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1화. 일촉즉발 (2)
머리가 흰 노부인과 준수한 청년은 전함 갑판에 서서 속승 진인이 다가오자 곧바로 인사를 올렸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성지 밖에 있는 제자들 중에 몇몇은 불러들이지 못했습니다. 지금 전함 백아홉 개가 전부 출동하였으며 참전을 하러 온 제자들은 총 삼만 명 정도 됩니다.”
속승 진인은 천천히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곽어진, 백급, 왜 둘 뿐입니까? 남궁을 비롯한 세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관산해는 속승 진인 뒤에 서서는 전함을 둘러보더니 두 사람에게 물었다.
머리가 흰 노부인이 보라색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적암이 현령탑으로 가는 걸 마지막으로 본 후로 세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관산해가 눈살을 찌푸렸다. 의심스런 눈초리로 속승 진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성주님, 그 세 사람……”
속승 진인은 늘 그랬듯 안색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괜찮다. 어디론가 갔겠지.”
속승 진인이 말을 꺼내자 주변에 있던 성계 장로들은 안색이 전부 어두워졌다.
두 성지가 연합하여 공격을 해오는 마당에 성계 호법 세 명이 도망을 쳤다니. 탐탁지 않은 소식이라는 건 확실했다.
관산해는 눈살을 찌푸리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관산해가 지껄이는 말엔 ‘배신자’와 ‘죽어 마땅하다.’라는 말이 빈번하게 등장했다. 주변에 있던 성계 장로들도 함께 욕을 했다.
속승 진인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는 고개를 살짝 들어 저 멀리 수호 대진 밖을 내다봤다.
이때, 전함 이삼백 척이 수호 대진 밖을 둘러싸며 공격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일 앞에 선 가장 큰 금색 전함 선두 위에 신도남과 목천절이 나란히 서 있었다.
목천절의 안색이 흐려졌다. 온몸에 사나운 기운을 휘감고 서 있었는데 마치 절세 흉악한 검처럼 소름끼치는 광폭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속승 진인이 목천절을 훑어보고 있을 때, 때마침 목천절도 속승 진인을 바라봤다.
“속승, 조극 그놈은 어디 있는가! 그놈을 빨리 내놔!”
목천절이 윽박을 지르듯이 말했다.
목천절은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귓가에서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소리를 듣자니 청란성지의 제자들은 뼈를 찌르는 것만 같은 강력한 살기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목 성주, 조극은 청란성지로 돌아오지 않았소. 지금 조극이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오.”
속승 진인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 지금 종문의 제자를 보호하고 있는 게요? 그놈이 창월 비경에서 목역을 죽였소. 그것도 원신까지 뭉개버리는 포악한 방법으로! 당신이 직접 가르친 그놈이!”
목천절은 속승이 하는 말을 듣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소리를 질렀다.
“목 성주, 공을 들여 키운 아끼는 후배를 잃어버린 고통은 나도 잘 알고 있소. 그래서 조극과 연결되길 시도하며 곳곳에 사람을 보내 찾아다녔지만, 아직 조극은 찾지 못했소. 어찌 되었건 그 일은 내가 책임을 질 테니 목 성주가 내게 시간을 좀 줬으면 하는 바람이오. 지금 이성을 잃고서 찾아온 건 알겠지만 이러다간 성역을 단번에 파멸시킬 수도 있소. 우리 세 세력 중에 단 하나만 사라져도 성역이 뒤집히는 건 한순간일 테니 심사숙고하기를 바라오.”
속승 진인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차분한 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목천절은 화가 조금 가라앉은 것 같았다. 목천절은 망설여지는지 동공이 많이 흔들렸다. 그리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때, 아무 말도 없이 한편에 서 있던 신도남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속승 진인, 우리 삼대 성지는 수천 년간 별 탈 없이 잘 지내왔소. 함께 외적을 물리치고, 미양 성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오랫동안 힘을 합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오. 이번에 창월로 간 건 우리 이진종이 제안한 일이오. 삼대 성지의 관계를 다시 돈독하게 만든다는 목적을 두었으나, 원치 않은 일이 생겨서 내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오.
