나 밝아지며 보라색 아름다운 빛을 뿜어냈다.
석목은 자취로 안에서 들끓는 화염을 고스란히 느꼈다.
공수자가 다시 한번 손을 흔들자 비밀 석실 바닥에 놓인 최상급 영석들이 줄줄이 날아올라 자취로 속으로 들어갔다. 이어 화염이 더욱 활활 타오르며 다양한 꽃무늬 모양을 만들어냈다.
자취로에서 풍기는 보랏빛은 마치 보라색 구름 같았다.
웅, 웅, 웅!
자취로에서 기이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동로 안에서 격변이 일어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석목은 연기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조용히 한쪽에 서서 기다렸다.
하지만 공수자를 믿고 있어서 연기가 실패하리란 걱정은 하지 않았다.
* * *
시간이 조금씩 흘러 눈 깜짝할 사이 닷새가 지났다. 하지만 자취로는 여전히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공수자 대사님, 얼마나 더 걸립니까?”
며칠이 흘러도 아무런 결과가 없자 석목은 참지 못하고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후! 젊은 게 뭘 알겠나. 연기의 도는 매우 현묘하다. 등급이 높은 법보일수록 제련하는데 오래 걸린다는 사실도 모르는가? 네 보물 갑옷을 제련하려면 최소 이 년, 아니, 삼 년은 걸린다.”
공수자가 손으로 법결을 시전하며 말했다.
“이삼 년……”
석목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기다리지 못할 거면 나가거라. 귀찮게 하지 말고! 나가. 나가라고!”
공수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석목을 내쫓았다.
“네, 네. 그럼 공수자 선배님, 잘 부탁드립니다.”
석목은 공수자의 성격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곧바로 알았다고 하고는 비밀 석실에서 나왔다.
공수자에게 진룡쇄금갑을 맡겼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 * *
석목은 입구에서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곧바로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비밀 석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검은색 진기를 줄줄이 날려 비밀 석실 곳곳에 꽂아 검은색 대진을 하나 만들었다.
이건 흑마족의 진법이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분신이 허리춤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다시 손을 흔들어 최상급 마정들을 꺼내놓자 마정들이 비밀 석실 바닥에 듬뿍 쌓였다.
마정들은 예전에 부공성 요새에서 흑마족과 싸우며 얻어낸 것들인데 꽤 오랫동안 쓸 수 있을 터였다.
“너는 여기서 마정으로 수련을 하고 있어.”
석목이 말했다.
분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석목은 곧바로 비밀 석실에서 나와 바로 옆에 있던 석실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석목은 한참 동안 조용히 앉아있다가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손에 금빛이 반짝이며 금색 연자가 하나 나타났다. 얼마 전 은련성의 동자가 품고 있던 그 연자였다.
얇고 눈부신 금빛과 날카로운 기운이 연자에게서 흘러나왔는데 눈을 찌르는 것만 같아 볼 수 없었다.
석목은 매우 흡족했다.
연자 속에 든 짙은 금속성 본원의 힘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 영재는 수령왕 신목이나 석령토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났다. 마치 구전현공을 수련할 때 쓰기 위해 세상에 나타난 영재 같았다.
이제 차분한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어 본원의 힘을 구전현공의 여섯 번째 단계를 수련할 때 쓰면 적은 노력으로도 큰 성과를 이룰 터였다.
석목은 때마침 금속성 본원의 힘이 필요할 때였다. 하늘의 뜻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신비스러운 연꽃 동자가 나타나 필요한 물건을 주지 않았나.
“혹시 백원왕이 지닌 선견지명일까?”
석목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흔들더니 잡생각은 걷어치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어서 금련자를 손에 쥐고는 구전현공의 여섯 번째 법결을 시전하여 연자 속에 든 금속성 본원의 힘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 * *
눈 깜짝할 사이 삼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비밀 석실 속에 금빛이 찬란하게 드리웠다.
석목은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무릎을 꿇고서 앉았다. 몸에서는 눈부신 금빛이 마치 호흡을 하듯 움직였고, 그에게서 칼날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순간, 석목은 눈을 번쩍 떴다. 두 눈에 금빛이 밝아지며 날카로운 기운이 훨씬 더 강력해졌다.
석목은 두 팔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금빛이 석목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전부 머리 꼭대기로 모여 금빛 찬란한 구름을 만들었다.
우르릉, 쾅쾅!
금색 구름이 한참 동안 들끓더니 천둥소리가 터지며 하얀 번개 구체가 날아다녔다. 또한 눈부시게 하얀 번개가 호를 그리며 튕겼는데 바로 경금신뢰(庚金神雷)였다.
석목의 폐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작은 가마 모양이 나타났다.
석목의 눈에 미칠 듯 기쁜 기색이 어렸다.
고작 삼 년 만에 구전현공 여섯 번째 단계를 대성까지 수련했다.
석목이 팔을 흔들자 머리 꼭대기에 뜬 금색 구름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구름이 스며드는 순간, 석목은 일어서서 순식간에 금빛으로 변하여 사라졌다가 석실 밖에 나타났다.
금빛이 벽을 스치며 매끈한 흔적을 남겨 놓았다.
