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35화 (635/916)

635화. 위험을 물리치다. (2)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얀 옥팔찌는 얼마나 단단한지 핏빛 단검을 가볍게 막아냈다.

운몽택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법결을 시전했다.

그러자 옥팔찌가 반짝이는 빛과 함께 사라지더니 단검을 들고 있는 분신의 손목을 감싼 채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분신이 매우 고통스러운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분신의 손에 흐르던 검은빛과 핏빛 단검의 빛도 사라졌다.

옥팔찌는 진기를 막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운몽택이 화색을 드러내며 손으로 허공을 잡았다. 그러자 얇은 은색 전도가 한 자루 나타나 허공에서 한 바퀴 돌더니 칼날을 줄줄이 만들어냈다. 이어서 칼날이 싸늘한 기운을 감고는 분신의 목덜미로 향했다.

분신의 눈에서 기이한 빛이 스치더니 분신은 은색 전도를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다른 한 손으로 주먹을 꽉 쥐고는 힘껏 휘둘렀다.

주먹에서 검은빛이 번쩍이며 부문들이 나타났다.

운몽택은 깜짝 놀라 은색 전도의 방향을 돌려 분신이 쥔 주먹을 자르려고 했고, 입가에는 차가운 웃음기가 어렸다.

은색 전도는 평범해 보였지만 운몽택이 아껴두었던 상급 법보였기 때문이었다. 전도 속에 매우 순순한 양의 힘이 한 줄기 섞여있어서 마기를 극복하기엔 충분했다.

불빛이 튀며 주먹과 칼이 부딪쳤다!

먼저 주먹에 드리운 검은빛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운몽택이 좋아하기도 전에 ‘쩍!’ 소리와 함께 은색 전도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부러져 버렸다.

풉!

검은 주먹이 번쩍이며 운몽택의 복부를 뚫어버렸다.

운몽택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움직이길 멈췄다. 이때, 핏빛 검영이 번쩍이며 운몽택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순식간에 운몽택이 죽어버려 원신조차 도망 나오지 못한 모습을 본 이진종의 성계 강자들은 제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공격!”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날아와 나머지 성계 강자들을 덮쳤다.

이진종의 성계 강자들은 겁에 질려 허겁지겁 도망갔다.

관주 두 명이 처참하게 죽어버렸으며 나머지 성계 장로들도 뿔뿔이 도망가자 이진종의 나머지 천위 제자들은 난장판이 되었다. 제자들도 전부 몸을 날려 성계 장로들을 뒤따라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청란성지의 제자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쫓아가더니 몇몇 이진종의 제자들을 죽여 버렸다. 하지만 대부분은 도망을 치고야 말았다.

남궁 장로를 비롯한 사람들은 곧바로 쫓아가던 제자들을 불러 세워 계속 추격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 차례 격전을 치른 후, 이백 명이 넘던 청란성지의 제자들을 삼분의 일 정도 잃었다.

남궁 장로는 눈빛이 어두워졌다가 곧바로 힘을 되찾았다.

몇 배나 많은 적들을 상대하며 전부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다가 다시 기적처럼 반격을 하여 승리를 거두었으니 충분히 좋아할만 했다.

“석목, 대단한 전투였다. 우리가 위험에서 벗어나 안전해진 건 다 네 덕분이다.”

남궁 장로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석목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남궁 장로님, 이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청란성지에 속한 일원입니다. 비록 보잘것없는 실력이지만 종문이 위기에 처했으니 당연히 온힘을 다해야만 합니다.”

석목이 다시 남궁 장로에게 인사를 올리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남궁 장로와 연꽃 선자는 깊게 감동했는지 다시 한번 석목에게 예의를 표했다.

“그런 마음을 품다니.”

남궁이 가볍게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아, 장로님들, 제자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고 계셨나요?”

석목은 천위 제자들을 한번 쳐다보며 물었다.

남궁 장로는 망설이는 기색을 내비치며 연꽃 선자와 눈을 마주쳤다. 마치 연꽃 선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빛인 것 같았다.

연꽃 선자는 눈에서 빛을 반짝이며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석목은 두 사람이 소리 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은 몇 달 전, 창월 비경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 일은…… 아마 너도 알고 있을 게다.”

