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화. 은색 전함
적잖은 이진종과 축운검파의 제자들이 도망가는 청란성지의 제자들을 쫓아가고 있었다.
“하하, 여기도 청란성지 한 놈이 있어!”
이때, 고함과 함께 하얀 도복을 두른 몇몇 사람이 석목에게 날아왔다.
입은 옷을 보니 축운검파의 제자였다. 축운검파의 제자들은 두 눈에 핏빛이 가득했으며 옷과 얼굴에 피가 가득 묻어있었다. 미친 것만 같은 표정으로 입가를 찢더니 흉악한 기색을 드러내는 모습이 짐승과 다를 바가 없었고, 마치 살육을 저지르는 쾌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같았다.
“후후, 바로 죽지 말고 나랑 좀 즐겨야지!”
천위 후기 경지인 사나이가 법보를 꺼내들고는 촘촘한 검날을 석목에게 날렸다.
석목은 눈에 살기가 스치더니 손가락으로 금빛을 몇 갈래 튕겨냈다. 금빛은 순식간에 축운검파 제자들의 머리를 터뜨려버렸다.
펑, 펑, 펑!
축운검파 제자들의 머리가 터지자 시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석목은 혐오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 마치 파리 몇 마리를 쫓아버리듯 한 후에 곧 여길 떠나려던 찰나였다.
이때, 석목은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쓰러진 시체들이 입은 옷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잠시 후에 하얀 피풍의를 입을 사람이 검빛을 휘갈기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하하! 도망 가지마! 죽여 버릴 거야!”
하얀 피풍의를 두른 사람의 어깨에 영롱한 깃털을 뽐내는 앵무새 한 마리가 미친 듯이 웃으며 푸른 피풍의를 입은 소녀를 쫓았다.
소녀는 고작 열여덟 살 정도 되어 보였는데 천위 초기 경지였다. 소녀는 얼굴에 놀란 기색을 드러내며 푸른색 비륜 법보를 타고는 저 멀리 황급히 도망을 쳤다.
근처에 있던 축운검파의 제자는 하얀 피풍의를 두른 사람을 한 번 쳐다보더니 신경 쓰지 않고서 다른 청란성지의 제자들을 쫓아갔다.
축운검파의 고위층에서 이미 모든 청란성지의 제자들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죽이라고 명을 내렸고, 전쟁이 끝나면 청란성지의 제자들을 베어낸 머릿수로 포상을 받을 수 있었다.
둘은 쫓고 쫓기며 청란성 밖으로 날아갔다.
밖으로 나오니 인적도 드물었으며 쫓기는 사람들만 간간히 보였다.
소녀는 몸에 상처를 입어 피를 뚝뚝 흘렸다. 날아가는 속도도 점점 느려졌다. 그녀는 빠르게 다가오는 검빛을 보고는 눈에 절망을 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때, 빛이 몇 갈래 날아왔는데 이진종의 제자 몇몇이 길을 막았다.
“하하! 여기까지 도망을 친 물고기가 있네. 쯧쯧, 미모가 출중하군. 축운검파 사형, 이 여자는 제가 갖겠습니다!”
이진종의 제자들 중 우두머리가 소녀를 훑어보며 사악한 눈빛을 드러냈다. 그리고 혀로 입술을 한 번 훑더니 하얀 피풍의를 두른 사람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노란색 광풍을 휘갈겨 커다란 손을 만들어내며 소녀를 붙잡으려 했다.
소녀는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앞은 강적이 가로막았으며 뒤엔 추격자들이 있어 도망을 갈 길이 없었다.
소녀가 손을 흔들어 푸른색 비검을 날려 노란 손을 공격했다.
하지만 푸른색 비검이 노란 손에 닿자, 곧바로 빙글빙글 돌며 조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소녀는 이를 악물고 눈에 결연한 빛을 내비치더고 단검을 한 자루 꺼내 스스로 목덜미를 그으려 했다.
죽는다고 해도 소녀는 깨끗한 모습으로 스스로 죽고 싶었다. 짐승만도 못한 놈들에게 치욕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죽는다고! 뭐가 그리 급해. 내가 아직 즐기지도 못했잖아!”
이진종 남자가 차갑게 웃으며 손가락을 짚었다. 그러자 기이한 푸른빛이 한 줄기 날아가 순식간에 소녀의 몸에 떨어졌다.
푸른빛이 차가운 기운을 감고는 소녀의 혈맥 속으로 들어갔다.
소녀는 몸이 굳어버려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이진종 남자가 미친 듯이 웃으며 노란 손으로 소녀를 붙잡으려 했다.
이때, 허공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길이가 수십 장에 이르는 금빛이 나타나 순식간에 노란색 큰 손을 그어버렸다.
노란색 손이 두 덩어리로 갈라지더니 빛이 되어 흩어졌다.
