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7화. 지연
단번에 석목과 분신을 물리친 후에 여인은 곧바로 우산 법보를 거두어들였다.
은색 피풍의를 입은 여인은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석목을 바라보며 짧은 송곳 법보 두 개를 꺼내 들었고, 송곳 법보에 붉은색 번개가 줄줄이 나타나더니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다른 성계 강자들도 날아와 각자 법보를 꺼내 들고는 석목과 연꽃 선자를 공격했다.
석목은 심각한 표정으로 구룡쇄금갑에 빛을 뿜어내며 여의빈철곤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이어 실존하는 듯한 금색 곤봉 그림자가 빼곡히 나타나 잔영을 끌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바람도 새지 않을 것만 같은 곤봉의 산처럼 보였다.
한 편, 분신이 쓰던 핏빛 단검에서도 빛이 번쩍이더니 검빛을 날렸다.
허공에서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과 분신이 힘을 합쳐 이진종의 성계 강자들이 날린 공격을 절반이 넘게 막아냈다.
나머지 서너 명은 연꽃 선자와 맞붙었다.
연꽃 선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파르르 떨며 어려운 주문을 외웠다. 그녀의 몸에서 분홍빛이 흩날리더니 손령화가 나타났다.
그녀는 가느다란 손을 흔들어 법결을 줄줄이 시전하였다.
손령화가 연꽃 선자의 손에서 빠져나와 빙글빙글 돌더니 빛을 크게 뿜어냈고, 몸 앞에 분홍색 꽃이 송이송이 나타나서 눈 깜짝할 사이에 꽃으로 이루어진 벽을 세웠다. 그리고 법보의 빛 몇 갈래와 강하게 부딪쳤다.
우르르!
꽃벽이 한참 동안 심하게 흔들리며 분홍색 꽃잎이 하늘에서 흩날렸다. 그러자 연꽃 선자도 몸을 부들부들 떨며 비틀거렸고, 연꽃 선자는 입가에 피가 묻어 있었지만, 법결을 시전하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이어 연꽃 선자는 손령화를 시전하여 꽃벽으로 분홍 꽃봉오리를 날렸다.
* * *
이 시각, 동성성 밖.
청란 성지의 호종 신수 세 마리가 나타난 후, 청란성지의 기세는 조금은 호전되었다.
전함이 내뿜는 금색 빛기둥이 얽히고설킨 사이에서 칠색린록이 네 발을 영리하게 움직이며 기둥 사이를 날아다녔다.
칠색린록은 몸이 매우 가벼워 보였는데 마치 하늘에서 유유자적하게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칠색린록은 두 종문에서 내뿜는 포화를 이리저리 비켜 다녔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진종과 축운검파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칠색린록이 뛰어다닐수록 발바닥을 짚으며 만들어낸 칠색 구름이 점점 많아졌고, 칠색 구름은 쌓이고 쌓여 수북이 위로 솟아올랐는데 길이가 백 장인 칠색 안개를 만들어 다투던 양측 사이를 이어놓았다.
칠색 안개가 막 만들어지자 금동사취가 갑자기 몸을 날려 커다란 두 날개로 안개 속을 가로지르며 펄럭였다.
푸른색 기류가 날개 아래에서 하늘거리며 튀어나와 칠색 안개 속으로 스며들자 차분하게 피어오르던 안개가 들끓기 시작하며 이진종과 축운검파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단번에 전함 몇 척을 안으로 드리웠다.
칠색 안개는 그리 짙은 편이 아니었기에 안개 속에 펼쳐진 광경이 뚜렷이 보였다.
처음에 안개 속엔 아무런 이상한 점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전함 몇 척에 있던 이진종과 축운검파의 제자들은 마치 정신 나간 듯이 무기를 휘두르며 주변 허공을 베었다. 그리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안 돼…… 다가오지 마.”를 외쳤다.
안개 속에 싸인 두 종문의 제자들은 각자 법술과 신통을 부리며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공격했다. 잠깐 사이에 전함 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큰일 났다.”
신도남의 등 뒤에 있던 몇몇 성계 장로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더니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안개 속으로 들어가 제자들을 제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잠시 후에 몇몇 성계 장로들도 법보를 휘두르며 주변의 허공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칠색린록은 정말 전해들은 바와 같이 대단하군. 성계 강자도 안개로 만든 허영에서 벗어날 수 없다니!”
목천절은 생각지도 못한 듯이 말했다.
목천절이 하는 말을 들은 신도남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 허영은 칠색린록의 힘으로 만든 게 아니네. 저 금동사취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그렇군!”
목천절은 문득 무엇인가 깨달은 듯이 말했다.
