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6화. 추병
전투가 무르익을수록 청란성지의 전함 백아홉 척은 하나하나 떨어져 오십 척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 삼만 명이 넘던 청란성지의 제자들은 이미 만여 명이나 운명했다.
이진종과 축운검파도 전함 대략 서른 척 과 제자 수천 명이 대가를 치렀다.
전투는 몇 시진 째 지속되었으며 청란성지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공격을 하던 전함들도 조금씩 밀려서 방어 구역까지 모여들어 온힘을 집중했다.
두 종파는 계속해서 전함으로 청란성지를 포위했다.
한 치도 양보를 하지 않으며 압박을 하자 청란성지의 전함들은 동성성을 감싸고 있던 두꺼운 구름층까지 밀려났다.
이진종과 축운검파의 전함 몇 척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기세를 몰아 빠르게 청란성지의 전함 앞까지 다가왔고, 전함들은 앞쪽 포화구를 삐걱삐걱 움직이더니 속승 진인이 올라타고 있는 금색 전함을 겨누었다. 포화구에서 금빛이 연이어 밝아졌다.
속승 진인은 여전히 전혀 표정이 달라지지 않은 채 전함에 서서 물처럼 평온한 눈빛으로 포화구를 바라보았고,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속승 진인이 계속 공격을 하지 않자, 신도남과 목천절은 의아했다. 하지만 둘은 속승 진인보다 먼저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속승 진인이 움직이는 걸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며 경계 태세만 취하고 있었다.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청란성지의 전함 뒤편에 있던 두꺼운 성운이 갑자기 격렬하게 소용돌이쳤다.
이어 날카롭고 긴소리가 울려 퍼지며 소용돌이치던 성운 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리며 검은색 음영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음영은 나타나자 곧바로 오십 장이나 되는 커다란 날개를 펼친 채 전함들을 향해 강하게 펄럭였다.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렸다!
백 장이나 되는 푸른색 칼바람이 커다란 날개 사이에서 튀어나와 마치 하늘을 가르는 커다란 칼날처럼 전함 한 척을 갈라버렸다.
쩍!
도끼가 나무를 자르듯 이진종의 전함에 커다란 칼자국이 생기며 선체가 격하게 흔들렸다. 전함이 내던 빛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함께 공격을 하던 또 다른 전함 두 척은 앞선 전함이 공격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는 하늘에 멈춰 섰다.
연이은 패배로 진영이 무너졌던 청란성지의 제자들은 정신이 번쩍 들어 전부 음영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저건…… 금동사취(金瞳獅鹫)!”
“호종 신수가 지원을 하러 왔다!”
음영의 몸은 사자에 독수리 날개가 달린 크기가 백 장에 달하는 커다란 짐승이었다. 두 동공에선 어두운 금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며 깃털은 칠흑 같은 검은색이었다. 깃털에서 투명한 빛이 반짝였는데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그 기운은 성계 초기 강자 한 명과 맞설 정도였다.
금동사취는 두 날개를 펼쳐 두어 번 펄럭이며 축운검파와 이진종의 전함을 차갑게 바라봤는데 마치 천하를 얕보는 듯한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흥, 고작 털난 검은 짐승이잖아!”
목천절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목천절이 말을 떨어뜨리자마자 동성성 밖에 드리운 성운이 또다시 들끓더니 커다란 음영 두 갈래가 연이어 구름층을 뚫고서 날아 나왔다.
음영 중에 하나는 사슴 모양이었는데 체구가 족히 오십 장은 되어보였고, 온몸에 둥근 비늘이 자라나 있었으며 비늘에서 일곱 가지 빛이 반짝였다. 네 발로 허공을 짚을 때마다 발밑에 아름다운 칠색 구름이 나타나 매우 화려했다.
또 다른 하나는 온몸에 화염이 불타오르고 있어 생김새가 잘 보이지 않았다. 윤곽으로만 봤을 때 화염 날개가 달린 맹렬한 호랑이 같았는데 등 뒤로 굵직한 꼬리를 끄는 걸 보면 또 교룡 같았다.
거대한 몸집은 칠색 사슴과 비슷한 크기였다.
“칠색 린록(麟鹿), 적염리호(赤焰螭虎)……”
목천절은 눈에 빛이 스쳤다.
“청란성지의 삼대 호종 신수가 전부 온 것 같군.”
목천절의 옆에 서 있던 신도남이 말했다.
* * *
이 시각, 석목 일행은 한 산맥에 도착했다.
