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2화. 내우외환
현계 공간, 파란색 빛이 빠르게 앞으로 날아가고 있었는데 그 빛은 바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석목이었다.
석목이 동부로 돌아가는 길에 황계 구역을 살펴보니 이미 축운검파와 이진종의 제자들이 기습을 하여 백 년 제자들이 동부 곳곳에서 낭패를 보았다.
석목은 지체하지 않고 부지런히 날아갔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현계 구역도 마찬가지로 외적에게 침입을 당해 곳곳에서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빛들이 난무했다.
하지만 석목은 사방팔방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 시선을 돌려 빠른 속도로 동부 방향으로 향했다.
석목은 자신의 동부에도 외적이 침입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고, 제풍과 다른 시종들은 실력이 고작 천위 경지라 단 한 명도 막아내지 못할 터였다.
다행히 동부에는 금제가 드리워져 있었고, 그동안 석목은 특별히 금제를 강화했기에 평범한 성계 강자가 날린 공격 정도는 막아낼 수 있었다.
진법 금제 덕분에 제풍을 비롯한 시종들은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인 경우도 있었기에 석목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한 석목은 등 뒤에 빛이 크게 번지더니 물과 불의 날개를 펼쳐 순식간에 환영으로 변하여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 * *
반 시진 뒤에 동부가 눈에 들어왔다.
석목의 안색이 어두워졌고, 동부는 커다란 파란색 광막에 싸여있었는데 굉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광막이 격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곧바로 터져버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제야 석목은 긴장을 풀었다.
석목은 날개를 펄럭이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귀신처럼 동부 앞에 나타났다.
“부주님!”
파란 광막 속에서 제풍을 비롯한 시종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다가 석목이 나타나자 매우 좋아했다.
광막 밖에선 붉은 옷을 입은 젊은 여인 한 명과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 한 명이 사람들 열 몇 명을 데리고 법보로 빛을 뿜어내며 끊임없이 광막을 공격하고 있었다.
옷을 입은 차림새를 보니 전부 이진종의 제자들이었다.
붉은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은 품에 비파를 하나 안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비파에 닿을 때마다 붉은 빛날이 튀어나와 광막에 부딪쳐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은 뒷짐을 진 채로 서서는 공격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엄연히 성계 경지였는데 이미 중기에 도달했다. 조금 전에 만났던 축운검파의 성계 초기 장로 두 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석목이 나타난 사실을 알아차린 이진종의 제자들은 전부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눈빛이 차가워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구룡쇄금갑이 아닌 토템 변신을 시전하였다,
구룡쇄금갑은 꽤 많은 진기를 써야 했기에 상황이 상황인 만큼 아껴뒀다가 적절한 시기에 꺼내서 입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석목은 여의빈철곤을 꺼내 들고는 금빛으로 변하여 보라색 피풍의를 입은 노인을 덮쳤다.
동시에 검은 그림자도 동부에서 튀어나왔는데 바로 석목의 분신이었다. 분신은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을 향해 날아갔다.
채아는 한쪽에 서서 연꽃 동자를 데리고는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금빛이 반짝이는 사이에 석목이 노인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곧바로 여의빈철곤으로 금빛 부채꼴을 그리며 묵직하게 내리쳤다.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공격에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은 깜짝 놀라며 팔을 흔들어 커다란 도장 법보를 꺼내 들었다.
노인이 법결을 두 갈래 시전하자, 보라색과 붉은색이 섞인 커다란 도장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번갯불을 만들어냈고, 번갯불이 순식간에 수십 배나 불어나 노인의 몸 앞을 막았다.
쇳소리가 울려 퍼지며 여의빈철곤이 도장 법보와 강하게 부딪치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도장 법보가 격렬하게 흔들리며 겉에 나타났던 번갯불이 거의 동시에 꺼져버렸다.
노인은 눈에 놀란 눈빛이 스쳤다.
노인이 쓰는 뇌화인(雷火印) 법보는 결코 평범한 법보가 아니었다. 오래전에 노인은 한 유적지에서 법보를 제련하는 방법이 적힌 고전을 하나 주웠다. 고전에 적힌 기록대로 제련한 법보였는데 위력이 엄청나다고 적혀있었다. 동급 수련자들 중에도 아주 적은 이들만 도장 법보를 상대할 수 있었으며 등급이 높은 수련자와도 겨뤄볼 만한 내력을 갖춘 법보였다. 하지만 오늘 석목이 날린 한 방에 법보가 빛을 거의 다 잃었으니, 놀랄만했다.