남궁 장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일은 저도 전해 들었습니다. 성주님의 직전제자인 조극과 관련이 있었다죠.”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답했다.

“허! 조극 그 녀석은 이렇게 큰일을 저질러 놓고서 자취를 감춰버렸으니 이진종과 축운검파의 두 성주가 그 일을 빌미로 힘을 합쳐 우리 청란성지를 공격했지. 지금 적들은 이미 동성성에 도착했으며 또 다른 세력들이 몰래 끼어들어 성지는 지금 위험에 처하게 되었단다……”

남궁 장로는 석목에게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궁 장로가 하는 말을 들은 석목은 깜짝 놀랐다. 청란성지는 지금 석목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절대 쉽게 끝날 일이 아닙니다. 만약 그 일로 병사를 이끌고 와서 죄를 묻는 것이라면 성지 안에 침입한 적들은 어찌 된 일입니까? 아마 진작부터 꾸민 일일 겁니다. 조극이 벌인 일은 빌미일 뿐이겠지요.”

석목은 깊은 뜻을 담아서 말을 했다.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야. 다만 이진종과 축운검파 두 성지가 이렇게 갑자기 들이닥친 걸 보면 아마 벽파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은 상황이 긴박하니 그렇게 많은 것들을 고민할 겨를이 없다.”

연꽃 선자가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지금 성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석목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

“성주님은 이미 제자들을 데리고 전방에서 시간을 벌고 계시다. 우리 장로들은 명을 받들어 제자들을 데리고 성지를 떠나고 있었지. 그런데 남궁 장로와 내가 이렇게 매복을 당한 것이란다.”

연꽃 선자가 가볍게 답했다.

“그렇군요.”

두 장로가 하는 말을 들은 석목은 깊은숨을 내뱉었다.

“여기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이진종 놈들이 도망가긴 했지만 지원군을 끌고 오면 일은 더 번거롭게 될 게야.”

남궁 장로가 말했다.

“현령탑 전송대전은 이미 점령되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나갈 방법은 없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성주님께서 이미 준비를 해두셨다. 비밀 석실에 있는 전송진법을 통해 성지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석목, 너도 우리와 함께 나가자.”

남궁 장로가 말했다.

“좋습니다.”

석목이 잠깐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그동안 청란성지에서 입은 은혜도 있었기에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후에 도와주려고 했다. 하지만 보아하니 청란성지의 성주는 이미 저항을 포기한 것 같았고, 그는 남는다고 해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천위 제자들을 내보내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다시 분신을 소환하여 몸속에 넣었다.

채아도 석목의 생각을 알아채곤 제풍과 연꽃 동자를 데리고 왔다.

남궁 장로와 연꽃 선자는 석목의 분신을 보고는 두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흑마족은 이미 흑마 성역으로 물러난 지 오래되어 역사 속에만 남았다. 장로들은 석목이 분신을 데리고 있는 건 어떤 특별한 인연을 만났거나 피치 못할 사건을 겪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형세가 이러하니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석목 일행은 자리를 떠나 멀리 날아가 버렸다.

* * *

동성성 밖.

동성성에 드리운 방어 대진이 뚫리자 이진종과 축운검파의 전함 수백 척에서 호각소리가 울려 퍼지며 나란히 선 채 청란성지의 하늘을 틈새 하나 없이 막아버렸다.

청란성지의 전함들은 고작 백여 척 밖에 없었지만 이대로 물러나지 않으며 방어를 취하고 있었다.

한순간, 전함의 빛과 터지는 소리가 성해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소리와 오색 빛기둥이 얽히고설키며 성역마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청란성지의 전함은 축운검파와 이진종보다 훨씬 숫자가 적었다. 이제 막 전함 한 대가 날린 공격을 막아냈는데 곧바로 또 다른 전함이 이어서 공격을 했다.

몇 차례 폭격을 당한 끝에 청란성지의 전함 두 척이 산산조각 나버려 위에 서 있던 제자들이 뿔뿔이 도망쳤다.

이때, 두 전함에서 격전을 치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수많은 그림자들이 전함 사이를 비집고서 아래로 내려와 다양한 빛을 뿜으며 싸움을 펼쳤다.

