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9화. 속승이 움직이다.
동성성의 하늘에서는 여전히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청란성 안은 고함이 울려 퍼지며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청란성에 사는 평범한 인간들은 이미 수행자들이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서로 싸움을 벌이며 다양한 신통을 부리는 걸 수도 없이 봐왔지만, 오늘 같은 대규모 전쟁은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했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소리가 끊이질 않았는데, 맑게 갠 하늘에서 떠다니던 하얀 구름이 까맣게 물들더니 빠르게 소용돌이쳤고, 먹구름 속에서는 소름이 끼치는 번개가 간간이 번쩍였다.
이때, 어두컴컴하던 하늘에 갑자기 금빛이 몇 갈래 밝아졌다.
이어서 빛들은 점점 밝아졌고, 마치 구름층을 태워버린 듯이 커다란 구멍을 뚫더니 구멍 사이로 빛들이 쏟아졌다.
우르릉!
청란성 곳곳에서 폭발과 함께 먼지가 흩날렸으며 불꽃이 사방에 튀었다.
만 년 동안 우뚝 서 있던 흑석 성벽도 순식간에 무너져 부서진 돌들이 튀었다. 이제 곧 성문마저 묻혀 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성 중심의 유명한 객잔들도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여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길가로 쭉 뻗어나간 점포들에도 불길이 번지더니 줄줄이 타버렸고, 짙고 검은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올랐다.
청란성은 지옥이 되어버려 백성들이 울부짖는 처참한 곡소리가 귓가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미처 성 밖으로 피신하지 못한 백성들의 시체가 곳곳에 널브러졌다.
이 전쟁에서 가장 억울하게 희생당한 무고한 생명들은 미처 도망가지도 못했을 뿐더러 도망을 갈 힘조차 없어서 처참하게 울부짖으며 폐허 속에서 쓸쓸하게 죽어갔다.
청란성 밖에 자리한 울창하던 숲도 금빛 전함이 날리는 빛기둥에 눌려서 부러지며 불탔고, 흙과 나무 부스러기가 섞여 여기저기로 튀었다.
청란성지의 입구 쪽에 자리한 보라색 숲의 땅이 갑자기 심하게 흔들렸다.
이때, 진흙과 돌들이 굴러 떨어졌고, 높이가 사백 장까지 솟았던 거대한 나무 수십 그루가 격하게 흔들리며 굵직한 뿌리가 조금씩 위로 뽑혀 나왔다. 땅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뿌리들엔 보랏빛이 번졌다.
뿌리가 뽑혀 나오는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고 나뭇가지도 점점 굵어졌다. 나뭇가지는 순식간에 수천 장 높이까지 뻗어나갔는데 마치 하늘을 가리는 커다란 산봉우리처럼 숲속에 우뚝 솟았다.
솟아 나온 나무들은 마치 요수처럼 꿈틀거리며 나뭇가지로 떨어지는 금색 빛기둥을 막으려 했다.
거대한 나무 수십 그루는 금빛 공격을 막으며 한편으로는 굵고도 튼실한 덩굴로 땅속 깊숙이 파고 들어가 커다란 암석들을 뽑아내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전함들을 향해 던졌다.
커다란 나무들은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덩굴로 날려버린 암석들이 마치 운석처럼 빠르게 날아가 허공에서 불이 붙어 커다란 화염구가 되어 날아갔다. 그리고 단번에 이진종과 축운검파의 전함들 한가운데로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전함 몇 척을 부숴버렸다.
그러자 두 종문의 전함들도 곧바로 반격을 시도했고, 촘촘한 금색 빛기둥이 하늘에서 쏟아졌는데 마치 폭풍우처럼 보라색 숲으로 떨어졌다.
펑, 펑, 펑!
끊임없는 굉음이 울려 퍼지며 숲은 다시 불바다가 되었다.
커다란 나무 수십 그루도 빛기둥을 맞아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 터지며 끊어졌다.
* * *
동성성 밖, 귓가에는 여전히 굉음이 울렸는데 자욱한 연기 속에서 빛들이 연이어 번쩍였다.
청란성지의 전함들은 단 열 몇 척만 남았으며 이만 명도 채 남지 않은 제자들은 더 이상 이진종과 축운검파를 막아내지 못했다.
쏟아지는 빛기둥은 간간이 몇 갈래로 나뉘어 성운 아래에 있는 동성성을 공격했다.
하늘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세상은 이미 불바다나 다름이 없었다.