금빛은 흔들리더니 희미한 금색 잔영 몇 갈래로 변해 순식간에 몇몇 사람들을 그어버렸다.
이진종의 제자들은 얼굴이 굳은 채, 믿기지 않는 기색을 드러냈다. 얼굴에 핏자국 몇 개가 그어지며 몸이 순식간에 몇 덩이로 갈라져 땅으로 툭툭 떨어졌다.
소녀의 눈에 놀라운 기색이 스쳤고, 금빛을 반짝이며 하얀 피풍의를 두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전에 소녀를 쫓던 사람이었다.
하얀 피풍의를 두른 사람은 석목이었고, 그가 손을 흔들자 파란빛이 나타나 소녀의 몸을 받쳐 들었다.
석목은 소녀를 한 번 바라보더니 손가락을 앞으로 짚자 하얀빛이 날아가 소녀의 몸속으로 스며들며 따뜻한 기운이 순식간에 차가운 기운을 삼켜버렸다.
소녀는 다시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놀란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봤다.
“너……”
소녀가 말을 꺼내려고 하자 석목이 손을 들어 말을 뚝 끊어버렸다.
순간 소녀는 몸이 파란빛으로 감싸인 채 석목과 나란히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 * *
소녀의 몸이 빠르게 끌려 날아갔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이렇게 빠른 속도를 느껴본 적이 없어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석목은 대략 일각 정도 날아가서야 청란성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고, 그가 손을 흔들자, 소녀 주변에 드리운 파란빛이 사라지며 바닥에 내려올 수 있었다.
소녀는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석목과 거리를 두며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누구세요? 왜 절 구해준 겁니까?”
석목이 소녀를 구해줬지만 석목은 축운검파의 제자처럼 입고 있었기에 경계할 만도 했다.
“저는 축운검파의 제자가 아닙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청란성지의 제자입니다. 이 옷은 제가 도망을 치기 위해 쓴 수단입니다. 조금 전에 당신을 쫓아간 것도 그 때문이었고요. 죄송합니다.”
석목이 현령벽을 꺼내서 흔들며 말했다.
소녀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얼굴에 붉은빛이 감돌았고, 부끄러움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조금 전에는 너무 놀라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이건 상처를 치료해주는 단약이고, 보상이라 생각하세요. 여긴 안전할 겁니다. 그럼 각자 갈 길을 가야하니, 조심하세요.”
석목이 옥병을 소녀에게 건네며 하늘로 날아올라 멀리 날아가 버렸다.
소녀는 옥병을 들고서 멍하니 석목이 사라져가는 모습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흔들며 평정을 되찾았다.
옥병을 열어보니 짙은 약냄새가 흘러나왔는데 병 안엔 푸른색 단약이 열 몇 개 들어있었다.
소녀는 매우 기뻤다. 이렇게 귀한 단약을 다 주다니. 소녀는 다급하게 한 알을 꺼내서 삼켰다. 단약이 따뜻한 기운이 되어 몸 속에 스며들자 흐르던 피가 멈추었으며 상처와 진기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 * *
석목은 동성성을 날아 성역에서 떠나려고 했다.
청란성지와 근처에 있는 부속 행성으로 가는 성계 전송진법들은 이미 이진종과 축운검파에서 통제하고 있을 테니 날아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석목은 점점 높이 날수록 중력의 힘을 더욱 강하게 느꼈고, 두꺼운 성운은 석목이 가는 길을 막았다.
동성성은 청란성지의 주요 행성이라, 행성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영기도 짙으며 중력도 강했다.
석목이 용우비차를 꺼냈다.
큰소리와 함께 용우비차에 빛이 크게 번지더니 석목을 태우고서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가 중력을 벗어났다.
눈앞이 환해지며 드디어 성운을 벗어났다.
석목이 좋아하며 더욱 빠르게 날아가려고 할 때, 안색이 갑자기 바뀌었다.
성운 밖에서 은색 전함 한 대가 석목을 향해 날아왔는데 전함에는 이진종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석목을 보자 전함은 곧바로 멈춰 섰다.
“석목!”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가 전함에서 들렸다. 화려한 옷을 입은 노인 한 명이 전함에서 튀어나왔는데 팽산이었다.
팽산이 손을 흔들자, 은색 전함 꼭대기에서 눈부신 은빛이 밝아지더니 한참 동안 용솟음을 치며 강력한 영력 파동을 내보냈다.
석목이 깜짝 놀라 손을 흔들어 법결을 하나 시전하자, 용우비차에 빛이 크게 번지며 옆으로 날아갔다.
은색 전함은 크기는 컸지만 움직임은 매우 날렵했고, 석목이 이리저리 방향을 틀었지만 전함이 내뿜는 은빛은 계속해서 석목을 따라다녔다.
쾅!
은색 빛기둥이 석목에게로 날아왔다!