산맥은 근처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라 영력이 희박했다. 숲에는 실력이 약한 작은 요수들만 살고 있었다.
남궁 장로는 가장 앞에서 길을 이끌며 흑석 산봉우리 밑으로 다가갔다.
산봉우리 밑에는 매끈한 암벽이 하나 있었고, 남궁 장로가 반짝이는 눈으로 하얀빛을 암벽에 날렸다.
묵직한 소리가 울리며 암벽에 커다란 동굴이 하나 나타났는데 안쪽은 널찍했다.
동굴 바닥에 복잡한 부문들이 새겨져 진법을 하나 이루었는데 그건 전송진법이었다.
석목이 주변을 한번 쳐다보더니 속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인적도 드물었으며 영력도 희박한 곳이라 아무도 여기에 비밀 진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몇몇 사람들이 천위 제자들을 이끌고 동굴 속으로 날아 들어왔다. 남궁 장로는 진법을 한번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진법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진법을 작동시키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이어서 남궁 장로는 다급하게 움직이며 다양한 영석을 진법에 꽂아 넣었다.
석목은 진법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기에 조용히 한쪽에 서 있었다.
전송진법에 새겨진 다양한 부문들이 점점 밝아졌다. 이제 잠시 후면 전송될 수 있었다.
“석 형.”
이때, 푸른색 피풍의를 입은 천위 제자가 인파 속에서 걸어 나왔다.
석목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청장천이었다. 조금 전에 전투를 치를 때는 정신이 없어서 그를 보지 못했다.
“청 형, 오랜만이에요.”
석목이 청장천을 반갑게 맞았다.
“백 년 만에 석 형은 실력이 벌써 성계에 도달했군요.”
청장천은 다소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탄복하며 말했다.
“후후, 운이 따라줘서 우연한 기회를 만나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청 형도 이미 천위 중기에 도달했네요. 아마 성계도 문제없을 겁니다.”
석목이 말했다.
청장천이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성계까지 돌파하기엔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석 형, 언제 성계를 돌파한 겁니까? 어째서 종문에 보고를 하여 만 년 제자로 승급하지 않았습니까?”
청장천이 물었다.
“최근에 돌파했습니다. 아직 종문에 보고를 올리기도 전에 이런 일이 생겨서……”
석목이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게요. 우리가 청란성지에 들어올 때 쌓은 추억이 아직 생생하게 모두 기억이 나는데 수백 년 사이에 청란성지, 그리고 미양 성역에 이렇게 많은 일들이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청장천이 씁쓸한 듯 말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청장천은 워낙 낙천적인 사람이라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걸 참지 못하고는 다른 말을 꺼내려고 했다.
이때, 석목의 안색이 어두워져서는 다급하게 밖을 바라보았다.
“석 형, 무슨 일이에요?”
청장천이 물었다.
“큰일입니다. 누가 쫓아왔습니다!”
* * *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몸을 날려 허공으로 날아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먼 하늘에서 빛들이 빠르게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석목 옆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풍겼다. 이어서 연꽃 선자가 나타나 저 멀리 상황을 바라보고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조금 전에 본 이진종 사람들입니다.”
석목은 눈에서 금빛을 반짝였다.
“남궁 장로가 진법을 완성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연꽃 선자가 석목을 한 번 쳐다보며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채아에게 제풍과 연꽃 동자를 돌보라고 전음으로 말을 전한 후, 선급 영석을 꺼내 들어 빠르게 몸속에 깃든 진기를 회복했다.
“선급 영석!”
연꽃 선자는 아름다운 눈에서 빛을 반짝이며 놀란 듯이 말했다. 말에는 부러움이 섞여있었다.
석목은 나무 속성 선급 영석을 연꽃 선자에게 던져줬다.
“격전을 치르게 될 것 같습니다. 우선 쓰고 계셔요.”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연꽃 선자는 눈에서 빛을 반짝이며 깊은 눈빛으로 석목을 한번 바라보더니 영석을 건네받고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멀리 있던 빛이 이미 가까이에 날아왔다.
그림자가 연이어 번쩍이며 그림자 열 몇 개가 수십 장 밖에 나타났는데 전부 성계 강자였다. 대부분은 조금 전에 도망을 갔던 이진종 장로들이었는데 몇몇 은색 피풍의를 두른 성계 강자도 있었다. 우두머리는 나이가 어린 여인이었는데 얼굴은 평범했지만 몸매는 꽤 빼어났다.
그들 뒤로 빛이 수백 갈래 날아왔다. 그들은 전부 이진종의 천위 제자들이었는데 속도가 성계 강자들보다 많이 느렸다.