그리하여 목 도우와 함께 청란성지로 와서 진인과 이 일에 대해 잘 논의를 해보려 하오. 조극, 이 자는 확실히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 당연히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진인의 직전제자인데 혹시 정말로 행적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오? 제자를 아끼는 마음은 잘 알겠지만 더 멀리 내다보고 판단을 했으면 하오.”
신도남이 이렇게 말을 하자 사람들이 다시 수군거렸다.
성계 장로들이 속승 진인 뒤에 서서 화난 눈으로 신도남을 노려보았다.
신도남이 하는 말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얼핏 들으면 미양 성역이 안정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 같았으나 속승 진인을 미양 성역을 파괴시킨 사람으로 내모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신 도우, 조극의 행적을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누가 한 말이 맞는지 그 여부는 조극 녀석을 찾은 다음에야 알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정말 잘못을 한 것이라면 우리 청란성지는 기필코 그 책임을 안고 가겠소. 아직 일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병사들을 거느리고서 협박을 하는 건 정당하지 않소.”
속승 진인은 한결같은 표정으로 차분하게 말했다.
“속승, 오해하지 말게나. 나는 지금 진인을 못 믿는다는 뜻이 아니오. 조극은 젊어서 성계에 진입했을 뿐만 아니라 구전현공의 일곱 번째 단계를 대성까지 수련했소. 그 뛰어난 자질은 어느 종파에 둬도 손색이 없을 테니 쉽게 잃고 싶지 않는 마음은 잘 알고 있소. 하지만 목역 또한 축운검파에서 잠재력이 가장 뛰어난 후배였소. 그런데 이렇게 죽어버렸으니 목 성주가 절망스러운 마음에 이렇게 제자들을 이끌고 온 게 아니겠소? 나도 이 일이 커질까 두려워 여기까지 쫓아와서는 잘 해결을 해……”
신도남이 계속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속승, 나는 지금 당신에게 책임을 묻는 게 아니오. 조극을 내놓기만 하면 그만이오! 계속 이렇게 둘러대기만 하면 청란성지를 밟아 버릴 수도 있소!”
신도남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목천절은 원한이 가득 쌓인 묵직한 목소리로 협박을 했다.
속승 진인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관산해가 성질을 억누르지 못한 채 소리를 질렀다.
“조극은 여기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우리 청란성지의 성주께서 당신들을 속이고 있다는 말입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겉으로는 논의를 운운하시는데 그렇다면 벽파성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목 성주님, 우리 청란성지를 너무 만만하게 보지 마십시오. 밟아 버리겠다니? 그럼 어디 한 번 해보시지요.”
몇몇 성계 장로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분노가 폭발했다.
그러자 목천절은 화가 치밀어 올라 큰소리로 외쳤다.
“그렇다면 더 논의할 필요도 없겠네! 내가 땅을 파서라도 조극을 찾아내고 말겠소! 공격!”
목천절이 말을 마치자 성해에서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즉시 전쟁이 일어나버렸다!
전함 수백 척의 포화구가 동시에 불을 밝히며 눈부신 금빛을 뿜어냈다.
금빛이 순식간에 부풀며 길게 늘어나더니 길이가 백 장이나 되는 빛기둥들을 만들어냈고, 동성성에 드리운 금색 광막을 향해 수백 개의 빛기둥들이 동시에 뿜어져 나갔다.
쿵, 쾅!
폭발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금빛 기둥 수백 갈래가 동시에 동성성을 감싼 방어 대진을 찔렀다.
둥근 광막은 마치 창 수백 자루에 찔린 듯이 겉에 뾰족한 웅덩이 수백 개가 깊숙하게 파였고, 광막에 드리운 금빛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언제 터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커다란 금창들이 쏟아지듯 찔렀지만, 광막에 난 깊은 웅덩이는 더욱 깊어지기만 할 뿐 끝내 뚫리지는 않았다.
빛띠 같은 부문들이 빠르게 흘러 다니며 동성성에 깃든 짙은 천지 원기를 금색 광막으로 빨아들였다. 그러자 움푹 파인 웅덩이들이 다시 원래대로 회복되었고 ,커다란 금창은 힘을 다해 터져서 금빛이 흩날렸다.
한 차례 공격을 온전히 막아냈으나, 수호 대진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만약 상대 전함이 계속해서 공격을 해온다면 아마 더는 버티기 힘들 터였다.
