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29화 (629/916)

629화. 배신

장로들은 서로를 원망하며 끊임없이 말을 내뱉었다. 은연중에 화살이 속승 진인에게 향하는 것 같았다.

“다들 그만하십시오. 성주 존상께서 내린 결정입니다. 당신들이 감히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일이 아닙니다.”

이때 관산해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들끓던 대전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장로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전부 속승 진인을 올려다보았다.

장로들은 말로는 서로를 질책하며 푸념했지만, 속승진인 앞이라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꺼내지는 못했다. 관산해가 한 말은 속승 진인의 입장에 서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화살을 속승진인에게 돌린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책임을 전부 전가했다.

“흥, 그때 관 호법님께서 이 일에 참여하겠다고 밀어붙이지 않으셨습니까?”

이때 연꽃 선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연꽃 선자가 말을 꺼내자 관산해는 숨이 턱 막히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속승 진인은 장로들이 하는 말을 신경도 쓰지 않고는 대전을 훑어보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양 성역이 혼란스러워진 마당에 보물이나 찾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이 일은 내 책임이다.”

이때, 대전 밖에서 머리가 흰 노인이 걸어들어왔는데 바로 남궁 장로였다.

남궁 장로는 큰 걸음으로 대전 앞까지 다가와서는 속승 진인에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성주님, 분부하신 대로 사대 부속 행성들을 담당하는 장로들을 연결했습니다. 벽파성 말고도 택양(沢陽), 귀진(歸塵), 봉화(奉化) 세 행성은 이미 답신이 왔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성지로 정예 부대를 보내겠다고 말했습니다.”

“벽파성은 종수양(鍾須陽) 장로가 주둔하고 있다고 아는데 어째서 답신이 없는지 알고 있는가?”

속승진인이 물었다.

“성주님, 진법의 다른 한 끝으로도 연결을 했으나 아무도 답신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남궁 장로가 말했다.

남궁 장로가 말을 마치자 대전에 있던 장로들이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벽파성은 사대 부속 행성들 중에서 동성성과 거리가 가장 가까운 행성이다. 우리 청란성지의 관문과도 같은 별이라 중요하다는 건 다들 잘 알 테지. 그러니 절대 잃어서는 안 된다. 관 호법, 번거롭더라도 벽파성으로 가서 그 연유를 파악해야 할 것 같네.”

속승 진인은 잠깐 침묵을 한 후에 말했다.

관산해는 조금 망설이다가 일어서서는 공손하게 말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관산해가 말을 마치기 바쁘게 대전 밖에서 갑자기 다급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주 먼 곳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였는데 현령탑 방향이었다.

“이건…… 현령종?”

남궁 장로는 안색이 변하며 입으로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된 일인가? 현령종이 왜 울리는 건가?”

“혹시……”

“현령종은 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울린 적이 없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눈을 감고 있던 머리가 흰 노부인이 천천히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대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며 대전이 시끌벅적해졌다.

속승 진인도 눈썹을 추켜세우며 의문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그리고 한 손으로 허공을 매만졌다.

영롱한 빛이 속승 진인의 손에서 튀어나와 허공에 반투명한 광막을 펼쳤다.

광막에서 빛이 번쩍이며 동성성의 하늘이 나타났다.

망망한 성해에서 거대한 전함 수백 척이 나란히 선 채 동성성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커다란 포화구가 동성성으로 향했는데 대오를 이루는 줄이 점점 둥그렇게 펼쳐지고 있었다.

전함 위에서 휘날리는 다양한 깃발들을 바라보니 전부 이진종과 축운검파가 소유한 전함들이었다.

다가오는 속도로 예측해보니 반나절이면 도착할 것 같았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축운검파와 이진종 연합군은 월초에 출발한 게 아닙니까?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벌써 동성성에 도착했습니까?”

남궁 장로는 얼굴에 믿기지 않는 표정을 잔뜩 지었다.

“전함 부대가 행성을 가로지르는 속도로 본다면 이진종이든 축운검파든 적어도 세 달이 넘게 걸립니다. 그런데 한 달도 안되어 도착했다는 건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지요.”