“보잘것없는 재주요. 내 영금(靈禽)이라면 바로 깰 수 있네.”
신도남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 하얀색 빛을 허리춤에서 날리자 하늘이 밝아지며 낭랑하고도 맑은 새소리가 하얀빛 사이에서 울려 퍼졌다.
이어, 커다란 선금(*仙禽: 선계(仙界)의 영조(靈鳥), 두루미)이 빛 속을 뚫고 나타났다.
선금(仙禽)은 얇고 긴 목덜미를 몇 번 비틀더니 날개를 펼치고는 허공으로 날아가 칠색 안개를 뚫었다. 그리고 뾰족한 입을 벌려 날카롭게 울어댔다.
순간, 새의 입에서 눈에 보이는 소리의 파동이 흘러나와 천천히 커지며 칠색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만 해도 혼란스럽게 싸우고 있던 제자들이 새소리를 듣자, 바로 정신을 차리며 혼잡해진 주변을 바라보며 넋이 나간 채 무기를 들고서 멍하니 서 있었다.
이때, 하얀색 선금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눈빛으로 안개를 뚫고서 금동사취를 바라보았고, 눈에 도발을 하는 기운이 어린 것 같았다.
“까올!”
금동사취는 도발을 하는 눈빛에 화가 나서 두 날개를 펼쳐 하얀 선금에게 빠르게 날아갔다.
하얀 선금은 조금도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으며 두 날개를 활짝 펼쳐 맞설 준비를 했다.
새 두 마리는 검은빛과 하얀빛으로 변하여 전함 위의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싸움을 펼쳤다.
이때, 온몸에 화염을 감은 적염리호가 화염 날개를 펄럭이며 칠색 안개 앞까지 날아가 입을 벌리고는 ‘훅!’ 소리와 함께 크기가 수십 장인 커다란 불덩이를 뿜어댔다.
고개를 들고서 자신의 선금을 바라보던 신도남은 적염리호가 내뿜는 불길을 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신도남이 말을 떨어뜨리기 바쁘게 화염은 이미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훅!
칠색 안개가 화염에 닿는 순간 활활 타오르며 순식간에 전함 몇 척을 삼켜버렸다.
칠색 안개가 드리운 곳은 불바다로 변했으며 안에서 터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잠깐 사이에 몇몇 성계 강자만 불바다에서 도망을 나왔을 뿐, 이진종과 축운검파의 제자들 수천 명은 전함과 함께 먼지가 되어 타버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청란성지의 제자들은 기세가 다시 불타올라 환호성을 내질렀다.
“제기랄!”
신도남이 욕설을 퍼부었다.
신도남은 속승 진인이 두려웠지만 어쩔 수 없이 몸을 날려 불바다를 뚫고 나와서는 손바닥으로 앞을 강하게 내리쳤다.
순식간에 허공에 크기가 백 장인 보라색 손바닥이 나타나 금색 번개를 감고서 적염리호의 머리를 내리쳤다.
적염리호는 겁을 먹고서 막무가내로 덤비지 못한 채 화염 날개를 펄럭이며 청란성지의 전함 방향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보라색 손바닥에서 갑자기 커다란 번개 소용돌이가 나타나더니 찢어질 듯한 힘을 풍기며 적염리호의 몸통을 잡아끌었고, 적염리호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커다란 손바닥이 이제 막 적염리호의 몸통에 닿으려 할 때, 칠색 빛기둥 두 갈래가 갑자기 아래에서 위로 빠르게 치솟아 오르며 보라색 소용돌이와 강하게 부딪쳤다.
소용돌이 속에서 번개가 번쩍이며 강력하게 찢어들던 힘이 갑자기 느슨해졌다.
적염리호가 커다란 꼬리를 흔들자 굵은 화룡 한 마리가 속에서 튀어나와 손바닥 위를 공격했다.
쾅!
화룡이 커다란 손바닥에 부딪치자, 수많은 불덩이가 튕겨져 나가며 손바닥이 뒤로 밀려났다.
적염리호는 그 틈을 타 빠르게 도망쳤다.
하지만 적염리호가 이제 막 수 십 장 정도 도망갔을 때, 앞에 갑자기 파란빛이 번지더니 커다란 연꽃이 허공에서 피었다. 그리고 수많은 푸른색 검련(剑莲)들이 날아갔다.
적염리호는 더는 도망을 갈 수 없게 되자 소리를 지르며 붉은 화염을 뿜어내며 공격을 막았다.
눈 깜짝할 사이, 붉은 화염은 수많은 검영과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다.
“꾸엑……”
적염리호의 입에서 처참한 소리가 흘러나왔고, 크게 번진 화염이 검영에게 베이자 그 속에서 피범벅이 된 뼈가 드러났다.