이때, 전쟁이 시작된 후로 지금까지 일관되게 침묵을 지키던 속승 진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목 전주, 신 도우, 이게 당신들이 원하는 결과인가?”
속승 진인이 말을 꺼내자 목천절과 신도남이 흠칫 놀랐다.
목천절은 여전히 한 손에 검을 들고는 허공에 떠서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속승 진인, 아직도 모른단 말이오? 당신이 죄를 저지른 제자를 용납해주고 감싸지만 않았더라면 목 도우가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었겠소? 그리고 우리 삼대 성지가 이 지경까지 올 이유도 없지 않았겠나?”
신도남은 잠깐 침묵을 한 후에 천천히 말했다.
속승 진인은 신도남이 하는 말을 듣더니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서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마치 무언가를 느끼는 것만 같았다.
이때였다. 속승 진인 뒤에 서 있던 호법 장로 다섯 명 중에 요족 호법 장로를 제외한 나머지 호법 장로들이 모두 갑자기 속승 진인의 맞은편에 서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네 명 뒤로, 성계 장로들 중에 절반이나 호법들을 뒤따랐다.
지팡이를 짚은 곽어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속승 진인에게 말했다.
“만 년이 넘는 동안, 성주께선 백원왕을 가르칠 때만 신경을 조금 쓰셨을 뿐, 오랜 시간 폐관수련만 하시며 성지에서 일어난 일들은 묻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독단적인 행동을 하여 청란성지가 이런 절망에 처하게 하셨지요. 성주님을 계속 모시지 못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자 속승 진인의 뒤에 서 있던 성계 장로들은 그 말을 듣더니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곽 호법,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 청란성지를 배신하겠다는 뜻인가?”
“곽 호법을 탓하지 마시오. 만 년 동안, 성주는 종문에서 일어나는 일에 신경도 쓰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우리 청란성지는 이제 빛을 다했습니다.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시간문제였으니까요.”
백급이 깊은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백급이 하는 말을 듣자 분에 겨워하던 장로들이 전부 침묵에 빠졌다. 그리고 적잖은 사람들이 한참을 망설이더니 발걸음을 움직여 몇몇 호법에게로 다가갔다.
“흥, 나는 청란성지의 사람이니 죽어도 청란성지의 귀신으로 남을 테다. 전쟁에서 피가 튀고 살이 부서진다 해도 배신은 못 한다. 항복과 배신을 하고 싶었다면 그렇게 하면 그만이지 무슨 핑계가 이렇게도 많은가!”
요족 호법이 화가 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곤로(昆盧), 객관적으로 판단을 해야지. 굳이……”
관산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요족 호법이 소리를 지르며 말을 끊어버렸다.
“닥쳐, 성지에서 네놈이 제일 꼴불견이었어. 네 후손만 그렇게 싸고돌더니! 드디어 본색이 나왔구나, 나하고는 말도 섞지 마.”
곤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흥, 죽지 못해 안달이 났으면 그렇게 해.”
관산해가 씩씩거리더니 차갑게 웃었다.
이때, 속승 진인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궁 장로 일행은 이미 떠났다. 너도 빨리 가거라.”
그리고는 큰 걸음으로 앞으로 다가가 허공을 짚으며 몇 걸음 더 걸어갔다.
“청란성지의 제자들은 들어라. 오늘 종문이 어려움에 처하여 적들과 지금까지 싸운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더는 되돌릴 수 없으니 다들 각자 흩어지거라.”
속승 진인이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
“각자 도망가라는 말인가?”
“성주 존상, 우리에겐 아직 싸울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청란성지의 제자들 속에서 순식간에 격렬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성주가 내린 명령이다. 명을 따르지 않겠다는 거냐? 성주의 명을 받들라!”
곤로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때, 지켜보고 있던 신도남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속승 진인, 당신 종문의 제자들이 우리 두 종파의 제자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데, 이리도 쉽게 물러나다니? 목 도우, 어떻게 생각하시오?”
“맞는 말이오!”
목천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두 사람 뒤에 서 있던 성계 강자들 이십여 명이 전부 법보를 치켜든 채로 도망가는 청란성지의 제자들을 쫓아갔다.
“감히!”
속승 진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기세를 풍기며 두 손을 몸 앞으로 모아 번잡한 법결을 몇 개 시전했다.
속승 진인이 시전한 법결이 허공으로 줄줄이 날아가 검은 하늘에 크기가 수백 장에 이르는 푸른빛을 드리웠다.