축운검파의 제자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보검을 꺼내 들고는 허공에 커다란 고리모양 검진을 만들어냈다.

축운검파의 제자들이 빛을 뿜어낼 때마다 고리모양 검진이 더 빠르게 돌아가며 오색찬란하고도 커다란 검영을 연이어 뽑아냈다. 그리고 빛깔이 다양한 검영들이 청란성지의 제자들을 베었다.

수많은 검영이 얽히고설키며 검룡이 되어 대군을 이루었고, 검룡 대군은 홍수를 이루며 청란성지의 제자들에게 몰려왔는데 그 광경은 실로 웅장했다.

이와 동시에, 이진종의 제자들은 전부 하늘로 날아올랐다. 제자들이 두른 도포는 강풍 때문에 펄럭였으며 입으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우르릉!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며 번개 수천 갈래가 까만 하늘을 뚫고서 쏟아져 허공에 번개 폭포를 만들어 청란성지의 제자들을 덮쳤다.

청란성지의 제자들은 주로 요족이었는데 요족은 체구가 강인하고 놀라운 전투력을 갖췄다. 제자들은 전부 본체로 돌아와 다양한 신통을 부리며 검룡 대군과 번개 폭포를 미친 듯이 공격했다.

순간, 하늘에서 포악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방대한 몸집들이 검과 용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한 청란성지의 전함에서는 일계 술사 백여 명이 커다랗고 둥그렇게 모여 동시에 법결을 시전하며 주문을 외웠다.

술사들 뒤로 타오르는 듯한 태양이 환하게 나타나더니 투명한 빛과 금빛을 수도 없이 쏟아내며 검룡과 부딪쳤다.

쾅, 쾅!

맹렬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얼음과 화염, 검빛 그림자가 전부 산산이 부서져 하늘에서 쏟아졌다.

넓게 퍼졌던 번개 폭포는 얇은 천처럼 찢어졌으며 화염과 섞여 타오르더니 하늘에서 사라져버렸다.

비록 검빛과 번개 폭포를 대부분 막아냈지만, 여전히 검룡 수십 마리가 청란성지의 대진 속으로 찔러들어 제자들의 피가 흩날렸다.

울부짖는 소리가 끝을 맺기도 전에 또다시 번개 폭포가 쏟아지자 청란성지의 제자들 수천 명이 안에 드리웠다.

핏빛이 번개와 얽히고설키며 허공에서 터져버렸고, 살이 타는 냄새가 전장에 진동하며 청란성지의 제자들은 궁지에 몰렸다.

청란성지의 성계 장로들은 그 광경을 보더니 전부 법보를 꺼내 들고는 몸에 빛을 번쩍이며 전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신도남은 목천절을 한번 쳐다보더니 곧바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성계 장로 백여 명도 몸을 날려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두 종문의 막강한 실력자들이 전장에 투입되자 전투는 훨씬 격화되었고, 굉음이 더 크게 울려 퍼졌으며 법보의 빛들이 제멋대로 휘날렸다. 방대한 기운 파동은 부딪쳤다가 퍼져나가기를 반복했다.

쾅, 쾅!

몸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낮은 허공에서는 양측 전함이 둥둥 떠다니며 포화구에서 불빛이 끊임없이 번쩍이며 포화 공격도 끊이질 않았다.

무엇 때문이지 청란성지의 산봉우리 안에 있던 진법은 전부 멈춰버려서 더는 푸른빛 공격을 날리지 않았다.

청란성지의 전함은 원대 두 종파보다 숫자가 적었는데 땅 위에서 받던 진법의 도움까지 사라지자 화력이 부족하다는 게 금방 들통이 나버렸다.

축운검파와 이진종의 전함들은 여전히 촘촘하게 포화구에서 기둥이 뿜어져 나와 성해에 금빛을 터뜨렸지만, 청란성지의 전함은 더 이상 막지 못했다.

몇 차례 전함 공격을 받은 청란성지의 전함들은 거의 다 부서졌다. 그중 몇 척은 이미 심각하게 파손이 되어 참전을 할 수 없어 뒤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축운검파와 이진종의 전함들은 공격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거대한 금창이 촘촘하게 쏟아지며 간신히 떠 있던 전함들도 드디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망가져 파편이 하늘에서 날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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