하지만 노인은 이진종의 성계 강자였기에 전투 경험 또한 풍부했다. 노인은 곧바로 당황한 기색을 거두어들이고는 입으로 보라색 빛을 뿜어내어 뇌화인에 불어넣었다.
도장에서 다시 한번 굵은 번갯불이 줄줄이 뿜어져 나왔으며 도장이 빠르게 돌아갔다.
보라색 노인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흔들어 법결을 여러 갈래 시전하였다. 이어 보라색과 붉은색 번갯불이 한곳으로 모여 순식간에 뇌룡 몇 마리로 변하였고, 용들이 포효하며 석목을 덮치려고 했다.
석목이 콧방귀를 뀌며 두 손을 좌우로 뻗었다. 그러자 어두운 혼돈의 빛이 튀어나와 뇌룡 몇 마리에 드리웠다.
석목이 두 손을 합치자 혼돈의 빛이 빠르게 응결되어 혼돈 봉인 두 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순식간에 용 몇 마리를 안으로 가둬버렸다.
“말도 안 돼!”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은 얼굴이 한 층 더 어두워졌다. 이건 무슨 비술일까? 조금도 힘을 들이지 않고서 뇌룡 비술을 봉인해버리다니.
석목은 노인이 많은 생각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손바닥을 앞으로 날리자 엄청난 혼돈의 빛이 뇌화인에 드리웠고, 커다란 봉인이 나타나 단번에 뇌화인을 가둬버렸다.
혼돈 봉인으로 뇌화인을 가둬두었지만, 힘이 워낙 강력하여 뇌화인은 봉인 속에서 격하게 흔들렸다. 그러자 봉인이 불안하게 흔들리며 곧 도장이 뚫고서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잠깐 가둬둘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석목은 목적을 달성한 셈이나 다름없었고, 석목은 이 틈에 물과 불의 날개를 펄럭이며 순식간에 노인 앞으로 다가왔다.
“창응개정!”
여의빈천곤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와 곤봉 그림자가 줄줄이 날아갔다. 그리고 어렴풋이 커다란 독수리 허영을 만들어 무겁고도 강하게 노인을 내리쳤다.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은 방대한 영력이 압박을 하자 깜짝 놀라며 두 팔을 흔들었다. 그러자 붉은색 깃발이 나타나 광막을 하나 만들더니 머리 꼭대기를 막았다.
석목이 두 손에 금빛을 번쩍이더니 복부에서 작은 금색 가마가 반짝이며 사라졌다. 이어서 금의 힘이 순식간에 여의곤으로 퍼져나더니 곤봉에 날카로운 금색 칼날이 나타났다.
퍽!
붉은색 깃발은 마치 종잇장처럼 두 갈래로 잘려버렸다. 그리고 금빛 한 줄기가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의 몸을 갈라버렸다.
풋!
노인은 몸이 두 덩어리로 갈라지며 피에 젖은 내장이 쏟아져 비린내가 진동했다.
이때, 작은 사람이 노인의 몸속에서 튀어나왔는데, 노인의 성배 신혼이었다. 작은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스쳤고, 잽싸게 보랏빛을 감고는 멀리 도망을 가버렸다.
석목이 손가락을 튕기자 금빛 한 줄기가 튀어나와 작은 사람의 몸에 구멍을 뚫어버리자 작은 사람은 두 덩어리로 갈라졌다.
“아아악!”
옆에서 처참한 소리가 울려 퍼져 고개를 돌려 보니 붉은 옷을 두른 젊은 여인이 분신이 만든 부서진 영역에 묶여 영해가 뚫려버렸고, 성배가 도망을 치기도 전에 이미 뭉개져 버린 것이었다.
여인은 기운이 흩어지며 눈에 흐르던 빛도 사라져버렸고, 시체가 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천위 제자 열 몇 명은 그 광경을 보더니 얼굴에 놀란 기색을 드러내며 전부 빛을 뿜어내면서 도망을 가려고 했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금빛이 부채꼴로 말리더니 순식간에 적들을 전부 죽여 버렸다.
그리고 가볍게 손을 흔들어 금제를 풀었다.
“부주님……”
제풍이 튀어나와 울먹이는 표정으로 석목에게로 달려가더니 가슴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시종들은 석목이 시전한 놀라운 실력을 보고서 감탄했을 뿐만 아니라 석목이 특별히 돌아와 시종들을 구해줬다는 사실을 두고서 감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청란성지에 몸을 팔아 먹고사는 시종들이라 밖에 있던 사람들은 시종들을 꽤나 부러워했지만 성지에서 수련을 하던 제자들은 단 한 명도 시종들의 목숨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종들의 주인인 석목은 사납고도 고집스러워 보이며 늘 상식 밖으로 행동하지만 단 한 번도 시종들을 아랫것들이라 여기지 않았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가서 준비해. 우리는 여길 떠날 거다.”