더는 피할 수 없게 된 석목은 소리를 지르며 순식간에 토템 변신과 구룡쇄금갑을 둘렀다.
쇄금갑에 새겨진 용머리 아홉 개에서 동시에 금빛이 밝아지더니 찬란하고 둥그런 광막이 나타났고, 광막에서는 교룡 아홉 마리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금색 광막이 이제 막 형성되었을 때, 은색 빛기둥이 다가와 무겁게 금색 광막으로 떨어졌다.
굉음과 함께 석목은 금색 광막을 두른 채로 멀리 튕겨져 날아갔고, 얼굴은 하얗게 질렸으며 입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광막도 격하게 흔들리며 터져버렸다.
석목이 튕겨져 날아간 곳은 동성성과 떨어진 곳이라 오히려 단번에 행성의 중력을 벗어나 성운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팽산이 콧방귀를 뀌며 손을 흔들자, 은색 전함이 석목을 쫓아가며 다시 한번 은색 빛을 뭉치기 시작했다.
석목은 하늘에서 곤두박질을 치며 일어서서는 단약을 하나 삼켜 몸속에서 솟구치는 기혈을 강제로 억눌렀다. 그리고는 곧바로 용우비차를 몰고서 성운으로 날아가 끊임없이 방향을 비틀었다.
성운에서는 잡아끄는 힘이 없었기 때문에 석목은 속도가 더욱 빨라져 거의 푸른빛에 가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석목이 아무리 빨리 방향을 틀며 도망가도 쫓아오는 은색 전함과 거리는 멀어지지 않았으며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죽여! 저놈을 죽여버려!”
팽산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눈에서는 흉악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전함 앞쪽에 드리운 은빛은 점점 뜨거워졌으며 금방이라도 뿜어 나올 것만 같았다!
이때, 석목의 눈에 빛이 스치며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분신이 튀어나와 전함을 향해 날아갔다.
은색 전함은 빠른 속도로 석목에게로 날아오고 있었던 터라 분신이 전함 쪽으로 날아가자 거의 순식간에 전함 앞까지 날아갔다.
분신이 손에 쥔 핏빛 단검에 빛을 크게 드리우며 다시 커다란 검빛으로 뭉치더니 전함 앞쪽을 강하게 내리쳤다.
쩍!
전함 앞쪽이 잘리며 뭉쳤던 은빛도 흩어지며 사라져버렸다.
앞쪽을 잘라낸 핏빛 단검은 다시 빠르게 팽악에게 향했고,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마치 붉은색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성계 강자인 팽산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몸을 굴려 간신히 핏빛 단검을 피할 수 있었다.
팽산은 등에서 식은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때, 앞쪽에서 금빛이 크게 번지더니 용솟음을 쳤는데 마치 성운 전체가 금색 바다로 변한 것만 같았다.
앞으로 도망가던 석목이 멈추어 서서는 손에 금색 곤봉을 치켜들었고, 번천곤에 부문들을 칭칭 감은 채로 놀라운 영력 파동을 뿜어냈다.
“이건……”
팽악은 겁에 질려버렸다. 석목이 들고 있는 보물은 보기만 해도 반항하고픈 생각이 사라졌다.
석목이 소리를 지르자 번천곤에서 금빛이 크게 번지더니 방대한 금색 힘으로 변하여 은색 전함을 향해 몰려왔다.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날아가던 전함은 갑자기 멈출 수가 없었다.
번천곤이 전함 앞쪽에 무겁게 떨어졌다.
쾅!
순간, 칠흑 같던 성운에 금빛이 만 장 가까이 뿜어져 나와 주변이 낮처럼 환해졌으며 빛이 스친 허공은 마치 투명한 수정처럼 산산이 부서졌다가 다시 점들로 변하여 난류가 되어 흘러갔다.
주변에 금빛이 들끓었는데 매우 사나웠다.
은색 전함은 금색 난류를 맞아서 터져버려 커다란 은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은빛이 터지기도 전에 공간 균열에 삼켜져 사라져버렸다.
번천곤은 시원하게 한 방을 날린 후에 다시 금빛으로 변하여 석목의 영해 속으로 들어갔다.
석목 역시 피를 뿜어내며 뒤로 튕겨져 날아갔고, 허공에는 수많은 균열로 찢어졌다가 다시 붙었다.
팽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조금 전에 내린 결정을 후회했다.
전함이 지닌 힘으로 단번에 석목을 죽이려 했는데, 석목의 실력이 이 정도 일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단 한 방에 전함을 터뜨렸으며 위에 있던 제자들마저 단 한 명도 도망치지 못했다.
팽산은 이번에 이진종에서 나서며 큰 수확을 얻길 기대했었는데, 석목이 법보급 전함을 날려버렸다. 이진종에서 전말을 알게 되면 팽산은 아마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터였고, 중형은 피치 못할 것 같으니 오히려 손해를 본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