이때, 청란성지에 자리한 평범해 보이는 산봉우리에서 갑자기 암석들이 우르르 굴러 떨어지며 하얀 돌기둥으로 만든 커다랗고 둥근 진법들이 하나씩 드러났다.
하얀 돌기둥에서 푸른빛이 밝아지며 진법이 빠르게 돌아갔다. 진법 위에 떠있던 복잡한 부문들도 일일이 빛을 뿜어내자 강렬한 영력 파동이 흘러나왔다.
위잉!
순식간에 굵직한 빛기둥 수십 갈래가 마치 커다란 용 수십 마리처럼 산봉우리 꼭대기에서 뿜어지듯 날아올라 곧바로 청란성지에 숨겨진 진법들을 뚫고서 하늘로 솟아올랐다.
푸른 빛기둥이 다가오기 전, 금색 광막은 빛을 더 빠르게 번쩍였고, 광막 위에 적힌 부문들이 꿈틀거리며 커다랗고 둥근 고리를 하나씩 만들어냈다.
푸른 빛기둥이 둥근 고리 사이를 딱 맞게 뚫고 지나 곧바로 축운검파와 이진종의 전함으로 날아갔다.
쾅, 쾅, 쾅!
두 성지의 전함도 곧바로 두 번째 공격을 시작했다. 위세가 더욱 강력해진 금색 빛기둥 수백 갈래가 동시에 전함에서 터지며 날아와 푸른 빛기둥과 부딪쳤다.
쿵, 쿵!
굉음이 울려 퍼지며 성해에 드리운 눈부신 빛들이 끊임없이 터졌고, 이어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쳤다.
두 성지의 전함은 거센 회오리 때문에 흔들거렸으며 동성성에 드리운 방어 광막도 끊임없이 번쩍였다.
한순간, 칠흑 같던 성해가 오색찬란한 빛으로 가득찼다!
신도남은 이 광경을 바라보며 갑자기 몸을 날려 허공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둥근 고리 모양의 무언가가 손목에서 꿈틀거리며 날아가 허공에서 빙빙 돌더니 순식간에 수백 배나 더 늘어나 커다란 은색 고리로 변하여 허공에 걸렸다.
은색 고리에서는 부문이 튕겨져 나오고 있었는데, 풍부한 영력과 짙은 은빛이 흐르는 모습을 보니 법보를 뛰어넘는 물건이었다.
이때, 전함 수백 척의 포화구에서 빛이 반짝이며 다시 한번 금빛 창을 수백 갈래 쏟아냈다.
청란성지의 땅 위에 드리운 진법과 하늘 위에 뜬 전함이 거의 동시에 터지며 각각 금색과 푸른색 빛기둥을 뿜어냈고, 빛기둥들이 금빛 창과 부딪쳤다.
신도남이 밟고 있던 전함의 포화구에서 금색 빛기둥이 날아올라 신도남이 만들어낸 큰 고리를 뚫고 지나가며 계속해서 앞으로 날아갔다.
금빛이 고리를 지나가는 순간, 마치 기이한 광막을 뒤집어쓴 듯 금빛이 한참 동안 용솟음을 치더니 열 배 가까이 불어났다. 그리고 변두리에서 번지던 금빛은 희미한게 잘 보이지 않았지만 위력은 몹시 강력했다.
금빛이 둥그런 고리를 뚫고 지난 후,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마치 고삐가 풀린 말처럼 가장 빠르게 청란성지의 전함이 드리운 금빛 속을 뚫고 지나갔다.
‘쿵, 쾅!’하며 터지는 소리가 하늘에서 메아리 쳤으며 금색과 푸른색 빛기둥이 부서져 점이 되어 흩어졌다.
유독 굵직한 금색 빛기둥만 속도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 금색 광막을 강하게 찍었다.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광막이 순식간에 수십 장 깊이까지 파여버렸다. 그리고 청란성지의 전함 백여 척이 가까이까지 다가왔다.
이때, 깊게 파인 금색 광막이 결국 버티지 못해 작은 구멍이 뚫렸다.
광막에 구멍이 뚫리자, 금창 수백 갈래가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촘촘하게 공격을 해왔다.
하늘을 뒤흔들만한 굉음과 끊임없이 터지는 수많은 금빛에 작게 뚫린 구멍은 한없이 찢어지다가 결국 광막이 터져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