연꽃 선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두 가지 가능성이 무엇입니까?”

악 호법이 물었다.

“첫째, 잘못된 정보라는 겁니다. 저들이 이미 석 달 전부터 출발하여 오늘 도착한 것이죠. 이럴 가능성은 매우 미약합니다. 이렇게 큰 전함 부대가 출발하는데 석 달이 넘도록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둘째, 벽파성에 주둔하는 종수양 장로님이 배신을 한 겁니다. 벽파성에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전송진법을 가동해 길을 내줬다면 한 달은 충분한 시간입니다.”

연꽃 선자가 눈에 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벽파성에 연결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진즉에 우리를 배신했습니다.”

이때 머리가 붉은 남자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상대 세력은 절대 만만치 않습니다. 이미 동성성에 도착했으니 이제 어떻게 대응하겠습니까?”

한 요족 성계 장로가 소리쳤다.

대전에서 속승 진인과 팔대 호법 장로들 말곤 전부 당황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조용!”

속승 진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태가 없는 영력 파동이 대전을 모두 드리워 장로들은 소름이 끼쳤다. 순식간에 대전이 물을 뿌린 듯이 조용해졌다.

“적암, 현령탑으로 가서 동성성을 지키는 수호 대진을 가동해라.”

속승 진인이 지시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머리가 붉은 남자가 곧바로 대답했다.

“곽어진(霍語真), 백급(白芨) 너희 둘은 빨리 만 년 제자와 천 년 제자들을 집합시켜 전함을 움직여 응전을 할 준비를 해라.”

“네.”

머리가 흰 노부인과 준수하게 생긴 남자가 동시에 대답했다.

“남궁, 너와 연꽃은 가서 택양성, 귀진성과 봉화성에 연락을 하여 빨리 지원을 하러 오라고 지시해라.”

“네.”

연꽃 선자와 남궁 장로는 서로 마주 보더니 복잡한 기색을 드러내며 대답했다.

몇 마디 명이 내려진 후, 대전은 그제야 정리가 된 듯이 조용해졌다. 장로들은 각자 임무를 수행하러 대전에서 나가 뿔뿔이 흩어졌다.

속승 진인은 나머지 성계 장로들을 데리고서 동성성 밖 성해로 날아갔다.

* * *

황계 구역.

석목은 다급하게 마옥이 머무는 동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때앵, 때앵!

귀가 찢어질 듯 종소리가 들리자 공간 전체가 흔들렸다.

석목은 안색이 굳은 채 종소리가 흘러나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현령탑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이건 현령 경종이야!”

청란성지의 존망이 걸렸을 때에만 울리는 현령 경종이었다.

“혹시…… 축운검파와 이진종이 정말 청란성지로 쳐들어오는 걸까!”

석목은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조금 전에 통류방으로 가서 특별히 알아봤는데, 제풍이 말한 상황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니까 두 성지는 정말로 공격을 하려는 것 같았다.

석목은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온몸에 파란빛을 드리우더니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우선 채아를 빨리 데려와야만 했다.

“음!”

석목은 날아가면서 아래에 있는 숲을 내려다보았다.

숲에서 몇몇 사람들이 살금살금 움직여 미약한 빛이 흘러나왔다.

석목은 곧바로 채아와 시야를 연결했다. 채아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석목은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멈춰 서서 아래로 내려갔다.

“누구냐!”

석목이 소리를 질렀다.

숲속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푸른 피풍의를 두르고 있는 청란성지의 백 년 제자들이었다. 몸에서 법력 파동이 흘러나오는 걸 보니 술사였다. 제자들은 석목이 내려오자 안색이 굳었다.

“전송진법!”

석목은 땅 위에 놓여있는 몇 장만 한 진법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막 설치를 마친 것 같았다.

“이곳에 전송진법은 왜 쳤지?”

석목이 번개 같은 눈빛으로 소리를 질렀다.

“사형, 우리는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눈에서 빛을 반짝이며 우물쭈물했다.

이때 전송진법에서 빛이 밝아졌다.

석목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속으로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감지했다.

진법 가운데서 빛이 사라지며 사람들이 다섯 명 나타났다.