석목이 또 다시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어서 금빛 그림자가 교차하며 나타났는데 마치 검 천만 자루가 동시에 자르는 것만 같았으며 모든 걸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릴 듯 놀라운 속도를 보였다.
허공은 순식간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토막이 나며 부서졌다.
흩날리던 그림자가 사라지자 석목이 나타났고, 그는 지금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구전현공 여섯 번째 단계를 수련하자 석목은 몸이 훨씬 단단해졌다. 몸에서 풍기는 금속성 기운도 날카로워졌고, 조금 전에 시전한 건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금둔술이었는데 여섯 번째 단계를 수련하면서 깨달은 것이었다.
물론 구전현공의 여섯 번째 단계를 대성했으니, 금속성 힘이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터였다.
석목이 주먹을 쥐자 손에서 금빛이 번쩍이며 순식간에 금색 손바닥으로 변하였다. 손가락에서 마치 모든 걸 잘라버릴 것만 같은 검날이 뾰족하게 자라났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손바닥이 벽으로 찔러 들어가 가볍게 벽 속으로 스며들었고, 마치 벽이 흙이 된 것 같았다.
“엄청나군!”
석목은 손바닥에서 금속성 힘을 거두어들이고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금속성 힘을 기묘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조금 더 연구해봐야 했다.
* * *
석목은 돌아서서 분신이 폐관수련을 하고 있는 석실 문 앞에서 잠깐 서성이다가 문을 열고서 들어갔다.
분신은 바닥에 있던 마정을 거의 대부분 흡수했다. 분신에게서 검은 기운이 맴돌며 훨씬 강력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고, 경지는 이미 성계 중기에 도달했으며 성계 후기와도 멀지 않은 것 같았다.
석목은 분신이 실력을 키우는 속도가 이렇게 빠를 줄 몰랐기에 깜짝 놀랐다. 몇 년 더 수련하면 성계 대원만에 도달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 듯싶었다. 분신이 수련을 하는 속도가 석목이 수련을 하는 속도보다 빨랐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분신은 홍루마조의 시체를 삼킨 후로부터 이미 일찍이 더 높은 경지에 오른 영역을 맛보았고, 이제 시간을 들여 천천히 깨달아 영역을 익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때가 되면 마력만 부족할 뿐, 다른 건 거의 문제가 될 일이 없을 것이었다.
충분한 마력만 있으면 분신은 실력이 더욱 빠르게 늘어날 터였다.
아쉽게도 석목은 명수결을 이미 정상까지 수련하여 그 뒤를 이을 공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삼 년이나 흘렀지만, 석목은 수련 경지가 여전히 성계 초기에 머물렀다. 하지만 전보다는 훨씬 강해졌다.
석목은 한숨을 내뱉었고, 빨리 적절한 공법을 찾아서 수련을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분신보다도 실력이 뒤떨어지게 생겼다.
* * *
석목은 비밀 석실의 문을 닫고는 돌아서서 자취로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연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공수자는 두 손을 흔들며 끊임없이 법결을 시전하였다. 석목이 오든 말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석목은 바닥에 시선을 떨구었다. 최상급 영석도 거의 다 썼으며 자취로에서 풍기는 보랏빛은 예전보다 훨씬 밝아졌다.
자취로의 뚜껑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간간이 금빛을 뱉어내어 금룡 그림자를 만들었고, 용 그림자는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석목은 연기에 대해 아는 게 없었지만, 지금 연기를 하며 가장 중요한 시기에 도달해 곧 마무리가 되리란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자취로 위에 있던 공수자는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 공수자는 두 손으로 익숙하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공수자를 한참 바라보던 석목은 공수자를 방해하지 않고서 조용히 입구에 선 채로 공수자가 움직이는 걸 바라만 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공수자가 기운을 거두어들이고는 움직이길 멈췄다. 공수자의 눈은 맑았지만 얼굴은 많이 지쳐보였다.
석목은 나른해진 공수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제련을 하느라 기운을 많이 쓴 것 같아 조금 안쓰러웠다.
연나의 말로는 공수자가 기령을 한 자취로는 단 세 번만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연유로 석목은 공수자에게 연기를 맡기는 일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연기를 세 번만 거치면 공수자는 자취로와 함께 사라질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조금 마음이 아팠다.
선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연기 대사가 이런 말로를 맞았다니.
천정 때문에 공수자가 처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되었다.
천정을 이끄는 자는 실력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은 제준이었다. 제준과 백원왕이 나눈 대화로 추론해보자면 제준이 이렇게까지 포악한 짓을 일삼는 건 비밀스러운 목적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석목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대체 어떤 목적을 가졌기에 제준이 천하가 공분할 만한 일을 저지르는가.
백원왕, 보화 선자, 공수자…… 그리고 행성과 함께 파멸된 무고한 생명들. 많은 것들이 희생되었으며 이제 석목도 그 대상이 되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한 석목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때, 공수자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석목이 정신을 차려보니 공수자가 허영으로 변하여 동로 속으로 스며들었다.
동로에서 타오르던 화염이 더욱 왕성해져 자취로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석목은 가까이 가지 않은 채 비밀 석실의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입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속해서 구전현공을 깨달으며 조용히 기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