신도남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목천절이 나타나 검결을 시전하며 허공에 서 있었다.
다시 시선을 거두어들인 신도남은 손목을 틀어 하얀 깃털 부채를 꺼내 들더니 아래를 향해 힘껏 흔들었다.
하얀 깃털 부채에서 금색 번개가 번쩍이더니 부채 끝에서 금빛이 한 덩이 나타났고, 금빛 속에서 번개를 감은 굵직한 사슬이 빛 덩이에서 ‘훅!’ 튀어나와 칠색린록을 붙잡으려 했다.
칠색린록이 발을 가볍게 움직이자, 발밑에 구름이 줄줄이 나타났다.
구름을 드리운 칠색린록의 몸통은 그림자처럼 희미해져 뚜렷하지 않았다.
신도남이 차갑게 웃더니 깃털 부채를 돌렸다. 사슬 수십 갈래는 마치 영성이라도 갖춘 듯이 구름 사이를 비집으며 허영을 피하여 단번에 칠색린록의 몸을 감아버렸다.
번개가 번쩍이는 사이, 칠색린록은 고통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깨끗했던 몸통에 눈에 띄게 타버린 흔적이 줄줄이 나타났다.
칠색린록을 묶어버린 후, 신도남은 속승 진인을 바라보았다. 속승 진인은 여전히 차분한 표정으로 공격을 할 생각이 없어 보여 오히려 불안하기 시작했다.
이때, 하늘에서 큰소리가 울려 퍼지며 검은색과 흰색 그림자 두 갈래가 맹렬하게 부딪쳤다. 그리고 둘 다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금동사취의 검고 윤기 나는 깃털은 이미 여기저기 찢어졌으며 가슴에 커다란 상처가 두 개나 생겨 살이 뒤집혔고, 상처 난 부위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금동사취의 맞은편에 있던 하얀 선금은 더 처참했다.
상처투성이인 몸통엔 온통 핏자국이 났으며 깃털이 빠져버려 속살이 드러났고, 그 꼴은 마치 싸움을 치른 수탉 같아서 신성한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선금은 오른쪽 다리로 허공을 딛고 있었으며 왼쪽 다리는 높이 치켜들고 있었는데 반 토막밖에 남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신도남은 얼굴에 서리가 한 층 깔렸다. 그리고 하얀 깃털 부채를 빠르게 흔들었다.
툭!
신도남이 묶고 있던 칠색린록의 왼쪽 앞다리가 밖으로 꺾이더니 부러져 버렸다.
칠색린록이 처참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한참 동안 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자 청란성지의 제자들은 전부 마음이 아려 신도남에게 화가 난 눈길을 보냈다.
“공격!”
하지만 신도남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손을 앞으로 치켜들었고, 수많은 전함이 계속해서 동성성으로 나아갔으며 금빛이 전함들 앞에서 줄줄이 밝았다.
* * *
현계 구역의 흑석 산봉우리 앞.
석목과 연꽃 선자 두 사람은 얼굴이 조금 하얗게 질렸다. 연꽃 선자는 눈에 놀라운 기색도 어렸다.
둘은 이미 일주향이나 버티며 동굴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시간을 벌어 주었다.
연꽃 선자는 성계 후기 경지로 손령화를 써서 성계 강자 네 명이 날린 공격을 막아내는 게 버거웠다. 하지만 수련 경지가 연꽃 선자보다 못한 석목과 분신이 나머지 성계 강자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만약 석목이 없었더라면 여긴 이미 무너져 동굴 속에 있던 사람들은 어항 속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터였다!
이진종 사람들은 다급하여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 두 놈이 우리를 막으면서 전송진법을 작동할 시간을 벌고 있다! 공격!”
은색 피풍의를 두른 여인이 눈빛을 번쩍이며 큰소리를 질렀다.
“죽여 버려!”
모든 성계 강자가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온힘을 다해 법보를 시전하며 공격했다.
이진종의 천위 제자들도 따로따로 다가왔다. 제자들은 여기 상황을 잘 알지 못했지만, 아군이 훨씬 많은 광경을 보고는 전부 법보를 꺼내 들어 석목과 분신, 그리고 연꽃 선자를 공격했다.
천위 제자들은 성계 강자들보다 실력이 훨씬 떨어졌지만, 워낙 머릿수가 많아서 성계 장로 열 몇 명과 힘을 합쳐 공격을 하니 법보가 방대한 홍수처럼 우르르 몰려와 강력하기 그지없는 기세를 풍겼다.
그러자 연꽃 선자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뒤로 반걸음 물러났다.
“아직 시간이 필요해!”
석목은 중얼거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석목은 우뚝 솟은 나무처럼 반걸음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