석목이 제풍이 하던 말을 끊어버리고는 재촉했다.
“네!”
제풍은 멈칫하더니 돌아서서 영폭으로 날아갔다.
석목이 손을 흔들어 노인과 여인이 쓰던 법보와 저장 반지를 챙기고는 동부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열 몇 명이 동부 입구에 모였다.
“영지에 있던 시종들은 너희뿐이냐?”
석목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도망갔거나 이진종과 축운검파 놈들에게 죽었습니다.”
제풍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종들은 전부 경지가 낮은 수련자들이었다. 실력이 대부분 천위 경지인 외적들에게 전혀 방해가 될 리 없었을 터인데 잔인하게 살인을 저질렀다니, 석목의 눈에 분노가 이글거렸다.
“가자.”
석목은 떨리는 듯이 숨을 내뱉으며 손을 흔들어 용우비차를 불러냈다.
개조를 한 비차는 예전보다 크기가 커져서 열 몇 명 정도는 가볍게 태울 수 있었다.
제풍을 비롯한 시종들은 허둥지둥 비차로 날아올랐고, 석목이 손을 흔들어 법결을 하나 시전하자 용우비차가 빛으로 변하여 현령탑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석두, 청란성지는 어떻게 떠나려고?”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 앉아 전음으로 물었다.
석목 일행은 황계 공간에서 현계 공간으로 넘어오며 현령탑을 통해 청란성지가 처한 상황을 대충 파악하게 되었다.
지금 청란성지는 안팎으로 우환이 넘쳤다. 성지를 떠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시도를 해볼 법 했다.
“전송대전으로 가서 전송진법으로 청란성지를 떠날 거야. 동성성을 빨리 떠나야 해.”
석목이 눈빛을 반짝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계 공간에서 벌어진 전투는 점점 달아올라 점점 많은 외적들이 안으로 침입했다.
석목은 조심스럽게 외적들을 피하며 현령탑으로 날아갔다.
다른 공간은 전부 외적들이 침입을 했지만, 현령탑은 아직 온전히 청란성지가 통제하고 있었다.
“다들 들어, 나는 이제 조금 위험한 곳으로 갈 거라서 너희를 데리고 갈 수가 없어. 여기서 헤어질 테니 너희는 여기에 남아. 종문에서 아마 너희를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야.”
석목이 시종 열 몇 명에게 말했다.
석목은 전송대전으로 가야했다. 전송대전은 위험해서 실력이 선천 경지인 시종들을 데려간다면 적을 만나 가차없이 죽을 터였다.
시종들도 지금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서로를 한 번씩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석목에게 포권을 쥐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시종들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 여기일 터였다.
“괜찮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니 이 물건들은 너희에게 주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
석목은 손을 흔들어 법보를 열 몇 개 꺼냈다.
이 물건들은 석목이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수집한 법보들이었는데 크게 쓸모가 없는 물건들이었다.
시종들은 좋아하며 법보를 하나씩 골랐다. 그리고 석목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하고는 각자 살길을 찾아서 나섰다.
제풍은 법보를 고르지 않았으며 떠나려 하지도 않았다.
“제풍, 너는 왜 고르지 않느냐?”
석목이 제풍을 쳐다보며 물었다.
“부주님, 저는 부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제풍이 단호한 눈빛을 내비치며 말했다. 이미 다짐을 한 것 같았다.
“그래.”
석목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연꽃 동자를 바라보았다.
“나를 따라오면 위험하게 될 게다. 이곳에 남고 싶다면……”
석목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연꽃 동자는 석목에게 와락 안겼다. 충분히 뜻을 표현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석목은 쓴웃음을 지으며 제풍에게 동자를 안으라고 한 후에 먼 곳으로 걸어갔다.
제풍은 좋아하며 곧바로 연꽃 동자를 안고는 석목을 뒤따랐다.
지금 청란성지엔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없었다. 실력이 막강한 석목을 따라다니는 편이 오히려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린아(麟兒), 부인, 꼭 기다려줘. 꼭 돌아와서 찾으러 갈게.”
제풍이 마음속으로 외쳤다.
제풍은 처자식을 청란성지가 아닌 동성성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작은 성에 살도록 했다. 당분간은 안전할 터였다.
석목은 채아, 제풍, 그리고 연꽃 동자를 데리고서 앞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