푸른빛 속에 부문들이 둥그렇게 모여 촘촘하게 번졌는데 마치 나침반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며 괴이한 기운을 풍겼다.
이어서 구부러진 뿌리 두 개가 푸른빛에서 튀어나왔다.
“이건……”
청란성지의 제자들을 쫓아가려던 성계 장로들은 푸른빛을 바라보았다.
푸른빛 소용돌이 속에서 번개가 번쩍이더니 구부러진 뿌리 두 개가 튀어나와 비늘을 감싼 커다란 두 팔로 변하면서 허공을 격하게 흔들었다.
이어서, 높이가 백 장인 검은 무언가가 푸른빛을 뚫고서 나왔다.
몸엔 온통 검은색 비늘 갑옷을 두르고 있었으며 가슴과 어깨에는 기이한 짐승 장식이 걸려있었다. 머리에는 검은색 투구를 쓰고 있었는데 구부러진 두 외뿔은 투구에서 뻗어져 나온 것이었다. 투구에 달린 장식인지 몸에서 자라난 뿔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얼굴에도 금색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오뚝 솟은 코와 깊은 눈구멍 두 개만 내놓고 있었다.
웅장한 외관과 풍기는 기운만으로도 등골이 다 오싹해졌다.
거인은 나타나자마자 고개를 쳐들며 소리를 질렀는데 입에서 빛의 고리가 줄줄이 뿜어져 나와서 주변에 있던 성계 강자들은 피하지 못한 채 움직이는 속도가 갑자기 수천 배는 느려져 제자리에 서 있었고, 얼굴은 온통 겁에 질린 기색이었다.
“이건…… 사령!”
곽어진은 이마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이건…… 신경 소환수(召喚獸)!”
관산해도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는데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얼마 전에 나타난 삼대 신수는 곧 신경에 도달할 정도였지만 이 검은 갑옷 거인이 풍기는 기운은 신경 초기가 확실했다.
신도남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속승 진인이 신경 혼사였다니! 목 도우, 내가 여길 지킬 테니 저 신경 사령은 당신이 해결하는 편이 어떤가?”
목천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검의 기운을 풍기며 몸과 검이 하나가 되어 날카로운 검빛으로 거인을 찌르기 시작했다.
“다들 걱정하지 말고 계속해서 쫓아가게. 도망간 자는 한 명도 놓쳐서는 아니 되네!”
신도남은 속승 진인을 노려보며 성계 장로들에게 명을 내렸다.
“신 도우, 그동안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수도 없이 캐내려고 시도했었지. 오늘 그 소원을 이뤄줄 테니 잘 보게나.”
속승 진인이 소맷자락을 뒤로 넘겨 뒷짐을 지며 말했다.
순간, 속승 진인이 풍기는 기운이 한 층 더 불어나더니 푸른색 광막이 몸에서 피어나며 순식간에 하늘에 있는 모든 이들을 감싸버렸다.
청란성지의 제자들을 쫓아가려던 성계 장로들은 마치 전부 진흙탕에 빠진 듯 몸이 무거워져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광막이 풍기는 방대한 기운을 느낀 신도남이 깜짝 놀라 실성하며 말했다.
“아니야! 이건…… 영역의 힘, 당신, 당신이 신경 정상인 대승 경지에 도달했단 말인가?”
검은 갑옷을 두른 사령과 다투던 목천절은 안색이 파랗게 질렸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며 장검을 강하게 휘둘러 그 반동으로 날아가 다시 신도남 옆에 섰다.
목천절과 신도남도 신경이었지만 신경 사이를 이루는 작은 경계들 사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다시 말해, 대승 경지에 이른 속승 앞에서 목천절과 신도남이 힘을 합친다고 하더라도 이길 수 없었다.
검은 갑옷을 두른 사령은 목천절을 쫓아가지 않고서 조용히 허공에 서 있었다. 그리고 텅 빈 두 눈으로 허공에 널려있는 전함들과 이진종, 축운검파의 제자들을 훑어보았다.
관산해를 비롯해서 청란성지를 배신한 장로 수십 명은 전부 겁에 질려 등에서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렸으며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청란성지의 제자들아! 빨리 흩어지라 명하였다!”
속승 진인이 소리를 질렀다. 속승 진인의 목소리는 마치 천둥처럼 허공에서 터지는 것만 같았다.
놀라워서 어안이 벙벙해진 청란성지의 제자들은 전부 정신을 가다듬고는 곤로가 이끄는 가운데 주변으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