그중 두 명은 하얀 피풍의를 두른 축운검파의 제자들이었으며 보라색 옷을 입은 세 명은 이진종의 제자들이었는데 전부 천위 실력이었다.

“외적과 결탁하여 늑대를 집으로 끌어들이다니! 죽을죄다!”

석목은 눈에서 화가 번졌다. 석목은 청란성지의 제자들을 바라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허허. 맞아, 그렇지만 한발 늦었다!”

청란성지의 옷을 입은 제자들이 곧바로 다섯 사람 등 뒤로 숨어버렸다. 입이 뾰족했으며 볼이 붉은 청란성지의 제자 하나가 간사하게 입을 찢었다.

“사형들, 저 자는 청란성지의 천 년 제자입니다. 저 자에게 들켜버렸으니 죽여주십시오.”

청란성지의 제자가 석목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석목은 지금 청란성지의 제자처럼 입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운을 숨기고 있어서 성계 경지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

“잘 들어! 청란성지는 이제 끝장이다. 빨리 무릎을 꿇고 투항하여 우리 축운검파에 충성을 바치면 네 보잘것없는 목숨 정도는 남겨두지!”

석목은 이미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보아하니 청란성지의 배신자들은 이들뿐만 아닌 것 같았다.

“이 자식이!”

축운검파의 제자는 석목이 다섯 사람을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처럼 취급하자 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축운검파 제자의 손에서 하얀빛과 함께 장검이 한 자루 나타났다. 장검을 휘두르자 길이가 열 장에 달하는 찬란한 검빛이 나타나 이리저리 뒤섞이며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석목은 얼굴이 차갑게 변하며 한 손을 휘둘렀다. 파란빛이 나타나 수십 장만 한 커다란 손바닥으로 변하여 앞에 선 몇몇 제자들을 내리쳤다.

순간, 성계 초기가 지닌 방대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파란 손바닥은 마치 커다란 산처럼 무겁게 내려와 바닥에서부터 거센 바람을 일으켰고, 거센 바람만으로도 날아오는 검빛 몇 갈래를 막아내기엔 충분했다.

외적 다섯 명과 청란성지의 배신자들은 얼굴이 얼어붙었다. 적들은 전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석목이 성계 경지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네 천위 제자들은 다양한 공격을 시전하여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으려고 아득바득했다. 하지만 커다란 손이 닿기도 전에 이미 강풍 때문에 찢어져 버렸다.

펑!

파란색 손은 마치 개미를 내리치듯 단번에 몇몇 사람들을 뭉개버렸다.

바닥에 커다란 웅덩이가 하나 생기며 먼지가 흩날렸고, 부서진 돌들이 주변으로 날아가 아래에 있던 전송진법 마저 단번에 부숴 버렸다.

석목은 파란빛을 거두어들이고는 하늘로 솟아올라 계속해서 앞으로 날아갔다.

* * *

예상대로 청란성지 황계 구역 곳곳에는 적잖은 청란성지의 제자들이 외적과 공모를 했고, 축운검파와 이진종의 제자들이 임시로 만든 전송진법을 통하여 청란성지 안으로 침입했다.

청란성지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져 아수라장이 되었다.

마옥이 머무는 동부는 산봉우리 밑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영기가 짙으며 영천도 몇 개 있었다. 수많은 백 년 제자들이 머무는 동부가 그곳에 모여 있었다.

이때, 백 년 제자 네다섯 명과 연꽃 동자가 마옥이 머무는 동부에 있었는데 전부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동부의 주인인 마옥은 자리에 없었다. 그리고 동부는 영롱한 진법으로 싸여있었다.

동부 밖에서 축운검파와 이진종의 제자들 수십 명이 빙 둘러서는 영롱한 빛을 날려 공격을 하고 있었다.

다양한 수단으로 공격을 하는 축운검파와 이진종의 제자들은 전부 천위 실력이었다. 하지만 영롱한 진법은 기이할 정도로 단단하여 천위 제자들 수십 명이 힘을 합쳐 공격을 해도 세차게 흔들리기만 할 뿐 부서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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