석목은 눈을 반짝였다. 은색 피풍의를 두른 사람들은 얼마 전에 전송대전에서 봤던 사람들이었다.
“꽤 빨리 도망가는군. 벌써 이곳까지 도망을 쳤다니. 그런데 청란성지는 이미 포위됐다. 그러니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진종의 한 성계 강자가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연꽃 선자가 날아서 나올 때, 이미 동굴 입구는 환술로 덮어버렸다. 그리고 청란성지의 제자들이 동굴을 막고 있어서 이진종 사람들은 아직 안쪽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바로 저 자가 우리 이진종의 관주 두 명과 장로들을 죽여 버렸다는 건가?”
은색 피풍의를 두른 여인이 석목을 훑어보며 말했다.
“맞습니다. 은화(銀華) 어르신. 저놈은 수련 경지가 성계 초기지만 쓰는 수법이 매우 기이합니다. 성계 경지인 분신도 하나 데리고 다녀서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습니다.”
이진종의 장로 한 명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사람이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도망을 쳤다는 건가?”
은색 피풍의를 두른 부인이 장로를 한번 흘겨보더니 비웃듯이 말했다.
그러자 이진종의 장로가 무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아니, 왜 성계 강자가 둘 뿐인가?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이진종의 성계 강자가 표정을 바꾸며 소리를 질렀다.
“산봉우리 밑에 드리운 환술 속에 동굴이 있습니다. 이놈들, 저 안에 전송 진법을 설치했습니다!”
여인의 옆에 서 있던 은발 중년이 눈에 빛을 뿜어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은색 피풍의를 두른 여인은 안색이 굳으며 무엇인가를 말하려 할 때였다.
“공격!”
석목은 금빛을 드리우며 순식간에 토템 변신을 완성했다. 그리고 구룡쇄금갑을 두르고는 여의빈철곤으로 금빛을 뿜어냈다. 마치 금색 전쟁의 신 같은 모습으로 앞을 향해 날아갔다.
여의빈철곤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며 은색 피풍의를 두른 여인을 단번에 내리쳤다.
방대한 위력이 순식간에 성계 강자 열 몇 명에게 전부 드리웠다.
한 방에 담긴 위력이 마치 은하수가 끊어진 것처럼 쏟아져내려 여인은 안색이 굳어버렸고, 이 힘을 막아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무력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수련 경지가 이미 성계 정상에 도달했기에 쉽게 포기할 리 없었다. 그녀가 얇은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면서 하얀빛을 번쩍이며 우산 모양 법보를 꺼내 들었고, 법보가 빠르게 불어나 빛을 만 갈래 뿜어내며 사람들의 머리 위에 드리웠다.
굉음이 울려 퍼졌다.
여의빈철곤이 하얀 우산 법보 위로 강하게 쏟아졌다.
하얀 우산은 매우 얇아 보였지만 의외로 단단하여 살짝 흔들리더니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석목은 눈에서 빛을 반짝이며 분신을 불러냈다. 분신이 손에 든 핏빛 단검에서 피가 번지며 길이가 몇 장인 핏빛 검날이 나타나 우산 법보를 강하게 베었다.
핏빛이 터져버렸다!
파악!
우산 법보에 길이가 한 장 정도 되는 균열이 찢어졌고, 단검은 위력을 전부 써서 멈춰버렸다. 더 이상 앞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우산 밑에 피해있던 여인은 하얀 우산이 찢어진 걸 보고는 안색이 일그러졌다.
이 우산이 얼마나 단단한지는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터, 우산 법보는 그녀가 반평생 동안 심혈을 기울여 제련한 최상급 법보였다. 이미 영보나 다름이 없는 법보가 이렇게 찢어져 버렸다니.
그녀는 아픈 마음을 뒤로하며 법결을 줄줄이 시전하였다.
우산 법보에서 하얀빛이 줄줄이 나타나 ‘훅!’ 소리를 내며 하얀 화염이 되어 불타오르더니 주변으로 흩어졌다.
핏빛 단검은 하얀 화염에 닿자 핏빛을 끊임없이 번쩍였고, 마치 상극을 만난 것만 같았다.
분신은 손을 흔들어 단검을 꺼내 들고는 뒤로 날아갔다.
분신의 몸속에 깃든 마기도 하얀 화염에 부딪치자 곧바로 흩어져 버렸다.
석목도 뒤로 물러나 눈에 빛을 반짝였다. 하얀 화염은 석목이 다루던 순수한 양의 불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